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56)
괴식식당-556화(556/613)
556화. 기왕 이렇게 된 거 (1)
어딘가 모를 차원에서 모략가가 승우를 향한 비수를 갈고닦고 있을 때. 승우는 바닷가에 있었다. 본격적인 여름을 맞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탓에 물놀이를 하기 위해서다. 평소라면 게르니아의 백사장에서 놀았겠지만,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자주 가면 기쁨이 줄어들게 마련. 이번에는 조금 색다른 장소로 왔다.
“하지만 너무 색다르네. 동해안이 언제부터 이렇게 됐지…….”
승우가 혀를 찰 만도 했다. 그가 과거 임용시험을 마치고 고시원 동기들과 놀러온 동해안의 백사장은 정말 멋진 곳이었다. 물고기보다도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이 어울려서 놀고먹고 마시는 분위기.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과 더럽게 비싼 파라솔 가격. 좀만 먹었다 하면 바로 십만까지 올라가는 가격표. 먹고 치우지 않아서 개판인 쓰레기들…….
“…….”
아름답지 못한 기억도 섞여 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제법 좋은 추억이다. 원래 추억은 미화되는 법이지, 승우가 자조하며 동해안의 해안가를 보았다. 백사장은 이제 없다. 남은 것은 전쟁의 상흔뿐이었다.
폭탄이 터지고, 총알이 빗발치고 수많은 이능력자와 몬스터가 뒤엉켜서 싸웠던 전장. 동해안은 지금 이렇게 물리고 있다.
재해복구지역 E섹터.
그 이름에 걸맞게 이곳 동해안의 해수욕장에는 수많은 군인과 임시기지, 그리고 헌터가 포진하고 있었다.
“여기서 물놀이를 어떻게 해…….”
물놀이 할 생각에 한껏 기대가 부풀어 오른 승우의 허리에는 이미 오리튜브가 걸려 있었다. 실망한 영식이가 손을 뻗어 오리의 머리를 눌렀다. 꾸에에엑-하고 오리가 울었다.
오리의 울음소리에 사람들이 돌아본다. 그들의 눈은 피폐해 있었고, 지쳐 있었다. 동해안은 지금 지저에 생긴 게이트를 타고 밀려오는 몬스터와 싸우는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서 오리튜브를 허리에 달고, 아이 셋을 어깨에 올린 승우는 참으로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으리라.
승우는 그들에게 뭐라고 변명하지는 않고, 그저 허망한 눈으로 한 사내를 보았다.
“헤. 헤헤헤.”
백강혁이 웃었다. 손자병법에서 말하길 장수를 쏘려면 말을 쏘라고 한다. 백강혁은 어지간하면 장수의 뚝배기를 바로 깨 버리는 걸 선호했지만, 그래도 다년간의 성장으로 이제는 똥오줌 정도는 가릴 줄 안다. 승우의 뚝배기는 못 깬다. 속여 먹을 수도 없다. 무적의 장수다. 그러니까 아이들을 공략한다. 백강혁은 아이들을 속였다.
“냐아아아… 이게 놀기 좋은 바닷가냥?”
“빤짝이 나뿌. 속였어뿌. 사기꾼이야뿌.”
“전 오빠를 믿었는데요…….”
세 아이가 백강혁을 봤다.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눈에 의구심과 미움이 깃들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걸 차마 볼 수 없어서 고개를 돌렸겠지. 하지만 백강혁은 이럴 때 오히려 당당하게 세 아이의 시선을 정면에서 마주한다. 뻔뻔함으로는 세계에서 순위권을 다툰다. 아이들의 저런 시선 따위는 백강혁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백강혁의 양심에는 털이 그득하고, 태어나서 한 번도 면도를 한 적이 없기에 아주 놀라운 방어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백강혁도 아이들의 시선을 마주하는 일은 괴롭다. 아무렇지 않지만, 그래도 애들한테 나쁜 일을 하면 기분이 좋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백강혁은 아이들의 시선을 마주했다. 정확히는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
“흐, 흐에에에에…….”
등 뒤에서 승우의 시선이 느껴진다. 백강혁은 그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그런데 그럴 수도 없었다. 유명한 영화 중에 슈퍼맨이라는 녀석이 있다. 힘 세고 꿩 강한 영웅이다. 슈퍼맨의 눈에서는 히트 비전이라는 뜨거운 열선이 나간다. 닿으면 뜨겁고, 타고, 뚫린다.
승우의 시선도 그랬다. 시선이 아프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아프다. 눈으로 마나를 담아 보고 있다. 눈으로 째려보는 걸 총을 쏘는 듯하다고 해서 눈총이라고 하던가? 그렇다면 이건 눈검이라고 해야겠다.
“아파, 아파, 아파욧.”
눈으로 벤다. 썰고 있다. 이러다가는 큐브스테이크 모양으로 등짝이 썰리겠다. 이대로는 죽겠다 싶어서 백강혁이 고개를 돌려 승우를 마주하고는 입을 털었다.
