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71)
괴식식당-571화(571/613)
571화. 비겁 (1)
승우는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적은 강하다. 자신이 무엇을 하든 흉내 낼 수 있고, 계속해서 강해진다. 무수히 많은 끝없이 강해지는 적.
그것의 의미는 하나였다.
“싸워도 되는 거지?”
인간이 햄스터에게 물렸다고 햄스터를 모조리 찢어 죽여 버리면 그것은 싸움인가? 싸움이란 대등한 적이 있어야 성립한다. 압도적인 무력을 갖춘 채로 싸우는 것은 싸움이 아니다. 일방적인 폭력이고 괴롭힘이다. 피해야 하고 꺼려야 할 악덕이다. 그러니까 승우는 싸울 수가 없었다.
승우는 최근 상당한 무력감에 빠져 있었다. 테오의 설득으로 어쩔 수 없이 싸워서 반검신 연합이라는 수많은 신을 도륙한 것이 원인이다. 그것은 싸움도 뭣도 아니었다. 학살이고 살육이고, 도륙이었다. 도를 넘은 힘은 비겁하다. 승우의 힘은 비겁 그 자체였다.
그러니 싸우고 난 후에는 막대한 탈력감이 몰려왔다. 다시는 싸우고 싶지 않을 정도의 무력감도 찾아왔다.
검사가 단지 검을 들고 자신을 적대하는 적에게 검을 겨눈다. 그것만으로 비겁이라니. 검사에게 있어서 이보다 불합리한 상황이 있을까. 이보다도 울분이 터지는 일이 있을까. 무엇을 위해서 수행한 검이고, 무엇을 위해서 단련한 검인가.
이세계에게 떨어져 검투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도덕 교사가 수행한 검은 이제 겨눌 곳이 없었다. 애초에 살기 위해 익힌 검이다. 싸울 적이 없다면 순순히 검을 내려놓고, 은퇴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대로 요리사로서 사는 것도 좋지. 아이들을 위한 맛있는 것, 사람들을 위한 괴식을 만들면서 검사로서 살지 않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승우는 반쯤 체념하고 마음의 검을 내려놓았던 차였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 적이 나타났다.
주어진 것은 싸울 명분. 그리고 부서지지도 않으며 계속해서 강해지는 적이다.
“하……. 하하하-!”
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승우는 웃었다.
* * *
마법과 방진, 증폭의 신. 그의 신명 중 마법의 신명은 마법 전체를 아우르는 신명이고, 방진의 신명은 수호의 뜻을 지닌 마법의 방위진을 그려 그 완성도가 제일간다는 이유로 얻은 신명이다.
인간이 치는 최악의 자연재해는 태풍과 폭풍, 홍수와 해일이다. 하지만 신이 꼽는 최악의 자연재해는 단연 행성 충돌이다. 행성과 행성이 마주치며 폭발하는 위력은 감히 태풍과 폭풍 따위가 범접할 수 없으리만큼 위력적이다.
그래서 미티어, 노바 같은 각 학파의 최상위 공격 마법은 그 자연재해를 다시 일으키는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즉, 최강의 공격 마법이 행성 충돌이라면 최강의 방어 마법이란 행성 충돌을 막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여기 존재하는 마법과 방진, 증폭의 신 유승우는 행성과 행성을 충돌시키는 그 여파를 고작 하나의 방진을 증폭하여 완전히 막았다는 위업을 인정받아 신명을 얻었다.
그런 그가 사력을 다해서 온 힘을 쥐어짜서 한 번의 검격을 막았다.
“과연 앙골모아의 대마왕-! 상정 이상의 힘이구나.”
광소를 흘리면서 내지른 검격 한 번에 수만 장의 방진이 깨졌다. 한 장의 방진으로 행성 충돌 한 번을 막을 수 있는 방진이었는데도, 수만 장이 동시에 사라졌다. 방진 한 장 한 장이 깨지면서 생기는 충격파만으로도 태산이 뒤집히고 공기가 역류하여 계층이 부서진다. 검격이 아니라 충격파조차도 직격이었다면 지금 저것만으로 여기의 모두가 죽었다.
“이게 그냥 검격이란 말이지. 기술도 뭣도 아니고 그냥 내지른 베기.”
같은 유승우니까 알 수 있다.
저 녀석은 지금 놀고 있다.
새로 얻은 장난감이 어디까지 해도 안 부서지나 확인하듯이 천천히 계단을 올린다. 적도 같은 유승우니까 그 지략과 전략, 혜안은 그대로 있을 터. 검신이 반드시 이기는, 필승의 방법은 막지도 피하지도 못할 최대 최강의 공격을 한 번에 퍼부어서 성장하기도 전에 죽여 버리는 것이다. 근데 그걸 알고 있을 텐데도 하지 않고 있다. 이게 노는 게 아니라면 무엇인가.
