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604)
괴식식당-604화(604/613)
604화. 마지막 (2)
작전 실패의 가능성은 너무나도 적었다. 그도 그럴 것이 테오와 그의 혁명군은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었고 어디선가 합류한 백강혁과 민은 에메랄드 타블렛의 관리자를 잘도 요격했다.
거기에 바실리의 저격과 지구 용병단의 전술이 더해지니 사각이 없다.
“그래도 방심할 수는 없지.”
“바실리 자네도 벗으니까 한결 보기 좋군. 근데 러시아 사람치고는 좀 부실한데, 역시 반은 영국인이라서 그런가?”
“닥쳐, 힉스.”
바실리가 힉스의 말을 짧게 끊으며 나이프를 겨눴다. 수치심으로 죽어 버리고 싶은 와중인데 말까지 하면 더 죽고 싶어진다. 차곡차곡 쌓이는 자살 스택이 느껴졌다.
하지만 바실리는 자살 충동을 억눌렀다. 지금은 짊어진 짐이 무겁다. 그걸 안다는 듯, 힉스가 느긋하게 말했다.
“나도 지금 방심하면 안 된다는 거 정도는 아네. 저 에메랄드 타블렛은 이를테면 최초의 법전 같은 것이라지? 저기에 적힌 법률이 즉시 실효성을 가진다고 상정한다면야 확실히 무섭겠지.”
지구의 분석가들은 에메랄드 타블렛의 존재를 분석하고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저것은 곧 세계의 법칙을 뒤바꾸는 힘이다. 인간이 찾아 낸 수많은 자연의 법칙, 과학의 이치를 에메랄드 타블렛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원한다면 차가운 불꽃도 가능하며 공기의 비중을 바꿀 수도 있으며 물의 분자구조조차 바꿀 수 있겠지. 그러니 바실리를 비롯한 지구의 전략가들이 걱정하는 부분은 하나였다. 힉스가 리볼버의 탄환을 장전하며 말했다.
“저놈들이 에메랄드 타블렛의 힘을 활용하기 시작하면 곤란할 거야. 오히려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은 게 이상하지 않나?”
“이상하지는 않아. 저들이 에메랄드 타블렛을 지키는 건 종교적인 신념도 상당수 관여했다고 봐.”
“에메랄드 타블렛의 수호자이기에 타블렛을 사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 수호군은 지금 상당히 몰린 상황이었고, 에메랄드 타블렛을 탈취 당할지도 모르는 지경까지 떠밀렸다.
핵무기를 지닌 국가가 망할 때 핵폭탄을 쓰는가, 안 쓰는가?
힉스와 바실리는 지구에서의 경험으로 안 쓰는 경우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럼 지금은 쓰겠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대책은?”
“지금 나 안 보여?”
지구 최고의 전략가. 천재적인 전략가라고 불리는 바실리가 대책이라고 내민 게 결국 탈의였다.
빨리 진입해서 후딱 일을 처리하는 게 전부라고? 힉스가 웃을 듯 말 듯 입을 씰룩거렸다. 그러자 바실리가 나이프로 뒷목을 치며 눈을 반쯤 감았다.
“차라리 시원하게 웃어라.”
“하하하하-!”
“웃지 마. 생각 이상으로 기분 더럽네.”
“웃으라고 하지 않았나? 정말 자네는 변덕스럽군.”
“제기랄. 빨리 일이나 하자고.”
투덜거리면서 지구 용병단과 혁명군이 에메랄드 타블렛의 신전 안으로 진입을 시작했다.
* * *
진입군의 최선두는 테오가 아니었다. 백강혁과 민이었다.
백강혁은 모시는 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탈의 버프를 받을 수 없었고, 민도 마찬가지로 탈의 버프를 받을 수 없었다.
테오보다는 승우를 믿는다.
화신이니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탈의 버프가 없어도 둘은 빨랐다. 민은 테서렉트의 학습 효과로 차원 이동과 공간 이동 마법을 터득했고, 백강혁은 승우의 무기 창고에서 실피드라는 정령검을 찾아 민첩성 250% 버프를 얻었다.
그래서 얻은 속도로 둘은 최전선으로 가 누구보다도 용맹하게 싸웠다.
“날이면 날마다 볼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요놈들아! 내 몰락의 힘을 쬐끔만 맛봐라!”
백강혁이 소리치며 정령검 실피드를 지면에 스치듯이 휘둘렀다. 그러자 바람을 타고 진득한 몰락의 파동이 물결쳤다.
뒤집어쓰면 방어력과 민첩성을 최하치까지 떨구는 몰락의 파동이 바람의 해일처럼 몰아쳐 적을 뒤덮는다. 그 파동에 서핑 보드처럼 올라탄 민이 하르페를 던졌다.
