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43)
괴식식당-543화(543/613)
543화. 이나미의 재앙 (3)
제일 먼저 든 의심은 미각 변조였다. 맛없는 게 맛있게 느껴진다면 혀가 어떻게 된 게 분명하다.
“쓰읍…….”
반신반의하며 일단 한 입의 냉면을 더 먹었다. 후루룩하고 면발이 넘어간다.
짜릿할 만큼 자극적인 맛. 능하 말대로 썩힌 참나무통 맛이었던 냉면의 맛이 바뀌었다.
식초 듬뿍, 와사비 살짝, 깨 조금. 윤은형이 평소 먹던 냉면의 맛을 극대화한 정말 맛있는 냉면의 맛이다.
역시 미각 변조일지도 모르겠어. 윤은형이 다급하게 물을 마셨다.
미각 변조는 기존의 맛을 다르게 느끼게 해 준다. 고맙게도 물은 그냥 물이 아니라 보리차였다.
벌컥벌컥, 보리차가 넘어간다. 보리차의 맛에 혀가 씻겨나간다.
“……?”
어째서 예상과는 다르게 보리차의 맛이 정상적으로 느껴진다. 그렇다면 미각 변조는 아니라는 뜻인데?
이게 대체 뭔 일인가. 당황하며 이번에는 다시 냉면을 먹어 보았다.
“푸악-!”
다시 맛없어졌다. 윤은형이 비닐봉지에 면발을 뱉었다.
주변을 보니 여기저기서 윤은형과 똑같은 짓을 하는 애들이 많았다. 무엇을 숨기랴, 이나미도 그랬다.
“우겍!”
점점 맛있어지는 냉면이 무서워서 보리차를 마셨고, 다시 냉면을 먹고 뱉었다.
둘의 시선이 서로를 봤다.
윤은형이 말했다.
“야, 내가 미친 게 아니라면 이거 잠깐 맛있지 않았냐?”
“다행이다. 나만 미친 줄 알았네. 너도 잠깐 맛있었구나.”
여기저기서 같은 이야기가 오간다. 단서는 충분히 모였다.
직감적으로 이 냉면의 정체를 알아챘다.
“처음은 맛없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점차 맛있어지는 냉면?”
참고 먹으면 먹을수록 맛있어진다. 윤은형이 떠올린 것은 창 리엔후의 번자권이었다.
공격 횟수를 올리면 올릴수록 점차 강력한 공격을 이어가는 특수한 권법. 첫 공격은 평범한 정권이지만 앗 하는 순간에 수백 번을 때리고, 그렇게 공격하게 두면 태풍처럼 몰려온다.
번자권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공격의 맥을 끊는 것. 맥을 끊어 공격의 기조를 막으면 결국 평범한 정권 지르기가 된다.
그 권법처럼 이 냉면은 먹을수록 맛있어진다. 하지만 다른 음식이나 음료를 먹어 맥이 끊어지면 터무니없이 맛없던 본래의 맛으로 돌아온다.
“아니, 씹…….”
육두문자가 튀어나올 뻔했다.
참아서 다행이다.
못 참았으면 어디선가 교재가 날아와서 정수리를 때렸겠지. 윤은형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이나미는 리셋된, 첫맛의 고통으로 탁자에 머리를 박고는 으르렁거렸다.
“끄으으으으… 놈은 악마인가!”
악마다. 악마가 따로 없다.
맛없는 음식.
맛있는 음식.
음식이란 결국 이 두 가지 카테고리다. 맛없는 건 피하고, 맛있는 건 먹는다. 보통 괴식을 앞두면 이렇게 반응하게 된다.
하지만 거기에 변화구를 던졌다.
맛없지만.
먹다 보면 맛있는 음식이다.
“어찌 이런 사악한 수를……!”
맛없다가 맛있어지는 요리가 나왔다. 이제 판도라의 상자에는 희망이 늘었다.
맛없지만 먹다 보면 맛있어질 거란 희망이 생겨 버렸다. 악마가 형님 할 정도다. 사탄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제부터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어진다.
맛없다가 맛있어지는 요리가 가능한데, 맛있다가 맛없어지는 요리는 불가능할까? 가능하겠지.
이제는 그 어떤 것조차도 믿을 수 없다는 의미다. 유승우란 악마는 이 한 수로 압도적으로 수읽기에서 우세를 점했다.
이제는 능하처럼 맛없는 요리라고 도망갈 수도 없다. 맛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렇다고 맛있다고 막 먹을 수도 없다. 맛없을지도 모르니까!
‘악마 같은 놈. 하지만 교사로서 고심한 흔적도 있구나.’
고진감래(苦盡甘來).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사자성어다.
이 냉면은 딱 그 짝이다.
교사로서 고진감래의 참뜻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만들었겠지.
하지만 그런 좋은 의도보다는 역시 엿 먹이고 괴롭히려는 의도가 크다.
“음. 좋아. 참다 보면 맛있네.”
