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67)
괴식식당-567화(567/613)
567화. 최후의 날 (2)
경고한 이후 일주일이 지났다. 승우의 집에 최후의 날을 알리는 초대장이 도착했다.
좌표만이 적힌 초대장이라 발신자는 없었지만, 어둠 속에 숨어서 활동하던 자의 초대장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지팡구의 좌표로군.”
지팡구라면 대명고등학교와 연결되었던 인연이 있다. 그리고 보면 그곳의 주신이었던 이자나미는 승우의 교사 생활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지팡구로 돌아갔다지.
초대장에 적힌 좌표로 보아 그곳이 아마 전장이 될 터였다.
승우와 이름 모를 신의 싸움이 벌어질 전장이.
“이자나미도 불쌍하게 됐군.”
전력으로 싸우기 시작하면 행성쯤은 그대로 증발해 버린다. 이곳이 전장으로 선정된 시점에서 지팡구는 망했다고 봐도 좋았다.
하지만 승우는 약간의 동정을 품었을 뿐, 행동을 바꾸진 않았다. 지팡구는 원래부터 별로 평이 좋지 않은 차원이다.
여차하면 약탈도 서슴지 않고 식민지를 만드는 일도 자주 한다.
동정은 하되 딱히 무엇인가를 해 줄 의미는 없다.
승우가 어깨를 풀자, 영식이가 뿅뿅 뛰어서 다가왔다.
“어디가뿌?”
“응, 잠깐 할 일이 생겨서.”
“뿌. 올 때 맛있는 거뿌.”
“그래.”
영식이의 말랑한 볼을 만졌다.
그러자 녀석이 방긋 웃었다.
승우가 볼에 입을 맞추며 마주 웃었다.
“다녀올게.”
“뿌뿌~”
* * *
차원이동을 마친 승우가 지팡구에 도착했을 때는 불바다만이 보였다. 지팡구는 침략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가 침략하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이미 불을 지르고 도망간 후인가, 그도 아니면 숨어서 승우를 기습하려는 건가. 둘 다겠지.
상당한 대군이 몰아쳐서 지팡구를 불바다로 만들고, 일부가 남아 기습을 노린다.
군략 자체는 평범하다.
그럼 지팡구는 왜 불타야 했는가.
“조금이라도 신력 수급을 줄이기 위해서인가?”
이자나미가 당한 이후 그 소문을 들은 이자나기는 승우를 찬양하였다고 들었다.
이자나미의 지분을 갉아 먹고, 동시에 외신(外神)의 지분을 올려 이자나기 본인의 주가를 올리기 위한 술수였다.
이자나기가 멋대로 승우의 이름을 이용한 것이기에 제법 불쾌한 일이었으나 불로소득이 생긴 것도 사실인지라 봐주던 형국이었다.
지팡구의 신민들이 섬기면 승우에게 신력이 온다. 그 신력 수급을 조금이나마 줄여 보자고 지팡구를 불태우는 것이라 추정됐다.
“정답.”
대답은 정면에서 들려왔다. 기색을 숨기지도 않고 모습을 보인 모략가였다. 승우의 입가가 조금 올라갔다.
“정면에서 모습을 보일 줄이야. 배짱이 두둑한걸?”
“숨으면 숨는 대로 기분 나쁘다고 일도양단할 게 뻔하니까, 차라리 정면에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살 확률이 높겠지. 틀리나?”
“정답.”
승우가 손가락을 튕기자, 숨어서 습격을 노리던 수천의 몬스터들이 일도양단되었다.
‘기만의 능력으로 숨겼는데도 모조리 보였단 말이지. 기습, 암습은 통하지도 않아. 진짜 괴물이군.’
모략가는 조금은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물었다. 준비하고 대비하고, 마음가짐을 정리하였으나 무서운 건 무섭다.
최고 최강의 신을 정면에서 마주하는 일만큼 두려운 게 세상에 무엇이 있으랴. 지금 손가락을 까닥하면 모략가는 죽는다.
개미와 코끼리의 일대일 싸움처럼 간단하게 끝난다. 상대의 호기심과 호승심, 그리고 아량으로 살아 있다는 걸 상기하며 모략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자기소개는 안 해도 되나?”
“응. 너는 나를 알고 있고, 나는 네가 보이니까.”
“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장막을 쳤는데도 내 진명이 보인단 말이지. 기도 안 차는 스킬이군.”
“네가 인간이고 지구인이면 내 스킬은 피할 수 없어.”
승우의 스킬은 감별안 (人). 사람을 감별하고 본인조차 모르는 정보를 읽어 내는 스킬이다.
모략가는 지금은 신이지만 과거에는 지구인이었다. 근본, 근원은 바꿀 수 없다.
백강혁처럼 용으로 변해 버린 자라고 할지라도 근원이 지구인인 이상 승우의 스킬이 적용된다.
