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92)
괴식식당-592화(592/613)
592화. 혁명 (2)
Private Military Company.
민간 군사 기업.
PMC는 민간 군사 기업이라는 이름답게 공식적인 국가 단체가 아닌 민간단체며 동시에 이윤을 위해 움직이는 기업이고, 그 이윤을 군사적인 방식으로 얻는 이들이다.
대재앙이 터지고 나서 십 년. PMC는 전례 없는 호황기였다.
이능력에 각성한 이들이 부유한 나라에만 있을까.
세상에 공평은 없고 평등도 없지만, 이능력만은 인구수 대비로 보자면 비슷한 수치로 각성한다.
따라서 가난하고 치열한 제3국가에서의 분쟁은 이능력자의 각성으로 인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총, 칼, 폭약의 전쟁에서 이능력의 전쟁으로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전쟁의 모습이 바뀌고 시간이 지났을 때, 리비가 만든 PMC인 레이븐즈 크로우는 업계 최선두에 있었다.
가는 곳마다 승리, 무조건 돈값을 해 주는 PMC. 그런 이들의 관점으로 이 혁명전쟁은 어떻게 보였는가 하면…….
“또 패러다임이 바뀌었네요.”
젊은 이십 대 중반의 청년. 레난제스 알드리지, 리비의 부관이다.
그가 본 이번 전쟁은 지금까지의 수많은 전쟁과도 모습이 달랐다. 수억의 병사, 무량대수의 적.
병사들이 던지는 화염병과 투창, 화살은 하나하나가 소형 핵폭탄이다. 던지면 버섯구름이 터질 정도로 폭발한다.
최선두에 선 엘프, 리비가 말하길 와일드 엘프의 신이며 동시에 혁명과 반역의 신인 테오도르라는 자는 한술 더 뜬다.
피처럼 붉은 머플러를 휘날리며 활을 쏘는데, 손을 뻗어 머플러를 만질 때마다 화살촉이 생긴다.
레난제스는 노련한 눈썰미로 머플러의 실올을 하나씩 빼서 쏘는 걸 알았다.
저게 아마 바실리가 쓰는 반역의 죽창이라는 탄환의 기원 같은 게 아닐까?
일개 보병이 지금 전원이 핵가방을 장착하고 그것을 리볼버의 탄환처럼 쉽게 소모하고, 낭비하며 폭발시킨다.
그런데도 평온한 까닭은 이 광야(廣野)가 정말로 광(廣)대한 평(野)야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지평선이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지구처럼 구형의 행성이 아니다.
원주율이 없기에 지극히 평탄, 평탄하기에 시력이 좋다면 끝에서 끝이 보인다.
이 넓디넓은 공간에 존재하는 것은 하늘에 뜬 세 개의 태양과 네 개의 달에 닿은 초록색의 거대한 비석뿐.
그리고 그 비석에 비하면 깨알보다도 작은 크기로 존재하는 수호자와 그 수호자에 비하면 마찬가지로 깨알 같은 혁명군.
스케일이 너무 크다. 지구에서 반란군을 잡거나, 혁명군을 자처하며 분쟁을 일삼는 테러리스트나 잡던 PMC 업체가 낄 곳이 아니다.
“하지만 도망갈 수는 없겠죠?”
“없지. 신나서 제일 먼저 달려든 멍청이가 우리의 사장님이니까 말이야.”
힉스는 그렇게 답하고는 재래식 무전기를 들었다.
“사령관이다.”
안테나도 전파국도 없으니 지구의 과학력과 전쟁기술을 보여 주기엔 아직 준비가 부족하다. 그가 냉정하게 말했다.
“건설반은 신속하게 통신설비부터 재조립하고, 드론부터 띄워. 워 기어의 반입은 그다음의 일이다.”
“포반장이 곡사포부터 설치하면 안 되겠냐는데요?”
“통신설비가 없는데 곡사포부터 설치해서 뭔 의미가 있겠나. 최우선은 통신, 스캔이야.”
“통신, 드론, 워 기어 순으로 준비하고 보병은요?”
“대기시켜. 당장은 저기 혁명군이 날뛰게 두자고.”
마법과 신력 따위의 아리송한 것으로 싸우는 놈들에게 지구의 전쟁 맛을 보여 주겠다.
그렇게 다짐하다 힉스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군인은 전쟁 속에 있어야 군인이다.
미지의 적과 미지의 장소에서 자신의 가치를 보일 기회다. 가슴이 설레지 않을 수가 없지.
그런 힉스의 마음을 읽고 레난제스도 웃었다.
“이러니 우리 오더를 탓할 수가 없다니까요. 이렇게 재밌으니 끊을 수가 없죠.”
