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94)
괴식식당-594화(594/613)
594화. 혁명 (4)
아무리 테오가 혁명과 반역에 미친 광신의 부류에 들어가는 자라고 해도 법과 규칙의 중요성을 모르지는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야생이라 할지라도 법이 없을까, 규칙이 없을까.
먹을 만큼 채취하고, 먹을 만큼 사냥한다. 봄이 오면 다음은 여름이 오고, 여름이 오면 가을이 온다.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고, 겨울이 가면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
일견 무도, 무법으로 보이는 자연과 야만이라 할지라도 법도는 있다. 법과 규칙은 생명이 존재하는 한 자연히 생긴다.
자연히 생기는 것이기에 테오조차도 법과 규칙은 인정한다.
“하지만 내가 에메랄드 타블렛의 법도를 인정하는 까닭은 그것이 중립이었기 때문이다. 법과 규칙이 중립성을 지키지 못하고 강자의 편을 들고, 부르주아의 의도와 의지에 따라 편리하게 이용된다면 그것은 법과 규칙이 아니다.”
파죽지세로 혁명군을 이끌고 전선을 누비던 테오가 죽창을 높게 들어 올려, 법도와 규율의 신 데온을 가리켰다.
혁명군은 수호군의 방어 라인을 무참히 부쉈다. 열 겹이 넘는 방어 라인을 붕괴시켰으니 이제는 좌시할 수 없다.
그리하니 법도와 규율의 신인 데온이 직접 응전하러 나온 것이다. 그가 언성을 높이며 거칠게 응수했다.
“네가 뭘 안다고 그렇게 우리를 규탄하느냐!”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안다. 내가 네놈들이 한 일을 모를 거 같나! 데온 이 망할 놈아! 사기와 기만의 신에게 붙어먹은 걸 만천하가 안다!”
“증거 있나?!”
“증거가 필요해? 증거가 필요하면 네놈들의 신탁 계좌나 까 봐라. 내가 장담하는데 네놈들의 수천 년의 예산만큼의 신력에 빵꾸가 났을 것이다!”
데온이 입을 다물었다. 과연 법도와 규율의 신이다. 거짓말을 어지간히도 못했다. 테오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신탁 계좌에서 신력을 대량으로 끌어다가 모략가에게 투자했지? 개새끼들아, 만신전은 신들의 은행이기도 하잖냐. 중앙은행에서 멋대로 사기꾼한테 투자해? 투자해 주면 검과 승리, 괴식과 하늘과 만검과… 아니, 이 새끼 왜 보고 있는데도 실시간으로 신명이 늘어. 여튼 시발, 내 친구 유승우를 조져 준다는 말에 냉큼 넘어갔으니 그게 부정행위가 아니면 뭐냐!”
신들은 자신의 신력을 필요한 만큼은 가지고 있고, 나머지는 만신전에 예치해 둔다.
그런데 에메랄드의 수호자들은 그 신력을 마치 자기 것처럼 써 버렸다. 승우를 죽일 수 있다고 자신한 모략가. 사기와 기만의 신. 노스트라다무스에게 투자하였다.
“말이 투자야. 실상은 유승우를 죽여 달라고 살인 청부한 것과 다름이 없지 않느냐! 법과 규칙이 한 개인을 묻기 위해서 살인 청부를 해? 이걸 압제라 말하지 않으면 무엇이 압제겠나!”
“으으으으음-!”
수치심에 데온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 또한 법도와 규율의 신이다. 법도의 중함과 규율의 중함을 알고, 중립성. 공명정대함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임을 안다.
그렇기에 참을 수 없는 수치심이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울화가 되어 시커먼 핏덩이를 토하게 했다.
“으윽. 건방지다. 감히 광신 주제에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이냐!”
“하하하. 메시지의 모순을 찾을 수 없으니 이제는 메신저를 공격하는구나. 치졸하다, 치졸해!”
“이 망할 놈이!”
“질서 신에게는 질서 신의 도덕이. 혼돈 신에게는 혼돈의 도덕이 있고, 광신에게는 광신의 도덕이 있다. 나는 네 말대로 광신의 부류에 속하는 몸으로 한 점의 부끄럼도 없이 이 자리에 섰다. 하지만 너는 어떻나? 너는 과연 질서 신의 도덕을 지키고 있다 말할 수 있나!”
데온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광신의 말이었으나 하나하나가 옳다. 정론을 입에 담고 있다.
그러나 데온으로서는 적이 옳은 말을 하고 아군이 틀린 말을 한다고 해서 방향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무기를 들었다.
“대화는 여기까지다!”
“오냐. 나도 대화는 여기까지다!”
현대전과는 다르게 고대 전쟁에는 이렇게 장수끼리 말을 하고, 논전을 통해서 아군의 사기를 올리는 일이 자주 있었다고 들었다.
