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28)
괴식식당-528화(528/613)
528화. 믿음 (1)
거의 모든 경우 퍼스트 오더는 잠정적으로 지휘관의 예우를 받는다. 백강혁도 예외는 아니다.
A랭크 게이트 안에서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설령 현직 육군 장관이 있다고 해도 지휘권은 퍼스트 오더가 가져간다.
지휘권을 받은 백강혁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검토를 시작했다.
‘망할. 딴지 걸 곳이 없어. 솔직히 내가 한 것보다도 잘했어.’
진지구축 스킬이 희귀한 스킬이라고 해도 퍼스트 오더가 더 희귀하다. 퍼스트 오더 백 명 중 진지구축 스킬이 없는 사람은 한 손에 꼽는다.
백강혁도 스킬 등급이 낮을 뿐 있기는 있었다. 그 스킬로 한참을 봐도 개선점이 보이지 않는다.
‘이걸 그 강민이란 마음에 안 드는 자식이 고안했다, 이거지.’
주변 사람들은 자신들이 머리를 맞대고 쥐어짜서 만든 거라고 하지만, 백강혁의 눈은 예리하다.
거짓말도 많이 해 본 사람이 잘하는 법. 준석을 비롯한 하청 길드 파티는 거짓말을 정말 못했다.
윤은형 바라기인 어디 고등학생이 훨씬 더 거짓말을 잘한다. 그놈이랑 부대끼며 산 시간을 생각하면 이딴 거짓말에 속을 이유가 없지.
분명 강민이라는 놈이 혼자서 설계한 거다. 그리고 마감만 자율적으로 시킨 거다.
기본 진지 구동 메커니즘과 마감 사이의 간격이 엄청나다.
진지구축의 전문가가 설계한 기초 설계도를 충실하게 지키면서 만들다가 마지막에만 잠깐 아마추어가 손본 모양새다. 그러니까 강민이 만든 게 뻔하지.
결론을 낸 백강혁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진지는 이대로 유지한다.”
공과 사를 가릴 주변머리는 있다. 여기서 진지를 수정했다가는 다 죽는다. 갑질을 할 곳과 안 할 곳 정도는 가린다. 하지만 분한 마음은 남았다.
백강혁이 강민을 노려봤다. 그러자 강민, 승우가 한숨을 내뱉었다.
“또 뭐요.”
“너 임마. 말 공손하게 안 하냐?”
“요 붙였잖아요.”
이 시건방진 뉴비를 보라. 말 한마디 한마디에 비아냥이 가득하다. 어쩜 저리 건방질까.
“앗, 빈혈이…….”
백강혁은 빈혈이 온 듯, 머리가 핑하고 돌았다.
몇 년 전 초보 헌터 시절, 군기 잡는 고참에게 ‘좆이나 까잡숴’라고 외치곤 하이바를 던졌던 과거의 자신이 떠오른다.
이름도 기억 안 나는 고참 씨. 이런 기분이었군요. 뉴비가 개기면 개짜증 나는군요. 쬐금 미안해요. 하지만 당신 진짜 개꼰대였어.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채운다. 백강혁이 힘들게 균형을 잡았다.
“쓰으으읍, 하. 요만 붙인다고 끝이냐. 말 하나하나에 선배에 대한 공경의 마음을 담으라고.”
“아, 진짜…….”
그래. 저거다. 저거. 저 눈! 아, 이 자식을 진짜 어쩌면 좋을까, 하고 견적을 보는 저 눈. 저 눈을 보면 머리가 아프고 심장이 뛴다.
당장이라고 엎드려서 살려줍쇼 하고 빌고 싶어진다. 이유는 백강혁 자신이 제일 잘 알았다.
닮았다.
안 닮았는데, 닮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도 안 닮았지만, 하나하나 얼굴 파츠를 뜯어보면 상당히 싸장님을 닮았다.
풍기는 분위기도 다르지만, 표정이나 눈이 너무 닮았다. 특히 습관으로 보자면 진짜 싸장님과 똑같다.
곤란할 때 오른쪽 눈에 살짝 올라가는 것도, 입가가 조금 올라가서 항상 웃는 얼굴인 것도.
기분이 나쁘면 잠깐 표정이 굳었다가 오히려 시원하게 웃는 점도 비슷하다. 목소리는 싸장님 목소리에 살짝 비음을 섞은 건데, 고등학교나 중학교 때의 싸장님 목소리가 저렇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까지 닮았는데.
본인이지 않을까?
‘그럴 리가 없어.’
자고로 이런 말이 있다.
세상에는 자신과 닮은 사람이 세 명은 있다.
