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613)
괴식식당-613화 (외전 3)(613/613)
외전. 3화 – 둥지 짓는 드래곤 (3)
“인생… 아니, 용생. 이게 뭐냐.”
백강혁이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둥글둥글한 손, 볼록하게 솟은 뱃살. 한강 물에 비친 자신의 등짝에는 멋진 날개가 아니라 덮개 같은 자그마한 가죽 두 개가 붙어 있다.
뒷다리는 오동통. 주둥이마저도 오동통하며 꼬리는 분노한 나비의 빵빵한 꼬리와 비슷한 것이 달려 있다.
“이게 뭐냐고 진짜.”
몰락 드래곤으로 처음으로 변신했을 때는 이렇게 안 생겼었다.
엘더 드래곤의 위풍당당함에는 부족했지만 그래도 꼴에 용이라고 달릴 건 다 달려 있었고, 멋있기도 했었다.
검은 비늘 사이로 붉은 아우라가 휘몰아치는 잘 벼려진 한 자루의 마검과도 같은 디자인이었다.
근데 지금은 뭔 마스코트처럼 생겨 먹었다.
“거, 부관이는 좋아하겠네. 걔 쬬르디라면 환장하던데 딱 그 체형이구만.”
이러다가 모 회사에서 마스코트 계약 같은 걸 하자고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이상하다. 크기도 애매하다. 크면 아주 커야지. 멋있는데 애매하게 5m다.
큰지 작은 건지도 미묘해서 귀여움 노선을 타기엔 크고, 멋있음 노선을 타기엔 작다.
색은 또 어떤가.
“검고 붉은 색. 블랙 & 레드는 간지 그 자체였는데…….”
지금은 전체적으로 선명도가 낮다. 칠흑처럼 검은색이 아니라 그냥 뭐, 흰색 좀 섞인 탁한 검은색. 리얼 블랙이 아니라 그냥 뭐 잡블랙. 피처럼 붉은 선혈의 레드가 아니라 그냥 뭐 적당히 핑크? 싸구려색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설계도면을 확인하며 작업을 지시하던 알리스터가 콧방귀를 뀌었다.
“너 반백 년도 안 살았잖아.”
“엘프 누님, 반백이면 오십 살인데, 인간 나이 오십이면 할배거든요. 제 나이면 성인이고요”
“인간 기준으로는 그렇지만 용 기준으로는 응애 용. 해츨링이지.”
백강혁이 앞발로 눈가를 눌렀다. 정확히는 누르려고 했다. 이 썩은 팔은 자기 눈도 못 누르고 이마도 못 긁는다. 짧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둥거리다가, 그나마 길쭉하고 뭉툭한 꼬리로 눈가를 눌렀다.
“하, 용생. 그래도 지난번에는 멋있었거든요.”
“그건 정신이 육체를 초월한 한시적인 현상일 뿐이지. 지금 그 몸이 너의 원래 몸이야.”
“…….”
습관적으로, 반사적으로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하지만 욕을 내뱉지는 않았다. 지금 여기에는 없는 신문지가 두려운 탓이다. 반복 학습이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백강혁이 둥글둥글한 손으로 철근을 들었다.
“우이씨. 빨리 일이나 해야지.”
“좋은 자세다. 어차피 너희 집 만드는 거잖아. 나나 헤파 할아버지만큼 억울하진 않을 테니까, 힘내 봐.”
“알았어요. 야! 거기! 사진 찍지 마! 콱 그냥!”
사진을 찍는 시민을 향해 백강혁이 화를 냈다. 백강혁 인생 처음으로 남의 관심을 거절한 진귀한 순간이었다.
* * *
백강혁의 둥지는 지상보다는 지하로 뻗어나갔다. 지상은 아무래도 고도 제한법도 있고, 항공법도 있어서 크게 지을 수가 없다. 하지만 지하는 방공호를 짓기 위한 기존 규격과 기본 설비와의 연동성만을 챙기면 시청에서 쉽게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어중간한 건물 한 채 정도의 허가는 하루면 나오고, 자신의 힘으로 약간 개축하는 정도는 신고도 필요 없다.
“어쨌든 요구사항은 하납니다. 존나 화려하게 만들어 줘요.”
“그래. 네 요구사항이 반영된 도면은 잘 봤다.”
“어때요, 영감님?”
“음. 나쁘지 않아.”
헤파이스토스가 백강혁의 요구사항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볍게 하는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나쁘지 않았다. 이 녀석은 검에 대한 재능보다는 제작에 대한 재능이 크다. 검사가 아니라 직공으로 갔으면 분명 대성했겠지.
’아니, 지금도 충분히 대성했으니까 그 정도는 아닌가? 하여간 미적 감각이 나쁘지 않아.‘
헤파이스토스가 보더라도 충분히 멋지다 싶은 디자인에 적절한 미술품 배치였으니 백강혁은 분명 나쁘지 않은 의뢰인이었고, 동업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없진 않았다.