삼국지에서 유명한 장수가 나와 일기토를 하거나, 군사와 군사가 마주 보고 논리를 내뱉는 그것이다. 리비는 그걸 처음 보았기에 눈을 빛내면서 그들을 보았다. 정말 멋있었다. 이득도 있었다. 사기가 더욱 올랐다. 문제는 하나였다.
“근데 테오 씨, 옷 안 입어요?”
“아까도 말하지 않았나. 나는 한 점의 부끄럼도 없이 이 자리에 섰다고. 옷은 부끄러움이며 동시에 오탁이다. 입을 필요가 없지.”
“잘도 홀딱 벗고 그렇게 진지한 이야기를 하네요.”
“너야말로 왜 입고 있지?”
“예?”
“지금 사람이 상의와 하의를 탈의하고 실오라기 하나 없이 마주 서지 않았나. 사람이 위나 아래를 깠으면 마주 보는 사람도 둘 중 하나는 까는 게 예의지. 자네는 예의가 없군.”
이 미친 신이 뭐라는 거야. 리비가 어이가 없어 보니 주변에서 따라오던 동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레난제스가 리비를 향해 말했다.
“의외로 괜찮습니다, 오더.”
“제스, 제스는 왜 벗은 거죠?”
“안 벗으면 힉스 씨가 찢는다고 해서 벗었습니다. 벗고 보니 좋은데요.”
“…….”
“오더. 속는 셈 치고 벗어 보는 게 어떻습니까?”
“이런 바보들 사이에 섞여 있는 것만으로 죽을 만큼 수치스러우니까 됐어요.”
지구 용병단의 대표인 힉스는 이렇게 말했다.
내 밑으로 다 벗어.
안 벗으면 찢어 버린다.
리비가 안도했다.
“제가 상관이라 다행이지 뭐예요.”
“아쉽네요. 좋은데 말입니다.”
“제스, 이번 일 끝나면 정신상담 꼭 받아요.”
“네.”
제스를 지나 리비가 전장을 살폈다. 외부 장갑을 벗겨 낸 워 기어가 하늘에서 천사와 싸우고 있고 지상에는 마찬가지로 외부 장갑을 벗겨 낸 탱크와 켄타우로스가 마주 포격을 날린다.
그 옆으로는 아무것도 타지 않은 보병이 탱크와 비등한 속도로 달리며 투창을 던지고, 그 반대편에서는 하늘에 닿을 듯 거대한 거신병이 산보다도 큰 창을 던진다.
화염병과 거대한 창이 마주치며 폭발하고, 탱크의 포탄과 켄타우루스의 다연장 미사일이 마주치며 폭발한다.
워 기어의 고주파 블레이드가 천사의 레이저 창을 자르고 천사가 화려한 곡예비행을 펼친다.
총체적으로 개판이라 레난제스가 투덜거렸다.
“탈의 후 돌격에 의한 패닉은 이제야 진정이 된 모양입니다. 아쉽네요. 조금 더 약빨을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래도 기습 작전은 좋았어요.”
벗고, 기동성을 확보해서 크게 회천하여 옆을 친다.
지구인 용병단은 망치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 덕분에 적의 수장 중 하나가 놀라서 튀어나오지 않았는가.
지휘관이 일선에 서서 혼란을 진정시켰다. 그리 진정되고 보니 이제야 싸움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역시 아쉽습니다. 탈의 덕분에 방어선 열 장을 날로 먹었으니 남는 장사라고 할 수야 있지만 역시 수가 너무 많습니다. 적의 숫자가 무량대수라고 할 때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 무량대수인가 봅니다.”
“무량대수이면서, 무량대수가 아닌 모양이에요. 봐요, 우리가 진격한 거리에서 적이 늘어나지 않지요? 이건 아마 점령한 범위 내에서 아군을 끊임없이 회복하고 보충할 수 있는 능력으로 보여요. 재생의 신역(再生神域), 아니면 복제 같다만. 개개인의 개성이 다른 걸로 보아 복제라기보다는 빠른 재생과 부활 같네요.”
“오더의 말씀대로라면 영역을 전부 점거하면 우리가 이기는 거군요. 그렇다면 혼란 통에 밀어 버린 열 겹의 방어 라인은 아주 큰 이득입니다.”
어영부영 방어진의 열 겹을 밀었다. 밀어낸 자리에서는 재생이 안 된다.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구십 겹 남짓의 방어진만 뚫으면 완전히 이긴다.
“오래 걸리겠네요.”
“오래 걸리겠군요.”
둘의 의견이 일치했다. 이 싸움은 생각보다 길게 갈 듯하다. 하기야 만신전을 공격하는데 단번에 밀어 버릴 수는 없지. 리비는 테오와 데온의 싸움을 힐끔 보았다.
과연 신명 두 개를 가진 신다운 위엄 있는 싸움이다. 다른 이들의 싸움과는 격이 다르다.