하물며 모습도 바꾸지 않은 모략가였으니 피할 재간이 없다.
승우가 휘파람을 불었다.
“근데 당신 엄청 유명인이잖아. 나도 당신 책 샀어.”
“그건 고맙군.”
“그래서 사기와 기만의 신 씨. 이렇게 외딴 차원에서 보자고 하는 게 통성명하자고 부른 건 아닐 테고, 많이 준비했나 봐?”
승우가 기대된다는 얼굴로 모략가를 보았다. 모략가는 땀을 흘렸다.
하지만 용기를 내었다. 상대는 최고 최강의 신이고 이쪽이 도전자다. 용기(勇氣)란 약자가 강자를 상대로 쥐어짜는 것, 강자가 약자를 상대하며 품는 마음은 용기가 아니다.
수많은 용사(勇士)가 마음속에 용기를 품었던 것처럼 약자인 모략가는 승우라는 강자를 상대로 용기를 품어야 한다.
모략가가 용기를 쥐어짜 냈다.
“물론 만반의 준비를 했지. 앙골모아의 대마왕. 오늘이 네 마지막 날이다.”
* * *
과거 한 사내가 있었다.
남자는 가톨릭으로 개종한 유대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머리가 영민하고 좋아 모든 이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그는 항상 타인의 기대를 배반하는 삶을 살았다.
상인인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상인의 일을 관두고 학업에 몸을 던지는가 하면, 그렇게 시작한 학업의 길에서 교수의 기대를 저버리고 연금술로 방향을 선회하는가 하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연금술조차도 버리고 다음은 의학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돈을 버는 일은 쉽다.
굳이 그것을 목표로 삼기엔 너무나 하찮다. 학업이란 대저 무엇을 위한 학업인가, 목표가 없는 일은 공허하다. 연금술은 그야말로 공허하고 공허한 일이었다.
그는 연금술을 배운 지 일 년이 되지 않아 스승을 뛰어넘었고, 이 년을 채울 무렵 연금술이 목표하는 바인 다른 물질로 금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함을 입증하였다.
불가능한 것을 목표로 삼아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매진할 만큼 인간의 시간은 넉넉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의학은 사내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다. 때마침 퍼진 흑사병 탓에 연구할 것은 많았으며, 의학의 연구로 흑사병을 고치면 많은 이들이 그를 칭찬하고 숭배하였다.
[봐, 부자 되는 건 쉽잖아.]그는 예상대로 많은 부를 거머쥐었다. 흑사병이라는 절대적인 공포 앞에서 사람들의 지갑은 쉽게 열렸다. 고쳐주면 명의가 되고, 고칠 수 없다면 돈으로 죽은 자의 가족을 틀어막는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앞선 의술.
많은 돈.
그 많은 돈으로 명성을 관리하니 사내는 신의라는 명성을 얻었다.
명성은 더 많은 돈을 주었다.
사내는 억만장자가 되었다.
하지만 좋은 일만 있진 않았다.
부자가 된 사내가 많은 사람의 흑사병을 고치고 돌아왔을 때 기다린 것은 환호가 아니었다.
아내와 자식의 싸늘한 주검이었다. 흑사병에 걸렸다. 고쳐 주어야 할 의사는 사내가 예상한 만큼 형편없었고, 그 탓에 가족은 불합리한 치료를 반복하다 고통 속에서 죽었다.
이건 사내에게도 적잖은 충격이었다. 다른 사람을 고쳐 주어 무슨 소용인가, 가족 하나 못 구했는데?
하지만 충격은 잠깐이었다.
[잠깐. 이건 혹시……?]사내에게 이건 기회처럼 여겨졌다.
흑사병으로 시름하는 만인을 몸 바쳐서 구하다가 가족을 잃은 명의. 이 말은 너무도 달콤했다.
영웅에게는 좌절이 필요하다.
좌절을 딛고 일어나야만 영웅이다.
가족의 죽음.
그리고 극복.
이러한 장식은 앞날에 큰 도움이 된다.
[이거 괜찮은데?]사내는 확신했고, 비극의 명의를 연기하며 슬픔 속에서도 흑사병 치유를 멈추지 않았다.
과연 그의 예상대로였다.
사람들은 그를 찬양했다.
이단으로 몰려 이단 심문관에게 잡혀갔을 때도 사람들은 그를 위해 목소리를 내었고, 교단은 그에게 혐의 없음은 물론 성자라는 칭호를 주었다.
그 후로도 그는 승승장구했다.
인쇄업이 발달하여 책이라는 게 널리 퍼지기 시작하였다.
덤으로 사람들은 흑사병이라는 인류 이래 최고의 공포를 직면하여 판단력을 잃었다.
돌로 금을 만든다는 연금술 바보짓에 열광하며 많은 이들이 거금을 투자하였다.
