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86)
괴식식당-586화(586/613)
586화. K 토르 (2)
34위계, 뇌공백작 푸르푸르. 상반신은 인간이고 하반신은 사슴, 등에는 검은 날개. 꼬리는 붉은 뱀. 기후를 조작할 수 있고 주로 번개를 다룬다.
놈은 대악마 중의 대악마다. 황지현의 승산은 매우 낮다.
애초부터 퍼스트 오더라고 할지라도 일대일로 대악마를 이길 수는 없다.
지금까지 대악마와 싸워 이긴 경우는 죄다 허니스시를 활용한 승리가 전부다. 그 외의 승리는 없으니 일대일은 가당치도 않다.
‘윤은형이 이상한 거지.’
대악마인 아스모데우스와 일대일을 벌이고, 우세승이 예견되는 윤은형의 경우는 굉장히 특이한 사례다.
윤은형 본인이 악마의 피를 타고났기도 했고, 데빌 트리거라는 전투력 백 배 뻥튀기 능력 탓에 놈은 퍼스트 오더 전체를 뒤져도 단기결전에는 적수가 별로 없다. 그러니 윤은형이기 때문에 일대일의 승산이 있는 것이다. 황지현은 경우가 다르다.
‘상성이 좋지 않아.’
속성 사용자는 당연하게도 속성 내성이 있다. 속성 공격을 하다 보면 자신의 몸에도 영향을 주고, 그 영향이 누적되어 속성 내성의 형태로 발현된다.
번개 사용자인 황지현은 번개 내성이 있다. 같은 이유로 뇌공백작 푸르푸르도 번개 내성이 있다.
양측 모두 번개에 내성이 있다면 본연의 실력이 중요해지는데, 황지현은 분명히 뛰어난 헌터였으나 대악마급은 아니다.
애초에 최상위 랭커인 RTL 본인을 데려와도 푸르푸르와 일대일은 불가능하다. 완력, 내구력, 마력의 차원이 다르다.
지원이 필요하다.
어떻게 지원하지?
이정훈이 말했다.
“황지현 사무관에게 허니스시를 보급하는 게 어떻습니까?”
“나쁘지 않은 생각이지만, 옳은 판단은 아니야. 허니스시는 대 악마용 최고 최흉의 병기다. 쓴다면 푸르푸르 따위는 일격에 절명 시킬 수 있겠지. 하지만 적에게 나포된다면 어떻게 되겠나?”
이정훈이 입을 다물었다. 지금 전장의 지배자는 육신 합체를 이룬 페넥스다. 페넥스 혼자서 전장의 50%를 커버하고 있다. 그런 페넥스라고 할지라도 악마는 악마다.
“적에게 한 방울의 꿀 국물이라도 빼앗기면 최악의 경우, 페넥스가 죽어. 그러니 허니 스시는 지금까지처럼 묽게 희석하여 일부 저격수에게만 공급하는 편이 나아. 뺏기면 진짜 감당이 안 돼.”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그나저나 저놈들 이동 경로를 보아하니 적에게도 지휘관이 있는 모양이야.”
현충원에 황지현이 있다는 걸 알고 번개를 다루는 푸르푸르를 바로 파견했다.
스크린을 통해 지휘통제실에서 전장을 조율하는 시라노처럼, 악마 중의 누군가도 악마의 시야를 확인하고 지휘하는 지휘자가 있다. 모략가는 아니다.
시라노는 생각에 몰두하기보다는 그냥 물어보기로 했다.
“페넥스 씨, 적에게 악마 지휘관이 있는 거 같은데, 짐작 가는 부분이 있으십니까?”
[그건 아마 엘리고스일 겁니다. 저에게 가장 반기를 든 악마기도 하고, 능력도 있지요.]“엘리고스, 엘리고스. 이것 참, 유명한 악마로군요.”
시라노가 쓰게 웃었다. 대악마들은 하나하나가 다 유명한 악마이긴 하다만, 엘리고스는 시라노 같은 지휘관에게 특히 유명한 악마다.
15위계, 강습기장 엘리고스.
이 악마는 미래를 보는 힘이 있어서 전쟁에서 어떻게 싸우면 승리하는지를 인간에게 가르쳐 준다고 한다.
ISAC에도 악마소환사는 있다. 그런 악마 소환사 중에서도 엘리고스의 힘을 빌려서 시라노에게 도전장을 내민 사람도 있다.
미래 예지, 그중에서도 전쟁에 특화된 전쟁 예지 능력자. 엘리고스는 천부적인 지휘관이다.
‘그렇다면 악마끼리 시야를 공유해서 황지현의 존재를 눈치챈 건 아니겠군. 그냥 예지한 거겠어.’
예지 능력자와의 싸움은 골치가 아프다. 이쪽의 손패를 모조리 읽어 내고 그거에 맞춰서 움직이니 가진 손패로 허를 찌르는 일은 불가능하다.
시라노는 머릿속으로 정리해 두었던 황지현의 지원책 중 태반을 포기했다.
