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59)
괴식식당-559화(559/613)
559화. 몰락 xx 드래곤 (1)
E섹터 해안가를 조금 벗어나면 네모네모한 건물들이 밀집한 창고지대가 나온다.
이 창고지대에는 몬스터의 부산물을 나눠서 냉동 저장된다. 살, 뼈, 근육, 껍질. 부산물의 종류는 다양하다.
“여깁니다.”
백강혁이 승우를 안내한 곳은 살만을 골라 보관하는 창고였다. 문을 여니 새하얀 냉기가 흘러나왔고, 그 안에 가득한 고기가 보인다. 예상한 대로의 모습이었기에 승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잡다하군. 그냥 고기라면 다 모아서 냉동한 모양이지?”
“아무래도 같은 종류가 나오는 때가 더 적어서요. 분류할 인력도 없고요. 대충 다른 중요한 부산물을 떼어 내고 남은 고기만 이렇게 대충 던져 놨다네요.”
“음, 강혁아. 일단 괴식 만들 때 제일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냐.”
“효과요.”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오답이 날아왔다. 승우가 이마를 눌렀다.
“틀렸다.”
“아니! 효과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다고!”
“안전.”
“앗.”
“안전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해.”
음식이나 괴식이나, 먹는 것에서 제일 중요한 점은 바로 안전이다.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 음식 같은 건 만들면 안 된다.
사망확률 50%, 심지어 먹고 죽지 않아도 옆 사람을 못 볼 만큼 최면이 걸리는 음식은 괴식이 아니라 주살(呪殺)음식이다.
그런 면에서 이 냉동 창고의 고기는 최악이었다.
“몬스터의 고기는 대부분 다 마력을 지니고 있어. 그 마력의 형태마다 다양한 종류의 효과를 품고 있고, 괴식 스킬은 그 형태를 조금씩 바꿔서 유리한 효과가 나오도록 변경하는 거야. 근데 보라고. 이렇게 고기가 잡스러우면 어떻겠어?”
“막 이상한 효과가 생기고 그러겠네요.”
“그래. 그뿐만이 아니야. 먹어도 되는 음식과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이 사람마다 약간씩 달라. 예를 들자면 너, 너 바나나 먹으면 어때?”
백강혁이 눈을 깜빡였다.
“바나나요? 먹으면 어떻긴요. 달달하고 톡 쏘는 게 맛있죠.”
“너 그거 알러지다.”
“엥?? 알러지요?”
“바나나는 원래 달기만 해. 톡 쏘는 맛 같은 거 없어.”
“에에엥?? 진짜요?”
“바나나 알레르기의 대표적인 증상이지.”
백강혁은 큰 충격을 받았다. 바나나 알레르기라는 말은 태어나서 처음 들어 봤고, 하필이면 그 바나나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자신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승우가 혀를 찼다.
“모든 생명체는 다들 미묘하게 자신의 체질이 달라. 새우 알레르기, 오이 알레르기같이 대표적인 알레르기도 있고 너처럼 바나나 알레르기인 사람도 있지. 그래서 괴식을 만들 때는 반드시 기반 의학 지식이 있어야 해. 없으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어.”
“끄아… 어렵네요. 잉? 그럼 다른 괴식 요리사는 어떻게…….”
“그래서 다들 의학 공부도 병행해서 하는 거란다.”
승우처럼 알기 쉽게 스킬이나 눈으로 상대의 체질을 간파해서 요리를 만드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이런 스킬은 얻기가 힘들다.
“스킬이 없으면 공부로 채우는 수밖에 없지.”
승우가 그렇게 말을 맺고는 냉동 창고를 보았다.
“이 고기 중에서 먹으면 안 되는 고기가 섞여 있다면? 다 먹어도 괜찮지만, 자선 행사에 찾아온 사람 중에 하필이면 먹으면 안 되는 사람이 있었다면? 재수 없게도 그 사람이 정확하게 그걸 먹었다면?”
그냥 음식으로 얻는 식중독보다 괴식으로 얻는 식중독이 더 강하다. 100% 죽는다.
“흐. 흐엑.”
백강혁이 입술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렇게 되면 행사는 끝장이다. 주최자인 백강혁은 언론의 몰매, 참가자의 질타, 법원의 법정 출타서, 황지현의 로우킥을 맞고 재기불능이 된다. 승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네가 얼마나 어려운 요구를 한 건지 이제 알겠냐.”
“으아아아. 그럼 어쩌죠? 방법이 있는 거죠?”
“방법이야 있지. 다만 이건 음, 음…….”
승우가 말꼬리를 흐렸다. 무엇인가 생각하는 눈치다. 잠깐 침묵하던 그가 말을 이었다.
“안전 다음으로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니?”
“효과?”
이번에도 일 초의 망설임 없이 오답이 날아왔다.
“위생이다.”
“아, 아아. 그렇죠. 위생이죠. 근데 그게 왜요?”
