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85)
괴식식당-585화(585/613)
585화. K 토르 (1)
그토록 거절하고 싶은 퍼스트 오더 코트가 살랑거린다.
이정훈이 소매를 흔들면서 황지현에게 보여 주고 있다.
절대로 입고 싶지 않은 코트, 힘과 권력의 상징인 동시에 맷돌에 갈리는 콩알의 상징인 코트다.
저걸 입으면 뒤질 때까지 갈갈 갈리며 공익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올 게 왔다.
피하려고 했던 재앙이 찾아왔다.
황지현이 눈을 질끈 감았다.
‘거절할 명분이 없어!’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피해 왔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정말로 거절할 명분이 없다. 사람들이 사방에서 이렇게 대응하고 발바닥에 땀나게 뛰어다니는데 황지현이 거부할 도리가 있나.
염치가 있고, 생각이 있고,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와중에 어찌 거부할까.
이정훈이 말했다.
“이번 한 번만 입어 주게.”
“한 번이 두 번 되고, 세 번 되고 그러다가 퍼스트 오더 붙박이 되는 거 제가 모를 거 같아요?”
“하하하하하하. 그건 나중 일이지. 거, 진작 입었으면 좀 좋나.”
“미워요. 진짜…….”
이정훈이 건넨 코트를 입고, 황지현이 눈을 찌푸렸다.
핏이 딱 맞는다.
그녀를 위해서 세팅된 퍼스트 오더 코트가 맞았다.
“퍼스트 오더는 백 번까지 항상 꽉 차 있어서 여분의 코트가 없는 걸로 알았는데요.”
퉁명스러운 그녀의 말에 대꾸한 것은 시라노였다.
“퍼스트 오더 코트는 상위 열세 명이 입는 코트만 드래곤 스킨을 쓴 진품이고, 나머지는 복제해서 만든 공장제 짝퉁이거든. 그런 짝퉁은 대충 육백 벌쯤 있던가?”
“육백 벌이나 있으면 시중에 좀 풀어요! 짝퉁이라고 해도 이거 성능 좋은 방탄 코트잖아요.”
“시중에 풀기에는 너무 귀한 놈이시라, 전략 자원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풀긴 풀어. 코트가 아니라 속옷의 형태로 가공해서 각국의 VVIP에게 보급하고 그러지. 뭐, 일반적인 사람은 모르는 일이니까 당연히 자네도 모르겠다만, 아무튼 코트가 잘 어울리는군.”
사무직답게 안에 입은 게 평범한 정장이라는 게 문제였다만, 검은 코트를 걸친 황지현은 확실히 잘 어울렸다.
분위기 파악도 못 하고 권능하가 박수쳤다.
“선배, 진짜 잘 어울려요.”
“너 나 먹이는 거지? 응?”
“아뇨. 진심이에요. 너무 진심이지요. 핫핫핫.”
권능하가 사무직으로 출세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었던 황지현이 현장으로 가 버렸다.
그렇다면 내 출셋길이 활짝 열렸구나, 권능하가 진심으로 기뻐하자 황지현은 번개의 출력이 오르는 걸 느꼈다. 빡쳤다는 의미다.
그러고 있으니 시라노도 아주 기뻐했다.
“훌륭한 전투력이야. 좋았어, 어서 현충원으로 향하게. 놈들에게 번개 맛 좀 보여 주라고.”
“잠깐만요. 혼자 가요?”
“가고 있으면 알아서 지원군을 붙여 줄 거야. 믿음을 가지고 움직이게. 나 시라노야, 시라노. 기적의 지휘관이라고. 어련히 잘하겠지?”
반박할 말도 없다. 황지현이 어깨를 늘어트리고는 목에 걸고 있던 수면 양말을 벗어서 권능하에게 걸어 주었다. 수면 양말에는 골골거리며 잠든 티거가 있다.
“배고파하면 내 서랍 첫 번째에 있는 밥을 주면 돼.”
“옙. 다녀오세요!”
“그래.”
“아, 선배. 은근슬쩍, 그냥 엘리베이터를 타시네. 출격용으로 가요.”
“칫…….”
황지현이 투덜거리며 출격용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출격용 엘리베이터는 보통의 엘리베이터와는 구조가 다르다.
‘내가 이걸 타게 될 줄이야.’
이건 지하의 지휘통제실에서 원하는 좌표까지 단숨에 날려 버리는 사출장치다.
정식 명칭은 시에라 슈터 Mk 9.
재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없던 장치였는데, 고래 설득 작전 당시에 백강혁을 대기권에 사출하는 데 한 번 써먹고 그 유용성이 입증된 후에 안전성을 보강하여 설치했다.
‘설치 신청서와 안정 검증 서류를 내가 검토해서 대머리 꼰대에게 제출했으니, 잘 알지. 흑흑. 내가 내 무덤을 팠어.’
