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89)
괴식식당-589화(589/613)
589화. 종말 (1)
촐랑거리고 까불거리는 백강혁이었으나, 그는 의외로 성실하고 꾸준한 사람이었다.
한번 마음먹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한다.
그래서 백강혁의 어머니는 백강혁이 중학교 다닐 무렵까지 주변 사람들이 ‘저놈 커서 뭐가 되려고 저러나?’하고 우려를 표할 때 ‘우리 애가 안 하려고 해서 그렇지, 한 번 하면 진짜 잘하거든요?’라며 아들을 두둔하곤 했다.
“뭐 결국 고등학생이 되니까 어머니도 포기했지만. 어쨌든 나란 남자.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
백강혁은 질리지도 않고 요리하고, 요리하고, 요리해서 모략가에게 먹였다. 물론 싸그리 실패했다.
백 개가 넘는데 죄다 실패했다. 작정하고 실패하려고 해도 실패하고, 잘해 보려고 해도 실패한다. 사백 개가 넘었는데 모조리 실패한다.
이쯤 실패해 보면 백강혁조차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횟수가 부족해서 그래. 천 번 채워야겠다.”
천 번?
천 번을 채운다고?
모략가는 기절할 노릇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게 못난 놈이 성실한 거라더니 딱 그 짝이다.
사백 번의 몰락식을 만들었으면 슬슬 포기를 배워야 하지 않는가. 저놈은 지지리도 재능이 없다.
요리하면 안 되는 사람이다. 마법에 관한 재능도 쥐뿔 없다. 연금술은 더 없으며 그러니까 괴식은 더더욱 할 수 없다.
보통 사백 번 실패하면 접지 않나? 그게 정상이잖아.
어째서 이럴 때만 이리도 성실할까. 저 자식 분명히 양아치라고 들었는데 왜 이리 근면 성실하단 말인가!
모략가의 영혼에 균열이 생기고, 그 균열에서 눅진눅진한 몰락 액기스가 줄줄 흘렀다.
그런 모략가의 절망을 엿보며 민이 식은땀을 흘렸다.
‘한마디만 할 수 있으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텐데, 한마디도 못 하니 진짜 미쳐 버리겠군. 저 자식은 진짜 아이큐가 낮나? 저놈도 검 마법 쓸 줄 알잖아.’
검 마법은 별로 어려운 마법이 아니다. 간단한 시동어와 검의 이름만 알면 쓸 수 있다.
물론 검의 위계에 맞는 마나를 써야 하고, 해당 위계의 검을 쓸 수 있도록 승우가 허락해야 하지만, 민과 백강혁은 검왕 아이온 이외의 모든 검을 써도 좋다고 승인이 떨어져 있다.
그런 덕에 민은 검 소환을 이용하여 모략가조차도 제압했다.
‘저 머저리 놈. 엘라이온을 뒀다가 국 끓여 먹나? 아니, 있으면 진짜로 국이라도 끓이라고…….’
헤스티아의 신명 무구였던 괴검 엘라이온은 먹을 수 없는 것도 강제로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바꿔 주는 검이다.
어찌나 성능이 좋은지 CCTV, 키보드, 게임 패드, 스마트폰, 리모콘, 슬리퍼조차도 먹을 걸로 만들고, 그 본연의 모습과 연관된 적절한 버프를 지닌 괴식이 된다.
백강혁이 만든 음식은 그냥 음식이 아닌 몰락식이었는데, 저 몰락식이라는 건 일단 사람이 먹을 것이 아니다.
몰락의 신이 무의식적으로 배출한 신력이 깃들어 뭉친 저주의 덩어리, 응집체.
고의성은 없지만. 저것은 이를테면 고블린 샤먼이 정성을 담아서 만든 토템이나, 마운틴 트롤이 알 수 없는 신앙을 담아서 세운 돌탑 같은 것의 수천 배는 강력했다.
그야 백강혁도 벽을 넘어 버린 신이니까! 광신의 부류에 들어가는 몰락 신의 신력이니까 보통의 저주와는 차원이 다르다.
즉, 저놈이 만든 것은 먹을 음식이 아니라 저주다. 그러니까 먹을 수 없기에 엘라이온으로 재조리를 할 수 있다.
