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53)
괴식식당-553화(553/613)
553화. 강적 (2)
정신감응 능력자, 텔레파스.
선구자는 본래 아주 뛰어난 텔레파스였다.
그는 탁월한 정신감응 능력을 토대로 자신의 세계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정신감응은 크게 두 가지로 활용할 수 있다. 자신의 정신과 상대의 정신을 이어서 대화를 하거나, 정보를 빼내는 온화한 사용법. 그리고 자신의 정신으로 상대의 정신을 덮어씌워서 자아를 지워 버리는 난폭한 사용법이다.
선구자의 특기는 단연 전자였다. 그가 온화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는 자신의 가치 없는 정신보다 상대의 빛나는, 아름다운 정신 쪽이 가치 있다 여긴 탓이었다. 그런 탓에 선구자는 많은 사람의 정신과 동조화하여 그들의 정보를 얻어 냈고, 그것이 발전하여 그는 상대의 능력을 따라하는 모방의 신명을 얻었다.
지금껏 선구자가 영혼을 동조화하여 모방한 대상의 숫자는 자그마치 십만 이상. 그 십만 명의 생명체 중에 백강혁 같은 놈은 처음이었다.
“우, 우웨에에엑-!”
선구자가 입에서 무엇인가를 뱉어 냈다. 엑토플라즘이다. 선구자는 거울 속 괴물, 도플갱어와 비슷한 부류의 종족이었는데 그 실체는 마나와 영혼 찌꺼기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일종의 정신 생명체였다.
지금 토하는 엑토플라즘은 선구자의 원래 몸을 구성하는 물질이 백강혁의 정신에 닿아 오염되어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그 증세는 식중독, 장염과 닮아 있었다. 영 글러먹은 영혼을 먹으면 저렇게 맛이 가는 정신 생명체가 있다고는 들었지만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모략가는 눈을 크게 뜨고 경악했다.
“미치겠군. 괜찮나?”
“이, 이게 괜찮아 보이나.”
“그래 보이진 않는군.”
“제기랄. 모략가! 날 속였나!”
“내 신명 두 개를 걸고 맹세하겠네. 안 속였어.”
사기의 신명을 가진 모략가였으나, 이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는 맹세코 선구자를 속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백강혁은 필멸자였다. 몰락의 신명 예비후보자라고 해도 예비후보자는 예비 후보자일 뿐, 결코 신이 아니다.
“필멸자의 정신이 두 개의 신명을 가진 신, 그것도 정신 생명체 출신인 자네를 오염시킬 만큼 이상하다는 사실을 내가 어찌 알았겠나! 맹세하네! 난 속이지 않았어!”
“끄으으으으. 우우오오오옥!”
요란하게 엑토플라즘을 토한다. 오염된 엑토플라즘이 빠져나가는 만큼, 선구자는 눈에 띄게 쇠약해지고 있었다. 결단을 해야 했다.
“선구자, 서둘러야 하네. 공간 도약이 가능한가? 검신이 지구로 올 시간이 되었어. 그가 오면 이 모든 공작이나 계략은 다 수포로 돌아가. 알다시피 우리는 정면에서 그 자를 상대하면 한 번의 호흡이 끝나기 전에 죽어! 서둘러야 해!”
“끄으윽. 죄, 죄다 토해 버리면 괜찮을 거 같다만…….”
“그것도 안 돼! 백강혁의 모방 정보는 대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해. 참아!”
“개씨발, 너 같으면 이게 참아지겠냐. 말 같은 소리를 해라, 민 같은 놈아!”
일순 선구자의 목소리와 태도가 변했다. 그것은 선구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백강혁의 그것이었다. 말을 내뱉은 선구자도 사색이 되었다.
“헉, 내가 지금 무슨!”
오염도가 너무 높아서 본래의 정신에까지 악영향이 오고 있다. 침식 속도가 너무도 빠르다. 고작 오 분 가량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영혼을 이었다고 넘어가기엔 지나치게 희생이 크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선구자는 백강혁을 처음 봤을 때 직감적으로 강적이라 생각했다. 직감이란 무시할 것이 아니다. 수많은 경험, 삶의 데이터베이스에 쌓인 정보를 토대로 본능과 이성이 치열하게 계산해서 내리는 경고가 바로 직감이다. 십만 명을 읽어 낸 선구자의 직감이 저자와는 상종도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런데도 그 경고를 무시하고 백강혁과 영혼을 이었고, 그 대가가 일시불로 찾아왔다.
“이러다가는 내가, 내가 사라지겠어.”
몰락, 몰락의 신명은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참으로 적절한 신명이다. 선구자는 엄청난 속도로 몰락하고 있었다. 싸움에는 이겼지만 승부에는 졌다. 이러다가는 침식에 의하여 정신이 먹혀서 백강혁 Mk2가 될지도 모른다. 오싹한 마음에 선구자는 백강혁에게 오염된 정신을 긁어모아 내뱉으려 했다.