“멋지긴 한데 이렇게 만들 예산은 있나? 이렇게 만들면 당초 내가 생각한 예산에 오백 배는 나오겠는걸.”
예산, 즉 돈! 백강혁의 화려 취향을 만족하기에는 예산이 빠듯했다. 괴식의 신을 섬기기 위해서 만들어진 석상, 신상. 그림, 노래, 뮤지컬! 둥지 안에 미술관이 있고 음악 관람실이 있으며 동시에 뮤지컬 홀까지 있다.
이건 규모가 너무 다르다. 둥지 안에 멀티플렉스라도 지을 셈인가?
헤파이스토스가 냉정하게 도면을 추려내었다.
“일단 빼야 할 게 산더미로군. 이놈의 신상들 눈에 박은 보석이나, 몸에 두르는 보석부터 빼자.”
“안 돼요. 안 돼. 그게 빠지면 의미가 없다니까!”
“넌 둥지를 만들고 싶은 거냐, 미술관을 만들고 싶은 거냐.”
“둥지 겸 미술관이요.”
“하나만 해라.”
“그럼 멀티플렉스 둥지.”
“이런 욕심쟁이 녀석.”
“헤헷.”
헤파이스토스는 개인 의뢰를 거의 받지 않는다. 그래서 건축물을 지어 본 횟수도 손에 꼽는다.
유승우의 부탁이었기에 건물을 짓는 거지 보통이라면 거절했다. 그래도 동업자 사이에서 드래곤의 이야기는 들은 적이 몇 번 있다.
“드래곤은 동업자로서는 최악이라고 하지. 욕심이 많아서 포기를 모른다던가? 딱 그 짝이군.”
“칭찬 감사합니다?”
“칭찬이 아닐세. 정도껏 포기하라는 뜻이야.”
“시르요.”
“그럼 어쩔 건가? 예산을 아득하게 초월했는데.”
백강혁이 팔짱을 끼려고 버둥거렸다. 팔이 짧아서 안 끼워진다. 어쩔 수 없는지 꼬리를 끌어안았다. 뭔가 안아야만 마음이 안정되나? 해츨링이라서 그런가 보군. 헤파이스토스의 측은한 눈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백강혁이 으쓱거렸다.
“예산은 마련하면 그만이죠.”
“어떻게? 자네 대출도 이미 받지 않았나.”
그냥 대출도 아니다. 영혼까지 끌어 담은 대출이다. 신용, 담보, 코트까지. 걸 수 있는 모든 걸 걸어서 대출했다고 들었다.
“영감님, 한국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십시일반(十匙一飯)!”
“십시일반이라, 열 사람이 한 숟가락씩 밥을 보태면 한 명이 먹을 수 있다는 말이로군.”
“그거지요!”
“불결하기는. 위생을 뭐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러다가 병 걸려.”
“그런 뜻이 아니잖수. 서로 돕고 도우면 좋다는 겁니다!”
“흐음, 그거 다단계 사기라도 치겠다는 걸로 들리는데…….”
정답이었다. 정곡을 찔린 백강혁이 눈을 피했다.
“어이.”
“사, 사기까진 아니에요. 투자를 받는 거죠.”
“이봐?”
“이게 나만 좋자고 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잘 들어 봐요.”
백강혁이 혀를 살살 풀더니만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녀석이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허?”
“오.”
“허억!”
“그런 방법이!”
5분. 헤파이스토스가 넘어가는데 걸린 시간이다.
* * *
백강혁은 자신의 둥지를 짓는 일을 가볍게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크면 클수록 좋다. 그래서 많은 곳에 짜리몽땅한 손을 펼쳤다.
녀석이 제일 먼저 손을 뻗은 곳은 시장실이었다.
“시장님, 서울 시장이 되셔서 좋으시겠습니다?”
“어, 음. 예. 예. 좋지요.”
재해복구 지역 A섹터가 서울시로 전환되면 자신이 서울 시장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다음은 대통령도 노려볼 수 있다.
그 터무니없는 가정에 자신의 정치생명을 건 남자. 미스터 장트러블, 임성진이 백강혁의 마수에 걸렸다.
“시장님, 이번에 행정 복귀 명령이 떨어져서 여기가 이제 서울이잖습니까.”
“예. 예. 그렇지요.”
임성진은 정치권에 몸을 둔 사람답게 노련한 정치꾼이었으나, 약점이 있었다. 과민 대장 증후군은 치명적이다. 특히나 몰락의 신인 백강혁 앞에서는!
‘윽, 왠지 아까부터 미친 듯이 배가 아프다!’
과민 대장 증후군이란 시도 때도 없이 복통이 발생하고 설사를 유발하는 병이다.
생명에 위험은 없으나 사회적인 생명줄은 달랑달랑하다. 몰락의 신인 백강혁이 내뿜는 신의 아우라가 임성진의 사회적 생명줄을 격렬하게 흔들었다.