“내가 생각한 방법이 말이야. 위생 의학적으로는 완벽한 방법이거든? 그러니까 실제로는 더럽지도 않고, 상한 것도 아니야. 만들어진 후에 보면 아무런 흠이 없어. 그런데 만들어지는 과정이 매우, 매우 불쾌하거든. 그래도 괜찮을까?”
고민은 없었다. 백강혁이 냅다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못 보게 하면 되죠. 이 창고 자체를 아무도 못 들어오게 며칠 막으면 될까요?”
“근데 마무리 작업을 하려면 사람이 있어야 해. 비위 좋고, 입 무겁고 실력까지 출중한 사람이 있어야겠지.”
“그런 사람 여기에 있지 않습니까! 창고 봉쇄하고 제가 하면 되겠네요.”
백강혁은 가볍게 승우의 말을 받았다. 승우는 별반 대꾸 없이 강혁을 보았다.
흡사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를 보는 눈이다. 하지만 이내 눈에서 동정심을 치웠다.
자기가 하자고 하는 일이고, 자기가 좋다고 하는 일이다. 스스로의 행위에 책임을 지는 게 바로 어른이니 알아서 잘하겠지.
“후회하지 마라?”
“뭐래요. 당연히 후회할 겁니다. 그때가 되면 잘 부탁합니다, 싸장님.”
“후회를 깔아 두고 들어오지도 마라. 나 참.”
“에이씨. 싸장님이 그렇게 말하면 당연히 무서우니까 그렇죠! 뭐 하려고 그러는데요?”
“일단 여기 냉각장치부터 끄자.”
“넵.”
승우의 지시가 이어졌다. 간단한 지시였다. 냉동 창고의 냉각장치를 꺼서 따뜻하게 만들어라, 각각 개별 진공 포장된 고기들을 뜯어서 한곳에 뭉쳐 두어라.
어려운 요구였지만 다행스럽게도 냉동 창고 안에는 대신 힘을 써 줄 기계가 많이 있어서 버튼 몇 번 누르는 걸로 충분했다.
물론 진공포장을 하나하나 뜯는 일은 고역이었지만, 뜯고 나르는 일보다는 훨씬 쉽지. 기계가 있어서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면서 백강혁이 움직였다.
“흠, 조합식이 괜찮군.”
그 사이 승우는 무엇인가를 조합하고 있었다. 인벤토리에서 액체와 액체를 꺼내서는 냄비에 섞고, 다른 액체를 꺼내서 또 섞고, 섞는다. 그것은 요리 전에 소스를 만드는 일이라기보다는 포션을 조제하고 조합하는 연금술사 같은 모습이었다.
무엇을 만드는 걸까?
의문은 금방 풀렸다.
고기를 한곳에 모으고 승우가 조합한 액체를 뿌리자마자였다. 액체가 냉동 고기에 닿자 고기가 흐물흐물해졌다.
“거의 녹은 거처럼 말랑말랑해졌네요. 연화제에요?”
“연화제같이 귀여운 걸 이렇게 어렵게 만들겠냐. 지켜봐 봐.”
승우의 말대로 지켜봤다. 과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흐물흐물해진 고기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한 곳에만 그런 게 아니다. 액체가 닿는 곳마다 같은 현상이 생긴다.
“이, 잉?”
눈을 다섯 번쯤 감았다 뜰 무렵에는 모든 고기가 꿈틀거렸다.
마치 수천, 수만, 수억 마리의 지렁이처럼 고기가 움직인다.
꿈틀, 꿈틀. 고기가 지렁이가 되는가? 지렁이가 고기를 먹는 것인가? 어느 것이라 확신할 수는 없다만, 지렁이가 늘어나는 만큼 고기가 줄고 있다.
“흐아아아…….”
잠깐 경악하는 사이, 지렁이는 수십억 마리가 넘게 증식했다.
백강혁의 발끝부터 머리까지 소름이 달렸다. 세상 무서운 걸 다 봤다고 자부하는데 이건 정말 무서웠다. 그리고 엄청나게 비위가 상하는 것이었다.
지옥의 풍경, 지옥 가장 깊은 곳의 대형마트 육류코너가 이런 모습일까 싶은 정도의 압도적인 공포!
계속해서 지렁이가 늘어난다. 그 지렁이는 늘고 늘어난다. 백강혁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흐으아아아악! 사람사렬!?”
“좋았어. 제대로 만들어졌군. 역시 나는 굉장해.”
뒤로 넘어져서 네발로 걸어 도망가는 백강혁과 흐뭇하게 웃는 승우. 승우에게 백강혁이 괴성을 지르며 물었다.
“싸장님! 저거 뭐에요?!”
“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일단 그거 연금술 맞죠?”
“응. 연금술이야.”