하지만 모략가가 그것을 틀어막았다.
“진정해. 뱉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아. 우린 지금 막대한 희생을 담보로 여기에 있는 거라고. 이 작전에 투자한 신력이 어마어마해.”
“하지만…….”
“하지만이고 뭐고 없어. 우린 지금 검신의 화신인 자를 공격한 거야. 너의 정보는 화신의 서에 기록되고, 이제 검신은 우리의 존재를 눈치챌 거다. 그런 부담까지 짊어지고 시도한 작전인데,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면 어쩌자는 거냐. 참아!”
“끄으…….”
“일단 너는 내면을 다스려라. 공간이동은 내가 하지. 빨리 지구를 떠야 해.”
모략가가 그리 말하자 선구자가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략가는 황급하게 게이트를 열었다.
* * *
승우가 난처하게 볼을 긁었다.
“이건 또 뭔 경우야?”
잠시 자리를 비웠을 뿐이다. 그런데 다녀와 보니 지구의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다던 주혁진의 신명 무구가 도난당했다. 그것만으로도 기겁할 만한 일인데 백강혁은 습격당하기까지 했다. 반 검신 연합으로 자신의 시선을 돌린 후에 본진인 지구를 공격했다.
“이 일련의 흐름이 우연일리는 없지. 적이 있군.”
“누굴까?”
“전혀 짐작이 안 되네.”
짐작이 되지 않는 이유는 승우는 한 번 대적한 적은 반드시 박살을 내놓는 탓에 원망의 여지를 남겨 두지 않기 때문이다. 테오가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고개를 털었다.
“나도 모르겠다. 나야 너보다 잠재적인 적이 많지만, 이렇게까지 빙빙 돌아서 이상한 전략을 부릴 만한 적은 건드린 적이 없어. 일단 추적이라도 해 보지 그래?”
“추적은 힘들 거 같아.”
“왜? 화신의 서가 있잖아.”
“이 녀석, 신명 정보 은폐 처리를 해 뒀어.”
신들은 이름으로 자신의 정보를 모조리 토한다. 검의 신은 검의 신이고, 혁명의 신은 혁명의 신이다. 신명은 고작 몇 글자였으나 그 글자만으로 신을 죄다 설명한다. 따라서 몇몇 신은 자신의 신명을 숨기고 활동하고자, 신명 정보를 가리는 은폐 처리를 한다.
테오가 사납게 눈썹을 치켜 올렸다.
“신력을 때려 박아서 뚫으면 되잖아.”
“본래는 그러면 된다만, 이번에는 조금 힘들겠어.”
“왜? 신력이 아깝냐.”
“응, 이 녀석 은폐 처리를 무제한 플랜으로 걸어뒀네.”
은폐 처리는 적당한 양의 신력을 투자하면 가능한 일이고, 마찬가지로 적당한 양의 신력을 투자하면 은폐 처리를 걷어 낼 수 있다. 하지만 무제한 플랜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상대가 지불하는 신력만큼을 추가로 지불하여 사용자가 파산할 때까지 신명 정보를 은폐해 준다.
“일단 이 녀석이 나보다 부자일거라고는 생각 안 되지만, 혹시 몰라서 말이지.”
“왜?”
“아무래도 이 녀석이 우리가 오늘 처리한 적에게 생명보험을 건 당사자 같아.”
“뭐?! 생명보험? 그런 것도 있었냐.”
“신이 소멸하면 격에 비례하여 막대한 신력을 상속받는 보험이야. 우리가 오늘 처리한 신들은 죄다 보험에 가입되었었고, 그 보험금을 상속받은 녀석은 엄청난 갑부가 됐겠지.”
“그리고 갑부가 된 놈은 그 신력으로 자신의 정보를 은폐했다?”
“그래. 자칫 잘못하면 신력은 신력대로 날리고, 손해만 볼 가능성이 커. 이러면 에메랄드 타블렛의 정보처리 관계자만 즐거워지는 거지.”
“갓 스트리트의 주민들 말인가? 그 망할 부르주아지 같으니, 혁명 정신이 끓는군.”
테오가 투덜거리며 소파에 앉았다. 아이들이 돌아오는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귀가했다. 만약 서둘러서 한 시간만 당겼으면 의문의 적을 직접 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 생각한 승우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마 귀가시간까지 생각하고 작전을 짰을 거야. 누군지 모르겠지만 대단한 책략가로군.’
함정에 빠진 느낌이다. 놀랍게도 승우조차도 이 일련의 흐름이 어떠한 걸 의도하고 만들어 졌는지 조금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테오가 삐죽 입을 내밀었다.
“단순하게 보험금 사기를 노린 유쾌범 아냐?”
“그렇다고 생각되진 않아. 그럼 백강혁이나 제우스를 노릴 이유가 없지.”