공간이 찢어지고 산천초목이 벌벌 떨 만한 압도적인 클래스의 싸움은 이 전장의 주역이 저 둘임을 보여 준다.
리비조차도 감히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그러니 정말 굉장하다만.
“하하하! 법도와 규율의 신 데온. 역시 예의를 아는 자군!”
“흥. 상대가 알몸으로 싸운다면 나 또한 알몸으로 싸우는 게 예의고 법도겠지. 나는 법도를 지킨다.”
“좋다. 좋아. 가증스러운 적이지만, 너를 호적수로 인정하마! 내 숭고한 혁명의 의지로 그대의 죽음을 기리리라!”
“법도와 규율의 신 데온! 순수한 수호자로서 강한 너를 반겨 주마!”
말은 멋지나, 몸은 알몸이다. 알몸의 신 둘이 뒤엉켜 싸우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가 그랬다. 리비가 결국 장탄식을 내뱉었다.
“이 많은 사람 중에 제정신은 저뿐인가요?”
* * *
“전쟁은 원래 제정신으로 하는 게 아니라지만, 너희들의 주인인 노스트라다무스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나 봐. 여기서 신력을 끌어오고, 빌려오고, 사기 계약으로 신력을 벌고. 그렇게 번 신력으로 떵떵거리면서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더 크게 벌어 보겠다고 나를 죽이자고 배팅해? 심지어 만신전에게도 투자를 요구했다니 진짜 제정신이 아니지.”
천 개의 검이 승우의 몸 주변을 맴돌았다. 행성을 공전하는 위성처럼 끊임이 회전한다. 하지만 그냥 회전하지 않는다.
다가오는 모든 것을 자르고 분해하고 소멸시키는 검의 결계다. 마법, 마탄, 화살, 검기, 검강. 그 무엇으로도 저 검의 결계를 뚫을 수 없었다.
“하, 하하.”
마법의 신이었던 유승우가 치를 떨었다. 그 많던 복제가 죽고, 죽고 또 죽어서 하나만 남았다.
최후의 생존자가 마법의 신이었던 유승우다. 이제 그는 마법의 신도 아니다. 신명을 빼앗겼다.
마법의 신뿐만이 아니다. 활의 신도 빼앗겼다. 싸우면서 새로운 신명을 각성한 수많은 복제도 마찬가지다. 복제는 하나하나가 두 개 이상의 신명을 각성했다.
하지만 그래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다. 각성하는 족족 그들도 다 신명을 빼앗겼다.
마법의 신이었던 유승우가 허탈하게 말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사기와 기만의 신인 노스트라다무스가 향상심이 강한 건 인정하지만 도를 넘었다는 거야. 이미 그만큼의 신력이 있으면 어디 가서 부족함이 없이 살 수 있었을 텐데, 굳이 나를 쓰러트리면서까지 최강에 집착할 의미가 있을까.”
“이미 최강인 자가 하는 말이니 기만으로밖에 안 들리는걸. 기만의 신명도 노려볼 참인가?”
그의 비아냥을 들으며 유승우가 회전하는 검을 하나 잡아 검의 표면을 쓸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지금도 이미 과분해. 신명이 백 개가 넘어 버렸으니 이 이상 욕심을 낼 필요도 없지.”
“과분한 줄 아니, 다행이네. 나다워. 하지만 나답지 않은 부분도 있었어. 왜 5년 정도는 우리를 살려 둔 거지? 마치 가르치는 듯, 노는 듯. 뭔가를 기다리면서 시간을 끌던데 어째서지?”
유승우의 복제이기에 단언할 수 있다. 유승우란 남자는 저열한 쾌감과 만족감을 위해서 괜히 시간을 질질 끌 사람이 아니다. 이유가 있지 않으면 하지 않을 것이고, 그 이유를 같은 유승우도 이해하지 못했다.
“저승길 선물로 가르쳐 줘.”
“저승길 선물이라니까 안 가르쳐 줄 수가 없네. 좋아, 가르쳐 주지.”
진짜 유승우가 싱긋 웃었다.
“내 예감에 따르면 너희들이나 지금까지 있던 모든 일은 결국은 모략가가 원하는 하나의 답으로 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아.”
“과정?”
“수많은 내 복제체를 만들고, 그 복제체가 수많은 신명을 익히고, 그 말도 안 되는 과정에서 에메랄드 타블렛이 오류를 일으켜서 신명의 벽이 엉망이 되는 것도 놈의 과정일 거야. 아니면 이게 내 신명이 108개라는 게 말이 되겠나.”
“말이 안 되긴 하지.”
“어쨌든 그래서 나는 조금 생각을 해 봤어. 놈이 원하는 건 결국 나를 이기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까 대충 답이 나오더라고.”
승우가 어깨에 검을 올렸다.
“너희들은 버림패고, 진짜 비수는 따로 있다. 그리고 그 비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