‘하청 길드를 사용한 지원은 안 하는 게 낫겠어. 아마 매복이 있을지도 모르고, 최악은 매료겠지.’
악마 중의 반절은 매료의 힘을 가지고 있다. 진짜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은 게 매혹, 매료 능력을 지닌 악마다.
잘못 걸리면 아군이 바로 적군으로 돌변할 수 있다. 이리되면 쓰러트려도 전력 누수가 심하고 사기도 떨어진다.
‘쓸 사람이 없네.’
하청 길드의 몇몇은 정말 쓸 만한 능력자였다. 레드 타이거즈의 장예은이나 존의 경우는 능력도 좋고 스킬도 쓸 만해서 지금도 상당한 활약을 보인다.
심지어 이 둘은 매료에 저항할 수 있는 정신 내성, 저항 계통의 스킬도 익혔으니 적임자다. 하지만 그 둘은 다른 국면에서 중요하게 쓰이고 있다.
둘을 빼면 반대쪽이 무너진다.
“새로운 패가 필요해. 지부장, 민간인 각성자를 리스트업 해 주게.”
“민간인의 개입은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군요. 곧 리스트업 하겠습니다.”
각성자 중에서도 헌터가 되지 않고 민간인으로 남으려 하는 사람은 상당히 많았다.
전투적인 능력이 아니기 때문에 민간인으로 남는 자가 절반, 전투적인 능력이지만 싸우고 싶지 않기에 남은 자가 또 절반.
ISAC는 전투적인 능력을 지닌 민간인 각성자를 주의 깊게 관리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헌터 협회라고 불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민간인을 싸움터로 보내는 건 껄끄럽군, 시라노가 빠르게 리스트를 훑으면서 쓸 만한 사람을 추렸다. 그런 와중에 한 명의 사람이 이채를 발했다.
“찾았다. 얘 잡아 와.”
시라노가 손가락으로 한 사람의 이름을 가리켰다. 식별 코드 ‘홍룡도령’. 한유성이었다.
* * *
“으오아아아아아아아아-!”
벙커에서 잘 쉬고 있던 한유성은 난데없이 나타난 헌병대에 의해서 대포로 발사되었다.
의사를 묻기도 전에 체포하여 발사 후 설명이라니, 변호사도 깜짝 놀랄만한 폭거다.
반드시 고소하겠다.
비명을 지르며 하늘을 가로지르는 한유성의 귓가로 시라노의 설명이 화살처럼 박혔다.
[이해했지?]상황은 잘 이해했다.
“근데 왜 나냐고요오오오-!”
[홍룡도룡 한유성, 한국에서 딱 한 명 있는 무당 직업 능력자. 전 세계적으로 보아도 오십 명을 넘지 않는 희소한 샤먼 클래스의 능력자를 활용하지 않으면 쓰나.]“그러니까아아아-!”
[자네가 싸워야 하는 이유는 첫째로 자네의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협조 안 하면 자네가 탈세로 처벌받기 때문이라네. 많이 해먹었더만?]“그놈의 탈세!”
황지현에게도 탈세하다가 걸려서 그렇게 개처럼 부려 먹혔는데, 그놈의 탈세가 또 발목을 잡았다.
한유성이 울음을 터뜨렸다.
“진짜 더러워서 탈세 안 한다!”
[바람직한 마음가짐이야. 이번에는 용맹스러운 모습을 보아 면책권을 줄 테니, 그걸로 탈세건을 무마하고 다음부터는 성실납부하는 모범 시민이 되게. 자, 상황은 다 들었겠지? 일단 가서 황지현 사무관을 도와주게나. 굿 럭.]“내가 뭔 재주로 괴물끼리 괴수 영화 찍는 걸 도와주라는 거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들을 여유도 없었다.
벌써 현충원에 도착해 버렸다. 시청의 의무교육 탓에 몸에 지겹게 새겨진 낙법으로 데굴 구르며 착지 충격을 최소화한 한유성이 익숙하게 낙하산을 벗었다. 의무교육의 힘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런 그의 귀에 파열음이 들렸다. 지근거리에서 수류탄이 터진 듯한 충격, 흡사 군대에서 수류탄 투척훈련을 하다가 실수로 슬라이더로 던져 절벽에 수류탄을 박아 버렸을 때의 폭파음이다.
눈을 크게 뜨고 보았더니 수류탄이 아니었다. 다리였다. 황지현의 다리와 전기 사슴의 발굽이 충돌하면서 난 소리였다.
“워메!”
파지지직 하고 전기가 흐르면서 시야가 흔들린다. 괴물과 괴물이 싸우고 있다. 눈 깜짝하는 순간 다리와 무릎, 팔꿈치로 난타를 하는데 하드한 메탈의 드럼연주처럼 연달아 폭음이 터진다.
휘말리면 죽는다. 한유성의 비대한 자아만큼이나 커다란 생존본능에 불이 붙었다. 한유성은 데굴데굴 콩 벌레처럼 굴러서 안전한 건물 뒤로 숨었다.