엘라이온의 능력은 어디까지나 못 먹는 걸 먹을 수 있게 조리하는 거니까!
‘엘라이온으로 저주를 반전시키면 오히려 엄청난 축복의 성능을 가질 가능성도 있어. 왜 그것도 모르지? 놈의 뇌가 저지능 고단백인 건 알았지만, 이건 너무나 무참하군. 저놈 아이큐가 백도 안 될 거야. 멍청한 놈.’
애써 놈을 위해 변명하자면 성운검 때문이겠지. 자존심이 강한 성운검은 자신 외의 검을 백강혁이 쓰게 두질 않는다.
관종검인 까닭이다. 놈의 눈치를 보며 성운검만 쓰다 보니 검 마법의 존재를 잊었을 가능성이 컸다.
‘노스트라다무스가 괴롭힘당하는 거야 나야 알 바가 아니지만, 내 차례가 되면 곤란해.’
빨리 해결을 보아야 한다. 하지만 역시 기아스는 강력하다.
자신이 어떻게 신이 됐는지도 기억 못 하는 민으로서는 기아스를 해제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역시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누가 지금 나를 도울 수 있지?
그때였다. 옅은 신음을 흘리며 괴로워하던 모략가가 말했다.
‘내 도움이 필요하지 않나?’
‘개소리 말고 다물어.’
‘잘 생각해 보라고 나밖에 없잖아.’
‘웃기지 마라. 내가 우선순위도 파악 못 하는 머저리로 보이나?’
모략가는 지금 완벽하게 봉쇄되어 있다. 신력도, 마력도 못 쓰고 무참하게 죽기만 하는 신세다.
하지만 저놈은 이 모든 사태를 만든 근원이다. 풀어 주면 뭔 짓을 할지 모른다.
이상적인 것은 천년이고 만년이고 민이 기아스를 활용해서 지금처럼 모략가를 봉인하는 것.
그러나 이건 이미 글렀다. 백강혁이 개입하였으니 좋든 싫든 언젠가는 민의 기아스는 풀린다. 그러면 모략가는 봉인에서 풀려난다.
‘네놈을 풀어 둘 수는 없지.’
‘하지만 그래서 네가 같이 봉인될 수도 없잖아.’
둘의 사고는 연결되어 있기에 서로가 바라는 것, 노리는 것을 다 알고 있다.
민이 곤란한 점은 그것이다. 이 모략가라는 놈은 죽여서는 안 된다. 봉인해야 한다.
그러니 최선은 이대로 두는 것. 차선은 민이 의식을 찾자마자 성검을 소환해서 놈을 검 안에 영구 봉인하는 것.
최악은 모략가를 놓치는 것이고 차악은 죽게 두는 것이다.
‘솔직히 어렵지.’
도망치게 두면 안 되고, 죽게 두어도 안 된다. 그냥도 어려운데 이 모든 것의 변수도 있었다.
‘변수…….’
‘저놈이 문제야.’
백강혁이다.
저놈이 뭘 할지를 모르겠다.
‘저놈 때문에 미치겠네.’
‘그건 동감. 나도 미치겠어.’
백강혁은 민에게도 불안 요소였으며 모략가에게도 불안 요소였다. 몰락식은 예상외로 어마어마하게 강력하다. 몰락식 먹다가 영혼이 봉인당할 가능성조차 있었다.
‘아마 영혼 봉인보다는 파손 쪽이 확률이 높겠지만 말이야. 내 영혼이 죽으면 알지?’
‘하지만 너도 영혼 봉인의 가능성이 작지만은 않다는 걸 알 테니까, 조바심이 난 걸 안다. 블러핑이나 떠보기는 그만하지.’
이렇게 둘은 내면의 언쟁을 수십 일이나 반복하고 있었다.
‘젠장.’
‘제기랄…….’
민은 계속해서 기아스의 해주법을 찾고, 백강혁은 몰락식을 만들고, 모략가는 그것을 먹는 단조로우면서도 긴장감이 넘치는 나날이었다.
그러던 나날이 이어지고, 지구에서 한유성의 허벅다리에 K 토르가 내지르는 로우 킥이 박힐 무렵이었다. 결국 변수가 터지고야 말았다.
“오, 오오! 이건 좀 괴식 같아!”