“헤, 헤헤헷. 다른 해수욕장과는 확실히 뭔가 다르잖아요. 색다른 게 제법 재밌지 않아요?”
“변명은 듣지 않겠다. 물놀이하기 좋다, 재밌는 곳이라고 아이들을 속인 이유가 뭐지?”
“그, 타지에 출장 잡혔는데 혼자 가면 외로우니까요.”
“변명을 안 하는 태도는 참 좋군. 얘들아,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오늘은 뭘 해도 좋다.”
“앗, 앗, 잠깐만요!”
무엇을 해도 좋다는 말에 아이들이 달려와서 백강혁을 넘어뜨렸다. 평소라면 승우의 교육 방침 상, 너무도 폭력적이기에 금지된 놀이가 있다.
이름하여.
“인~디아아안~”
“빱!”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놀이문화의 정점. 인간을 샌드백으로 사용하는 잔혹 무도한 놀이인 인디안 밥이다.
“우켁!”
세 아이의 손이 자비 없이 백강혁의 등을 두드렸다. 고사리 같은 은하의 손, 포동포동 탱글탱글한 영식이의 손, 몰랑몰랑한 나비의 앞발이 자아내는 환상의 오케스트라가 펼쳐지자, 지나가던 헌터들이 귀엽다고 웃었다. 백강혁이 각혈하며 소리쳤다.
“이건 그렇게 귀여운 게 아니. 악! 혀씹었!?”
맞아 본 사람만 안다. 이건 정말, 너무 아프다!
“싸장님! 설명할 수 있어요!”
“유언이라면 들어 주지. 해 봐.”
“자, 잘 들어 줘요! 이번에 정말 큰일이 터졌잖아요! 제가 쓰레기장에 유기된 거 말고도요!”
대외적으로 기밀사항인 탓에 테서렉트의 도난은 대중에게는 헌터즈 라이프 채널의 점검 정도의 파장만 있었다. 하지만 헌터들에게는 아주 큰 여파를 남겼다. 헌터를 관리하는 모든 프로토콜의 셧 다운, 기밀 채널의 셧 다운, 데이터베이스의 셧 다운으로 일시적으로 헌터들이 사용하는 모든 종류의 어플리케이션이 동결 됐다.
“그때 진짜 난리였잖아요.”
그것만으로도 기절 초풍할 만한 일인데 다른 일도 엄청났다. 일시적으로 게이트 유도기가 셧 다운되어 게이트가 제대로 유도되지 않아 기묘한 장소에 게이트가 생기기도 했고, 잘 관리되고 있던 게이트의 유지시스템이 붕괴하여 게이트 브레이크 현상을 발생. 몬스터가 게이트를 부수고 탈출하기도 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주혁진이 모든 시스템을 재기동하는 데 걸린 시간은 자그마치 하루. 그 짧은 시간에 잃은 손실액과 복구비용은 32조 원에 달했다.
“그래서 퍼스트 오더인 제가 동해안에 잠시 파견된 거지요오. 이게 그냥 제가 외로워서 그런 게 아니라 진짜로 국가적인 비상사태라서 말입지요. 동해안 지하에 게이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서른 개가 넘게 터져서-!”
“엉덩이가 낮다.”
“흐오오오, 뭐, 뭔가 오랜만에 하니까 힘드네요. 워, 원산폭격이 원래 이렇게 힘든가……?”
“녹슬었구나, 강혁아.”
오랜만에 한 원산폭격이라서 그런가, 그도 아니면 게이트 브레이크에서 터진 마나 때문에 지면이 유난히 딱딱하기 때문인가. 리비조차 인정한 완벽한 칼각을 자랑하던 백강혁의 엉덩이가 슬며시 내려갔다. 그 내려감을 눈치 챈 영식이가 엉덩이에 인디안 밥을 다시금 선사했다.
투다다다다, 투다다다다, 투다다다다다.
이 녀석이 리듬을 타는구나.
백강혁이 서글프게 외쳤다.
“퍼렁 존만아아아아, 내 엉덩이는 드럼이 아냐!?”
“뿌. 드럼 아냐뿌?”
대답은 백강혁이 아니라, 승우에게서 돌아왔다.
“드럼이야. 마음껏 쳐도 돼.”
“뿌뿌.”
무자비하다. 하지만 리드미컬하면서도 정확하다. 존 본햄이 울고 갈 만한 드러머의 재능이 엿보인다. 승우가 팔불출 아빠 같은 생각을 할 때였다. 은하가 손을 들고 말했다.
“근데 삼촌, 아까부터 이쪽을 보는 사람이 엄청 많아요!”
“그건 나도 알지만, 애써 모른 척하는 거란다.”
“왜요?”
“그, 세상에는 가급적 피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게 있어서 말이다. 이 삼촌에게도 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단다.”
