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23)
괴식식당-523화(523/613)
523화. 힘을 숨겨라 (3)
언제까지 참아야 할까 고민하는 승우를 조금 떨어진 곳에 두고, 8명의 헌터가 소곤소곤 말했다.
“구조는 오겠지?”
“당연히 오지.”
게이트 확장 사태 발생 시 대처 매뉴얼 1조, 1항.
구조는 반드시 온다, 믿고 버텨라.
준석이 삐끗한 손목에 나노머신 스킨을 씌우며 말을 이었다.
“확장 때문에 B등급으로 격상한 모양이지만, 최악의 상황은 아냐.”
“확실히 나오는 몬스터가 그대로야. 물량만 증가했다면 레벨업의 기회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좋다고 볼 수만은 없는 게 참…….”
종찬이 말을 받으며 혀를 내밀었다. 물량 증가는 게이트 확장 옵션 중에 제일 만만한 옵션이다.
재수 없게 히든 몬스터 출현이나 질적 상승 같은 옵션이 걸리거나, 네임드 게이트의 더블 도킹 따위의 옵션이 발동하면 살 확률이 극도로 떨어진다. 더군다나 지금은 짐도 있다.
“우리끼리만 있어도 못 살아나는데 초보 헌터까지 있어. 몬스터가 한 등급만 더 높게 나오게 됐어도 저 사람은 죽었을걸.”
종찬의 말에 질책의 의미는 없다. 엄연히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냉정하고 쌀쌀맞기보단 오히려 걱정이 더 묻어나오는 말투였다. 준석이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말이 조금 사납게 들리지만, 일리는 있다. 선배 된 도리로 후배를 위험하게 만들면 안 되지.”
“내 말이 그거야.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할 뾰족한 수단이 있을까?”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티는 게 중요한데. 혹시 진지 작성할 줄 아는 사람?”
진지 작성은 벙커, 함정, 더미 따위를 사용해서 전장을 아군에게 유리하도록 만드는 스킬이다.
보통 마법사나 슈터가 많이 익힌다. 슈터인 성화나 종찬이나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고급 스킬 익힐 시간이 어디 있어.”
“하긴 그건 그래.”
머리를 맞대어 보았지만, 답은 없다. 헌터들이 한숨을 내뱉고 종찬이 조용히 말했다.
“최악의 경우는 저 사람이라도 살려 보내자고. 비상 연료 9인분을 다 쓰면 구조대가 올 때까지 위장 텐트 하나는 띄워 둘 수 있을 거 아냐.”
위장 텐트는 문어의 의태기술을 활용한 텐트로서 주변 기물과 동화하여 잘 안 보이게 만드는 기능이 있다. 연료를 매우 많이 쓰지만 공중에 띄울 수도 있다. 성화가 손가락을 꼽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9인분을 다 쓰면 5일은 띄울 수 있겠네요.”
“그래. 밖에서 확장된 게이트에 구멍을 뚫는데 비슷한 시간이 걸릴 테니까. 어쨌든 한 사람은 살릴 수 있을 거야. 리더, 어때?”
종찬의 말에 준석이 씩 웃었다.
“그래, 그래야겠지. 그게 우리의 의무지. 선배 노릇 해 보자.”
“좋았어. 그럼 최악의 플랜은 이걸로 하고, 다음 플랜을 점검하자.”
“일단 포지션은…….”
“탄환은…….”
* * *
헌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승우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극한상황일수록 사람은 본성을 보인다던가. 승우는 지금껏 살면서 많은 극한상황을 겪었다. 입으로는 험악하게 구는 사람도 막상 극한상황이 되면 얼마나 많은 선한 선택을 하던가.
세간에서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인간은 막상 최악의 상황이 되면 아름다운 선택을 한다.
‘영화, 타이타닉이 생각나는군.’
타이타닉을 보면 연장자가 젊은 이에게 탈출 보트를 양보하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다들 각자 맡은 바 자리에서 소임을 다하다가 죽는다. 연주자들이 배가 침몰하는 그 순간까지 연주하는 모습에 몇 번을 울었는지 모른다.
‘흠흠흠. 좋아.’
기분이 좋아졌다. 의외로 힘숨찐 놀이라는 거 재밌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맛이 있으니 다들 그렇게 유희에 몰입하는구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역시 기만으로 이뤄진 관계는 정상이 아니다. 이번만 하고, 다음은 하지 말자. 다시 다짐하고 나무에 등을 기댔다.
‘지금 이 게이트는 포레스트 타입. 숲 지형이니까 이 파티와 상성이 영 안 좋아.’
숲은 나무로 가려져서 시야 확보가 어렵다. 그리고 사방에서 적이 습격할 수도 있다.
