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27)
괴식식당-527화(527/613)
527화. 귀찮아졌다 (3)
준석과 그의 길드원들은 이틀간 뼈를 깎는 진지구축을 통해 텅 빈 숲의 요새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결국은 다 나무를 썰고, 부수고, 땅을 파서 만든 진지다.
결정적인 한 방이 부족하다.
수성, 디펜스의 꽃이란 자고로 포탑이다. 포탑, 포탑이 필요하다.
그렇게 생각했더니 운 좋게 포탑이 드랍 됐다. 2미터짜리 몬스터를 잡았는데 15미터짜리 포탑이 떨어지는 일은 참으로 공교로우면서도 기가 막힌 일이었지만, 애초에 사람이 날아다니고 불을 토하고, 마법을 쓰는 세상인데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님 말고.”
“좋은 게 좋은 거지.”
운 좋게도 포탄도 드랍 됐으니, 포탑은 사용 가능한 상태. 끝없이 밀려오는 적의 숫자를 포탑으로 줄이고 다가오면 하나씩 처리하는 전략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드랍된 포탄은 세 발이었지만, 지금 열아홉 발째가 발사되고 있다.
“그럴 수도 있지.”
“좋은 게 좋은 거지.”
강 씨의 냉장고만 한, 아니- 인천 항구 컨테이너만 한 가슴팍에서 포탄이 계속해서 샘솟는 일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오병이어(五餠二魚), 예수님은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오천 명을 먹여 살렸다고 한다.
강 씨는 세 발의 포탄으로 열아홉, 아니지. 스물세 발의 포탄을 쐈으니 아직 오병이어까지는 아니다.
이젠 다들 그러려니 하고 싸움을 이어 갔다. 싸우다 보니까 알 수 있다. 이거 막을 만하다.
막아서 생기는 경험치가 무한 러쉬를 막다 지치는 체력과 정신력보다도 크다.
저놈들이 강해지는 속도에 맞춰서 이쪽도 강해지고 있다. A랭크 게이트 클리어는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다.
한참 싸우고, 러쉬가 끝났다.
휴식기가 시작됐다.
여덟 명이 빠르게 무기와 방어구를 벗고, 가부좌를 틀었다. 강 씨에게 배운 마나 호흡법이다.
이 호흡법에 맞춰서 숨을 고르면 체력과 마력이 빠르게 회복된다. 덤으로 이해할 수 없지만 마나 코어가 두꺼워지는 기분도 든다. 마나 코어가 두꺼워진다는 감각 자체가 신기하다.
누군가 그게 가능하냐고 물어본다면 아무도 설명 못 할 테지만, 두터워진다는 느낌만은 진짜였다.
그렇게 호흡을 이어가고 있으니 인기척이 났다.
이 게이트에 인기척이라니?
다들 눈을 번쩍 떴다.
‘구조대다!’
건들거리면서 누가 걸어온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검은 퍼스트오더 코트, 슈퍼스타의 문장.
성화와 종찬이 비명을 질렀다.
“끼야아아아아앗! 교황님이시다!”
“우와아아아아아-! 교황님!”
퍼스트 오더 랭크 11위.
슈퍼스타 백강혁.
괴식교의 교황.
거물 중의 거물이다.
그러고 보면 성화나 종찬이나, 괴식교도였지. 준석은 돌고래 초음파를 발사하는 두 녀석을 밀어내고 대표자로서 고개를 숙였다.
“C급 하청 길드, 83번조의 조장 하준석입니다.”
“11위, 백강혁.”
짧다. 짧은 말에서 퉁명스러운 기분이 팍팍 느껴진다.
사회생활 하다 보면 누구나 하나쯤은 초능력이 생긴다.
준석도 초능력을 하나 가지고 있다. 진상감지 레이더라는 사회인 필수 초능력이다.
강력한 SS급 진상의 기운이다.
‘이 자식은 왜 이렇게 뿔났어? 아주 제대로 빈정이 상했는데…….’
왜 백강혁이 빈정 상했을까.
일반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구조자가 너무 잘 싸워서 삐져 버린 구조대는 일반인이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심연 저 너머에 있는 존재다.
준석의 평범한 머리로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눈에 모래가 듬뿍 들어간 두 괴식교도도 마찬가지.
먼발치의 승우만이 백강혁의 진상력을 눈치채고 손으로 얼굴을 덮을 뿐이었다.
강혁이 입을 내밀고 말했다.
“다들 레벨이 몇이야?”
“저는 37이고, 성화는 34, 종찬은 33입니다. 그리고 다른…….”
“다른 애들도 삼십 초입?”
“네. 네. 그렇습니다.”
“이게 말이 되나? 삼십 대 애들이 A랭크 러쉬를 버텼다고? 너희들 정체가 뭐야.”
준석이 머쓱하니 머리를 긁었다. 정체가 뭐냐고 묻는 말은 머리 털 나고 처음 들어 봤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대답하기가 궁색하다. 머뭇거리니 백강혁이 매섭게 질문했다.