버튼을 누르자 문이 열리고 황지현을 장전했다. 권능하가 즐겁게 좌표를 잡아 주었다.
좌표는 현충원, 눈앞에 문자가 떠오르고 곧 그녀가 발사되었다.
“으으으으으으–!”
하늘을 날며 황지현이 흐느꼈다. 사람은 꿈을 꿀 때 가끔 하늘을 나는 꿈을 꾼다고 한다.
그 꿈을 꿨을 때 사람은 확연하게 갈린다. 하늘을 즐겁게 나는 문과와 발에 땅이 닿지 않아서 무서움을 느끼는 이과다.
황지현은 이과였다.
“끄아아앙-!”
인간이 하늘을 나는 상황은 그리 달갑지 않다. 하지만 해야 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니까!
그녀는 자연스럽게 현충원의 한복판에 착지했다. 주먹으로 땅을 찍으며 충격을 분산하는 착지법, 그 이름도 유명한 히어로 랜딩이다.
‘솔직히 이딴 말도 안 되는 자세보다는 낙법 치는 게 나은데!’
하지만 퍼스트 오더는 낙법을 칠 수 없다. 퍼스트 오더의 행동은 항상 영상이 녹화되고, 그 영상은 홍보영상으로 활용된다.
데굴데굴 구르는 장면보다 히어로 랜딩을 갈기는 게 훨씬 그림이 된다. 따라서 퍼스트 오더의 표준 착지법은 무조건 히어로 랜딩이었다.
황지현의 랜딩은 싫어하는 거치고 완벽했다. 너무나 완벽했기에 오늘 녹화된 이 히어로 랜딩이 향후 3년간 ISAC 랜딩 교보재로 사용될 거라고는 꿈에도 모르고, 황지현은 고개를 들었다.
“진짜 현충원이 목표였네.”
악마들이 오고 있다.
그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아마도 오는 도중에 최대한 수를 갉아 먹어서 막은 모양이다.
“후우, 후우. 잘하자.”
황지현은 천천히 오른손, 오른 다리, 왼 다리, 왼손, 목을 풀었다.
현역 시절 킥복싱 금메달 선수였을 때 큰 경기에 나가기 전에 근육을 푸는 그녀만의 루틴이다.
루틴을 끝낸 그녀가 전기를 휘감고 포탄처럼 날아가 한 악마의 명치를 걷어찼다.
“흐랴아아-!”
푸른 번개가 뒤따르듯 따라온다. 킥으로 물리 공격을, 번개의 추격으로 뇌속성 공격을. 악마들의 실드가 연달아 조각난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자신이 내뻗은 푸른 번개를 발판 삼아 다시 한번 도약한 그녀가 무릎으로 악마의 연수를 찍었다.
물 흐르는 듯한 타격과 이능력의 연계!
C~F급 헌터 오십 명이 달라붙어 20분간 화력을 퍼부어야 쓰러트릴 수 있는 사령사 악마를 퇴치하는 데 고작 1초면 충분하다.
황지현이 긴 꼬리처럼 머리카락을 흔들며 자세를 바꾸었다.
“감 잡았어.”
단 한 번, 딱 한 번의 공격으로 그녀는 사무직 헌터에서 현장 헌터로의 감각을 되찾았다.
“5급 특수 사무관, 황지현. 현충원 사수 임무에 돌입합니다.”
* * *
스크린을 보며 시라노가 이정훈에게 물었다.
“저게 코리안 스타일의 사무관인가? 다른 사람도 저 정도 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그럼 쟤가 사상 최강의 사무관이구만.”
황지현은 헌터가 되기 전에 킥복싱 국가대표 선수였고, 금메달을 목에 건 메달리스트다.
그녀는 그런 동시에 태국 본토에서 무에타이를 수련하여 플라이급 챔피언도 했었던 괴물인 만큼 잠재력 하나는 뭇 퍼스트 오더 못지않은 건 알았다.
하지만 이정훈의 기대 이상이었다. 시라노가 이마를 긁었다.
“다 쓸어버리는데? 지원 필요한 거 맞나?”
무릎과 팔꿈치가 가히 흉기였다. 니킥 한 방에 사령사의 마나실드는 종잇장처럼 찢어지고 목에 양팔을 걸고 무릎으로 명치와 턱을 난타하면 걸레짝이 된다.
팔꿈치에는 면도날이라도 달았는지 엘보 한 번에 댕겅 댕겅 몬스터가 썰린다.
“저런데 행정직을 고집했다고? 양심 있나?”
번개 능력은 본래 조절이 어렵기로는 속성 중에서 최악으로 꼽히는 능력이다.
위력을 조절하는 건 당연히 힘들고, 최대의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이 아주 짧아서 지속력조차도 나쁘다.
그래서 번개 능력자는 보통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번개의 제어만을 집중하는 초능력자형이 많았다.