고뇌하고 괴로워하는 이나미를 두고 윤은형은 식사를 이었다.
냉면이 맛있으니까 상관없다는 저 단순한 태도. 보통의 멍청이가 아니다. 생각과 고찰이라는 게 5초를 못 넘는 단세포다.
“넌 단순해서 좋겠다.”
“뭐야. 시비 거는 거냐?”
“단순한 놈이라 부럽다고.”
생긴 건 청순하게 예쁘게 생겨서는 뇌까지 청순하다. 이나미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녀의 전남편인 이자나기가 딱 저런 녀석이었다. 예쁘게 생기고 단순하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킨다.
뇌가 아니라 하반신으로 생각하는 동물. 예쁘지만 않았어도 내다 버렸을 그런 인종이다.
이나미가 욕지기를 삼키고는 젓가락으로 윤은형의 젓가락을 막았다.
“뭐냐. 이 젓가락은?”
“안 먹을 거면 나 줘.”
윤은형의 눈이 살짝 풀려 있었다. 이 냉면은 먹으면 먹을수록 맛있어진다.
그 한계가 어디인지 궁금해졌다. 은형은 다른 애들보다 반 그릇을 더 먹었다.
이나미가 고심하는 그 잠깐의 틈에 냉면을 그야말로 마셔 버렸다.
“벌써 다 처먹었냐?!”
“흐헤헷. 맛있더라고.”
먹으면 먹을수록 맛있어지는 냉면의 정량인 한 그릇은 딱 좋게 맛있었다. 하지만 능하의 몫인 반 그릇의 맛의 증가 폭이 장난이 아니었다.
마지막 세 입 정도에는 정말 정신을 놔 버리는 극한의 맛이 전신을 지배했다. 그렇게 맛있었는데 이 상태에서 한 그릇을 더 먹으면 냉면에서 어떤 맛이 날까?
흥분된다.
기대된다.
참을 수가 없다.
“안 먹을 거라며. 내가 먹어 줄게.”
“싫거든?”
“안 싫잖아. 고마워하라고.”
이 녀석은 정상이 아니다. 눈에는 핏대가 섰고, 동공은 확장됐다. 흔히 말하는 눈이 뒤집힌 상태다.
“달라고.”
“안 준다고!”
챙챙챙-하고 젓가락과 젓가락이 마주친다. 마치 검과 검으로 겨루듯이 젓가락이 교차한다.
이나미가 이를 빠득 갈았다.
“이 건방진 필멸자가 어디서 감히 젓가락을 놀려!”
이자나미는 황천과 천살의 신이며 동시에 지팡구의 무신이기도 하다. 무예십팔반, 병장기 전반에 능하며 싸움에는 적수가(지팡구에서만) 없다.
그런 그녀에게 감히 필멸자가 무예로 승부를 걸다니,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먹은 쌀밥 공기가 네놈이 먹은 쌀알보다도 많거늘! 건방지기 짝이 없다!”
“대식가인 거 자랑하냐? 푸드 파이터라서 좋겠다!”
“그런 의미가 아니야, 칠푼아!”
“칠푼이? 칠푼이가 뭔데!”
“야이씨. 국어 공부 좀 해라?!”
“네가 뭔데 그딴 소리를 해!”
챙-챙챙-챙챙.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젓가락이 계속해서 교차한다.
공격하는 사람은 윤은형이고 방어하는 사람은 이나미다.
이나미는 원래 이 냉면을 먹고 싶지 않았지만, 마음이 변했다.
이게 승우의 함정인 건 안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가. 먹으면 맛있다지 않나.
거기다가 안 먹으면 치매 노인들의 돌보미가 되어야 한다. 그것만은 사절이다.
어차피 먹을 거라면 내가 맛있게 먹는다!
“줘.”
“안 줘!”
“안 주면 뺏는다!”
“뺏어 보던가?!”
이나미와 윤은형이 사력을 다해서 싸웠다.
그렇게 둘이, 둘만의 세상에 빠질 무렵…….
“뭐야, 쟤네 사귀나?”
“와… 젓가락과 젓가락이 현란하게 마찰…….”
“간접키스….”
오해가. 오해를 부른다.
지켜보던 나비가 살랑살랑하고 꼬리로 영식이와 은하의 눈을 가렸다.
“저런 거 보면 지지다냐.”
“뿌에에. 보고 싶은데뿌.”
“저도요. 보면 안 돼요?”
“안 된다냐아아.”
오해가 깊어진다.
* * *
전쟁 같던 점심 식사가 끝났다. 셰프들은 주방을 정리하고, 청소부들은 식당을 정리한다.
오늘은 식당이 유난히 전쟁터 같았다. 냉면을 버리고 일찍 탈주한 녀석들 때문에도 더러웠고, 냉면을 다 먹고 자기 것으로도 부족하여 남의 것을 빼앗으려고 한 녀석들 때문에도 더러웠다.
