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65)
괴식식당-565화(565/613)
565화. 커밍 아웃 (2)
정신을 차린 백강혁과 승우는 제법 긴 이야기를 나눴다.
신이 되면 뭐가 달라지는가, 신으로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현직신이 앞으로 신이 될 자에게 하는 천금 같은 조언이다.
이야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올 때까지 백강혁은 승우의 말을 곱씹었다. 결론은 간단했다.
“별로 달라질 거 없잖아…….”
조언을 줄이면 딱 한 줄이 된다.
[신이라고 해 봐야 좀 쎈 각성자에 불과하다.]돌아와서 확인해 보니 그러했다. 아직 스무 시간이 다 지나지 않아서 신으로서 변화는 적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뭔가 막 확연하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전지전능해지지도 않았고, 어떤 영화에서처럼 현실을 내 뜻대로 조작하지도 못했다.
달라진 점은 날개 생기고 꼬리가 생기고 드래곤 하트가 생긴 건데, 이건 신이 돼서 바뀐 게 아니라 용이 돼서 바뀐 거다.
“그럼 싸장님 말처럼 하던 대로 하면서 살면 되는 거겠지.”
신이 되긴 했지만, 퍼스트 오더로서 활동을 멈출 생각은 없다.
최우수와의 아이돌 생활도 안 관둘 거다. 오히려 일이 늘었다고 할 수 있다.
“국세청 헌터과와 상담해서 신 활동과 퍼스트 오더 활동을 겸업하는 중이니 세금 좀 깎아 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나. 1%만 깎아 줘도 대박인데…….”
하지만 세상이라는 게 원래 자기 마음처럼 되진 않는 법.
바라지 않던 두 사람의 화상통신이 연결되었다.
화면 속 두 남자 중, 민 오키프가 먼저 그 주둥이를 열었다.
“다 들었다. 빡, 신이 됐다면서? 축하한다.”
“응? 누, 누구한테 들은 거야.”
화면 속의 다른 사람.
리비가 V를 그렸다.
“제가 알아냈지요~ 저도 에메랄드 타블렛은 있으니까요!”
리비는 신은 될 수 있으나 신명이 마음에 안 들어서 보류를 반복 중인 특이한 인간이다.
에메랄드 타블렛의 제어권이 있는 고로 백강혁의 신명이 등록되고 있는 것도 당연히 알았다.
백강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 두 사람이 왜 갑자기 이러는 건가.
“일단 축하해 주니까 감사하게 받긴 하겠는디요. 그래서 뭔 소리를 하려고 이 야밤에 긴급 채널까지 연결했수?”
“심기가 불편한 거 같으니까 우리도 말을 짧게 할게요.”
“하야해라, 빡.”
또냐.
또 하야무새가 하야 하야 거린다.
맨날 듣는 소리라 이젠 새삼스럽지도 않다.
백강혁이 중지를 드는 순간이었다.
민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신을 모시는 신은 이상하지 않냐.”
“뭐, 뭐?”
“너도 이제 신이면 독립해야지.”
“내가 왜 독립하냐. 천년만년 여기 있을 거거등?”
“하하, 상황을 이해 못 할 줄 알았다. 너도 알기 쉽게 설명해 주지. 너는 이제 신이야. 그럼 네가 교황이 되면서 교단에 몸을 두면 그 신앙은 누구를 위한 신앙이지?”
백강혁의 눈이 핑 돌았다.
“어, 그러니까… 내 신앙심은 당연히 싸장님에게 가는 거 아닌가……?”
“그래. 네 신앙이야 선생님에게 가지. 하지만 교단의 신앙은 그렇지 않아. 네가 교황인 동시에 신인지라 일부분의 신앙이 너에게로 새어 들어간다. 알겠냐, 너는 모기처럼 쪽쪽 선생님의 신앙을 빨아먹는 신세가 됐어.”
“안희, 십할… 누구 맘대로…….”
“네가 원치 않아도 그렇게 되는 게 법이라고 하더라. 맞습니까, 소울이터님?”
민이 발언권을 리비에게 넘겼다. 리비가 흠흠 하고 목을 가다듬고 손가락을 뻗어 백강혁을 가리켰다.
“신앙이라는 게 결국은 신들의 화폐에요. 믿음이 분산되는 모습은 옳지 않아요. 특히나 지금의 교단은 슈퍼스타 씨의 영향력이 워낙 큰 탓에 신과 슈퍼스타 씨를 헷갈리는 사람도 있을지 몰라요.”
“누, 누가 그래요!?”
“누가 꼭 그런다고 해야 알아듣나요. 분위기를 보면 알잖아요. 약간 사병? 개인적인 친위단? 그런 느낌으로 슈퍼스타 씨의 파벌이 돌아가잖아요.”
“그러는 당신네들은 뭐 달라!?”
“물론 우리 파벌도 그렇지요. 거의 반쯤 사병이니까요. 근데요.”
