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49)
괴식식당-549화(549/613)
549화. 적 (1)
먹었으니 그만큼 일해야 한다. 거래란 그런 것이니까. 헤파이스토스는 테오의 식사 시간이 3시간이나 지연될 만큼 먹었다.
말 한 마리를 전부 먹어 치우고 모자라서 반 마리쯤은 더 먹었다. 체중의 몇 배를 먹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오늘은 평소보다 더 먹었군, 이라고 짤막하게 소감을 말하곤 헤파이스토스는 자리를 옮겼다.
“모처럼 받은 검신의 의뢰니, 이번에는 전력으로 만들어 볼까.”
테라에는 낙소스라는 이름의 섬이 있다. 낙소스섬은 그가 젊은 시절을 보냈던 수련장이기도 하며, 동시에 섬 자체가 그를 위한 전용의 대장간이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해저 활화산을 엔진으로 삼고 좌우로 갈라진 두 절벽 사이로 스며드는 북풍의 바람을 풀무 삼는다.
넓디넓은 평지는 다른 곳에 비해서 평평하고, 단단하여 모루로 사용하기 쉽다.
활화산의 용암을 끌어 올리고, 풀무의 바람으로 용암의 화력을 키우고, 아다만티움 주괴를 평지에 펼쳐 놓고 망치로 두드린다.
대장장이에게서 불꽃은 떼 놓을 수 없는 것이다.
헤파이스토스가 망치를 들고 주괴를 내려칠 때마다 불꽃이 튀고, 테라 전역의 기온이 상승했다.
제작에 착수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헤파이스토스는 강력한 예감을 느꼈다.
“이건, 엄청난 녀석이 만들어지겠군. 이 헤파이스토스 일생일대의 대작품이 될 거야.”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무수히 많은 병장기 중에서도 그가 제일 자랑하는 것은 아킬레우스를 위해서 만든 갑옷과 방패였다.
천백하고도 팔십팔 개의 마법에 대한 직접적인 무효화의 술식이 새겨진 갑옷. 신급 이하의 병장기와 아티팩트의 공격을 원천 차단하며 동시에 이만삼천 가지의 저주를 반사하는 방패는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는 작품이다.
그런데 지금 만드는 검은 그 이상이 될 것이다. 소재가 좋았으며, 맛있는 괴식을 먹고 나서 집중력이 극도로 향상된 탓이다.
손의 근육 하나하나가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 시간이 멈춘 듯 세밀한 동작도 가능하다.
거기에 스퀴테를 녹여서 만든 아다만티움에는 승우의 신력이 잔뜩 서려 있다.
누군가를 위한 전용의 장비를 만들 때는 주인이 될 사람의 신력이 필요하다.
만들어질 검의 주인이 검신이었으니, 그의 신력을 받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재밌는 점은 검신이라는 자, 경제관념이 엉망이었다.
“보통 검에 이리도 많은 신력을 부여하진 않지.”
주괴에 담긴 신력은 측정 불가능하다. 헤파이스토스가 다뤄 온 신력을 아득하게 초월해 있다.
검 한 자루 만들자고 이만큼의 신력을 투자하는 이는 둘도 없으리라.
“오냐, 오냐. 보채지 말거라. 내가 너를 훌륭하게 만들어 주겠다.”
이 검은 분명 자신의 경력에 빛나는 한 줄이 되겠지. 터져 나오는 웃음과 감탄을 억누르며 헤파이스토스는 망치를 휘둘렀다.
* * *
전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정보다. 승우라는 거대한 적을 상대하기로 결의한 신들이 정보를 소홀하게 여기는 일은 없다.
기를 쓰고, 어떤 수를 써서라도 승우의 정보를 캐내고, 감시한다.
그러다 보니 스퀴테를 녹인 아다만티움 주괴를 사용하여 새로운 검을 제작하고 있다는 정보는 금방 퍼졌다.
경계할 만한 일이었다. 최고의 대장장이 신이, 최고의 소재로, 최고의 투자로 검을 만들고 그 검을 검신이 쓴다.
그것은 이를테면, 적성 국가가 핵무기를 제조하고 있다는 정보와도 비슷하다.
막아야 한다.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약자 살해의 신화와 신명 네 개를 지닌 최강신의 조합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안 그래도 희박한 승산이 그가 새 검을 얻게 되면 급락해 버린다. 어떠한 희생을 치러서라도 막아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막아야 할까?
헤파이스토스를 공격하는 일은 힘들다. 그는 대장장이의 신으로서 많은 신들에게 아티팩트를 제공했고, 지금도 예약을 받고 있다.
