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84)
괴식식당-584화(584/613)
584화. 먹어 (4)
모략가는 자신의 착각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백강혁의 음식은 탈출의 기회가 아니었다.
기회는커녕 고문의 수단이 늘어난 것에 불과하다.
인스턴트 짜장 라면에 서린 몰락의 기운은 그의 영혼을 더럽히고 정신을 파괴하고 있다.
민의 난도질은 차라리 귀엽다. 육신의 한계를 넘지 못한 자는 신의 이름을 자칭할 자격이 없다. 하지만 정신의 고문, 영혼의 고문은 신조차도 버텨내기 버겁다.
[끄아아아아악–!]감미롭게 울려 퍼지는 모략가의 통곡이 민의 가슴속의 몽우리를 살살 풀어 준다.
단순한 고문으로는 채워지지 않았던 2%의 갈증이 채워진다.
설움, 분노, 억울함이 보상받는 기분마저도 든다. 민은 감탄했다.
[저놈에게 저런 재주가 있었을 줄이야.]백강혁은 요리치다.
요리를 못한다.
백강혁은 재주가 없다.
신력 통제조차도 못한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놈은 악식의 천재다.
악식은 민도 못 만든다.
[지렁이도 꿈틀하는 재주가 있다더니 저놈이 악식의 천재라니.]민은 백강혁과는 다르게 괴식 스킬이 있다. 타고난 센스로 어마어마한 속도로 습득했다.
그리고 그 센스는 전방위에 걸쳐 있던 지라, 신이 되자마자 1초가 되지 않아 신력 제어법을 숙달하였고 그 신력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
재능, 대가를 지불하여 막대한 힘을 얻는 기아스는 제법 섬세하고 어려운 주술이다.
그걸 아무런 힌트도 없이 자력으로 깨달아 신명 두 개의 신인 모략가를 압도하였으니 민은 분명한 천재다.
그러나 그런 민이라고 할지라도 백강혁의 악식은 못 만든다.
천부적인 신력의 몰락 속성과 그 완급조절, 행운과 불운이 기묘하게 섞여 절묘하게 모략가를 조지는 저것은 그야말로 재능이다.
[주유와 살리에르의 기분을 알겠군. 이런 것이었나.]하늘은 왜 제갈량을 내려 주시고, 이 주유를 내려 주셨나.
하늘은 왜 모차르트를 내려 주시고, 이 살리에르를 내려 주셨나.
2인자의 기분을 알겠다.
[뭐, 실제로 살리에르는 그딴 말 한 적 없지만, 어쨌든 기분만은 이해되네. 나는 어떻게 발버둥 쳐도 저런 악식을 만들 수 없겠지.]요리로 모략가를 괴롭힌다니, 이 얼마나 참신하고 멋진 발상인가. 민은 수치심을 느꼈다.
자신을 보라.
분노에 미쳐서 살육과 고문을 자행했다. 그가 선생님, 유승우에게 받은 화신의 자리는 괴식의 자리다.
괴식을 만드는 자가 고문을 해 버렸다. 그에 반해서 승리의 자리를 받은 백강혁은 어떤가, 악식을 통해서 적의 영혼을 파괴하고 죄값을 강제로 추징하고 있다.
선생님이 보셨다면 당연히 백강혁의 방식이 훨씬 더 우아하고 고상하며 괴식의 신을 추종하는 자. 화신다운 해결책이라 흡족해하셨겠지. 부끄러움에 얼굴을 파묻고 싶으나 몸이 아직 반응하지 않았다.
[이 어찌 부끄러운 일인가. 으으으으, 선생님을 볼 면목이 없군.] [그, 아, 아아아아악-!]모략가의 통곡이 다시금 울린다. 초 하이옥타브, 소프라노 가수보다 수십 옥타브가 높은 영혼의 절규. 성대를 통해서는 나올 수 없는 초고음역대의 비명은 부끄러움의 구렁텅이에서 영혼을 굴리던 민의 정신을 깨웠다.