리비가 히죽 웃었다.
“우린 신 아닌데요?”
“!?”
“문제의 원인은 슈퍼스타씨가 신이라는 거니까요. 말 돌리려고 해도 소용없어요. 신이 신을 섬기면 신앙이 분산된다, 그러니까 하야하라 이겁니다.”
리비와 민이 화면 속에서 다시금 외쳤다.
“우우우, 하야하라!”
“우우우, 하야하라!”
적의 논리는 완전하다.
신앙을 분산시키지 말고 나가라,
외통수였다. 반박할 말이 없다.
“시, 시발… 점쟁이 말대로 개명이라도 할 걸 그랬나.”
* * *
개명 같은 걸 한다고 이미 수습이 될 단계는 넘었다. 백강혁은 진지하게 돌파구를 모색했다.
“1. 신 자리를 때려친다.”
이거, 엄청 어려운 거다.
리비가 아무렇지도 않게 해서 그렇지 보통은 시도도 못 한다.
저 괴물은 자기 마나 코어를 보석에 담아서 추출, 결합시켜서 따로 보관한다.
자기 레벨을 조절할 수 있는 괴물이기에 가능한 치트 행위다.
신이었다가 필멸자로 돌아오면 그 낙차에 쇼크사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쇼크사하지 않아도 레벨다운은 피할 수 없다. 100에서 99로 하나만 딱 줄어들지 않는다. 화끈하게 1부터 시작하게 될지도 모른다.
“2. 쌩깐다.”
어렵다. 민과 리비는 물 만난 고기처럼, 콜라 만난 햄버거처럼 날뛰고 있다.
제대로 된 명분을 얻었으니 하야 운동은 더 커지면 커졌지, 작아지지 않는다.
“3. 반역자들을 찍어 누른다.”
역시 어렵다. 생각 같아서야 내래 이 반동분자들을 탱크를 몰고 가서 박살 내고야 싶다만, 민과 리비를 동시에 상대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거기다가 백강혁은 진심으로 싸우려면 용으로 변해야 하는데 그랬다가는 좋게 안 끝난다.
리비와 민을 이긴다 치더라도, 싸장님이 신문지 대신 잡지라도 돌돌 말기 시작하면 머리가 터진다.
“4. 미친 척하고 사업 확장.”
오늘부터 검과 승리와 괴식과 하늘의 신을 모시는 성당은 검과 승리와 괴식과 하늘과 몰락의 신을 섬기는 성당으로 사업을 확장합니다.
모든 교민들, 축하해 주세요~
“되겠냐.”
안 그래도 신명인 하늘 하나를 더 추가하려고 하니까 잡스럽다, 종합 쇼핑몰이냐, 욕심이 그득하구나, 마구니가 꼈다면서 교민들이 반대가 심했다.
그래서 아직도 종파의 명칭은 검과 승리. 괴식의 신이다. 여기에 몰락을 하나 은근슬쩍 더 넣어 숟가락을 본격적으로 올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몰락이라는 신명은 진짜 별로야.”
믿었다가는 인생 아작날 거 같은 어감이지 않은가. 하고 많은 신명 중에서 왜 하필 몰락일까?
이건 아무리 봐도 저주신, 재앙신, 악신의 신명이다.
“주인공이 가질 신명이 아니라 주인공에게 뚜드려 맞고 성불하는 악신의 이름이야. 미치겠네.”
만약 몰락의 신명을 은근슬쩍 종교명에 추가하면 민과 리비가 원하는 대로 된다.
탄핵.
놈들이 원하는 건 하야가 아니라 탄핵이다. 진짜 탄핵만은 당하고 싶지 않다. 백강혁은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렸다.
“싸장님, 도와줘요. 우짜면 좋을까요.”
대답은 빠르게 돌아왔다.
“차단 푼 지 한 시간도 안 지났는데 또 이러냐? 차라리 전화해라.”
“전화보다는 기도 통화가 빠르잖아요. 그거 알아요? 전화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사실 비슷하게 들리는 합성음이라서 진짜 목소리가 아니에요. 전 싸장님의 진짜 목소리가 듣고 싶…….”
차단당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백강혁은 다시 옷을 입었다.
* * *
승우가 묵고 있는 호텔의 주인은 괴식교의 신도다. 그는 먹는 걸 상당히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였는지 호텔은 24시간 뷔페가 열려 있는 특이한 환경이었다.
새벽 2시 반.
자야 하는 게 당연한 시간이지만 나비는 깨어 있었다.
용사님이 싸우러 가셨으니 안 자고 기다린 것이다.
“냠, 냠, 냠. 맛있다냐.”
“괜찮네. 솜씨가 좋아.”
나비가 먹고 있는 것은 앙쿠르트 스프. 따끈따끈한 페스츄리와 양송이 버섯스프를 같이 먹는 요리다.
양발로 페스츄리를 뿍 찢어서 스프에 찍어 먹으면 맛있다. 승우는 속이 허하여 사골 국물에 낙지를 넣어 끓인 연포탕을 마셨다.