하늘을 보면 미래를 알 수 있다는 점성술사의 개소리에 국정운영을 맡기는 얼간이 국왕도 한둘이 아니었다.
사내는 직감했다.
이건 황금의 파도다.
돈을 억수로 벌 기회다.
사내는 달력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달력에는 몇 가지 큼지막한 사건 사고를 주석으로 달아 두었다.
일어나지 않을 일을 적어두었으니 이것은 예언이었다. 하지만 그 일은 정말로 일어날 일이었다.
[내가 말하고 내가 이루면 그것도 예언일까? 흥, 자가실현적 예언이라고 하면 되겠군.]사내는 사람을 시켜 달력에 적힌 일을 실제로 행하였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달력이 적힌 일이 정말로 실현되면서, 그의 명성은 더욱 굳건해졌다.
달력을 판 돈은 고향의 저택 수십 채를 동시에 짓고도 남을 만큼 모였다, 사내는 거부가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권력자가 되었다.
그의 신묘한 예언을 듣고 국왕이 국정운영에 참여해 달라 부탁했다. 멍청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으나, 사내는 기꺼이 그 과업을 받았다. 그는 프랑스의 국왕 앙리 2세의 정책 자문 위원이 되었다.
힘, 권력을 모두 얻었다.
사내는 더 큰 권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책 한 권을 썼다.
모든 세기의 재앙의 예언을 담았다. 그리 과신하면서 수백 년의 재앙과 공포를 적은 책은 불티나게 팔렸다.
사내의 예언서는 모든 세기에 대한 기록이란 별명이 붙었다.
그 책의 이름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집. 예언집 가장 마지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1999의 해, 일곱 번째 달에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리라. 그의 이름은 앙골모아의 대마왕. 모든 것을 멸할 신이다.]승우가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미소를 지었다.
“노스트라다무스 씨. 어쩌다가 이세계 전송을 당하고, 거기서 사기와 기만의 신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앙골모아의 대마왕이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원.”
“내 책을 샀으면서도 믿지 않나?”
“1999년은 예전에 지났어.”
“단순한 오탈자야. 원본에는 작년의 시기로 적혀 있어. 내 예언집의 예언은 절대적이지.”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예언의 99.9%가 바넘 효과로 끼워 맞추기만 한 불쏘시개 소설이 무슨 예언서야.”
“좀 속아 넘어가 주면 안 되나?”
“속겠냐?”
모략가가 입맛을 다셨다.
그의 예언서는 그가 살아 있을 때는 돈을 쓰고 권력을 써서 강제로 예언이 이뤄지도록 한 책. 예언서라기보다는 범죄 예비 신고서에 가까운 책이었다.
아무리 봐도 예언서는 아니다. 하지만 우습게 보아서는 안 되는 책이다. 이 책은 그를 신으로 만들어 주었다.
수많은 지구인의 신앙, 음모론자의 찬양을 머금어 신력이 깃든 책. 이세계에 트립당해서 다 죽어가던 모략가에게 내려온 동아줄이다.
승우가 비난을 이었다.
“신력이 달달하니까 책도 쓰고 그런 거겠지. 하지만 예언이 맞았으면 예언의 신이었겠지. 틀리니까 사기와 기만의 신이 된 거 아니냐. 뻔뻔한 놈아.”
“제기랄, 귀여운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없군.”
“너 지금 나한테 앙골모아의 대마왕 구절을 끼워 맞추고 죽여서 신명 바꾸려고 그러는 거지?”
“아, 진짜… 힘 쎈 놈이 머리까지 좋으면 나보고 어쩌라고 이래.”
모략가, 아니, 노스트라다무스. 승우는 그의 목적을 단번에 꿰뚫어 보았다.
사기와 기만의 신명을 지우고 예언과 시간의 신명을 얻기 위한 음모. 간단하다면 간단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복잡하면서도 목적이 확실한 계획범죄다.
승우가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도 그렇지 요약하고 보니 너무 간략한걸.”
“진실이란 대부분 간략한 법이지.”
“그래. 그래, 그렇다 치자. 그러면 실행은 어떻게 할 생각이었어? 이 목적을 이루려면 일단 나를 죽여야 할 텐데, 각이 나와?”
지혜의 신 아테나조차도 승우 타도에는 답이 없다 했다. 전략의 신이나 모살의 신조차도 승우 타도는 불가능하다 단언했다.
만신전에 소속된 만신이 모여서 싸웠을 때도 승산이 높지 않다. 모든 신이 일치단결해서 싸워도 그럴 판에 과연 모략가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모략가가 웃었다.
“가능하니까 네 앞에 선 거 아니겠나.”
“기다리기 힘들어. 내 소중한 시간을 관심도 없는 너의 과거사를 생각하느라 낭비했다고. 나 빨리 끝내고 애들 밥 줘야 하니까 서둘러서 보여 주지 않을래?”
“급하기도 하셔라. 하지만 물론 보여 드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