“그래. 재미도 재미지만, 이번 일은 정말 좋아.”
세계의 평화를 위한.
지구 평화를 위한 큰 전쟁이다.
대의가 있고, 목적이 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보상도 있다.
“흥분되는군.”
통장에 박힐 돈을 생각하며 힉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뭐 결국.
“어른을 웃게 하는 것은 돈이지.”
돈 너무 좋아.
힉스가 미소를 지었다.
* * *
에메랄드 타블렛이 언제부터 존재했는가? 이 의문에 말에 확답을 할 수 있는 신은 없다.
그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신이 신이라 명시되기 전부터 있었다는 게 할 수 있는 말 전부다.
에메랄드 타블렛에는 만신의 이름이 적혀 있다. 필멸자가 벽을 넘어 불멸자가 되거나, 불멸자인 신이 자손을 낳을 때, 업적을 이뤄 신명을 가질 것을 허락받았을 때.
이 녹색의 비석은 그자의 이름을 적는다.
주혁진이 테오에게 말했다.
“에메랄드 타블렛에 이름이 적히는 일은 알기 쉽게 말하자면 태어나자마자 자동으로 가입되는 의무 의료 보험과도 같은 일이야. 당신도 혁명과 반역의 신이라는 이름으로 가입되어 있겠지. 하지만 그게 이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나?”
“딱히 의문을 품은 적은 없어.”
“어째서?”
“원래 그런 거니까.”
“그 원래는 누가 정했지?”
테오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테오조차도 이 에메랄드 타블렛 시스템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못 했다.
하지만 듣고 보니 이상하다. 신이 만들어지기 전, 아주 오래된 옛 신조차도 당연하게 여길 만큼 오래전부터 이미 존재해 온 초록 비석이라니, 저 비석은 대체 무엇인가?
“내가 논하고 싶은 건 에메랄드 타블렛의 출처나 원전이 아니야. 에메랄드 타블렛 자체의 의미지.”
“계속해 봐.”
“에메랄드 타블렛에 이름이 적히는 것. 이건 내가 원해서 가입되는 게 아니라,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가입이 정해져 있고 태어났으면 무조건 가입하게 되는 보험이야. 그건 매우 악질 보험이지. 심지어 가입을 거부할 방법은 없어. 모두가 가입하니까. 그렇게 법칙이 만들어져 있으니까. 자, 그럼 이 에메랄드 타블렛이 있으면 어떠한 짓을 하는 거겠어?”
“선을 긋는군. 필멸자와 불멸자. 인간과 신이 다름의 선을 긋게 하는군.”
“선을 그으면?”
“계급이 만들어지는군.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선이 생겨 버려.”
“그렇다면 적이 누구일까?”
뒷말은 필요 없었다. 테오는 주혁진이 던진 몇 마디의 말로 진정한 적을 알았다.
적은 에메랄드 타블렛. 에메랄드 타블렛이 있기에 계급이 생겼고, 제약이 생겼다.
신이라고 할지라도 생명체를 복종시킬 권한은 없다.
신 하나의 목숨과 생명체 하나의 목숨은 동등하다. 하지만 에메랄드 타블렛이 있는 한 동등할 수 없다.
에메랄드 타블렛이 말하길.
신명 있는 자는 없는 자보다도 우월하다.
신명이 두 개인 자는 한 개인 자보다도 우월하다.
“생명의 가치는 주먹의 크기, 힘의 크기가 아닌 그 본연의 가치가 따로 있을 터. 그 가치는 사람의 마음이 판단하는 것이지 저런 비석에 적힌 글귀로 정해져서는 안 된다. 그러니 저 비석은 해로운 비석이다. 하여 우리는 싸운다!”
“뜨거운 혁명을 위하여-!”
테오의 손짓에 맞춰 추종자들이 이터널 프레임을 던졌다.
화려하게 춤추는 혁명의 불꽃 사이로 혁명정신으로 무장한 트럭형 골렘이 달린다.
지구의 HL모터스라는 회사에서 개조한 8기통 골렘의 엔진에서 우렁찬 포효가 퍼진다.
그 포효는 노래였다.
혁명의 노래, 반역의 노래!
그 노래에 고취된 테오가 트럭 골렘의 위에서 옷을 벗어 던졌다.
“보아라-! 에메랄드 타블렛이여! 이게 바로 나다! 이게 바로 우리다! 이게 바로 반역이다!”
테오의 종족은 와일드 엘프다. 그냥 엘프가 아니라 와일드 엘프다. 와일드 엘프는 일단 엘프이기에 여타 엘프처럼 숲에서 살아가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엘프의 인상은 자연을 사랑하고, 생명을 소중히 하며 동시에 아름다운 예술품이며, 또한 인간의 수십 배의 수명을 가졌기에 그만큼 현명한 종족이라는 느낌이 있다.