[어쨌든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해. 부끄러움 해소도, 속죄도 그 후의 일이다.]기아스를 풀고 자동고문 인형이 된 육체를 되찾아야 한다. 왜냐면 저건 백강혁이기 때문이다.
[놈이 적으로 돌변할지도 몰라.]지금은 요리를 연구한다, 연습한다는 취지에서 저 미친 악식. 몰락식(沒落食)이라 불러도 좋을 요리를 모략가에게 먹이고 있다.
하지만 민은 백강혁을 잘 안다. 저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돌변하더니만 ‘이번엔 그럭저럭 잘 된 거 같아!’라고 지껄이고는 민의 입에 억지로 몰락식을 처먹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흐아아아아가가가가가각-!] [그래. 저 꼴 되는 거지.]쇠약해진 육체와 정신이다. 몰락식을 먹었다가는 진짜 뒤지는 수가 있다. 위기감이 엉덩이 언저리와 하단전을 쿡쿡 찌른다.
마치 드래곤의 아가리가 눈앞에 있는 듯한 공포감!
아니, 단순히 억측만은 아니었다. 몰락 시발 드래곤의 아가리가 코앞에 있다. 이건 정말이지 질 나쁜 악몽이다. 탈출해야 한다.
[후우우우우.] [흥그으아악으아각아가가각-!!]민은 모략가의 비명을 BGM 삼아 정신을 집중하며 차근차근 신력 구조의 해명과 기아스의 해주법을 명상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민의 귓가에 다시금 백강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라이 씨발. 인스턴트 라면도 실패하는데 뭘 만들라는 거야! 이렇게 된 이상 그냥 작정하고 맛없게 만들어 볼까! 신력 팍팍 넣어서? 좋아. 하자! 아주 작정하고 존나게 맛없게 만들어 보자! 물 대신에 코코넛 워터! 새콤달콤한 타르타르 소스를 고추장처럼 풀어서 넣고, 우동 사리 넣고 푹 고아서 끓인 거 위에 추어탕도 뿌리고, 신력도 MSG도 마구 때려 부어 버리는 거야! 소년이여! 실패를 두려워 말라! 성공은 언제나 실패의 뒷면에 있다! 좋아써! 삘이 온다! 성공하려고 하다 보면 실패하지만, 실패하려고 작정하다 보면 성공할 수도 있다는 거 아냐! 역배팅 가즈아아아아!”
[그, 그만둬어어어어어어!?!? 꺄아아아아아아악-!]“…….”
이 새끼가 여기서까지 역배팅을?
민의 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몰락 시발 드래곤의 아가리가 더욱 뚜렷하게 보인다.
시간이, 시간이, 시간이 부족하다.
* * *
모략가가 백강혁의 몰락식에 고통받고, 민이 공포에 떨며 기아스의 해주에 몰두할 무렵. 지구에서는 1시간 정도가 흘렀다.
1시간, 버섯 파이브 한 사이클이 돌고 조금의 여분이 남는 시간.
여전히 전장의 주역은 육식합체를 이룬 페넥스였다.
“무겁습니다. 무거워요! 이건 정말 무겁다고요!”
버섯을 디룩디룩 처먹고 살을 찌운 버섯 파이브의 평균 무게는 100㎏가 조금 넘는다.
헌터는 본래 일반인보다도 과체중이다. 근육은 지방보다도 무겁고, 마나를 흡수하여 조직이 형성된 근육은 더더욱 무겁다.
보기에는 평범한 키에 탄탄한 육체를 지닌 버섯 파이브였으나 보기보다도 무겁다는 뜻이다.
그런 놈들 다섯을 몸에 짊어지고 있다.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냥 무거운 게 아니라, 마나가 무겁네요. 너무나도……!”
페넥스는 역대 악마왕 중에서는 제일 약한 악마왕이었으나 어쨌든 악마왕은 악마왕이다.