“저걸 나보고 도우라고? 미쳤나?”
급이 맞아야 도와주고 말고 하지. 한유성의 전투력은 민간인 헌터다웠다. 쓰레기 같다는 의미다.
고블린 한 마리는 이기지만 두 마리가 되면 생사결을 나눠야 할 정도며 세 마리가 되면 패배가 확정이다.
무당 능력은 훌륭한 능력이지만 그래봐야 그것은 소프트웨어, 한유성이라는 하드웨어는 폐급이라 능력을 활용하지 못한다.
재밌게도 한유성은 그걸 아주 잘 알았다. 자신이 폐급인 걸 아는 폐급이었기에 나름 진귀하다면 진귀한 존재다.
폐급의 감으로 보아 이 싸움은 도와줄 여지가 없다.
보라, 일단 잘 싸우지 않는가.
진짜 엄청 잘 싸운다.
“안 개기길 잘했지.”
홍룡도령 한유성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한 존재는 첫 번째가 황지현이고 두 번째가 세금이었다.
세금보다도 황지현이 무섭다.
진짜 생각만 해도 넘모 무섭다.
싸우는 모습을 보니 더 무서워졌다. 그래서 한유성은 꾸물거리면서 숨을 장소를 모색했다.
[이런 한심한 후손 놈을 봤나.]한유성의 등 뒤에서 흐릿하게 붉은 용이 나타났다. 그의 조상신이자 수호신인 홍룡이다.
그간 괴식과 헬스를 통해 무지막지하게 몸을 불린 홍룡은 지렁이 같았던 과거의 모습과는 다르게 훌륭한 아나콘다가 되었다.
한유성보다도 세 배는 크고 굵기도 우람하다. 홍룡이 늠름하게 말했다.
[싸워라, 멍청한 후손아.]“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진짜. 조상님, 진짜로 핏줄 끊기는 거 보고 싶어요? 저기에 끼라고요? 도르신?”
[아이고, 아이고, 우리 한씨 가문에서 어쩌다가 이런 모질이가 나왔을꼬. 싸우는 게 직접 돌을 들고 대가리를 찍어야만 싸움이겠느냐. 우리 가문의 아이는 과거 일제 쌍놈들에 맞서서 다섯 살배기 아이조차도 싸웠다. 쓰레기통 청소를 하고 화장실 청소하고, 구두를 닦으면서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중요하다 싶은 이야기를 어른에게 이야기하곤 했지. 어린 계집아이들은 치마저고리에 탄환을 싸매고 다니면서 어른들에게 몰래 전해 주기도 했다. 이 모든 게 싸움이었다. 승리를 위한 노력이었지.]“너무 말이 긴데, 세 단어로 요약해 주실래요.”
[이런 망할 놈. 직접 싸울 생각 말고 지원해 주라는 말이다! 너 무당이잖느냐!]“물론 무당이지요. 조선 최고, 조선제일 무당 홍룡도령이 이 몸 아니겠습니까. 근데 무당이랑 지원이 뭔 상관이래요?”
[이이이이-! 멍청하기는! 여긴 현충원이다. 자랑스러운 호국 열사들이 잠든 땅이지.]“아.”
그제야 한유성도 홍룡의 말을 이해했다. 무당이란 영혼, 넋을 기리는 자. 영혼의 힘을 이승에 불러올 수 있는 자.
현충원에서 안식을 취하는 호국 열사처럼, 강하고도 선한 영혼이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게 무당이다.
하지만 한유성은 내키지 않는지 고개를 흔들었다.
“저기요, 조상님. 요즘 그렇게 멋대로 영혼 불러오면 헌터과 초상능력부에서 찾아오거든요? 영혼을 불러와서 힘을 쓰려면 유족들에게 사후 능력 사용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영혼에게 동의를 구하는 걸로 끝이 아니라고요. 벌금으로 안 끝나고, 유족에게 고소까지 당할 수 있…….”
[그놈 참 말 많네! 주둥이 닫고 빨리 좀 해라!]“아이씨… 우리 조상님 헬스하더니만 성질이 더러워졌어. 프로틴에 안 좋은 게 있나…….”
홍룡이 답답했는지 꼬리로 가슴팍으로 팡팡 쳤다. 이렇게 한유성이 뺀질거리는 동안에도 황지현은 몇 번이나 생사를 오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홍룡이 재차 다그치니 한유성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부적을 꺼냈다.
“이 불초 한가가 청원컨대 현충원에 잠들어계신 호국 열사 영령들이시여. 힘 좀 써 보십쇼.”
상당히 건성건성인 초혼 의식이었으나 과연 한유성의 재능은 뛰어났다.
현충원 곳곳에서 영령이 나와 한유성의 적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한유성의 적.
그러니까.
“아잇, 싯팔! 이건 또 뭐야?!”
조선 제일 무당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 황지현.
황지현에게 불똥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