적의 목을 베는 마검이 적을 꿰뚫는다. 꿰뚫은 궤적을 따라 생기는 핏빛의 자국은 민의 새로운 능력인 혈사(血絲)였다.
“후으읍-!”
민이 혈사를 잡아당기자 목이 꿰뚫린 적이 봉합되어 한곳으로 몰렸다. 그것은 마치 죽은 시체가 모여서 만들어 낸 구형의 유귀, 레기온 같은 모습이었다.
민은 뒤도 안 보고 자신이 묶은 혈사의 끄트머리를 뒤로 던졌다. 그러자 혁명군의 8기통 골렘이 받아서 그걸 휘둘렀다.
몰락의 기운이 흠뻑 묻은 시체는 그 자체로도 괜찮은 공성추였다.
그걸 보고 백강혁이 히죽 웃었다.
“브라더, 우리 완전 악당 같지 않아?”
저주의 파동을 뿌리고 혈사로 묶고, 그걸 공성추로서 휘두른다. 빌런이라고 해도 믿을 법한 악랄한 공격법이다.
민이 한숨을 내뱉었다.
“나도 자각하고 있으니까 닥쳐.”
“자각은 있구나. 하긴 몰락의 신과 추살의 신이면 이건 악신 듀오지.”
“잡담은 그만하고 제발 좀 집중 하자.”
“집중이 되겠냐.”
적이 어마어마하게 강대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쪽의 전력이 더 좋다. 무한하다고 하는 수호군이지만 숫자만 많지 개인 개인은 별 게 아니다.
수호군의 지휘관급인 신은 신명 두 개인 강한 신이겠지만 녀석들도 생각보다 강하진 않았다.
원인은 간단하다.
“저놈들 병신 같이 모략가 코인에 물렸잖아.”
모략가를 써서 승우를 이기는 거에 지나치게 많은 투자를 했고, 그 투자가 회수가 안 됐다.
그래서 가용 가능한 신력이 얼마 되지도 않는다. 다른 신들의 신력 통장까지 쥐어짜서 막아 보려고 해도 전투가 너무 길어졌다. 소문을 듣고 다들 알아서 신력을 되찾아간 통에 가용 신력이 이제 완전히 떨어진 상태였다.
“우리가 이미 이겼잖아.”
“이겼지만 안심할 수는 없지. 적이 뭘 할지 몰라.”
“브라더, 나까지 속일 거야?”
백강혁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주제에도 안 맞게 예리하게 굴다니 짜증이 치밀어 오르지만, 백강혁은 의외로 핵심을 짚었다.
민의 콧잔등에 주름이 잡혔다.
“꼴뚜기 같은 지능을 지닌 네놈이 뭘 안다고 아는 체를 해.”
“알 건 다 알지. 지금 지구인 측 지휘관은 아마 적이 저 에메랄드 타블렛을 가지고 뭘 할지 몰라서 걱정하고 있겠지만, 실은 저거 저놈들이 뭘 건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근거는?”
“저걸로 뭐 어떻게 될 거면 싸장님부터 죽였겠지. 그걸 못 하고 모략가 코인 따위를 사는 거 보면 저놈들은 저거 제대로 다룰 주제가 못 돼. 그렇지?”
“문어 정도의 지능은 있군.”
바실리나 지구의 전략가들은 에메랄드 타블렛의 기능을 유추하고, 그 사용을 경계하고 있으나 사실은 경계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일이다.
기능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저들은 그 기능을 쓸 수 없다.
정확히는 그 기능을 쓰려면 많은 신의 동의와 신력이 필요하다.
지금 상황에서는 동의도 구할 수 없고 신력도 없다. 그러니 지구의 전략가가 추측한 최악의 상황은 있을 수도 있으나, 한없이 가능성이 작았다.
그런데도 민은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경계하고 준비하고 있다. 백강혁은 그 무엇인가가 궁금했다.
“까놓고 말해 봐. 뭔데 그래?”
“쯧. 애매하게 눈치가 좋아서는.”
“빨랑. 빨랑.”
“후, 주변 상황을 봐. 지금 이곳의 분위기가 완전히 갈라졌잖아.”
이 전장은 결국 혁명군과 지구 용병으로 갈라진다. 용병은 소수였지만 강하고, 혁명군은 정말 정말 많았다.
이 둘의 분위기가 갈라졌다니, 무슨 말일까. 민이 두 파벌의 주도권을 잡은 쪽을 넌지시 보았다.
혁명군의 수장은 결국은 테오도르. 용병군의 수장은 파르코 힉스와 바실리 서트클리프다.