이 말은 의외로 진짜라는 게 중론이다. ISAC의 헌터 리스트를 보면 정말로 쏙 빼닮은 사람이 세 명은 나온다. 백강혁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한 각성자였다. 완벽하게 똑같이 생겼다.
물론 생김새만 같았고, 능력은 전혀 달랐다. 최하급 랭크 헌터였지.
아무튼 닮은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니까 저건 싸장님이 아니고, 강민이라는 아주 시건방진 놈이다.
쫄 필요가 없다.
나는 퍼스트 오더.
저놈은 초보 헌터.
하늘과 땅만큼의 간격이 있다.
그렇게 백강혁은 마음을 굳혔다.
“어쩔 수 없지. 그래, 날 형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말해!”
“…….”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자.
저 자식 뭔가 이상해.
그러니까 딱 선을 긋자.
둘만 있을 때는 알랑방구를.
다른 사람이 있을 때는 가오를 챙기자. 현명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판다. 미리미리 최악의 수를 생각해서 튈 구멍을 파자.
“나 완전 천재.”
어째, 지능이 오른 기분이 든다.
하지만 백강혁은 몰랐다.
“세 번…….”
착실하게 승우의 신문지 스텍이 쌓이고 있었다.
쌓이는 이유는 단 하나.
‘내가 그렇게 바른 말을 쓰라고 말했거늘. 비속어를 아주 입에 달고 사는구나.’
백강혁의 갑질 대다수는 참을 만한 갑질, 아니, 오히려 퍼스트 오더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심이다.
승우가 봐도 승우는 수상하니까!
하지만 몇 개는 아니었다. 특히나 말투, 계급으로 찍어 누르는 폭언은 퍼스트 오더와는 상관없이 그냥 백강혁이 나쁘다.
입에 담기가 힘든 말을 마구 담는다. 그 횟수가 무려 3번이다.
여기가 만약 게이트가 아니었다면 신문지가 울부짖었을 테지.
지금 승우의 고민은 하나였다.
스텍이 쌓인 만큼 때릴까.
아니면 신문지를 두껍게 말까.
두껍게 말고 그만큼 때리자.
그게 낫겠어.
승우는 결정을 내렸고. 백강혁은…….
“어이씨. 숲인데 왜 이렇게 추워.”
어디선가 느껴지는 한기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 * *
백강혁이 일행을 모두 모아 놓고 브리핑을 시작했다.
“포지션은 이대로 유지하고, 나는 별동대로서 움직인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적을 상대로는 이 편이 합리적이다.
백강혁은 지금 이들과 호흡을 맞출 시간이 없다. 서로서로 방해하는 모습이 될 터이니, 흩어져서 별도로 싸우는 편이 옳다.
이렇게 되면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고 혼자 싸우는 백강혁이 힘들겠지만, 실은 백강혁은 혼자가 아니다.
백강혁 팀은 백강혁의 그림자에서 대기할 수 있다. 그림자에서 쉬는 능력은 원래는 나이트 메어의 혼종인 변종 팬텀 스티드 애쉬만이 가능했던 것이었는데, 지금은 애쉬도 성장했다.
이젠 부엉이인 아울과 코볼트인 쿠제까지도 수용할 수 있다.
그들과 함께라면 A랭크 게이트쯤이야 일도 아니지.
백강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혼자서 충분하니까, 너희들은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해. 지휘는…….”
“예. 제가 하겠습니다.”
“아니, 바지사장 아조씨 말고. 저기, 초짜 헌터가 하라고.”
준석이 찔끔하고 놀라 백강혁을 봤다. 백강혁은 따분하다는 듯, 준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에헤이. 커버 좀 그만 쳐.”
“하지만 강 씨는 그냥 초보 헌터일 뿐인데요.”
“아이고, 아저씨. 저 녀석 이상한 건 한 번 보면 알아. 퍼스트 오더를 얕보지 말라고. 저런 초보 헌터가 어디에 있어.”
“있을 수도 있지요.”
“뭐, 하나하나 놓고 보면 있을 수가 있긴 해.”
강민의 수상함은 끝이 없지만, 제일 큰 문제는 공간 가방이다. 이건 정말 아주 드문 능력이다. 하지만 레벨 6 헌터가 공간 가방을 보유한 경우는 희소하지만 있긴 하다.
레벨1, 각성하자마자 백화점 하나 분량의 공간 가방을 열 수 있게 된 엘프리데라는 이름의 각성자도 있다.
그녀는 퍼스트 오더는 아니지만, 레벨1부터 전략병기로서 운영되는 엑스트라 오더에 편입되고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공간 가방을 저만하게 가질 수 있는 쪼레벨은 있을 수 있지.”
“그런데 어째서 그러십니까.”