그렇게 먹고 있으니 문이 벌컥 열리고 백강혁이 나타났다.
나타날 줄 알았다는 듯이 승우가 한숨을 쉬었다.
“이럴 거였으면 아까 같이 돌아오지 그랬냐.”
“저한테도 마음의 준비라는 걸 할 시간이 필요했거든요. 근데 돌아가 보니까 브라더와 존… 흠, 리비가 쌍으로 빡치게 하잖아요.”
“화날 때는 먹으라냐?”
나비가 앞발로 접시를 들어 백강혁에게 주었다.
앙쿠르트 스프만 한가득하다. 이 빵이 올라간 이상하게 생긴 그릇이 맞긴 한가?
“어?”
맛있었다. 백강혁이 얌전히 스프를 홀짝였다. 뜨거운 스프가 들어가니까 한결 낫다.
문뜩 생각해 보니까 작전 중에 스팀팩 말고는 먹은 것도 마신 것도 없다는 걸 알았다.
“배고파서 신경이 날카로운 거다냐. 먹으라냐. 먹으면 낫다냐.”
“긍가부다…….”
말없이 백강혁이 스프를 홀짝이니, 승우가 턱을 괴고는 넌지시 말했다.
“일단 문제는 그 둘이지? 민이나 리비는 내가 조용히 시켜 둘게.”
“오, 진짜요? 아싸.”
리비나 민이나 승우가 말하면 바로 꼬리를 내린다. 지금까지 둘이 나댄 것도 모두 다 승우가 가만히 있기에 가능한 일.
역시 승우에몽이다. 빡진구의 고민을 가볍게 해결했다. 백강혁이 히죽 웃으니 승우가 발을 까닥였다.
“어차피 그 둘은 신앙을 네가 떼먹어 간다, 는 논지로 너를 압박하는 거겠지.”
“맞아요.”
“나는 그래도 별로 상관없는데 말이야.”
이 괴식교단이라는 건 승우가 의도해서 생긴 물건이 아니다.
백강혁이 만들었고, 백강혁이 크게 만들었으며, 백강혁에 의해서 굴러가는 교단이다.
신앙을 백강혁이 갈취하는 게 아니라, 백강혁이 승우의 이름을 팔아서 사업을 멋대로 몇 배로 불린 후에 99.9%의 이득을 다 떠넘기는 기형적인 모습이다.
이름을 멋대로 판 일은 괘씸하지만, 수익이 크다는 점은 승우도 부정하지 못한다. 놈이 사심이 별로 없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 신력들. 네가 벌어 온 신력이니까, 안 쓰고 다 가지고 있다만.”
“아, 쫌 써요!”
“흠, 신력을 전부 다 돌려줄 테니까 아예 이참에 개명하고 네 교단으로 바꾸지 그러냐.”
“싫은디요.”
“고집부리지 말고.”
“싫은 건 싫은 겁니다요. 하야도 안 할 거고, 개명도 안 할 겁니다요.”
“맘대로 해라. 그보다…….”
백강혁이 인간으로서 살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한 열다섯 시간 남았다. 그 후로는 신의 시간이다.
이제부터 백강혁은 늙지 않고 자연사하지도 않는다. 병에 걸리지도 않으며 신앙의 힘으로 몇 번이라도 살아날 수 있다.
“화신 자리도 안 놓을 거지?”
“넵.”
“흠, 그럼 지금까지와는 별로 달라지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겠군.”
“그렇죠. 뭐, 달라질 게 있나요. 선생님도 신은 강한 각성자 정도라고 하셨잖아요.”
“그래. 그러니까 앞으로 사는 방법은 달라져도 돼. 하지만 부모님에게는 말해야지.”
“예? 거기서 부모님이 왜 나와요?”
생각도 안 해 봤나보구나.
승우가 곤란한 듯 눈가를 흐렸다.
“너는 이제부터 죽지도 않고 늙지도 않아. 아프지도 않지. 부모는 그런 자식을 보면 두려워하게 마련이라더군. 그리고 질투하는 때도 있고, 시샘하면서 그 자리를 탐하는 예도 있어. 너희 집이라면 그런 일은 없겠지만, 자식 된 도리로서 부모님이 충격받지 않으시게 잘 설명해야지.”
승우는 부모가 이미 타계한 이후였기에 그런 곤란한 일은 없었다. 백강혁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해서 설명해 드릴게요. 그런데요, 싸장님.”
“왜.”
“제가 장담하는데요. 저희 부모님은 그러면 바로 정신과 예약 잡으실 거 같은데요.”
“…….”
“이새끼가 허언증이 존나 세더니만 이젠 제대로 미쳤구나라는 반응 말고는 안 떠올라요.”
“…….”
“그냥 입 다물고 있는 게 효도 아닐까요?”
승우가 입을 다물었다.
승우가 생각해도 그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