“앗, 앗.”
“왜 그러십니까, 시장님. 제가 불편하시기라도?”
“그, 그건 아닙니다만.”
“그렇다면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하지요. 제가 이번에 괴식의 신을 기념하고자 멀티플렉스를 지으려고 합니다만.”
“그, 그거. 멀티플렉스이기 이전에 백강혁 씨의 사유지… 억!?”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
임성진은 입을 조개처럼 다물었다. 입을 열었다가는 열려서는 안 될 다른 입이 열릴 듯한 감각이다.
‘아, 안 돼.’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슈퍼스타 백강혁 앞에서 그런 일을 저질러? 저 촉새에게 걸리면 반나절이면 파푸아뉴기니 사람에게까지 소문이 퍼지리라.
“아무튼 그래서 제가 멀티플렉스를 짓는데요. 그 앞에까지 역이 들어왔으면 좋겠습니다.”
“역, 이라 하심은?”
“지하철역과 버스 역밖에 더 있습니까.”
“허억!”
“자자, 잘 들어 보세요. 역이 들어서면 시에는 어떤 이득이 있는지, 어떤 현상이 발생하는지 차근차근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차근차근 설명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나쁜 일도 있고, 좋은 일도 있다. 임성진의 뇌가 빠르게 결과를 도출했다.
‘반반이야.’
이득이 반이고 손해가 반이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렇다면 해 줄 이유가 없다. 역세권은 어마어마한 이득이 걸린 일이라, 그걸 잘 주무르면 임성진에게 큰 이득이 생기는 황금 나무다.
그걸 그냥 넘길 수는 없…….
‘앗, 아아앗. 위! 위험해!’
마치 아래에도 심장이 생긴 것처럼 세차게 심장이 뛴다. 한근한근하고 심장이 뛰고, 두근두근하고 엉덩이가 뛴다.
그런데 백강혁은 쉽게 물러날 기세가 아니다. 이러다가 진짜로 파푸아뉴기니에 신문 기사가 걸릴 판이다.
“긍정적으로 검토하겠!”
“아이고, 아이고. 그럴 거 없습니다. 시장님, 제가 브라더에게 한 대 얻어맞은 후에 인간 불신증이 걸려서요. 신앙과 서류가 아니면 아무것도 믿지 못하는 몸이 됐답니다. 여기 서명하셔야지요.”
울며 겨자 먹기라는 말이 있다. 그 말 그대로 울면서 임성진은 서류에 서명했다.
“좋아. 역세권 타이틀 확보. 다음은 이 역세권을 미끼로 투자자를 모은다. 투자자를 모았으면 그 투자자를 미끼로 은행 대출을 추가로 받고, 다음은 대명 그룹에 접근해서 미술관 솔루션을 받으면서 콜라보라는 이름의 업무제휴를 맺는 거야. 그러면서 겸사겸사 유명 예술가에게 싸장님의 초상을 그리게 하는 거지. 컬렉션이 눈덩이처럼 늘어난 거야.”
백강혁은 예술가였으나 어디까지나 조각에 한정된 예술가였다. 그는 가지고 싶었다.
좀 더 많은 굿즈. 좀 더 많은 예술품. 세계에 이름 높은 예술가들이 만들어 낸 유승우의 초상화! 유승우의 풍경화! 괴식의 신을 테마로 삼은 예술품이 가지고 싶었다.
이건 드래곤으로서 가지는 근본적인 욕망인 ‘탐욕’과 ‘수집욕’이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잘 비벼진 산채 나물 비빔밥 같은 욕망이었다.
“그리고 하는 김에 조금 더 나가서 대머리랑 접촉해서 여기에 게이트 유도기와 방범 설비도 무상으로 넣으면. 치안도 완벽하지. 흐, 흐흐흐.”
검사가 아니라 예술가를 했으면 대성했을 남자, 백강혁.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사기꾼을 했으면 코드네임 그대로 정말로 슈퍼스타가 될 남자였다.
* * *
백강혁이 둥지를 짓는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규모로 짓는다. 그는 괴식교의 교황이기도 한 몸이라 교단 내에 이러한 소식이 전파되는 속도는 사이다가 목구멍을 넘어가듯 빨랐다. 그래도 최후의 양심은 있는지 교단의 자금을 유용하나 좋은 곳에 쓰겠다는 말로 교인들을 현혹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투자는 받았다.
그래서 괴식교도 사이로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그 소문이 게르니아에서 요양 중인 한 남자에게도 닿았다.
“뭐? 놈이 둥지를 짓는다고? 수백억 원이 가뿐하게 들어가는 멀티플렉스를?”
게르니아의 따뜻한 오두막에서 괴식을 받아먹으며 요양하던 남자.
민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가 먼저 지으려고 했는데, 이 건방진 자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