특히 윤은형과 이나미는 정말 전쟁처럼 싸웠다.
“윤은형 학생 봤어요? 와, 사람이 그렇게 날렵하게 돌려차기 할 수 있는 건 처음 봤어요. 어떻게 사람이 지면을 박차고 여섯 번을 회전할까요.”
“퍼스트 오더라니 진짜 잘 싸우긴 하네요.”
“근데 그 푸드 파이터 학생은 뭐하는 애에요? 만만치 않던데요.”
“예비 퍼스트 오더겠죠.”
“그래서 싸움은 결국 어떻게 된 건가요?”
“그거 무승부로 봐야겠죠?”
주방 정리를 하며 두런두런 이야기한다. 어른이라고 해도 이런 대화를 싫어하는 사람은 적다.
둘의 싸움을 직관한 한 셰프가 웃으면서 말했다.
“한 입 뺏어 먹고, 탈환해서 한 입 먹고. 그걸 계속 반복하다가 냉면이 동났으니까. 무승부죠.”
“아니, 그거 그럼 결국 맛없을 때만 교차해서 먹은 거잖아요. 무승부가 아니라 동반 패배 아녀요?”
“그렇게 친다면 윤은형은 그래도 한 그릇 반 먹고 나서 그런 거잖아요. 이나미는 제대로 먹지도 못했으니까 패배한 게 맞죠.”
“그러네요. 이나미가 졌네.”
바보들, 하지만 귀엽다. 학생들은 그런 맛도 있어야지.
흐뭇하게 웃던 와중 누군가가 흐흐흐 하고 웃으면서 능글맞게 말했다.
“사이좋던데, 사귀는 걸까요?”
“싸우면 사이가 좋다는 말도 있으니 사귀는 게 맞을 거 같네요.”
“좋을 때다아아. 좋겠다. 부러워.”
“이 셰프는 학창 시절에 사귀던 사람 없어요?”
“지금 아내요.”
“와, 고등학교 때부터 사귀고 결혼했어요? 좋겠네.”
“…….”
“이 셰프, 거기서 입을 다물면 내가 민망하잖아요.”
“아, 너무 어처구니없어서요. 그런데 어처구니 해서 생각난 건데, 이번 요리 어처구니없지 않아요?”
“아아아. 어처구니없긴 하죠.”
여기저기서 이구동성으로 동의해 왔다. 실은 이번 요리는 요리의 컨셉부터 현상까지 다 이상한 일뿐이었다.
맛없다가 맛있어지고, 다른 걸 먹으면 다시 맛없어지는 요리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요리였다.
“그래서 오히려 괴식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맞아요. 이게 요리라기보다는 마법적인 면이 더 강하네요.”
“아예 그냥 우리가 요리가 아니라 마법사다-! 라고 생각하면서 만드는 편이 더 도움이 될 거 같아요.”
“상식에 묶이지 말고, 창조적으로 생각하라는 마스터 셰프의 의도겠지요.”
고개를 끄덕이며 다들 자신의 스킬을 점검했다. 실은 이번 냉면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사람들이 바로 셰프였다.
제대로 된 마법적인 괴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어떤 구조로, 어떤 상념을 담아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다.
대가(大家), 거장(巨匠). 경지에 도달한 자의 솜씨는 지켜만 보는 걸로도 충분히 가르침이 된다.
그 가르침을 담은 괴식의 과정을 A부터 Z까지 직관했으니 발전이 없을 수가 없다.
‘스킬 등급이 하나 올랐어. 이거면 여기서 내가 제일 높지 않나?’
다들 그리 생각하며 상태창을 보곤 몰래 미소를 지었다.
원래 대명고등학교 요리실은 상하가 없다. 냉혹하고 철저한 군대 문화계인 요리계였으나 이곳만은 위계질서라는 말이 없었다. 다들 같은 수준이라 마스터 셰프가 없다.
지금 마스터 셰프라 부르는 유승우는 외부인이다. 애초에 요리하려고 온 사람도 아니다.
게다가 윤리 교사다. 압도적인 솜씨 탓에 마스터 셰프가 되었지만 그는 곧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예정이다.
그 공백에 마스터 셰프를 차지하려는 야심은 누구나 품고 있었다.
요리사들은 죄다 에고이스트, 야심가다. 그런 야심이 없으면 발전할 수 없다.
그렇게 야심을 품은 이들에게 승우가 말했다.
“자, 여러분. 아시다시피 제가 슬슬 근무 예정 시간이 끝나갑니다. 이제는 본업으로 돌아가야지요.”
“예. 마스터.”
“그러니까 내일부터는 한 명씩 돌아가면서 점심 괴식을 구성하도록 합시다.”
척하면 척이다. 셰프들은 승우의 의도를 금방 눈치챘다.
‘하나씩 심사할 작정이시구나.’
솜씨를 보여 봐라, 란 뜻이다.
“예, 마스터!”
셰프들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