헤파이스토스를 공격한 신들은 좋은 꼴을 보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헤파이스토스의 일정에 조금이라도 차질이 생긴다면, 그의 몸에 조금의 상처라도 생긴다면, 그에게 예약을 걸어 둔 모든 신이 바로 적으로 돌아선다.
그걸 감당할 신은 상당히 적었으며, 무엇보다도 승우 말살을 위해서 모인 이 중에 태반이 헤파이스토스의 고객이기도 했다.
그러니 자연히 신들은 생각했다.
[내가 손해를 볼 일을 왜 내가 해야 할까?] [검신 말살이라는 대의는 이해한다. 하지만 손해를 왜 내가 굳이 감내해야 하지?] [내 목숨 가지고 도박하고 싶지는 않아. 빠져야겠다.]신들은 매우 이기적이다. 따라서 정보는 얻었으나, 행동에 나서는 자는 적었다.
이렇게 되니 더더욱 검신 말살 계획은 힘들어졌다. 검신 말살 작전은 구심점이 될 신이 없었다.
다들 은연중에 같은 마음을 품었고, 어찌하다 보니 삼삼오오 모여들어 만들어진 세력이다.
구심점이 없는 만큼 통솔력이 떨어진다. 단합력도 떨어진다. 그러니 검신 쪽의 승률이 높아지고 있다, 라는 소문만으로도 결속은 흩어지고 모임에 참가한 인원은 줄어든다.
인원이 줄어들면 승산이 줄어드니 인원은 더 줄어든다. 이게 반복되니 테오가 의도한 대로 검신 말살을 위한 모임의 인원은 차츰차츰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 세력은 공중분해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집결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검신이라는 새로운 질서가 정착하겠지.
그렇게 되면 모든 일은 끝이다.
역전의 기회는 없고, 반전의 가능성도 없다.
자신을 모략가라 자칭하는 한 신이 사태를 관망하다, 웃음을 지었다.
“과연과연과연. 훌륭한 전략이야.”
“감탄만 하고 있을 것인가, 모략가?”
“하지만 선구자 씨, 이건 감탄할 만한 일이라고. 자신들의 강점을 유감없이 살려서 전략단계에서 위압을 걸고, 상대의 행동을 미연에 방지하며 앞으로의 포석까지 두었어. 전략 자체는 매우 평범하지만 이런 전략을 쓴 신이 바로 그 광신과 검신이라고! 믿어지나? 그렇게 힘이 강한데, 머리를 평범하게 쓸 수 있었어! 이건 정말 엄청난 일이야. 놀라워!”
선구자라 불린 신이 모략가를 응시했다.
“그래서 결론은?”
“한 방 먹었어. 아주 좋은 의미로 크게 한 방 먹었지.”
“좋은 의미가 있나?”
“있지. 있고말고. 상대는 힘만 강한 신이 아니야. 머리도 쓸 줄 알고 대전략과 소전략. 전술을 구분해서 쓸 수 있는 지혜가 있어. 적이 지혜가 있다는 뜻은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이야. 아무 생각 없는 근육 바보가 모략가인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더 어려워. 차라리 지성이 있는 편이 나아.”
“그렇군. 정신승리인가? 아직 안 졌다고 추하게 발버둥 치며 자기 합리화하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들켰나?”
모략가는 즐거운 기색을 흘렸다.
이번의 흐름은 모략가가 주도한 흐름이었다. 계속해서 신들 사이에서 검신의 존재감을 올리고, 공포감을 부추겨서 그 공포감에 떠밀린 이들이 집결하도록 유도했다.
검신 말살 세력은 모략가와 선구자가 세운 계획으로서 만들어졌다.
계획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일그러졌다. 하지만 모략가는 웃음기를 지우지 않았다.
“그러나 내 상정을 벗어나진 않았어. 아직까진 예측 내야.”
“흠, 그래. 정신승리의 신이여, 계속 변명해 봐.”
“이거 날카로워서 베이겠군. 왜 그리 예민해?”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신력이 아까워서.”
선구자와 모략가는 자신의 진명, 신명을 숨기기 위해서 막대한 신력을 쓰고 있다.
신들의 이름이란 신의 존재와 격을 나타낸다. 이름만 보아도 그 신이 어떤 신인지, 어떠한 능력이 있는지, 무엇을 잘하고 무엇에 약한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일부의 신은 자신의 이름을 어떠한 수를 써서라도 보호한다. 그리고 그 어떠한 수는 대체로 신력이었다.
숨을 쉴 때마다 빠져나가는 신력은 누구라도 아까울 일이다. 모략가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 기회는 남아 있어.”
“어떤 기회?”
“광신과 검신은 생각보다 똑똑해. 머리가 아주 좋아. 모든 일을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아. 그런 힘이 있는데도 머리를 쓸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지.”
