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61)
괴식식당-61화(61/613)
061화. 연쇄 게이트 (1)
매운 맛은 따지고 보면 맛이 아니다.
인간의 미각은 오미(五味)라 하여 단맛, 신맛, 짠맛, 쓴맛, 감칠맛만을 맛으로 인정한다.
그럼 매운맛은?
매운맛은 온점과 통점에 위치한 뜨거운 감각과 고통.
즉, 통증이다!
승우가 만든 스튜를 한 입 먹은 예은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아팟!‘
반사적으로 입에 머금은 것을 뱉어버렸다.
그러자 치익- 하고 풀이 녹아내렸다.
‘염산?’
이걸 지금 음식이라고 줬단 말인가?
지옥에서 망자들이나 퍼먹을 걸 음식이라고 말한 건가!
예은의 눈이 승우를 비난하는 듯이 치켜떠졌다.
그러자 승우는 남의 마음도 모르고 태연하게 강의를 이어갔다.
“매운맛을 표현하는 단어는 나라마다 제각각이야. 가령 독일어의 ‘Scharf’는 매운맛이라는 뜻 외에도 판자나 뿔의 날카로운 부분을 뜻해. 날카롭게 위장을 찌른다는 뜻이지. 터키는 쓴맛과 매운맛을 동일하게 ‘Acı’라고 하는데 재밌게도 한자의 매울 신(辛)도 맵다, 쓰다라는 뜻을 가져. 인간이 생각하는 건 비슷하다는 증거지. 영미권에서는 뜨겁다는 의미를 강조해서 Hot…….”
‘하나도 안 궁금한데요!!!’
퉁퉁 부은 입술 때문에 따지지도 못하겠다.
예은은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스튜 그릇을 봤다.
아스파라거스와 눈이 마주쳤다.
놈이 ‘안녕-! 널 찔러 죽일 거야!’라고 외쳤다.
‘아, 진짜 먹기 싫다.’
하지만 안 먹으면 죽는다.
천하무적의 귀환자가 동행하고 있는데 무엇이 걱정이냐고?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 귀환자님님님의 성격을 대충이나마 알 수 있게 됐다.
‘절대로 안 도와줄 거야.’
거래 관계에 있어서는 지나치리만큼 냉정하다.
그리고 이상할 만큼 남에게 무엇인가를 먹이는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괴식 챌린지를 완료하면 도와준다고 하질 않나.
지금도 도와준다고 하는 방향성이 이 ‘미치도록 매운 스튜’를 먹이는 일이다.
예은이 바라는 건 이런 스튜를 해주는 게 아니라, 연쇄 게이트로부터 구조해 주는 거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아마도 이 스튜 이상의 도움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걸 먹는다고 도움이 돼?’
하지만 이걸 먹는 것 외에는 답도 없고 그럴듯한 대안도 없다.
지금부터 죽어라 달려서 던전을 탈출하려고 해도 불가능하다.
연쇄 게이트가 발생한 이상, 새로운 던전과 융합하기 전까지는 탈출할 수가 없다.
그나마도 입구에서 대기 타다가 새 던전이 열리자마자 나가면 되지 않냐는 사람이 있는데…….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당연히 새 던전이 열림과 동시에 입구도 바뀌게 된다.
그래서 연쇄 게이트는 유난히 사망 확률과 전멸 확률이 높다.
‘먹는 거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긴 하네.’
먹어서 조금이라도 강해진 뒤 ISAC의 지원부대를 기다려야 한다.
하이에나로 불리며 이윤을 탐하는 길드 출신이기에 역설적으로 ISAC를 믿을 수 있었다.
놈들은 반드시 온다.
그러니 그때까지 살아남는다.
빠득하고 결의를 담아 이를 악물었다.
‘먹자! 먹고 죽자!’
눈물과 콧물을 머금고 스튜를 삼켰다.
와작와작하고 아스파라거스를 씹고, 고기도 씹었다.
마그마와도 같은 뜨거운 스튜가 입과 식도를 통해 위로 내려갔다.
마치 폭포처럼!
그리고 유성 같은 빠른 속도로 스튜가 식도 아래로 내리꽂혔다.
인간은 매운 걸 먹으면 땀을 흘리게 만들어져 있다.
이만큼 매운 걸 먹었으니 당연히 예은도 땀을 흘린다.
하지만 이것만은 예상하지 못했다.
‘따, 땀이 안 멈춰!?’
온몸의 땀구멍이 동시에 열렸다.
비 오듯이 땀이 흐른다.
그것뿐인가, 몸이 사시나무 떨듯이 떨리며 눈앞이 흔들린다.
시야가 선명해졌다가 흐릿해지는 걸 몇 차례나 반복했다.
그녀 본인은 몰랐지만, 그녀의 동공은 수축과 이완을 매우 빠른 속도로 반복하고 있었다.
감각이 점차 예리해졌다.
