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52)
괴식식당-552화(552/613)
552화. 강적 (1)
흔히들 말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사람들은 모방을 통해 새로운 걸 창조할 수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건 사람의 이야기다.
냉혹한 신명의 법칙을 가진 신들에게는 아니었다. 모방은 모방일 뿐, 결코 창조로 이어질 수 없다. 모방과 창조는 아예 명확하게 갈려 있기 때문이다.
창조는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 수많은 구현화계 신명에서 최고로 꼽히는 신명이다. 반면에 모방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본떠 그것을 흉내 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흉내이기에 결코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 한계가 명확하다. 모방 능력으로 모방한 상대의 능력을 선구자가 쓸 때는 그 수치가 확연하게 낮아진다.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모방하기가 쉬운 것도 아니다.
‘내 능력 발동을 위한 조건은 크게 셋.’
첫째는 상대가 자신보다 상당히 격이 낮아야 한다. 구체적인 수치로는 선구자의 전력과 비교하여 50%미만의 격이 해당된다. 백강혁은 이 부분에는 안전하다. 확실하게 격이 낮았다. 아직 하나의 신명도 없는 필멸자와 이류의 신명이라고는 해도 두 개의 신명이 붙은 강력한 신과 비교하면 당연한 이치다.
두 번째는 직접적인 신체 접촉이다. 5분가량의 시간을 포박하여 완전히 구속하고 신체를 접촉시켜야 한다.
‘세 번째는 쉬우니까 일단 이 두 개만 클리어하면 대충은 쓸 수 있지.’
하지만 이 두 개의 조건을 만족하기는 쉽지 않다. 정확히는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
이 두 조건을 만족할 만큼 만만한 상대를 고르면 모방의 발동이야 쉽다. 그러나 그런 녀석의 능력은 하찮은 게 대부분이다. 모방해 봐야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렇다고 좋은 능력, 강력한 능력을 가진 상대로는 저 조건을 채우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따라서 강한 능력을 가진 격이 떨어진 상대. 영락해 버린 제우스 같은 아주 만만한 먹잇감이어야 모방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선구자의 능력은 하이에나, 쓰레기 청소용 슬라임 따위에 비유되며 좋은 취급을 받지 못한다. 선구자는 그 평가가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보아서도 모방의 신명은 도드라지게 성능이 나쁘다. 전 차원에 존재하는 모든 검의 지배자, 하늘의 지배자, 벼락의 현현 같은 알기 쉬우면서도 조건은 없고 대가 없이 무진장 강력한 신명과 비교한다면 얼마나 하찮은가. 선구자의 신명은 태양 앞의 반딧불처럼 약하다.
그러나.
‘나는 지금 하늘과 벼락의 잔재를 모방했다. 거기에 몰락까지 모방할 수 있다면 누구도 나를 무시할 수 없을 거다.’
하늘과 벼락은 잔재였으나 본체는 알아주는 0티어 신명이기에 엄청난 힘을 내재하고 있다. 거기에 몰락은 전 주인이 없는 최초의 신명. 즉, 백강혁이 만들어 낸 고유 신명이다.
고유 신명은 다른 신명에 비해서 성능이 뛰어난 경향이 있다. 동업자인 모략가가 말하길 몰락의 신명은 검신에게조차 통했던 전적이 있는, 아주 놀라운 저력을 지닌 신명이라 한다. 분명 최상급의 포텐셜을 숨기고 있을 터.
“원한은 없지만, 제압당해 줘야겠다.”
“응? 뭐야, 내 팬이냐.”
선구자가 성큼 다가오자, 백강혁은 바지춤에 있던 손을 빼서 귀를 팠다. 심드렁한 태도, 자신만만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위기감이 없다고 해야 하나. 아마도 둘 다이리라. 선구자가 미약한 살기를 흘리자, 백강혁이 콧방귀를 뀌었다.
“팬은 팬인데 안티 팬인가 보네. 내가 좀 안티가 많긴 하지.”
“허튼 소리.”
선구자는 다가오며 검을 뽑아들었다. 유난히 길고 눈부시게 흰 도신의 검, 얼핏 보면 엉망으로 만든 실패작 같은 그것은 아이온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그 탓에 백강혁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거 싸장님의 진심 검이잖아. 아니, 그 검의 짝퉁인가?”
“아이온 레플리카. 내가 직접 벼린 검이다.”
선구자의 능력은 귀찮지만, 주도면밀한 준비 하에는 제법 괜찮은 힘을 낼 수 있다. 그는 오늘을 위해 단조의 신과 제련의 신을 모방하여 얻은 대장장이 실력으로 검을 벼렸다.
물론 기왕 모방한다면 최강의 검을 모방하는 편이 옳다. 최고의 재료와 최고의 준비. 그리고 넘치는 시간을 투자하여 만들어진 아이온 레플리카는 무려, 아이온의 힘의 1%를 담고 있었다.