“문제는 내용물이지.”
공간 가방의 유무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 공간 가방의 내용물이다.
다양한 아티팩트. 뇌격포 같은 공성 병기. 식재료 등 개인이 가지고 있기에는 너무나 질이 높고, 고가의 물품이 많다.
“대기업 회장 아들내미라고 해도 뇌격포는 못 사. 당신들 저거 가격을 몰라서 그러나 본데, 뇌격포 한 대에 제트기 한 대 가격이거든? 그걸 일반인이 뭔 재주로 가방에 넣고 다니냐.”
“그, 그렇게 비싼 거였나요.”
“그리고 아티팩트도 말이 안 돼. 국세청 헌터과가 병신도 아니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하지만, 하지만.”
“그만. 돼먹지 않은 실드는 치는 게 아냐. 저 강민이라는 녀석은 무진장 수상해. 하지만 그 수상한 녀석을 지금 내가 넘어가 주겠다고 하는 거 아니냐.”
수상하지만 유능하다.
A랭크 게이트는 백강혁 혼자서도 클리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들을 상처 없이 되돌려 보낼 수는 없다.
이 게이트는 디펜스 형식의 게이트이기 때문이다.
전원을 몸 성하게 돌려보내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강민의 수상할 정도로 비싼 물품이 많이 들어간 공간 가방과, 이상할 정도의 지휘력. 그리고 육성력이다.
“나갈 때까지 있는 건 써야지. 그러니까 댁이 지휘를 맡아.”
“알겠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한다는 듯 태연하다. 백강혁은 게이트를 나간 이후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순순하게 응해 준다. 좋은 사람이긴 하다. 하긴 좋은 사람이니까 실력을 숨기다가 풀었겠지.
“점점 더 마음에 안 드네.”
“아, 또 왜요.”
백강혁이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강민을 봤다. 이 수상하기 짝이 없는 초보 헌터를 찬찬하게 뜯어보면 이렇다.
드럽게 많은 고가품이 가득 찬 공간 가방. 이상하게 사람을 잘 돌봐주는 포용력, 넓은 시야와 전투 지휘능력, 진지구축 능력과 좋은 성격, 훈남이면서 괴식스킬까지도 가지고 있다.
“쓰읍…….”
생각하면 할수록 누군가와 점차 인상이 겹쳐 간다. 그게 백강혁이 얌전해진 이유기도 하다.
싸장님과 닮았고 공간 가방은 겁나 크고 비싼 물건이 그득하다. 거기에 괴식도 할 줄 안다.
머릿속의 싸장님 체크 룰렛이 돌아가서 다섯 개가 죄다 싸장님 얼굴로 변했다.
77777.
잭팟이다.
그런데도 인정하지 않는 까닭은 단지 가오와 믿음이었다.
‘싸장님이 힘숨찐 놀이 따위를 할 리가 없어!!! 내 싸장님은 그렇지 않아!’
힘숨찐 놀이가 무엇인가.
힘을 숨긴 찐따 놀이다.
찐따나 할 법한 놀이를.
싸장님이 한다고? 뒈질래?
누군가가 강민이 승우라고 주장한다면 그놈을 패 버릴 것이다.
승우란 사람은 결코, 힘숨찐 놀이를 할 사람이 아니다!
그런 믿음으로 백강혁은 강민의 존재를 부정했다.
“너 진짜 마음에 안 들어.”
“아까는 형이라고 생각하라면서요. 이젠 왜 그러는데요.”
“형은 원래 동생을 존나게 싫어하는 법이야. 깨물어 주고 싶게 귀엽다가도, 죽일 듯이 짜증 나지.”
“…….”
승우가 어이없어했지만, 의외로 다른 사람은 이해했다.
종찬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면서 ‘그렇지, 동생은 때론 죽이고 싶은 놈이지’하고 중얼거렸고 성화는 ‘어우, 재수’라고 중얼거렸다.
분명 종찬은 동생이 있는 형일 테고, 성화는 자기가 동생이겠지.
외동인 승우만이 이해가 안 돼서 난처하게 볼을 긁었다.
문뜩, 준석이 물었다.
“그렇다면 오더는 강 씨가 깨물어 주고 싶게 귀여울 때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
말이 그렇게 되나?
어 씨? 말이 그러네?
백강혁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아조씨, 은근히 깨는 사람이네.”
“하지만 오더가 그렇게 말씀하셨잖습니까?”
“에이씨. 할 말 없네. 노코맨트!”
“있다는 겁니까, 없다는 겁니까?”
“노 코맨트라고 아조씨! 여튼 몹 올 때 됐다. 다들 할 일 해!”
다음 웨이브가 초읽기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