“그건 그냥 충동적으로?”
“충동적으로 나에게 관측될 가능성이 존재하는 일을 한다고? 이 정도 규모의 작전을 짜는 놈이? 그럴 리가 없지. 종합적으로 보건데 이 녀석은 아마 전투에 관련된, 투신은 아닐 거야. 계획을 짜는 전략가, 음모를 꾸미는 게 익숙한 모략가. 사기꾼. 뭐 그런 게 아닌가 싶어.”
“그럼 그냥 관련된 신명을 다 까뒤집어 볼까?”
“그것 또한 방법이겠지.”
화신의 서를 보면 백강혁을 공격한 적은 검왕 아이온의 조악한 모조품을 썼다. 이런 검을 만들 수 있는 자는 아마도 가짜, 복사, 복제, 사기, 공갈, 허세, 환각, 모조, 모방, 거짓 같은 종류의 신명을 쓸 가능성이 높다. 보험금 사기를 생각하면 누군가를 속이는 종류의 신명. 예를 들자면 사기, 공갈, 위조, 환각, 환혹, 환시 따위의 신명일 것이다.
“이번 일은 카테고리가 겹쳐. 결국 누군가를 속이는 일이야. 그러니까 다 털어 보면 어떻게든 될 거 같은데? 솔직히 그런 신명이 달린 신은 착한 신도 아니잖아. 네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죽여도 뭐라고 항변도 못 할 걸.”
“너다운 의견이구나.”
“뭐, 솔직히 말하자면 네가 죽인다고 해서 항변할 깡 좋은 놈이 있나 싶다만. 아무튼 이게 제일 간단한 해결책이야. 비슷한 신명 찾아서 다 죽이자. 네 생각은 어때.”
“효과적이라는 점은 부정하지 않겠지만, 나는 반대야.”
“또 그놈의 인도적인 관점에서 반대 하는 거야?”
“아니, 호기심.”
“호기심?”
승우가 조금 눈을 빛냈다. 새로운 장난감을 받은 어른이의 눈이다. 그 눈에 테오가 어이없어서 재차 다그쳤다.
“야, 너 설마 재밌어서 그러냐?”
“잘 생각해 봐. 이 녀석은 지금 우리가 이해도 못 하는 이상한 전략으로 접근해 오고 있어. 이 전략을 짠 녀석은 결코 멍청하지 않아. 이것저것 다 생각해 보고 전략을 짜고, 담담하게 실행하지. 그게 무슨 의미겠어. 자신들의 작전대로 진행되면 나를 이길 수 있다고 믿는 거 아니냐.”
“그렇겠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작전을 실행하겠지. 지는 작전을 진행시킬 바보는 없으니까.”
“녀석들의 작전의 끝이 뭔지 궁금하지 않아?”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거의 모든 투신들의 고질병이다. 자신보다 쎈 신, 아니면 자신이 아는 신과 자신이 싸우면 어떻게 될지를 계속해서 생각하고 고민한다. 테오 또한 승우를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 적이 있다. 그 때는 그냥 답이 나오지 않았다. 성장하는 괴물이기에 지금도 괴물 같은데 싸우면 더 강해진다. 아무리 고심해도 이긴다는 장담이 없었다. 있어 봐야 몰락으로 너프 걸고, 혁명과 반역이 힘내 주길 기원하면서 몸으로 들이박아 보는 거 정도일까.
“지금 당장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 녀석을 찾아내서 박살을 내면 일이 간단해지긴 하지. 하지만 그럼 녀석이 그린 그림은 평생 알 수 없게 돼. 그런 재미없는 짓을 어떻게 하냐.”
“그거야, 그렇지만. 끙… 너도 제법 상위 신답게 됐구나. 그거 너무 오만하잖아.”
하지만 테오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승우는 오만해도, 방심해도 될 만큼 강했으니까.
“그래, 네 맘대로 해라.”
“내 맘대로 할 거다.”
“내참. 폭군이야, 폭군. 흥, 너 인기 많아지겠다.”
“왜?”
“폭군은 원래 인기 있어. 카리스마 있어 보이잖아. 신도가 또 늘겠네.”
“그러네. 또 어디서 날 추앙하는 소리가 들린다. 귀찮으니까 차단해야지.”
엄청나게 열성적인 숭배가 느껴진다. 뒷목을 핥는 듯한 이 격렬한 숭배, 기시감이 느껴지지만 불쾌감이 더 컸다. 승우는 곧 혀를 차며 누군가의 숭배를 차단했다.
* * *
“선구자! 그만하게! 이게 뭔 개짓이야?! 그러다가 우리가 관측된다고!”
“흐, 흐헤헤헤! 검과 승리, 괴식의 신을 찬양하라!”
선구자는 미친 듯이 광소하며 승우의 석상을 깎았다. 그 모습은 흡사 누군가를 보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