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70)
괴식식당-570화(570/613)
570화. 최후의 날 (5)
세상에 절대적인 일은 없다지만, 그 절대에 가까운 것은 있다.
서약, 맹약으로 불리는 계약관계가 그러하다.
모략가가 복제 유승우에게 건 올가미는 보통의 올가미가 아니다.
복제라고 할지라도 유승우는 유승우. 자신보다 강해질 소질이 넘쳐흘러서 약간의 실전경험만 보충하면 급속도로 성장하는 괴물을 그냥 두고서야 어찌 모략가라 자칭할 수 있겠는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다. 모략가는 안전장치를 과하게 준비했다.
보통이라면 한 겹만 두르는 주종관계의 계약을 오십 종 이상 맺고, 후원을 통해서 육체의 지분 중 51%를 점하였으며 에메랄드 타블렛의 공증을 받아 정식 신도 계약을 체결하고, 심지어 차원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복제 유승우를 자신의 미니언, 일꾼으로 지정해 두기도 했다.
돌다리 수준이 아니라 합금강으로 다리를 만들고, 그것조차도 불안해서 수백 개의 지지대를 덧댄 모양이 된 게 바로 복제 유승우와 모략가가 맺은 계약이다.
모략가 본인이 사기와 기만의 신인만큼 법에 대해서는 통달했다. 사기 칠 때 가장 필요한 지식이 바로 법률 지식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이 계약은 법의 신이 직접 오더라도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빈틈없이, 꼼꼼하고 치밀하게 설계되었다.
그런데 그 계약이 끊어졌다.
복제 유승우에게 두 개의 힌트가 쥐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는 명정의 검. 기수식을 취하는 것으로 오만가지 사이한 잡귀, 잡령을 몰아내고 자신의 마음을 물처럼 정화하는 검술이다.
복제 유승우의 천재성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서 최소한으로 둔 정신 지배 마법이 명정의 검으로 해제되었다.
그 확률은 25%.
정신을 차리자마자 25%의 복제체가 적으로 돌변했다.
돌변하더라도 사실은 문제가 없어야 했다. 수백 개의 계약은 이러한 최악의 상황을 위해서 준비한 거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했다.
하지만 승우가 복제에게 쥐여 준 나머지 하나의 힌트가 최악이었다.
“더러운 소멸검!”
차원 법을 무시하고 존재하는 모든 걸 베어 버리는 최악의 검술을 복제 유승우가 보고 말았고, 체험하였으며 실현해 버렸다.
이건 모략가가 기대한 이상의 성능이었으나 소멸검의 복제는 분명한 이레귤러다.
수백 겹의 계약이라고 해도 소멸검으로는 벨 수 있다.
“이게 말이 돼?! 말이 되냐고!”
모략가로서는 분해서 눈물이 뚝뚝 흐를 지경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설계하고 치밀하게 준비하여 맺은 계약이다.
승우도 차원 법을 아는 만큼 법으로 공략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대비했는데 법률이 아니라 그냥 검으로 잘랐다.
승우 본인이 자른 것도 아니고 복제체 따위가 잘랐다. 억울하고 분해서 내장이 꼬인다.
오백 년 전 프랑스 살롱드프로방스에서 먹었던 연어 뭬니에르가 역류했다. 치밀어 오르는 토기를 누르고 적을 보았다.
만 명의 적. 십만에서 시작하여 사만 명으로 추려진 유승우 중에서도 계약을 해제하고 제정신을 찾고야 만, 만 명이 살기등등하게 검을 고쳐 쥐고 있다.
이 복제 유승우는 일대일로 모략가를 이길 기량이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죄다 10초면 모략가를 이길 만큼 강하다.
그렇게 일대일로도 지는 판에 일만 명이다. 승산 따윈 존재할 리가 없다.
모략가는 도망가기 위해서 게이트를 열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어차피 검신 앞에서 도주는 불가능하다. 이건 상식이다.
놈의 반사속도보다 빠르게 게이트를 만들 수 있다면 이 고생은 안 한다. 그리고 만들어 봐야 어차피 부서진다. 그러니 만들지도 않는 게 이득이다.
자, 그럼 어떻게 하지?
그냥 죽을까?
콱 혀 깨물고 죽어?
불합리할 정도의 폭력과 힘이 모략가를 향해 엄습해 왔다.
모략가가 결연하게 주먹을 쥐었다.
“이렇게 죽을 순 없지.”
준비한 카드가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이대로 죽으면 억울하다.
모략가는 아껴 둔 카드 중 하나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R.”
그가 작게 명령어를 속삭였다. 그러자 모략가의 주변으로 수천 개의 마법의 방진이 형성되었다. 승우의 눈이 조금 커졌다.
“룬의 방패?”
힘의 우르즈.
굳건함의 에이와즈.
보호의 알지즈.