아이온의 1%.
고작 1%.
“우왁-!? 미칭!?”
단 1%의 힘이었으나, 그것은 검왕의 1%였다. 선구자가 휘두른 검에 다급하게 성운검으로 응수한 백강혁이 하늘을 날았다.
“후끼야아악-! 중력이?!”
중력을 조절하는 성운검의 능력을 아득히 상회하는 중력 조작 능력으로 밀쳐진 것이다. 백강혁은 눈을 부릅뜨고, 태세를 바꿨다.
방심하다가는 죽는다, 놀랍게도 저 안티 팬은 지금껏 백강혁이 상대한 그 누구보다도 강했다. 아레스와 싸우면서 투닥거릴 때도 이만큼 벽을 느끼진 않았다. 이 압박은 흡사 유승우를 보는 듯했다.
‘이, 이 자식. 거의 싸장님 급이야?! 어디서 이런 괴물이 나온 겨!’
경악할 만도 했다. 백강혁은 단 한 번도 0.1% 이상의 힘을 내는 승우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검술도 경악스러웠다. 검의 궤적이 자유자재로 변하고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자유롭다. 변검(變劍)의 신이 지닌 변검술을 모방한 덕이다.
“우왁! 우왁!”
사방에서 검기가 번뜩이고, 짓누른다. 백강혁의 위기에 맞춰 성운검이 출력을 올렸다. 그러자 가까스로 평정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임시방편이다. 이 강적과 싸운다면 필패다. 어떻게 해야 할까.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으니 안티 팬이 말했다.
“목숨은 빼앗지 않는다. 저항하지 마라.”
“목숨은 빼앗지 않는다고? 그럼 뭘 할 생각이지.”
“그저 제압할 뿐이다.”
“그렇군, 날 제압하고 야한 짓을 할 생각구나!”
“뭐……!?”
“당황하는 거 봐! 역시 눈이 음흉한 거보니 야한 짓 할 생각이 분명해!”
“흐, 으음. 어처구니없는 놈이군.”
일순, 검술의 틈이 생겼다. 그 틈으로 굴러 공격을 피하며 백강혁이 가드를 올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프로그람마를 배우는 건데! 아이고야!’
방어는 백강혁이 제일 못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방어를 단단히 하고 시간을 끌어야 한다. 여기는 A섹터, 퍼스트 오더와 숙련된 헌터가 바글바글한 요새 중의 요새다. 기다리면 반드시 증원이 온다.
그러나 증원이 오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선구자가 입가를 비틀었다.
“아마, 너희들 쪽은 지금 난리가 났을 거다. 내 동업자가 한 짓 때문에 말이지.”
현대 헌터 시스템의 핵은 나이츠 오브 라운드 프로토콜이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아서 F 트루먼이 봉인된 큐브, 주혁진이 이름 붙이길 ‘테서렉트’라 지은 신명무구로 동작하고 있다.
같은 시간 모략가는 테서렉트 강탈을 시도하고 있었으니 그 여파로 모든 시스템이 다운됐다. 그러니 제대로 된 지원은 바랄 수 없겠지.
“당황하는 걸 보면 내 동업자가, 성공한 모양이군.”
“환장하겠네.”
백강혁은 바보가 아니다. 오히려 비상하게 눈치가 좋은 편이었다. 과시, 그도 아니면 자아도취에 빠진 선구자의 몇 마디의 말로 상황을 유추했다.
지금 지구는 공격받고 있으며, 헌터 시스템은 붕괴하고 있다. 그리고 백강혁은 정조를 위험 받고 있다.
‘큰일이다. 이거 어쩌지. 저 변태자식, 보통 강한 게 아닌데…….’
싸워 보면 안다. 예전에 곁가지로 싸워 본 볼코프를 아득하게 상회한다. 그때도 퍼스트 오더 상위 랭커 여러 명이 달라붙어서 싸웠고, 그랬는데도 밀려서 버섯 실드 따위의 괴악한 짓을 해서야 버틸 수 있었다.
근데 그거랑 일대일이다. 죽기 딱 좋다. 만약 눈치 빠르게 민이 온다고 해도 순살이다. 지금 살아 있는 건 놈이 꽤나 자아도취적이고, 자기 과시가 강한, 허세 넘치는 놈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만큼 실력 차이가 컸다.
무의미한 저항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끝이 도래했다.
“꾸엑!”
오래 싸워 보지도 못하고 명치에 제대로 변검이 들어갔다. 백강혁의 눈이 뒤집혔다. 기절한 것이다.
“별것도 아닌 놈이 애먹이는군.”
필멸자와 두 개의 신명을 지닌 신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강이 있다. 저항해도 부질없는데, 구태여 저항하여 시간을 낭비하다니. 좋은 감정이 들진 않았다.