“아, 알아요. 아빠가 예전에 그랬어요. 세무조사원이나 국정감찰관 같은 사람은 피하고 싶다고요.”
“그런 사람은 세금만 잘 내면 무섭지도 않아.”
승우가 치를 떨었다. 그러고는 영식에게 아주 격렬한 비트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헤드셋을 씌워 주었다. 그러자 영식이가 흥분하여 양손으로 백강혁의 엉덩이를 때렸다.
“으악! 으악! 싸장님! 잘못했어요!”
“잘못한 줄이라도 알면 참 다행이구나.”
“히잉, 용서해 줘요!”
“이게 용서가 될 일로 보이냐?”
“그래도 용서해 줘요!”
“뻔뻔한 놈.”
백강혁은 두 개의 함정을 팠다. 아이들에게 거짓 정보를 심어서 동해안으로 물놀이를 가도록 유도한 것이 첫 번째 함정. 이 함정은 백보 양보해서 참아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함정은 정말 치명적이었다.
“저기, 유승우 님 맞으시지요?”
애써 외면해 왔던 헌터들이 다가왔다. 한 무리의 헌터들은 모두 다 소중하게 성전을 품고 있었다. 그 성전이란 바로 백강혁이 쓴 괴식의 성전이었고, 그걸 품은 이들은 바로…….
“괴식의 창시자, 괴식 그자체인 유승우 님을 설마 실물로 보게 될 줄이야. 감격입니다!”
전원 괴식교의 신도들이었다.
* * *
헌터들 사이에서 괴식교는 상당한 위세가 있다. 퍼스트 오더 중에서는 교황인 백강혁과 추기경쯤으로 여겨지는 자가 민이었고, 그 외에도 비공식적으로 전도사의 역할을 도맡아하는 랭킹 1위 이시형과 2위 창리엔후가 있으며, 최우수의 자리를 다시 빼앗은 아왈트도 있다.
심지어 자청하여 괴식교의 마법 강의 뮤투브를 운영하는 리비도 있으니 그 수는 정말 무시할 수 없는 숫자였다.
퍼스트 오더 중에서 최상위권, 하이랭커가 이렇게나 많이 믿는다. 그렇다면 아래의 하위권 헌터들은 어떨까?
“저희들 사이에서는 괴식 안 믿는 사람이 더 드물죠.”
“아예 괴식으로 각성한 사람도 있으니까요.”
“괴식 스트리트, 만만세입니다.”
괴식교의 신도가 늘어나는 속도는 너무도 빨라서 이제는 한국에서 신도가 많기로는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대형종교가 됐다. 그것은 너무도 승우가 바라지 않던, 결코 바라지 않던 모습이었다. 신봉자를 싫어하는 신이라니 이상한 일이었지만, 승우는 자신을 누군가가 숭배하는 게 별로 달갑지 않았다.
‘빡, 이 녀석…….’
공식적으로 괴식교의 교황은 백강혁이다. 하지만 그 백강혁은 자신은 어디까지나 괴식의 신이 가진 네 명의 사도 중 하나일 뿐이며, 자신보다도 높은 자가 있다고 했다.
백강혁보다 높은 자가 누구인가.
지구에 괴식을 가져온 선구자, 선도자, 괴식의 신을 모시는 첫 번째 화신. 누구보다도 높은 곳에 존재하는 하이 – 홀리 – 그레이트 – 마제스틱 – 포프, 괴성황 유승우다.
하늘보다 높은 우주 괴식의 교리를 담은 괴식교의 성전 제 3페이지에는 이런 구절이 적혀 있다.
[괴교황은 침묵과 평온을 사랑한다. 누구도 그분의 안식을 방해하지 말지어다.]이 말을 해석하자면 ‘식당으로 찾아가는 행위는 매우 무례한 행위니까, 찾아가서 훼방 놓지 마. 내가 뒤짐’이라는 뜻이다. 괴식교의 신도들은 이 성전의 구절을 아주 잘 지켰다. 그래서 신도들은 절대로 식당을 찾아가지 않았고, 그 덕에 승우는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는 식당이 아니다. 그리고 교황 성하께서는 동해안의 전력이 부족하다고, 헌터들이 모여 집회를 열 것을 명령하셨다.
“일단 성하가 모이라고 하셔서 모였습니다만.”
“오길 정말 잘했군요!”
“설마 실물 괴성황 예하를 배견할 수 있을 줄이야!”
“배알하는 거만으로도 제 입가에서 민트 맛이 나는 듯하군요! 하하하하!”
동그랗게 원진을 그리고 둘러싼 사람들의 해일 속에서, 승우가 영혼 없는 눈으로 웃었다. 그러자 나비가 승우의 오리튜브를 꾹꾹 눌렀다. 구악, 구악, 오리튜브가 울었다. 승우를 대신하여 열심히 울어 주었다.
“환장하겠네.”
승우가 먼 바다를 보았다.
정말, 환장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