“뇌격포는 어디서 구했고?”
“드랍 됐는데요.”
“아, 지랄시나이데. 국산 병기가 왜 게이트에서 드랍 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 요즘 세상에 말이 되는 일이 더 적지 않습니까.”
“호오라. 모른 척하시겠다? 너 임마들아. 지금 입은 장비는 또 어디서 구했어?”
“드랍 됐는데요.”
“야, 진짜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너희들이 낀 거 전부 다 아티팩트인데 실종된 지 이틀 만에 여기서 지금 스무 개는 먹었다고? 뒤질? 아티팩트가 그만큼 나왔으면 나는 임마, 아티팩트로 에펠탑을 지었어!”
백강혁이 떽떽거리니, 이제 슬슬 교황뽕이 빠진 두 명도 이상한 눈을 했다.
‘오빠, 이거 이상하지 않아요?’
‘무지 이상하다.’
백강혁은 구조를 위해서 왔다. 근데 이건 구조대가 아니라 마치 취조를 하기 위해서 온 형사 같지 않은가. 국세청 헌터과 직원으로 전직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큰 죄를 지었는가.
의문이 꼬리를 잇는 가운데 종찬이 용기를 내서 말했다.
“교황님!”
“왜.”
“저희는 구조를 기다렸는데요! 구조하러 오신 거 아니었어요?”
“그래. 구조하러 오긴 했지. 저기 숲에서 세 시간 전에 말이야.”
“…….”
이제야 다들 이해했다. 세 시간 전에 왔는데도 끼지 못한 이유는 전술상의 문제다.
예상하지 못한 톱니바퀴 하나는 긍정적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더 드물다.
백강혁이 끼었으면 진지구축과 헌터들의 밸런스가 깨져서 오히려 엉망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백강혁도 그걸 알았으니 끼어들지 못하고 참고 있었던 것이었다.
저 숲에서, 오도카니!
혼자서! 세 시간을!
진실을 알게 되니 사람이 달라 보인다. 튀는 걸 세상에 제일 좋아하는 슈퍼스타 백강혁이, 세 시간을 기다렸다.
삐지기 충분한 이유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백강혁은 무조건 삐질 만한 이유다.
준석과 종찬은 어른이라 숨을 들이키며 경악을 숨겼고.
“교황님 삐졌어요?”
“!”
성화는 그만 떠오른 말을 입에 담고 말았다. 백강혁의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졌다. 그가 빠드득 이를 갈며 외쳤다.
“아, 안 삐졌거든!”
“…….”
전형적인 삐진 사람이 내뱉는 말이다. 준석과 종찬, 숨어 있던 승우가 동시에 이마를 쳤다.
뭔가 망한 기분이 든다. 그러고 있으니 백강혁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여기에 없는 다른 놈 하나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여기 초보 헌터도 있었지. 살아 있어?”
“강 씨요? 살아 있습니다.”
“6레벨이라더니 용하네, 어디 있는데?”
“안전하게 오두막에서 쉬고 있습니다만.”
“쓰으, 다들 싸우는데 빠져 가지고는… 싹수가 노란 놈이군. 어디 한번 보자.”
힐끔, 준석이 다른 사람을 봤다. 다른 사람도 눈을 떨며 만나게 하면 안 된다는 뜻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강민은 매우 수상하다. 진짜 수상하다.
지금까지의 행적을 나열하면 수상하지 않은 부분이 한 개도 없다. 정말 조금도 없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착한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다. 우리를 위해서 많은 걸 해 준 사람이다.
‘지켜야 해!’
강민이 수상한 건 확실하고, 그게 어떤 종류의 수상함인 줄은 모른다. 위법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강민이 하는 일을 보면 그가 별로 표면에 드러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공간계 능력자가 자신의 능력을 숨기다가 우리를 위해서 개방했다. 아껴 둔 아이템도 몰래몰래 뿌렸다. 기이하면서도 실용적이고, 도움이 되는 강의도 해 줬다.
은혜를 갚아야 한다.
준석이 오두막으로 향하는 백강혁을 가로막았다.
“강 씨가 지금 몸이 많이 안 좋아서요. 약 먹고 자는 중입니다.”
“약 먹고 자? 와, 진짜 세상 좋아졌네. A랭크 게이트에서는 한 명이라도 힘을 합쳐야 하는데, 자기만 편하게 자? 그 새끼 얼굴 좀 봐야겠다.”
“그, 내일 보시면 안 될까요!”
구차하지만 어떻게든 물고 늘어진다. 준석이 열심히 말리고, 다른 일곱 사람이 슬쩍 벽이 되었다. 그러자 백강혁이 눈을 찡그렸다.
“이봐, 하준석 씨. 당신 하는 짓이 지금 엄청 수상한 거 알아?”