하지만 와일드 엘프는 그냥 엘프와는 다르다. 그들은 모조리 다 무정부주의자이며 무소유주의자다.
자신들을 관리할 국가나 정부, 조직 따위는 필요 없다.
오로지 사냥할 수 있는 숲이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러니 자산도 필요 없다. 식사는 오늘 할 수 있을 것이면 충분. 어차피 모든 음식은 상한다.
과도하게 사냥해 봐야 썩기만 할 뿐이니 필요 없다.
무기는 자연이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지천에 있는 게 무기가 될 것들이었고 무기가 없다면 튼튼한 손과 발이 있다. 그러니 장비도 필요 없다.
그렇기에 무소유.
그렇기에 무정부.
즉, 와일드 엘프란 의복 따위는 입지 않고 숲을 뛰어다니는 오랑우탄 내지는 유인원 같은 종족이다.
생김새가 엘프였기에 미색은 빼어났으나 하는 짓이 저러하니 와일드 엘프는 여러모로 기피되는 종족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숲을 나온 와일드 엘프는 옷을 입었다. 그 덕에 사회화되어 다른 종족과 융화될 수 있었다.
허나 그래도 와일드 엘프는 와일드 엘프다. 와일드 엘프는 옷을 벗고 나서야 자신들의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내 전신전령으로 증오스러운 그대를 맞이하리라!”
“우리도 뒤를 따르자!”
테오의 탈의를 시작으로 추종자들이 일제히 옷을 벗어 던졌다.
상의? 하의? 속옷?
죄다 사치다.
죄다 필요 없는 것이다.
옷 따위는 족쇄다.
구속이다.
몸과 마음의 군살이다.
비만한 자에게 다이어트가 필요하듯 혁명하는 자에게 탈의는 당연하다.
와일드 엘프인 자는 이때가 기회이기에 냉큼 벗었고, 와일드 엘프가 아닌 추종자는 분위기에 타서 옷을 벗었다.
“기수의 뒤를 따르라아아아-!”
벗었다. 다 벗었다.
그러자 놀랍도록 기분이 좋아졌다. 다리 사이로 바람이 지나간다.
육신의 여기저기가 광야의 바람을 맞아 흔들린다.
흔들림과 추위, 이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자연스러운 것이 부자연스러운 것보다도 더 좋다.
“우리는-! 자유다아-!”
“억압받지 않는 자유!”
“우리는 한줄기의 바람!”
“우리는 끝없이 타오르는 불꽃!”
“아름다운 혁명을 위하여!”
수억의 추종자가 옷을 벗어 던지고 알몸뚱이로 광야를 달린다.
“…….”
그것을 저격 스코프로 지켜보던 바실리는 잠깐 눈을 감았다. 자신이 무엇을 본 건지 모르겠다.
왜 옷을 벗는 거지?
왜 저러는 거지?
기껏 구한 군용 방어구를 왜 벗어던지지? 이게 전략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가.
알아서 무장 해제하다니 망한 거 아닌가? 그런데 진격속도가 왜 더 빨라졌지? 장비를 벗었으니 무게가 줄어서인가?
수많은 논리적인 생각이 바실리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나도 모르겠다.
알 수 있는 건 하나였다.
“눈 썩겠군.”
인세에 지옥이 있다면 여기가 바로 지옥이다.
* * *
“이, 이, 야만인 놈들이……!”
법도와 계율의 신 데온이 인상을 구겼다. 신성한 에메랄드 타블렛의 성전, 만신전의 광야를 적이 달린다. 그냥 달리는 것도 아니고 무장을 하고 불꽃을 뿌리고 알궁둥이를 내보인 채 달려든다. 존재 자체가 신성모독이다. 이토록 신성모독을 할 방법이 있다는 게 놀랍다.
데온은 생전 이리 지옥 같으며 무엄한 꼴은 상상도 못 해 보았다.
데온은 이 광경을 보고 분노와 치욕으로 인상을 구겼다. 하지만 상당수의 수호자는 그만 이 기절초풍할 상황에 패닉에 빠져 버렸다.
“저, 저 미친놈들!”
“미친놈들이 몰려온다!”
“왜, 왜 벗는 거야?!”
잠깐의 패닉이었다.
초로 치자면 5초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5초 동안 놈들은 120㎞이상을 전진했다.
이 대치의 순간엔 아주 치명적이었다. 일선이 그만 접근을 허용하고 말았다.
“혁명의 죽창을 받아라아아아!”
문자 그대로 죽창을 든 놈들이 밀어닥쳤다. 수호군의 일 열이 일순간 지우개처럼 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