성장할 수 있다면 해 보라는 느낌이 강하다. 기어를 1단부터 차근차근 올려 주는 상냥한 공격이다. 놈은 지금 성장하라면서 가르침을 내려 주는 중이다.
“문제는 그 상냥한 공격에 진짜로 다 죽을 뻔했다는 거겠지……. 마스터!”
마법의 신이 소리치자 모략가가 얼빠진 얼굴로 돌아보았다. 방금은 진짜 목덜미까지 죽음이 쓸고 지나갔다. 얼이 빠진 모양이다. 어쩔 수 없지, 이 사람은 전투에 걸맞은 사람이 아니다. 마법의 신이 다시금 말했다.
“가세요. 여긴 저희가 해 보겠습니다. 마스터는 마스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세요.”
“그, 그래!”
검격의 정중앙에 있었던 모략가는 자신이 이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자신이 있어 봐야 보호용 방진이 몇 장 더 필요할 뿐이다. 검신 앞에서 도주란 의미가 없다는 걸 알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는 지금 기뻐하고 있다. 지평선까지 늘어선 많은 장난감을 선물받은 아이처럼 기뻐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모략가 한 명의 이탈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겠지. 모략가가 서둘러 게이트를 열고 빠져나가자, 그것을 가리려는 듯 궁신이 화살을 발사했다.
수억 개의 화살이 유성처럼 뻗어 나와 시야를 가렸다. 그 유성은 한 번의 태풍이 불고 깔끔하게 지워졌다. 궁신은 그게 그저 검신이 올려 벤 것이고, 궤적에 불과함을 알았다.
한 번의 내려 베기로 마법의 신이 혼비백산할 만큼의 공격을 하고, 한 번의 올려 베기로 화살을 막았다. 내려 베고, 올려 벤다. 검사라면 기초적으로 익히는 공방이다. 그렇다면?
“온다!”
이건 아직 연속 동작의 일부다.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올려 벤 후에는 많은 파생이 있다. 자세를 고치고 횡 베기, 종 베기, 혹은 다시 내려 베기. 하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찌르기가 온다. 전원이 유승우이기에 취향은 같다. 올려 벤 후에 찌른다는 행위 자체의 매력을 안다.
찌르기라면 베기와는 궤적이 다르다. 베기가 면이라면 찌르기는 점이다. 점이기에 위력이 몇 배는 강하고 범위는 좁다. 하지만 검신의 베기 범위는 기초적으로 행성 단위다. 찌르기가 되어 협소해졌다고 해도 그 범위는 이미 행성을 가로지른다. 거기에 위력이 몇 배나 오른다면 어떻게 될까?
“못 막아…….”
단순 베기만으로도 수만 장의 방진이 파괴된다. 마법의 신은 지금까지의 방진이라면 절대 막을 수 없음을 직감했고, 수많은 검신의 복제체는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저 찌르기에 버틸 재간이 없다는 걸 예측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적은 하나, 우리는 집단이다.
만이 넘는 유승우는 의식을 하나로 모았다. 힘을 힘으로 억누르는 건 강자의 이치다. 약자의 이치는 가진 몇 안 되는 장점을 모아 강자의 장점을 누르는 것이다. 이쪽의 유리함은 오로지 숫자. 그렇다면 자잘한 검격을 모아 궤도를 비틀자. 만 명의 의식이 하나가 되어 공간을 으깨면서 나가는 섬광에 대응했다.
불가능하다.
막을 수 없다.
최소한의 힘만으로 상대방의 힘을 이용하여 억누른다.
이치는 알았고, 천재적인 오성으로 이해함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만 명이 모여서도 그 최소한의 힘이 충족되지 않는다.
상대의 힘을 이용하기 위한 최소한의 힘조차 모을 수 없을 만큼 힘의 차이가 압도적이다. 이대로 죽는가, 복제체에게 절망이 깃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하늘에서 별빛처럼 반짝이는 무수한 화살이 그들의 부족한 완력을 보충해 주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찌르기 궤적을 비틀어 하늘로 향하게 하였다. 찌르기 궤적은 하늘을 가르고 일직선으로 모든 걸 꿰뚫으며 나아갔다. 하지만 그 일직선에 아군은 없었다. 피해는 없다. 하지만 기쁨도 없다.
찌른 후에는 검을 거둔다. 거둔 후에는 다시 자세를 잡는다.
이 모든 공격은 검신이 펼치는 연속 동작의 일부에 불과했으니, 기뻐할 여유는 없었다.
무심코 궁신이 탄식했다.