시라노가 알기로는 직접 타격과 번개를 동시에 운용하여 실전에서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는 퍼스트 오더는 라이드 더 라이트닝, RTL. 제이슨 로우 한 명뿐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그런 사람이 또 있네? 지부장, 이 싸움 끝나면 쟤 무조건 퍼스트 오더 코트 입혀.”
“본인이 워낙 원치 않는 터라…….”
“저걸 보고도 퍼스트 오더 코트를 못 입히면 그건 상부가 무능하다는 소리밖에 더 들어? 어떻게든 입혀 봐.”
“유감스럽게도 본인이 너무 완강합니다. 코트를 입히면 아예 퇴직하고 스무디 가게 사장 하려고 할 겁니다.”
“지부장, ‘어떻게든’이라고 했잖아. 어떻게든 해 봐.”
“그럼 현실적인 조언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돈.”
이정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돈으로는 안 움직입니다. 황지현 사무관은 부업으로 스무디 가게를 하는데, 그게 수익이 굉장해서요.”
“내가 장담하는데 돈으로 안 움직이는 사람은 없어. 안 움직이면 액수가 적은 거야.”
“일전에 퍼스트 오더가 되면 봉급을 150배 늘려 준다고 했는데도 거절했습니다.”
“150배니까 그렇지. 공 하나 더 붙여.”
“그래도 됩니까?”
“응. 돼. 1,500배를 줄 가치가 있다. 쟤는 작정하고 키우면 진짜 굉장해질 거야.”
안 싸우려고, 안 강해지려고 노력해서 저 정도다.
시라노가 보기에 황지현은 작정하고 수련시키고, 적합한 아티팩트를 장비시키고, 본인을 위한 트레이닝 코스를 설계해서 일 년만 빡세게 관리하면 하이랭커 13명 안에도 들어간다.
“오, 플리커 잽.”
권능하가 무심코 감탄했다. 무릎과 팔꿈치로 사령사를 도륙 내고 흑마법 캐스팅을 방해하자 악마들은 거리를 벌리는 걸 선택했다.
확실히 무에타이는 근접전만 피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격투가의 비애다. 그러나 황지현은 적이 거리를 벌리기 시작하자, 이내 태도를 바꿔서 복싱의 자세를 취하더니만 플리커 잽을 날렸다.
플리커 잽의 사정거리는 윙 스팬, 양팔을 벌려서 끝과 끝의 거리. 격투가의 최대 사정거리와 같다.
결국은 근접 공격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황지현은 그 플리커 잽의 탄성을 이용하여 번개를 날렸다.
예리한 번개의 창이 잽 한 번, 한 번에 날아간다.
손과 어깨에 힘을 빼고 날리는 플리커 잽의 속도는 잽 중에서도 상당히 빠른 편, 초당 아홉 발의 잽이 번개의 창을 날린다.
거리를 벌린 사령사 악마는 벌집이 되었다.
권능하가 신나서 말했다.
“기관총 같네요.”
“점점 빨라진다.”
“진짜요? 오, 진짜네.”
지금 처음으로 써본 활용이었으니 어색한 건 당연한 일이다. 어색했는데도 초당 아홉 발이었다.
익숙해지면서 점차 속도가 올라간다. 오 분이 지난 후에는 초당 이십 발도 넘었다.
이리되니 악마는 거리를 벌리는 게 최악의 선택인 걸 뒤늦게 알았다. 어떻게든 접근해야 한다.
사령사는 엄연히 흑마술을 사용하는 마법의 악마다. 마법의 악마가 캐스팅할 엄두가 안 나서 접근하게 만드는 시점에서 이미 경악할 일이었다만, 경악할 일은 아직도 남았다.
가까스로 거리를 좁히면 오른손의 스트레이트가 작렬한다.
“으랴아아아-!”
레이저 라이플의 방아쇠를 당기는 오른손의 스트레이트가 뻗어 나오면 하얀 번개의 레이저가 일직선으로 악마를 꿰뚫어 버린다.
멀리 있는 적에게는 라이트닝 플리커, 다가오면 레이저 스트레이트. 폭딜이 필요할 때는 클리치를 걸고 무릎 지옥.
근거리, 중거리, 초단거리 폭딜까지 가능하다. 완벽하다.
그녀가 괴식을 먹다 번개 능력이 부여된 이유를 알았다. 아주 찰떡궁합이다. 무심코 지켜보던 시라노가 기립박수를 했다.
“쟤, 진짜 탐난다. 어떻게 내 전속으로 못 빼오나?”
“안 보냅니다.”
“젠장. 자네, 물렁물렁한 듯하면서 묘하게 심지가 쎄.”
“그보다 사령관님, 대악마급 적 하나가 현충원으로 가고 있습니다. 빨리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디 보자, 아. 그러네.”
시라노는 대악마의 정보를 보고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황지현이 강하다고 해도 악마 본체와는 싸울 수가 없다.
현충원으로 다가오는 악마의 이름은 푸르푸르.
번개의 악마였다.
“번개 VS 번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