“아까 한 말의 반복으로 들린다만.”
“인내심을 기르라고, 선구자. 잘 들어봐. 강한 힘에 지력까지 갖추고 있어. 하지만 평범하게 괜찮은 지력에 비교하자면 가진 힘이 압도적으로 강하지. 의미를 알겠어?”
“선문답은 취미가 없으니, 본론만 말하게.”
“결국은 힘으로 나서게 되어 있다는 거야. 두고 보라고.”
모략가가 웃었다.
“놈들이 공격하면 그때가 바로 내 모략의 힘이 발휘될 때지.”
* * *
“그럼 이제 공격하자.”
테오가 말하자, 승우가 영식이의 볼살을 잡아당겼다. 뿌우우욱 하고 유연하게 늘어나는 볼을 물끄러미 보다가 승우가 반문했다.
“왜?”
“왜긴 왜야. 지금이 공격하기 최적의 순간이니까 그렇지.”
헤파이스토스가 마검 제작에 돌입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반 검신 세력은 목소리를 죽였다. 그리고 하나둘씩 흩어지기 시작했다.
“손자병법도 안 읽어 봤냐. 도망가는 적의 뒤를 공격하는 건 최고의 호기라고. 적은 구심점이 없어서 통제가 안 되고 있고 사기는 바닥이야. 지금 치면 우리가 이겨.”
“난 앞으로 쳐도 이기는데, 굳이 뒤를 쳐야 하나?”
“…….”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어졌다. 마검이 있다면 정면 승부로 싸워도 싸워 볼 만하다.
아니, 놈들의 사기가 낮아진 만큼 마검이 없어도 지금은 순살이다.
테오가 멍하니 보자, 승우가 영식이를 끌어안고는 말했다.
“하지만 네가 말하는 의도는 알겠어. 기왕 이기려면 쉽게 이기자는 거지?”
“오, 그렇지! 역시 리더!”
“그리고 지금 적은 구심점이 없지만, 나중에 구심점이 생기면 다시 세력을 이룰 거고, 그때는 더 귀찮아진다. 이거잖아.”
“그거야 그거! 그러니까 지금 청소해 두는 게 편하다고!”
“나도 네 마음은 이해는 하는데, 영 내키질 않아.”
“이유는?”
“뭔가 불쾌해.”
불쾌감의 시작은 아무래도 대명 고등학교에 생긴 이상 현상이다. 그곳에서 맡은 토할 거 같은 악의와 악취가 아직 코에 맴돈다.
승우는 그 악의와 악취의 주인을 계속 의식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거대한 판을 짠 느낌이고, 지금 공격하면 그 판에 어울려 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
“너답지 않게 소극적인 대응이네? 응? 그 미친개 승우가 어쩌다가 그리 얌전해졌냐.”
승우가 재빨리 영식의 귀를 막았다. 그리고 눈으로 테오에게 경고했다.
“애 앞에서 못 하는 말이 없어.”
“이거 미안하게 됐네. 하긴 아빠가 소싯적에 폭주족이었다던가, 일진이었다던가 하는 소리를 애 앞에서 하면 안 되긴 하지. 왜냐, 아빠가 부끄러워지니까.”
“야. 너 진짜 한 대 맞는다?”
“하지만 네가 그렇게 소극적인 말을 할 줄은 몰랐다고.”
소싯적의 승우는 상대의 덫을 보면 오기로라도 덫을 부숴 버리는 성깔이 있었다.
상대가 잘하는 부분이 있으면 그 잘하는 부분으로 철저하게 박살 내기도 한다.
얌전한 척, 착한 척은 다 하다가 한번 발동이 걸리면 이판사판으로 끝장을 보는 화끈함과 불꽃 같은 저돌성을 가진 카리스마.
그 점에 홀딱 반해서 테오는 진심으로 그를 리더로 여겼고, 혁명의 스승으로도 섬겼다.
“매력이 줄었구나, 리더여. 그때의 너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거늘. 이제는 시시한 어른이 되어 버렸어. 세월이란 참 야속한 거야.”
“오케이. 이 악물어.”
“하하하. 설마 애 앞에서 친구를 패진 않겠지.”
테오가 슥슥 영식이를 의식하면서 위빙을 시작했다. 그 몰골에 승우가 이마를 짚었다.
“테오도르. 철 좀 들자, 응?”
“철은 일단 그놈들 쓸어버리고 들 거야. 그니까 공격하자, 응? 공격하자아아!”
테오가 땡깡을 부렸다. 나잇살 먹은 놈의 땡깡은 정말 최악이라, 보기 괴로웠다. 그러니 별수 있나.
“알았다. 공격하자, 공격해.”
하자는 대로 해 줘야지.
결국 친구에게는 약한 승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