신체에 500㎏이 더해진다고 해도 거동에 불편은 없다. 하지만 마나라는 놈은 자기주장이 강하다.
자신이 아닌 남을 배척하려는 기질이 더 강하다. 놀랍게도 이 빌어먹을 버섯 파이브라는 놈은 같은 버섯 파이브를 적보다도 적대하는 마나 성질이 있다.
[아마도 저놈이 죽으면 자기가 더 먹을 수 있다. 경쟁자는 없는 게 좋다… 라는 놈들의 이기심이 발현한 것이겠지.]“협동성이라고는 조금도 없군요! 버섯 파이브라는 그룹명이 울겠습니다.”
[저놈들을 상대하는 제일 쉬운 방법은 저놈들 중앙에 버섯을 던지는 거니까 말이야.]“덕분에 마나반작용으로 무거워 죽겠어요!”
시라노의 설명을 들으면서 페넥스는 양팔과 다리를 벌려 날아가 한 마리의 마수를 산산조각으로 파괴했다.
“크악-!”
폭발 사산! 마수가 폭발한다. 거동이 힘든 탓에 페넥스가 평소 자랑하는 복잡한 동작, 아크로바틱한 액션은 불가능하다.
몸통 박치기, 팔다리 조금 흔들기가 할 수 있는 공격 수단의 전부였다만 강하다. 미치도록 강하다.
“알로케스조차도 한 방인가요. 이리저리 쓰레기 같은 인간님들이지만, 성능은 확실하군요.”
방금의 몸통 박치기에 당해 일격에 죽은 마수는 전사공 알로케스의 본신이다.
지옥의 사자, 복수의 전사라고 불리는 무투파 악마 중의 악마. 페넥스와 일대일도 가능한 강력한 악마였는데도 일격이다.
허니스시를 도포한 버섯 파이브는 완벽한 대(對)악마 필살 공격과 무적 방어력을 갖춘 최강의 무기이자 방어구다. 악마라면 만 마리가 덤벼도 지지 않겠구나.
둔하지만 강하다.
페넥스가 떠올린 것은 한 신이었다.
악마를 굴복시키는 신 명왕(明王)이라는 자가 있다.
데바 차원의 신인 그는 쉽사리 움직이지 않기에 부동(不動)의 신명을 가졌고, 그런 탓에 부동명왕이라 불린다. 페넥스는 그 부동명왕이 현신한 듯 악마를 물리쳤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부동명왕. 아니, 육신합체 악마왕 페넥스. 그의 비행 궤적을 따라 악마들이 사라진다.
시라노는 그것을 스크린을 확인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잘 풀리고 있는데 왜 찌푸리는 것인가.
이정훈이 물었다.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응. 너무 수월해.”
“수월하면 좋은 거 아닙니까?”
“수월하면 좋지 않지. 전쟁이라는 건 박수와 마찬가지야. 이쪽에서 힘을 주고 치면 저쪽에서 힘을 주고 쳐. 그래서 박수 소리가 나듯이 전쟁이 이뤄져야 해. 하지만 지금은 어떻지?”
이정훈은 고개를 돌려 스크린을 보았다.
스크린에 전사자와 부상자.
사살한 악마의 숫자가 표시되고 있다.
전사자의 숫자는 기적의 지휘관이라는 명성답게 카운트 0에서 정지 중. 부상자는 상당히 많이 누적되었으나 카운트되는 속도가 점차 느려지고 있다.
그렇지만 퇴치한 악마의 숫자는 엄청난 속도로 빨라지고 있다.
“누가 보아도 압승이네요.”
“응.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거야. 적이 아무것도 안 하는 거잖아. 이쪽이 내놓은 육신합체 허니 페넥스라는 행동에 적은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어. 정상은 아니지.”
“그저 대응할 방도가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놈에게 주혁진이 털린다고? 그럴 리가 있나.”