그렇게 감각이 예리해지니 스튜의 맛이 제대로 느껴졌다.
폭력적일 만큼 매운맛 뒤에 감춰진 쓴맛.
욕이 튀어나올 만큼의 쓴맛은 아스파라거스가 내고 있었다.
매운맛은 흐물흐물한 오이 같은 것이 내고 있었고, 아주 잔잔하게 신맛과 짠맛도 났다.
어디서부터 나는 맛인가 했더니 오우거의 고기 맛이었다.
‘상당히 공을 들여서 만든 요리구나.’
육두문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쓴맛.
심장이 벌렁벌렁 뛰고 온몸의 구멍이라는 구멍이 다 땀을 배출하는 매운맛.
그러면서 시큼하고 짠 고기 맛과 지방질의 느끼한 맛까지 동시에 느껴졌다.
이건 아주 세심하게 공을 들인 맛없는 요리다.
매운맛 사이로 느끼한 맛, 그리고 쓴맛 사이로 신맛과 짠맛이 동시에 느껴지는 건 보통의 솜씨가 아니다.
어지간한 맛은 서로 상쇄되어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요리는 달랐다.
1+1은 2.
2-1은 1.
무엇인가 더해지고 빠지면 숫자가 변하고 느낌이 변해야 하는데 이 요리는 한결같다.
맛을 더해도 맛없고, 매운맛으로 혀를 마비시켜도 여전히 맛이 없으며, 짜도 맛없고 셔도 맛없다.
그야말로 맛없기로는 장인의 솜씨가 담긴 요리다.
‘대단해…….’
그녀의 입가가 실룩거렸다.
상황이 웃기다.
귀환자씩이나 되는 사람이 정성을 담아서 만든 게 고작 맛없고 매운 요리라니.
그걸 먹으면서 죽네 사네라고 쩔쩔매는 자기 자신이 더 웃기다.
승우도 살짝 미소를 지었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떠라. 그러면 무엇인가가 보일 거야.”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러자 삼나무에서 나뭇잎이 하나 떨어졌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너무 천천히 떨어져서 예은은 나뭇잎을 보며 생각했다.
‘이게 주마등인가?’
결국, 예은은 맛없는 요리를 먹다가 죽은 것인가?
아니었다.
몸은 움직인다.
감각보다도 집중한 것보다도 느리게 움직이지만, 아직 몸이 움직인다.
식도를 태우고 들어가는 스튜의 맛도 그대로 느껴진다.
‘난 살아 있다.’
그런데 잎은 아직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구나. 나, 지금 엄청 집중하고 있어.’
사물이 느리게 보이는 것이었다.
곤두선 감각을 몸이 전혀 따라가지 못해서 반응할 수 없었던 것뿐이다.
모든 것이 느려진 상황 속에서 승우의 목소리만이 평소처럼 느긋하게 울려 퍼졌다.
“이 요리는 모든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지. 블랙 아스파라거스는 쓴맛을 가졌지만 정신을 맑게 하는 명정(明正) 효과를 가지고 있어서 성황이 즐겨 먹는다. 헬 인페르노는 온몸에 있는 불순물을 태워 버리고 그것을 땀으로 배출하는 효과를 갖는다. 오우거의 고기는 부족한 영양소를 채워주는 효능이 있지.”
효과와 효능을 생각하여 모든 걸 조율한 요리.
승우는 이 요리를 그녀를 위해서 만들었다.
“이 요리의 이름은 아직 없다. 너를 위해서 만든 음식이니까, 나중에 네가 붙였으면 좋겠군.”
나를 위한 요리라.
듣기에는 굉장히 좋은 말이다.
그 결과물이 맛없는 요리다만, 이 요리에 담긴 정성과 호의가 충분히 느껴졌다.
승우가 이어서 말했다.
“인간의 정신이 최고로 집중한 상태가 되면 감각이 무서울 만큼 예민해진다. 존, 명경지수, 무아지경이라고 하는데 스포츠 선수라면 한 번쯤 겪고, 또는 겪어보고 싶어 하는 상태지. 야구선수였다면 공이 수박만 하게 보이고 골프 선수라면 보이지 않는 곳의 지형이 훤히 보이기도 하며 레이서라면 사물이 느리게 보이고 지면의 상태를 직접 느낄 수 있기도 하지.”
예은은 고개를 끄덕이려 했다.
감각만은 아직도 느려서 몸의 속도가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초집중이란 능력의 진짜 활용성은 여기에 있다. 잘 성장한다면 이런 감각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될 거야. 그때까지는 많은 수행과 수련, 정진이 필요하겠지. 하지만 한 번 경험해 봤으니까 아무것도 모를 때보다는 쉽게 오를 수 있을 터. 나는 너에게 계기를 부여했을 뿐이니 앞으로의 성장은 너에게 달려 있다.”
감각이 시간을 초월한 이 느낌.
남들보다 더 깊게 생각하고 반응할 수 있다는 건 어마어마한 장점이다.