괴식 스킬을 배울 때는 연금술 지식이 필요하다. 마법적인 효과를 가진 몬스터의 부산물에 마법적인 효과를 가진 조합식으로 요리를 하고, 마법을 담으려면 마법 지식과 요리 지식뿐만 아니라 무엇인가를 배합하고, 섞고, 조합하는 연금술 지식이 뒷받침해야 한다.
승우가 만든 용액은 여러 개의 포션을 조합한 용액이었는데 그 면면은 이러했다.
“베이스는 동충하초의 진균.”
“동충하초면 그거죠? 겨울에는 벌레고 여름에는 풀인 약초.”
“정확히는 약초라기보단 버섯이야. 균사지.”
균사가 묻은 벌레가 생명이 다하면서 버섯이 된다. 동충하초를 요약하면 그렇다.
“동충하초 진균을 기반으로 해서 거기에 동충하초의 활동을 강화하기 위한 포션 9종을 섞고, 트렌트의 씨앗을 녹여서 흡수력을 높였지. 그러니까 저 지렁이처럼 보이는 건 지렁이가 아니야. 균사야. 버섯이라고.”
“저게 버섯? 빼박 지렁인데요.”
“지금이야 그렇겠지만 고기가 전부 다 동충하초로 바뀌면 저런 모습은 안 될 거야. 수분이 빠져서 말라붙으면 조금 더 보기 좋아져. 프레스육 통조림처럼 돼.”
“런던미트 같은 거요?”
“런천미트겠지.”
“아, 아무튼 저걸 먹는 거군요.”
지금이야 생긴 게 수십억 마리의 지렁이지만 수분이 빠지면 프레스육, 통조림 고기처럼 된다.
그럼 먹는데 문제가 될 건 없다. 백강혁이 이제야 이해하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다양한 잡고기를 일단 동충하초로 바꾼 후에 동충하초 고기로 괴식을 만드는 거네요!”
“정확해.”
“이거 천재적인 방법인데요?”
다종다양한 고기를 균사를 번식시켜 하나로 통일했으니, 효과는 안정적이다. 요리법도 통일할 수 있다. 기가 막힌 해결책이다.
단점이 없지 않은가?
승우가 고개를 흔들었다.
“단점은 있어.”
“뭔데요?”
“마석이나 뼈에 깃든 마력에 비하면 근육의 마력은 보잘것없지만, 저렇게 만든 고기가 뭉치면 무시 못 할 마력이 돼. 균사가 번식해서 하나로 통일되면…….”
승우가 말하던 중이었다. 수없이 증식하던 동충하초의 균사가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뭉치고, 뭉치고, 뭉치는 지렁이들. 개별로 분리되어 있던 녀석들이 하나의 덩어리가 되니 이제는 지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모습이 됐다.
그 모습은 흡사…….
“웜?”
지렁이 몬스터 계의 드래곤이라고 불리는 초거대 지렁이, 웜이다. 승우가 미소를 지었다.
“뭉치다 보면 이렇게 새로운 몬스터가 되곤 한단 말이지. 하하.”
“우, 웃을 때가 아니잖아요!”
“맞아. 너는 웃을 때가 아니지.”
승우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동충하초 웜을 가리켰다.
“뭐 해, 싸우지 않고.”
“…….”
“그러다가 창고 부서지면 네가 물어내야 할걸?”
백강혁이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냉동 고기로 연금술을 시연해서 수수께끼의 몬스터를 만들어서 냉동 창고가 부서졌다?
시말서 각이다. 시말서와 반성문은 수백 장을 썼기에 무섭지 않지만 시말서가 소환하는 K-토르는 무섭다. 갈비뼈가 또 부러질 거야.
다급하게 성운검을 고쳐 쥐고는 전투태세를 갖췄다. 하지만 아직 궁시렁거릴 여유는 있었나보다. 백강혁이 투덜거렸다.
“저기 싸장님, 싸장님은 저한테만 유독 가혹하지 않아요?”
“그건 분명히 기분 탓이란다. 나는 공평하다고.”
아닌 거 같은데.
민한테는 아무리 생각해도 상냥한 거 같은데.
백강혁이 불만으로 입술을 꿈질꿈질거리다가, 오리주둥이처럼 입술을 내밀었다.
“우씨. 맨날 민만 이뻐하고…….”
“이 녀석아. 도와줘도 징징이야.”
“치…….”
이렇게 된 거 스트레스라도 풀어야겠다. 백강혁의 정신승리 뇌가 동충하초 웜의 모습에 민의 모습을 덮어씌웠다.
“죽어라아아- 브라더어어-!”
잠깐 생각한 것만으로 상대의 이미지를 덮을 수 있다니, 참으로 편리한 뇌다. 하지만 동충하초 웜은 그렇게 무시해도 될 상대는 아니었다.
“꾸엑!”
동충하초 웜에게 맞아서 백강혁이 날아갔다.
녀석이 동충하초 웜을 이기는 건 하루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고, 포션 열다섯 병이 필요했다.
결국 백강혁은 포션 과다 사용과 남용으로 시말서 한 장을 제출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