마법의 언어로 방패를 만드는 주문. 방어마법 중에서는 당당하게 최상위에 위치한 초고급 마법이다.
빛나는 마법의 글자가 새하얗게 백열하며 맹렬하게 회전했다.
모략가를 뒤덮은 룬의 방패가 일만의 복제체가 내지른 소멸검을 받아내었다.
하나의 방어막이 하나의 소멸검을 받아 낸다. 아무리 복제의 소멸검이 승우의 것보다도 약하다고는 하지만 소멸검의 이치는 모든 걸 없애 버리는 것.
숫자로 미는 단순한 방어마법으로는 소멸검을 받아 낼 수 없다.
그런데도 저 룬의 방패는 소멸검을 받아내는 걸로 훌륭하게 가치를 다했다. 놀라운 일이다.
저런 방어마법은 승우조차도 쓸 줄 모른다. 룬의 방패 한 장 한 장이 마치 마법의 신이 직접 시연한 것마냥 찬란하다.
“마법의 신? 아니, 마법의 신은 없어. 공석인데, 누가 저런 마법을 쓰는 거지?”
모략가가 치밀어 오른 토기를 내뱉고 중지를 치켜들었다.
“안 가르쳐 줘.”
“지금까지 잘만 떠들던 놈이 조용해졌군.”
“그 점을 짚고 들어가면 내가 아프지. 이 밉살맞은 자식아. 이거나 처먹어라.”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 미세하고 얇은, 바늘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큼의 작은 구멍이다.
그 구멍으로부터 아무런 소리도 없이 무엇인가가 쇄도했다.
승우는 그게 아주 작은 침, 너무 작아서 머리카락의 백 분의 일도 안 되는 작은 것임을 알았다.
또한 하늘에 뚫린 구멍이 조 단위는 가볍게 넘음도 알았다.
“!”
침이 소리도 없이 쏟아졌다. 빠르고, 강하다. 하지만 승우는 그 침을 모두 받아 냈다.
방어 검술의 극의인 프로그람마는 몸에 방어의 정수를 새겨 넣은 것과 같아서 본인의 의사나 의도가 없더라도 자연스럽게 발동한다.
무수히 많은 침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나 복제체들은 그러지 못했다.
반은 저격에 반응조차 못 하고 죽었고, 그 남은 반의반은 반응은 하였으나 기량이 달려 막지 못했고, 남은 이는 막기는 하였으나 쏟아지는 침의 물량에 압도되어 죽고 말았다.
그 침은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보였으나 무차별하지 않았다.
아직 올가미를 풀지 못한 삼만의 복제 유승우에게는 털끝만큼도 타격이 없었다.
기도 안 차는 정밀 사격과 물량. 그리고 위력. 침 한 발 한 발에 담긴 힘이 엘더 드래곤도 절명시킬 수 있을 지경이다.
“누구냐…….”
누가 이렇게 위력적인 난사와 강력한 방어마법을 쓸 수 있는가.
승우의 눈이 하늘을 보았다.
붉은 하늘, 붉은 하늘의 저 멀리에는 검은 장막이 드리워져 있다. 그 탓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필경 모략가의 스킬이겠지. 이목을 숨기고, 정체를 은닉하는 종류의 것이리라. 그런데도 승우의 눈이 그 뒤를 향했다.
사기와 기만의 신 노스트라다무스가 사력을 다해 필사적으로 가리는 장막 저편의 누군가를 찾아냈다.
곧 승우의 검이 움직였다.
기만의 장막이 좌우로 갈라졌다.
모략가가 낮게 앓는 소리를 냈다.
“이래 봬도 최강기술인데, 그냥 자르기야?”
정말이지.
사기 치는 것도 정도가 있다.
* * *
강력하고 강력해서 모략이라는 걸 생각 못 하는 승우와는 다르게 노스트라다무스는 모략 하나로 살아왔다.
힘은 약하고 마력은 적다. 순발력은 떨어지고 가호도 없다.
그러니 준비하고 대비하는 자세는 기본. 하늘이 무너질까 두려워하고, 자신의 발언으로 생길 적이 언제 공격할지 모르니 매번 몸에는 비싼 방어 주문을 사다가 둘렀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자신을 모략가라 자칭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모략이 없으면 그는 맥없이 죽어 버리는 사기꾼에 불과하니까.
그런 모략가가 검신을 타도하겠다 외치면서 과연 불확실한 확률에만 의존할까? 99.9%라는 말은 0.1%로 실패한다는 뜻이며 그건 의외로 자주 발생한다는 뜻을 지닌다.
“뽑기 게임 십만 연차 달려 보고 폭사한 적 있어? 난 있는데.”
모략가가 위산 역류의 통증이 느껴지는 배를 문지르며 웃었다.