전투에서, 지휘에서, 생존에서.
살아가고 싸우는 모든 부분에서 이것은 큰 무기가 된다.
예은은 비로소 스스로가 삼류, 쓰레기라 여겼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았다.
감격으로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
‘좋은 능력이라고 한 건, 겉치레가 아니었구나.’
딱- 하고 승우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느려 보이던 사물들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폭발적으로 심장이 뛰고 있었다.
‘쿵쿵쿵’ 하고 혈류가 돌고 심장이 펌프질하는 소리가 머리끝까지 퍼졌다.
격심한 피로감이 들었으나,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다.
“지금의 그 감각을 기억해.”
승우의 목소리를 들으며 예은이 고개를 숙였다.
“예, 선생님.”
그녀는 왜 퍼스트 오더조차 이 남자를 존중하는지 진심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그를 만난 기적에 하늘을 향해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싶어졌다.
* * *
퍼스트 오더 랭크 65위.
블랙 호크, 윤은형.
그의 팀은 많은 퍼스트 오더 팀 중에서도 이색적인 구성이다.
팀원은 세컨드 오더이자, 엔지니어 겸 지휘관인 권능하 한 명뿐.
권능하가 수십 개의 스피드 드론을 사용해 다방면에서 정보를 모으고, 윤은형을 보조한다.
드론을 통한 보급과 시야각의 확보, 적의 분석.
작전의 흐름을 읽고 적의 약점을 찌른다.
때로는 부상당한 그를 보호하고 지원군이 올 때까지 지킨다.
권능하는 늘 하던 일인 만큼 능숙하게 수십 기의 드론을 제어했다.
이제부터는 던전에 돌입했으니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뒤따라 능하의 말이 이어를 통해 전해졌다.
– 추정 등급은 B, 최대로 잡으면 S등급이다. 오우거가 기본인 모양이니 단 한 방의 유효타도 허용해서는 안 돼.
“하! 힘밖에 없는 놈들에게 내가 맞을 거 같아?”
– 그렇게 말하면서 나대다가 갈비뼈가 다섯 대 나간 녀석이라면 하나 알지.
“젠장, 몇 년 전의 일을!
– 이게 천재의 숙명이지. 467일하고도 3시간 전의 일인데 어제처럼 선명하단 말이야.
“그거 안 되셨군!”
친구로서는 참 좋은 놈인데, 재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은형은 혀를 차며 지시대로 움직였다.
자타공인의 A섹터 최고속!
윤은형이 검은 화살처럼 빠르게 숲을 가로질렀다.
“적과 조우는?”
– 현재 속도 유지 시 앞으로 4초. 오우거 3체!
오우거 3체?
은형이 살짝 인상을 썼다.
“입구부터 꽤 많군. 던전 유형은 어떻게 되냐?”
-지금까지 정보로 이 천재가 추리해 본 결과, 이 연쇄 게이트의 유형은 포위 섬멸 같아.
“이런.”
포위 섬멸은 기존에 있던 보스 룸을 포위하듯이 일제히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 유형이다.
한껏 지친 상태에서 몬스터가 몰아닥치니 사망자와 전멸 확률이 극단적으로 높아진다.
여러 연쇄 게이트 유형 중에서도 어렵기로 유명하다.
능하가 포도당 캔디를 까먹으며 중얼거렸다.
– 들어간 사람은 레드 타이거즈의 길드장 장예은인가. 삼류라는 말도 아까운 헌터니까, 동행한 사람이 귀환자라고 해도 생사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겠는걸?
“운이 없군. 귀환자 사장이 잘 보호해 줬으면 좋겠지만…….”
– 응? 길드 쪽 사람은 죽든 말든 상관없다고 했잖아?
“뭐 길드쪽 사람도 시민이니, 덜 죽는 게 좋지.”
– 크, 많이 착해졌네. 윤은형.
“…….”
– 착하다, 착해.
* * *
능하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은형이 삼나무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검을 휘두르는 동작은 정확하게 뛰어오름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한발 늦게 소리가 퍼지고 오우거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그것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은형은 한 번 더 뛰어올랐다.
한시가 시급하다.
여유를 부리고 있을 틈은 없다.
은형은 다시금 자기를 가로막는 오우거를 베어 넘기며 나아갔다.
잠시 후, 목표로 한 보스 룸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보이는 모습은 은형과 능하가 예상한 것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주변을 잘 봐라. 장기나 체스, 퍼즐 게임을 하듯이 천천히 고려하고 움직임을 계산해서 모든 걸 활용하는 거다. 격투가 특기인 건 알겠지만, 그것에 얽매이지 마. 모든 것이 무기가 될 수 있다. 적이 다수라면 다수라는 사실조차도 활용해.”
“예, 선생님!”
레벨 6, 아니, 레벨 12의 삼류 헌터가 믿을 수 없는 몸놀림으로 오우거 5마리를 동시에 상대하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