“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나 같은 상위 퍼스트 오더는 게이트 안에서는 범죄자에 대한 집행 권한은 물론이고 즉결 처형 권한도 있거든? 내가 지금 당신들 잡아넣기 전에 비키지, 그래.”
백강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오른손을 검 자루 위에 올렸다.
순간 모두가 침을 삼켰다. 한국은 유난히 뛰어난 검사가 많다. 검성 이시형, 기재 김민영, 천재 윤은형. 나이프로는 세계 최강이라고 일컬어지는 민 오키프도 있다.
그런 사람들의 이름 속에 가려져 있지만, 실은 백강혁도 전 세계에서 보자면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검사다.
허리춤에 찬 저 푸른 검은 괴식의 신이 미사 생방송 중에 직접 하사하였다는 전설의 성운검이다.
성운검이 뽑히면 여기 모인 이들이 버틸 재간이 없다. 막는다고 생각해 보니 아찔해지는 이야기라 성화가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아무도 비키지 않았다.
백강혁이 검을 잡았다.
“안 비킨다 이거지? 이상하게 강해서 뭔가 개 수상하더라니, 그놈이 문제였나 보구만. 좋아. 안 비키면 실력 행사라도 해야겠네.”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다들 비키지 않았다. 지켜보던 승우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들과의 인연은 그리 깊지 않다. 며칠 본 게 전부다. 그 며칠 때문에 저들은 지금 목숨을 걸고 있다.
인간이란 이 어찌 선하고 아름다운가. 감동적이다.
그러나.
‘저 자식이 진짜……!’
일 년을 넘게 본 화신 놈은 삐져서 갑질을 하고 있다.
확실히 의심할 만한 상황은 맞다. 수상한 것도 맞다.
하지만 좋게 말할 수도 있고, 내일 보는 방법도 있으며 협조를 구할 수도 있지 않은가.
퍼스트 오더이기도 한 놈이 삐져서 갑질하는 꼴을 보니 속에서 천불이 난다.
어쨌든. 이대로 지켜보다가는 진짜 큰일이 날 수도 있겠다. 승우가 자청해서 앞으로 나섰다.
“제가 강민입니다만. 무슨 일이신가요.”
퍼뜩, 길드 헌터들이 놀라서 손을 내저었다. 다가오지 말라는 뜻이었다만, 지금은 따라 줄 필요가 없다.
성큼성큼 승우가 다가갔다. 그러자 백강혁이 정말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도 이상한 놈이었지만 오늘의 표정은 정말 이상했다.
다가가도, 말이 없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백강혁이 찝찝한 말투로 말했다.
“뭐야 너. 생긴 게 왜 그래.”
“…….”
아니, 이 자식이 초면에 막말을?
“뭔데, 씨바. 우리 싸장님 얼굴을 베이스로 깔아 둔 후에 적당하게 랜덤 함수 넣어서 만들어진 훈남 얼굴을 하고 자빠졌냐.”
“…….”
이 자식.
어떻게 알았지?
예리하다.
매우 예리하다.
“닮은 듯 안 닮은 듯 잘생겨서 더 열받네. 너 얼굴 마음에 안 들어.”
“그… 마음에 안 드신다고 해도 말입니다. 타고난 얼굴인데 어쩔 수가 없지 않습니까.”
“고쳐. 성형해. 그리고 너 목소리도 왜 그래.”
“제 목소리는 또 왜요.”
“왜 싸장님 목소리에다가 조금 비음 섞은 목소리야.”
“…….”
이 자식.
알고 이러는 거 아냐?
백강혁이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와, 존나 기분 나쁘네. 무심코 엎드려서 빌 뻔 했잖아. 개색햐.”
“…….”
모르는 거였군.
모르고 저러는 거였군.
백강혁은 확 성질을 부리려다가, 손을 내렸다.
손이 어째 덜덜 떨린다.
“아이씨. 뭐야 이거 왜 이래. 너 나한테 뭐 했냐?”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만…….”
“독 뿌렸나? 왜 이러지.”
백강혁의 감성은 정말이지 놀라운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엎드려라.
빌어라.
살려 달라고 해라.
내면의 백강혁의 싸장님 레이더가 진짜 승우를 감지하고는 살기 위해서 울부짖었다.
그리고 그런 한편 백강혁의 가오가 그럴 수는 없다고 포효했다.
인간 백강혁.
폼생폼사.
폼으로 살고 폼으로 죽는다.
길드 하청 헌터 앞에서 쪽팔린 짓을 할 수는 없다.
쪽팔리지 않는가!
그래서 승자는 백강혁의 가오였다.
“너 이 자식. 강민, 이름도 마음에 안 드는 새끼. 네가 딱 찍어 뒀어. 너, 너, 하나만 걸려 봐. 뼈도 못 추리게 해 줄 테니까.”
이걸 대체 어떻게 반응해 줘야 할까. 승우는 한숨을 쉬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게이트 탈출까지 앞으로 이틀 남았다. 이틀이 참 길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