천 개의 요리를 만들기 전, 885번째 요리에서 그만 기적이 터지고야 말았다.
완벽하게 통제된 신력과 우연히 맞아떨어진 진짜 있는 괴식 레시피. 모략가의 은신처 주변을 배회하던 파괴된 보안 장치의 잔류 마나가 깃들어서 그만 제대로 된 괴식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아싸아아아-!’
‘이런 망할-!’
모략가가 환호했고.
민이 욕지기를 내뱉었다.
* * *
“우와, 내가 만들었지만 생긴 거 개쩐다.”
백강혁이 만든 것은 잡채밥이었다. 잡채밥은 밥 위에 잡채를 올린 간단한 요리로 칭자오러우쓰처럼 야채를 볶은 중화식 소스에, 한국식 당면 잡채를 섞어 볶은 것으로 어느 나라 요리인지 근본을 알기 어려운 요리다.
안 그래도 근본이 애매한 요리다만, 백강혁은 거기에 다시 한번 근본 없는 일본식 베니쇼가. 홍생강초절임을 더해서 일식을 끼얹었다. 그리하여 완성된 것이 중식과 한식. 일식을 어우르는 뜬금 요리다.
“근데 잡채로 만들었는데 왜 지렁이처럼 됐을까. 이래서는 잡채밥이 아니라 지렁이 덮밥이잖아.”
만들고 보니 잡채에 베니쇼가의 핑크빛이 물들어서 마치 지렁이처럼 보였다.
지렁이와 야채를 볶아서 밥 위에 올린 지렁이 덮밥이라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건대 여기에는 조금의 지렁이도 들어가지 않았다.
“진짜야, 브라더. 지렁이 안 들어갔어. 들어간 건 내 핑크빛 사랑과 우정뿐이야. 좋지, 브라더?”
‘망할 새끼야, 묘사하지 마라. 상상되잖냐!?’
지금 민은 눈이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았는데 지렁이 덮밥같이 됐다고 백강혁이 말하니 상상이 됐다. 너무 좋은 상상력이 이럴 때는 독이 된다.
먹고 싶지 않다. 어차피 못 먹이겠지.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백강혁이 몇 군데의 혈을 짚으니 민의 턱이 멋대로 벌어졌다.
“이건 따거에게 배운 점혈술이라는 거야. 겁나 신기하지 않냐.”
‘구,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만?!’
난자당해서 시체와 비슷한 상태가 된 모략가가 잘도 몰락식을 먹나 했더니, 이 점혈술 때문이었나 보다. 민은 영혼의 저편에서부터 어이가 탈출하는 기분이 들었다.
‘점혈법은 습득 난이도 SS랭크의 초고난이도 스킬이잖아. 이걸 저놈이 어떻게 배운 거야?!’
진짜 쓸데없는 곳에서는 유능하다. 이 새끼는 왜 이렇게 도움이 안 되는 곳에서만 유능한 것인가.
‘이렇게 되면 각오해야겠군. 최악은 피하고 차악을 선택하자.’
벌어진 턱 사이로 백강혁이 내민 스푼이 쑥 하고 들어왔다. 백강혁은 내용물을 민의 입 안에 털어 낸 후 다시 혈을 짚었다.
그랬더니 멋대로 입이 움직여서 음식물을 씹는다. 어차피 모든 감각을 잃었으니 맛이 느껴지진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백강혁은 꾸준하게 괴식을 밀어 넣었다.
민은 생각했다.
‘죽고 싶다.’
백강혁이 음식을 먹여주는 상상 따위는 태어나서 1초도 해 본 적이 없다. 병간호 받는 노인처럼 이놈에게 음식을 얻어먹어?
죽고 만다.
굴욕에 내장이 떨렸다.
꾸물텅꾸물텅, 내장이 잘도 떨린다. 굴욕이 어마어마하긴 했구나.
‘응? 잠깐만. 진짜로 내장이 움직이잖아.’
울룩불룩, 민의 아랫배가 움직이고 있었다. 굴욕으로 배가 이렇게 움직일 리는 없다. 히죽 하고 백강혁이 웃었다.
“과연 이 요리의 효과는 알아서 장까지 내려가서 소화되는 소화 촉진 요리였군.”
정작 음식을 만든 놈이 효과를 몰라서 남에게 먹여 놓고 효과를 안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백강혁이 알까? 민은 공포를 느꼈다.