“어쨌든 이제 첫 번째 조건과 두 번째 조건은 클리어했군,”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며 기절한 백강혁을 들쳐 업고 선구자가 주변을 돌아봤다. 그러자 탄환이 빗발쳤다.
“쏴라! 놈을 막아!”
군대? 경찰? 경비? 헌터? 어느 쪽인지 모르지만 많은 전투원이 있다. 자기들 딴에는 열심히 공격하고 있지만 그들의 공격 또한 별로 치명적이지 않다. 단순한 화포는 아니고, 마석을 갈아서 만든 탄환이었으나 격의 차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것들은 선구자의 물리 방어력도, 마법 방어력도 뚫지 못했다.
“제법 많군.”
싸우는 자 말고도 구경하려는 자도 상당히 많았다. 참으로 벌레처럼 많은 사람이다. 모방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모방할 수는 없다. 선구자가 조금 먼 곳을 바라보았다.
“흠,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야겠군.”
공간이동은 신의 기본 소양이다. 선구자는 백강혁과 같이 모습을 감추었다.
* * *
모방 능력은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 모방한 자가 죽으면 모방한 능력도 사라진다. 그러니 백강혁은 절대 죽일 수 없다. 죽으면 모든 게 허사다. 그래서 선구자는 적당히 백강혁과 어울리는 장소, 지구인들이 말하는 쓰레기장에 놈을 던지고 모략가와 합류했다.
“모략가, 성공했나?”
“물론이지. 내가 실패할 가능성은 너무도 적지 않았나.”
모략가가 테서렉트를 쥐고는 히죽 웃었다. 테서렉트는 지구에서 가장 뛰어난 보안과 안전을 갖춘 설비 속에서 많은 위험을 내포한 함정으로 보호받고 있다. 하지만 모략가의 신명 두 개를 활용하면 그것은 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나는 완벽하게 일을 끝냈어. 선구자, 너는 어떻지?”
“일단 벼락과 하늘은 모방에 성공했다.”
“일단? 몰락은? 몰락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잖아.”
“그건… 흠.”
선구자가 얼굴을 구겼다. 이유가 있었다. 그의 모방 능력에는 조건이 필요했다. 격이 떨어지는 상대, 제압을 통한 신체 접촉. 이 두 개의 조건은 가볍게 클리어 했다. 문제는 세 번째 조건이었다.
“모, 몰락은 조금 늦어질 거 같다.”
“뭐? 왜?”
“내가, 일전에 능력의 발동조건을 설명한 적이 있지 않나.”
“했지. 격의 차이, 신체 접촉. 그리고 이해였나?”
“맞아. 앞의 둘은 해결했지만, 이해가.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아.”
“그게 무슨 말이야? 풀어서 설명해 봐.”
선구자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아주 버거운지 식은땀이 줄줄 흘렀고, 고통스러운지 간간히 신음도 터졌다.
“모방은 상대의 이해로부터 시작한다. 나는 모방의 신으로서 상대를 이해하는 능력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자신한다.”
선구자의 능력의 본질은 텔레파스, 정신 교감 능력이다. 정신과 정신을 이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소화하여 영혼을 동조화시킨다. 모방 능력은 그 능력에서 발전된 결과물이다.
“제우스는 이해하기 쉬웠다.‘
하늘과 벼락이라는 이름을 가진 절대 신. 한 차원의 지배자인 주신. 그리고 영락. 완전히 땅에 추락하여 필멸자가 된 제우스의 마음은 절망과 공포. 그리고 자기보신과 절망으로부터 자신의 영혼과 자긍심을 지키기 위한 정신 승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제우스는 이해의 과정이 필요 없었어. 지금까지 모방해 온 영락 신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으니까. 이해의 과정은 1초도 걸리지 않았지. 하지만 이 녀석은 아니야. 이 녀석 같은 미지의 생명체는 본 적이 없어.”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다.
멍청한 듯.
똑똑하다.
똑똑한 듯.
멍청하다.
질서적인 듯.
불규칙하다.
악한 듯.
선하다.
성실한 듯.
방탕하다.
있을 수 없는 대립되는 요소가 엉망진창으로 엉켜 있다. 그래서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하면, 또 어떤 부분은 아주 칼같이 질서적이다.
“좌우지간 종잡을 수가 없어서… 이해가 되질 않아.”
“혼돈의 종자라는 거 아닌가?”
“그 혼돈 속에서조차 질서가 있다고!”
거칠게 항변한 선구자가, 이내 거북한 독을 품은 거처럼 헛구역질을 했다. 그리고 곧 사색을 지었다.
“이해가 되지 않아서, 영혼을 동조화시켰는데… 실패한 거 같다.”
“어이, 괜찮아?”
“정신이 반으로 갈라지는 기분이야.”
이해를 위해서 영혼을 동조화시킨 부작용이다.
선구자의 영혼은 백강혁이라는 독에 중독되어 버렸다.
“우, 우우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