“저 둘의 목적은 서로 달라.”
“엉? 달라?”
“멍청한 놈. 머리 좀 굴려 봐라. 서로 성향을 생각하면 바로 답이 나오잖아.”
“성향이라…….”
백강혁은 테오의 처지에서 생각해 봤다. 테오의 화신 생활도 해 봤고, 쩔도 받아 봐서 그의 마음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테오가 본 에메랄드 타블렛은 증오스러운 계급주의의 상징이자 더러운 기득권이 만들어 둔 사악한 법전이다. 파괴해 마땅한 것이다.
“테오 형님이야 저걸 부수고 차원 법의 제약을 완전히 파괴하고 법이 없는 태초의 세상으로 만들려고 하겠지.”
“그래. 그럼 바실리 대령은 뭔 명령을 받고 왔겠냐.”
“전혀 모르게쓰요.”
“생각이 없는 새끼. 저 사람의 장비를 봐라.”
전라의 바실리는 무장 상태가 극히 빈약했다. 다 벗어서 탄띠도 없어서 그런가, 권총도 없고 특기인 저격총도 없다. 꼴랑 나이프 한 자루와 작은 가죽 가방이 전부다.
“아따, 맛나봉 하나하고 감귤 둘. 나이프 한 자루가 전부잖아.”
“개소리 말고, 가방.”
“개방이 왜?”
“저 가죽 가방에는 테서렉트가 들었어.”
“잉? 그거 너한테 있지 않았냐.”
“이십 일쯤 전에 총장에게 반납했지. 반납하니까 바로 여기로 보냈네. 자, 답 나왔지?”
“난 안 나왔는데.”
“머리는 장식이냐.”
“아 쫌, 구박하지 말고 말해 봐.”
“테서렉트는 가상 현실 구현 장치인 동시에 연산 장치이기도 하다.”
테서렉트의 본질은 복잡한 수식, 계산을 어마어마한 속도로 해결해 주는 연산 장치다.
연산이라는 특성 탓에 테서렉트는 가진 사람에 따라서 성능이 휙휙 변한다.
마법사가 쥐면 마법의 술식을 빠르게 펼쳐주는 법구가 되고, 백강혁이 쥐면 네모난 벽돌이 된다.
“총장이 쥐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마법의 컴퓨터가 되지.”
“어, 설마. 그럼?”
“그래. 총장은 에메랄드 타블렛을 해킹해서 가질 생각인 거다.”
에메랄드 타블렛이 있다면 지구가 새로운 패권 차원이 될 수 있다. 차원의 법칙을 자신의 입맛대로 조작할 수 있다. 게이트를 닫을 수도 있고 열 수도 있다.
그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신이 되는 것이다. 백강혁이 눈알을 굴리면서 테오와 바실리를 보다 식은땀을 흘렸다.
“그럼 이거 어떻게 되는 거야?”
“아마 에메랄드 타블렛을 앞두면 내전이 시작되겠지.”
양측 모두 서로를 아군이라 상정하고 진입하고 있다. 테오도 시라노도 숙련된 베테랑 지휘관이다. 조금의 이상한 낌새만 있어도 바로 반응하겠지.
그래서 둘 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아군을 섞어서 진입한다. 백강혁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저런 국면에서 내전이 시작되면 지구 용병단 다 죽는 거 아냐?”
“다 죽겠지. 혁명군은 빠르고 강하면서 숫자도 많으니까. 하지만 바실리도 믿는 건 있어. 총장이 에메랄드 타블렛의 해킹을 해 버리면 어떻게 되겠냐.”
민은 총장 주혁진의 신명이 기계장치의 신임을 알고 있었다. 에메랄드 타블렛이 만약 기계장치로 분류된다면, 그래서 해킹에 성공한다면 그는 만신의 동의나 신력이 없어도 에메랄드 타블렛을 다룰 수 있다.
즉시 법칙은 바뀌고, 총장의 입맛에 맞게 재배열된다. 그리되면 혁명군도 쓸어버릴 수 있겠지.
대수롭지 않게 찔러 본 백강혁이 식겁할 정도로 살벌한 이야기다. 백강혁이 갈 곳을 잃은 양손을 허우적거리며 말했다.
“야, 그럼 우린 어쩌지? 누구 편을 들어야 하냐.”
“멍청한 소리를 하고 있구나.”
민이 차분하고 상냥하게 웃었다.
“이 에메랄드 타블렛은 혁명의 신 것도 아니고 총장의 것도 아니야. 당연히 선생님 거 아니냐.”
“!”
에메랄드 타블렛의 처분을 두고 벌어질 혁명군과 지구군의 이파전이 삼파전이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