탱커 한 명에 기대서 싸우다 보니 표적 지점이 분산되면 그 순간 무너진다. 시기도 문제다. 밖에서 이 게이트에 진입하는 데 5일이나 걸린다면, 장기전을 각오해야 한다.
유감이지만 이들은 장기전에 적합하지 않다.
‘솔직히 단기전에도 적합하지 않지만. 어쨌든 상황은 썩 좋지 않아. 당장이야 게이트가 확장돼서 몬스터도 재정비 중일 뿐. 곧 수습하고 달려들겠지.’
재정비가 끝나면 무한 디펜스의 시작이다. 이쪽은 그사이에 거점 방위를 위한 준비가 끝나야 한다. 따라서 승우는 선택해야 했다.
‘진지 작성. 내가 할 줄 안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까!’
진지 작성 스킬은 아주 예전부터 익힌 스킬이다. 테오와 비교해서 누가 더 잘하냐고 한다면 와일드 엘프라는 사기적인 종족의 보정을 받는 테오가 잘하지만, 그와 비슷할 정도로는 할 줄 안다.
문제는 이 진지 작성 스킬이라는 게 제법 상급 스킬이라는 것. 레벨 6의 초보 헌터가 할 줄 안다고 하면 너무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믿어 주지도 않을 거 같다.
‘다른 문제도 있구나…….’
지금은 본체가 아니라 화신체의 상태다. 이 몸은 설정 그대로의 힘을 가지고 있다. 진지 작성을 하려고 해도 힘이 부족하다. 일반인과 같은 수준인 근력 3으로 진지 작성하다가는 일 년은 걸린다.
고민하고 있으려니 성화가 다가왔다. 그녀가 캠프파이어 킷을 가져와서는 손짓했다.
“같이 나무 좀 해요.”
“식사 준비인가요.”
“예. 레이션이 충분히 있긴 하지만, 레이션은 적이 몰려올 때 급하게 먹어야 하니까 아끼고요. 지금은 시간이 있으니 우선 요리를 든든하게 먹어 보려고요.”
“그렇군요. 돕겠습니다.”
승우는 습관적으로 검을 잡았다가, 조용히 돌려놨다.
검으로 아름드리나무를 서걱서걱 베는 일은 명백하게 이상하다. 예전이라면 몰랐겠지만 이번에 장착된 지구의 상식 덕분에 그게 얼마나 비정상적인 짓인지 알았다.
그래서 승우는 조심스럽게 성화가 주는 손도끼를 잡아서 나무를 벴다. 툭툭툭, 하고 다섯 번 치니 나무가 넘어간다. 그러자 성화가 탄성을 내질렀다.
“와, 잘 자르시네요. 어떻게 손도끼로 이렇게 쉽게 자르시지?”
“하하하. 이 나무를 보면 안쪽이 말라 있죠? 그 덕분입니다.”
“그러네요. 이걸 또 어떻게 알아보셨어요?”
“캠핑을 많이 해 봐서요.”
“인도어파 같았는데 의외로 아웃도어?”
“두루두루 하는 편입니다.”
손도끼로 다섯 번 쳐서 베면 안 되는 거였나! 일반인의 완력으로도 기술만 잘 쓰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건데?!
하긴 그 기술이라는 게 일반인이 쓸 수 있는 게 아니지.
‘또 실수했군. 반성. 반성.’
아랫입술을 깨물며 승우가 벌목을 마무리했다. 그사이 성화가 요령 좋게도 조리 준비를 끝냈다.
캠프파이어 킷을 설치하고 돌과 승우가 자른 나무의 자투리로 마무리를 한 모양새가 제법이다. 그 옆에는 종이로 접어서 만든 식기구도 있다. 신기하다는 듯이 보니 성화가 V를 그리며 웃었다.
“괴식교로도서 이건 기본이죠!”
“하. 하하. 굉장하십니다.”
“더 칭찬해 줘요. 준석 오빠는 칭찬이 짜서 칭찬 듣기가 힘들어요.”
“후후, 그런 사람이 가끔 해 주는 칭찬이 제일 기쁜 법 아닐까요.”
“와, 강민 씨 아주 선수네요. 홀릴 뻔했어.”
말하는 거치고는 별로 홀리진 않은 거 같은데? 승우가 눈웃음을 지으며 다른 사람을 봤다.
진지 작성 스킬은 없지만, 뭐라도 해 보겠다고 나무나 돌로 바리케이드를 준비하고 있다. 상당히 힘든 일이니까 자기들끼리 하는구나. 배려는 고마운데 이제는 슬슬 피곤하다. 그냥 차라리 일 시켜 줘.
성화가 팔을 걷어 올리고 식칼을 쥐었다.
“그럼 요리는 제가 할게요.”
“예, 부탁드립니다.”
“괴식인데 괜찮아요?”
“예?”
괴식??