“지렁이처럼 생겨서 그런갑다 했는데, 진짜 지렁이처럼 움직이네.”
베니쇼가와 마나를 듬뿍 머금은 잡채는 그냥 잡채가 아니었다. 생긴 대로 지렁이처럼 움직인다.
살아서 장까지 내려간 후에 격렬한 움직임으로 장의 균형을 바로잡고 소화를 촉진한다.
또한 장꼬임과 장폐색을 치료해 주고 내장청소와 숙변 제거, 마나 불균형 해소, 또한 식욕을 증강시켜 주며 휴대폰의 보조 배터리처럼 장내에 남아 마나 보조 배터리가 된다.
기겁하리만큼 고성능의 괴식-!
잡채밥의 움직임으로 장의 감각이 일순간 깨어났다.
민은 미칠 듯한 복통.
그러니까 변의를 느꼈다.
‘가, 감각이 느껴진다!?’
감각을 느껴 버렸으니 감각을 대가로 막대한 힘을 얻는 기아스가 성립되지 않게 됐다.
그 순간 민의 눈이 부릅떠졌다. 시각, 촉각, 청각 등의 오감이 동시에 회복됐다. 그리고 기아스로 인해 얻었던 힘이 사라졌다.
“빌어먹을-!”
“오! 브라더가 정신을 차렸어!”
“이럴 때가 아니야! 놈을-!”
민이 눈뜨며 경고하는 것과 동시에 모략가의 몸이 순식간에 재생되었다.
응고되었던 모략가의 신력이 그의 몸을 시간을 되감은 것마냥 전성기의 상태로 되돌렸다.
“놈을 봉인해야 해!”
민이 재빨리 성검을 소환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모략가가 빨랐다. 모략가는 시간을 가속하는 듯 부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오랫동안의 속박과 고문에서 해소되었으니 날아갈 거 같다. 그래서 모략가는 날았다.
아낌없이 신력과 마나를 뿌리면서 날아올랐다. 그 비상은 태풍이 되어 민과 백강혁을 날려 버렸다. 모략가가 상쾌하게 웃었다.
“생각 같아서는 네놈들을 찢어 죽이고 싶지만, 나도 영혼이 있는 존재라 솔직히 너희 둘은 무섭구만. 이게 PTSD라는 거겠지. 보기만 해도 손발이 덜덜 떨려. 그럼 제군들. 나는 다시는 제군들을 보기 싫으니 이만 사라져 주겠네. 평생 다시 볼 일은 없겠지. 아듀-!”
모략가가 게이트를 열고 사라졌다.
민이 백강혁에게 소리쳤다.
“멍청아! 너 때문에 놓쳤잖아!”
“아, 뭐야. 브라더, 감사의 말보다는 남 탓부터 하기야?”
“누가 도와 달라고 했냐?”
“아, 또또 츤츤거린다. 정말이지, 부끄럼쟁이라니까.”
“너 정말 죽고 싶냐. 제기랄, 모략가를 놓쳤으니 어쩌지.”
최악의 상황이 돼 버렸다. 민이 치를 떨자, 백강혁이 손가락을 흔들었다.
“쯧쯧. 브라더는 나를 믿는 마음이 부족해. 내가 아무런 생각 없이 이렇게 했겠어?”
“그럼?”
“잘 보라고, 신스킬을 보여 주지.”
백강혁이 손가락을 튕겼다. 민이 눈을 가늘게 떴다.
“뭐 했는데?”
“폭발시켰어.”
“뭘?”
“지금까지 저 시체 같던 놈에게 885인분의 실패작을 먹였잖아?”
“그렇지.”
몰락의 신 백강혁.
885번의 요리를 했으나 요리 스킬도 못 얻었고, 괴식 스킬도 못 얻은 요리 스킬 부적응자.
하지만 그는 반복 숙련으로 하나의 스킬을 얻었다.
“그거 다 내 신력 덩어리란 말이지. 그걸 폭파시켰어.”
부착시킨 몰락 신력을 일시에 폭발시키는, 점화 스킬이 생겼다.
그런 탓에.
[흐아아아아아아아악-!]모략가는 비명을 지르며 죽어 버렸다. 허망한 최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