“마스터는 저걸 어떻게 이긴다고 하신 건가. 승리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허용되긴 한 건가?”
그만큼 검신은 절망적으로 강했다. 그러나 희망은 여전히 있었다. 세 번의 공격을 버티고 살아남은 복제체들이 눈에 띄게 실력을 올렸다. 이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살아남기만 하면 우리는 강해진다. 버틴다면 승기는 이쪽으로 향하게 되어있다.
마법의 신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우리의 희망은 우리가 앙골모아의 대마왕과 같은 재능을 가진 것뿐이군.”
“다행히 작은 희망은 아니잖아.”
“확실히…….”
마법의 신과 궁신은 시간 흐름이 다른 차원에서 수백 년 이상 수련과 싸움을 반복했다. 그 수백의 세월보다도 지금 여기서 보낸 1초가 값지다. 보통이라면 버러지처럼 죽어 버렸을 이런 환경에서도 버티고, 적응하여 격을 올릴 수 있는 것. 이게 바로 재능이고, 이런 재능이 있다면 분명 작은 희망은 아니겠지. 용기를 모아 마법의 신과 궁신이 검신이 펼치는 다음 기술에 항거를 시작했다.
검신이 낮게 웃었다.
“이번엔 조금 세게 간다.”
지금까지의 기본기를 버틴 걸 칭찬하듯이 승우의 검이 움직였다. 수많은 찌르기 중 최고, 최강의 검술. 검성기인 뇌광 찌르기가 모습을 보였다. 마법의 신과 궁신. 그리고 복제체는 비명을 질렀다.
* * *
검신 타도라는 불가능한 목표를 이루는 방법은 수많은 필승의 전략을 켜켜이 쌓아 올리고, 겹치고 누적시켜 조금씩 승산을 올리는 일이다. 모략가는 자신이 준비한 수많은 모략이 조금이나마 통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이제 첫 단추는 성공했군.”
모략가가 계획을 세우면서 가장 걱정했던 일은 유승우가 문답무용으로 모략가의 목을 취하는 때였다. 이렇게 되면 복제체가 십 만이건 백 만이건, 신명 세 개짜리 성공작이 백이든 못 막는다.
모략가는 죽고 쌓아 올린 계획은 허무하게 흩어진다. 그래서 모략가는 처절할 정도로 입을 놀려서 승우의 흥미를 끌었다.
“지존은 고독한 법이라지. 놈의 고독을 이용해서 지팡구에 몰아넣는 데 성공했어.”
모략가가 지팡구를 무대로 삼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철저하게 계산된 포석이었다. 유승우가 도착하기 직전, 지팡구는 멸망했고 그 세계는 차원 법의 관리 체계에서 벗어났다. 벗어났다는 말은 곧 시간의 흐름이 다르게 됐다는 의미다.
지팡구와 지구의 시간 축은 이제 다르다. 대다수 하위 차원의 시간은 차원 법의 시간보다 빠르게 흐른다. 저쪽에서의 1년이 이쪽에서 1초일 수도 있고, 1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팡구의 시간은 역으로 느리게 흐른다. 그렇게 되도록 모략가가 손을 썼다.
“신력이면 안 되는 게 없지.”
로비(Lobby). 모략가는 미리 법의 신을 비롯하여 차원 법 관리자에게 막대한 신력을 선물하고 설득하여 지팡구의 시간이 역으로 느리게 흐르도록 만들었다. 그러니 이제 지팡구의 일은 아주 천천히 흐른다.
“재앙의 괴물을 봉인했으니 그 봉인이 열리기 전에 다음의 단추를 끼워야겠지.”
모략가가 지구를 내려다보았다. 물의 행성에 사는 인구 40억의 지구인들은 하나하나가 탁월한 재능을 품은 자원의 보고다. 어찌나 이들의 성능이 빼어난지 지구인 한 명의 숭배로 다른 차원의 생명체 백 명의 효율을 낼 수도 있다.
이 지구의 주신은 현재 공석. 하지만 본인이 원하지 않아서였을 뿐, 괴식교를 믿는 사람이 10억을 넘은 시점에서 주신은 검신이 맞았다.
진정으로 숭배하지 않고 흥미 본위로, 재미로 숭배하는 사람이 아주 많이 포함된 숫자였으나 지구인의 신력은 다른 신력보다도 탁월하다. 10억이면 다른 차원의 주신이 버는 신력의 수백 배는 벌고 있을 것이다.
모략가가 진정으로 검신을 이기기 위해서는 우선 신력의 보급을 차단해야 했다. 그러니 그 과정에 지구 정복이 포함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스텝 2. 적의 보급을 차단하라.”
모략가는 준비해 둔 유승우의 복제체 백오십 명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