“괴식 스킬 있으십니까?”
“후후후, 괴식 스킬은 없지만 눈동냥으로 배운 게 좀 있어요.”
성화를 지켜보니 그녀가 황당한 짓을 시작했다. 나무껍질을 깍둑썰기로 자르고 있다. 그리고 아까 잡았던 몬스터, 울크록의 고기도 썰었다.
‘앗, 앗. 피도 안 빼고!?’
울크록은 사냥개처럼 생긴 몬스터인데 녀석의 고기는 피를 제대로 빼지 않으면 독성이 강해서 먹으면 죽는다.
그리고 저 나무껍질은 씹으면 바늘처럼 쪼개는 결을 가지고 있어서 깍둑썰기로 썰어서 먹으면 바늘침을 삼키는 상황이 된다.
식도고 위장이고 걸레짝이 난다. 저걸로 요리하면 100% 사망이다.
승우가 황급하게 말렸다.
“자, 잠시만요! 요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제가 할게요. 이 김에 준석 오빠에게 괴식의 힘을 보여 줘야겠어요. 걱정하지 마요! 머릿속으로 해 봤을 때는 얼추 됐으니까.”
“머, 머, 머릿속!?”
괴식을 만들기 전에 머릿속에서 가볍게 시험해 보는 일은 고수나 하는 일이다.
결코 초보자가 따라 해서는 안 된다. 이 사람 이대로 뒀다가는 진짜 다 죽이겠구나!
“제가 하겠습니다.”
승우가 냉큼 그녀의 식칼을 빼앗았다. 성화가 놀란 토끼 같은 눈으로 돌아봤다.
“저 괴식 스킬 있어요.”
“괴식 스킬 있어요? 그 고급 스킬이? 아니, 근데 방금 칼 어떻게 빼앗았??”
“잠시 비켜 주세요.”
어어어? 하면서 성화의 자리도 빼앗았다. 승우는 차분하게 식재료를 확인했다.
성화가 준비한 재료는 울크록의 고기와 나무껍질이 전부다. 나머지 식사는 전투식량, 레이션이다.
레이션을 아끼기 위해서 있는 걸 대충 먹어 보자는 의도는 알겠는데 역시 재료가 턱없이 빈약하다.
“일단 재료를 늘리죠.”
“먹을 게 있을까요?”
“여긴 숲입니다.”
숲은 자연의 어머니, 조금만 둘러봐도 먹을 게 많다.
손을 뻗어서 몇 개의 나물을 땄다. 코코넛과 비슷한 모양의 열매도 땄다. 그리고 한 나무의 옹이를 파서 통통한 애벌레를 꺼냈다.
손바닥 반만 한 애벌레 열 개가 꾸물거린다. 성화가 애벌레의 등을 가리켰다. 등 쪽에 그물망 모양의 자국이 있었다.
“이게 뭔 자국일까요?”
“동충하초라서 그렇습니다.”
“동충하초!”
“아직 여름이 오지 않아 버섯이 되진 않은 모양입니다.”
“강민 씨 진짜 괴식 스킬 있군요. 벌레를 잡는 걸 보니까 알겠어요.”
“하하하.”
실은 지금은 없다. 화신체 강민이 가지고 있는 스킬은 하급 검술이 전부다. 하지만 어차피 정신이 승우인 이상 하려고 마음먹으면 그 순간 검과 괴식 관련 스킬은 생긴다. 애초에 스킬 시스템에 의존할 만큼 편하게 살지도 않았다.
“바로 시작할게요.”
울크록 고기의 피를 빼는 법은 두 가지다. 흐르는 물에 열흘 정도 담가 두면 피와 독이 모두 빠진다.
그리고 그 자리를 물때와 곰팡이가 차지한다. 물때와 곰팡이는 먹어도 죽지 않으니 가장 간단하게 정화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곰팡이에 몇 가지 재료를 섞으면 좋은 효과도 나온다. 애석하게 열흘이라는 시간이 없기에 승우는 두 번째 방법을 쓰기로 했다.
“별로 안 보시는 게 좋을 텐데요.”
“아뇨. 흥미진진해서 좋아요.”
방금 찾은 동충하초의 애벌레는 해독 효과가 있다.
애벌레를 절구에 으깨서 낸 즙을 울크록의 고기에 바르면 핏속에 있는 독이 중화된다.
애벌레 진액을 처바른 개고기 따위는 별로 먹고 싶어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도리어 흥미가 생긴 모양이다.
“어떤 요리를 하실 거예요?”
“개고기와 동충하초를 사용한 홍소육을 해 볼 생각입니다.”
“홍소육! 그거 좋아해요!”
애벌래 진액을 바른 개고기는 괜찮다 이거지? 이 사람 확실히 괴식교도가 맞군.
“그럼 빨리 끝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