십만 유승우 양병 작전은 십만 번 연속으로 뽑기를 돌리면 하나쯤은 검신보다 강한 복제가 나올 거라는 기대하에 시작된 작전이다.
이건 성공확률은 높지만 무조건 성공하지는 않는다.
“세상에는 운 좋은 사람만 있지 않은 법이고, 나는 확실하게 말해서 운이 없는 사람이거든. 십만 번 질러서 UR 유승우가 안 뜰 수도 있단 말이야. 그러면 나 같이 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겠어? UR 확정 뽑기를 질러야지. 응. 제대로 된 게임이라면 반드시 확정 뽑기가 있게 마련 아니겠나!”
방법은 간단하다. 복제한 유승우 중에서 몇몇 유승우를 뽑아서 야생에 풀어 버리는 게 아니라, 아예 길을 터 주고 확실한 지원을 해 줘서 강자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밀어준다.
“보통 화신 밀어주기는 누구나 하잖아. 그걸 제대로 했을 뿐이야. 좋은 영약을 먹여서 기초 소질을 올려 주고, 좋은 장비를 내려 주고, 좋은 사냥터에 보내고, 좋은 스승을 붙여서 단련시키고. 확실하게 검신 타도를 위해서 필요한 요소요소의 기술을 습득시키는 거지.”
유승우의 재능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밀어주면 반드시 그 수백 배로 돌아온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밀어주면 된다. 일찍이 탐욕의 신이 볼코프라는 지구인을 밀어줘서 자신의 용사로 삼았듯이, 다른 신들이 화신을 키우듯이, 자신의 분신, 자식을 키우듯이 정성과 열, 사랑과 신력을 담아서 육성한다.
“이런 생각 안 해 봤어? 내가 검투장에서 처음으로 잡은 무기가 검이 아니라 창이었다면 어땠을까, 활이었으면 또 어땠을까. 검투장이 아니라 미치광이 매드사이언티스트에게 팔려 갔다면 어땠을까, 네크로맨서의 소굴에 끌려간 희생양이었으면 어쩌지? 용의 유희에 휘말려서 용의 기사가 되었다면 어떨까. 아니면 흡혈귀의 만찬에 끌려가는 제물이었으면 또 어땠을까. 운 좋게 공주의 하인이 되었다면 어떨까.”
인생의 방향은 무한하다. 사람이 어떻게 자랄지, 어떤 자극을 받을지, 어떤 선택을 할지의 가짓수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인생을 되감아서 다시 살아서 확인해 볼 수도 없으니 선택의 결과는 그야말로 미지수의 영역이다.
긴장감과 공포, 절박함 속에서 모략가가 불안을 지우기 위해서 연신 입을 놀렸다.
“여기에 그 결과물이 있습니다.”
모략가가 자신 있게 두 명의 화신을 소개했다.
“이쪽은 처음으로 잡은 무기가 ‘활’이었던 너다. 그리고 저쪽은 마법 대학의 교수가 자신의 시종으로 쓰려고 노예로 샀던 ‘마법사’인 너다. 둘 다 각각 활의 신명과 저격, 그리고 난사의 신명. 마법의 신명과 방진. 그리고 증폭의 신명을 얻을 만큼 성장했지. 아, 정식 취득은 안 했어. 해 봐야 네게 관측만 될 테니까 일부러 미뤘지. 3, 2, 1. 짠.”
그가 손을 다 접으니 에메랄드 타블렛에 반응이 있었다. 과연 새롭게 활과 저격, 난사의 신 유승우와 마법과 방진, 증폭의 신 유승우가 기록되었다.
과장된 퍼포먼스였으나 긴장으로 떨리는 손은 숨길 수 없다. 모략가가 애써 떨리는 손을 뒤로 하고 과장되게 웃었다.
“어때 내 비장의 카드인 UR 확정 뽑기가?”
모략가는 이 비장의 카드가 제대로 먹힐 거라 확신했다.
검신에게 십만 명의 복체제를 투자하여 얻을 수 있는 재능은 오로지 검의 재능뿐이다.
전쟁에서 군사의 병종은 다양한 편이 이롭다. 검사 십만 명보다 검사 오만 명과 궁병 오만 병이 훨씬 효율적이다.
이 두 명의 유승우는 각각 활과 마법의 전문가다.
이 둘이 들어가면 전술, 전략의 폭이 아예 달라진다.
이 둘이 살아남은 삼만의 복제 유승우와 협동한다면 분명히 승산이 있다.
아니, 무조건 이긴다.
삼만 중에 하나가 검신의 영역에 닿을 테니까!
어떠냐, 어떠냐.
놀랐지? 무섭지?
조금은 위축되겠지?
모략가가 조마조마하게 승우를 보았다. 그리고 인상을 찡그렸다.
그가 본 승우는 웃고 있었다.
지금껏 본 적이 없던 정도로 환하게, 그리고 무서운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