모략가라는 놈은 주혁진에게 테서렉트를 털어간 놈이다. 시라노는 주혁진이라는 놈이 한 방 먹는 걸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그 괴물에게 한 방 먹인 놈의 저력이 이게 끝이라고 말도 안 돼. 뭔가가 더 있어.”
“군사교범에서 말하길 보이지 않는 미지의 적을 상상하며 적을 강하다고 여기며 존재감을 부풀리는 일은 금물이라 했습니다만.”
“내가 쓴 군사교범으로 나를 훈계하다니, A섹터 지부장은 제법 위트가 있네.”
시라노가 쓰게 웃었다. 이정훈의 말도 나름 정론이었다. 정론일 수밖에 없지. 내가 쓴 책이니까.
그러나 시라노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이번엔 아스모데우스와 혈투 중인 윤은형을 보았다.
“저쪽은 나름 잘 싸우는군. 밀리고 있지만, 젊음과 재능이 좋아.”
악마화를 하지 않고서 1시간이나 싸움을 지속하고 있다.
데빌 트리거를 당겨 악마화를 시작하면 윤은형은 백 배나 강해진다. 그걸 이용해서 윤은형은 적을 단번에 제압할 기회를 노리고 있고, 아스모데우스는 그런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 힘을 제한하고 싸우고 있다.
제한하고 싸우고 있다는 뜻은 윤은형이 아스모데우스의 검을 배우고 파악할 시간을 준다는 뜻.
저 젊은 천재는 싸울수록 강해진다. 이런 모습이 된 시점에서 아스모데우스의 패배는 기정사실이다. 그러니 저놈은 모략가가 숨겨둔 패가 아니겠지.
“흠…….”
시라노가 잠자코 적의 동선을 분석해 보았다.
상공에 만들어진 게이트로부터 쏟아지는 악마들은 일차적으로 페넥스에게 걸러지고, 이차적으로는 워기어 팀에게 걸러진다.
그러고도 살아남은 악마는 지상에 착륙한다만 거기서 기다리는 길드 하청 헌터와 수도방위사령부의 군인들에게 제압된다.
‘역시 길드 하청 헌터와 수도방위사령부의 군인이 구멍이야.’
저들은 악마를 일소할 수가 없다. 약하기 때문이다.
상공에서는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악마였으나 지상에 착륙하면 하나의 악마를 상대하는데 오십 명 이상이 달라붙어야 하고 그나마도 소멸시키는데 20분이 넘게 걸린다.
하지만 저게 정상이니 탓할 수 없지. 시라노는 살아남은 악마들의 동선을 정교하게 살펴보았다.
저 악마들은 무엇을 목표로 움직일까. 지휘통제실의 제압인가? 민간인 피해인가.
종잡을 수가 없군.
그가 문뜩 이상함을 알았다.
“지상에 착륙한 악마의 종류를 따로 표시해 주게.”
“예.”
권능하가 대꾸하니 스크린에 새로운 데이터가 떠올랐다. 지상의 착륙한 악마의 종류는 사령사 계통의 악마와 마견 계통의 악마가 3:7의 비율이었다.
“잠깐, 사령사?”
시라노의 시선이 A섹터의 지도를 보았다. 그러다가 그의 뇌리에 벼락처럼 답이 떠올랐다.
빛나는 길, 샤이닝 로드가 그에게 길을 보여 주었다.
“알았다. 저들의 행선지.”
시체를 부리는 사령사가 쓰기 제일 좋은 무기는 당연히 시체다.
시라노의 손이 지도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현충원이다.”
현충원에는 많은 호국영웅이 묻혀 있다. 그러니 현충원은 한국인에게는 영웅을 모신 묘지였으나 사령사에게는 무기고였다.
“저기로 대응할 헌터를 보내.”
“더 이상 퍼스트오더급은 없습니다만.”
“없기는 뭐가 없어. 저기 있잖아.”
시라노가 턱 끝으로 한 여성을 가리켰다. 그 여성은.
“예? 저요?”
자랑스러운 K 토르.
황지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