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64)
괴식식당-64화(64/613)
064화. 부모의 마음 (1)
각성자가 나타나기 시작한 지도 벌써 9년.
그동안 각성자에 대한 연구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거대 자본이 투입된 것은 당연한 말이요, 국가 단위에서 여러 각도로 조명되었다.
그렇게 세계 각국이 경쟁하며 나아갈 때.
ISAC의 총장은 모든 나라를 뛰어넘고 최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그는 다른 기업이나 나라보다 입지적으로 굉장히 유리했는데, 우선은 자신의 기업인 사이버 다인의 존재로 인하여 독자적인 연구가 가능했다.
또한 ISAC에서 얻은 방대한 실증 자료가 있으니 가히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 부를 만했다.
그런 ISAC의 총장에게 황당한 보고서가 올라왔다.
지금까지의 상식을 모조리 뒤집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화상 통신 속의 총장은 꽤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며칠 전에 연락했을 때는 완전히 저기압이더니만, 장예은의 소식이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이셨나?’
이정훈은 표정을 굳히고 넥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했다.
지부장이라는 직책이라고 해도 역시 총장과 연락하는 건 버겁다.
다행히 총장이 기분이 좋아져서 망정이지 나빴을 때는?
보직 변경이나 좌천으로 이어진 고위 간부가 수십 명이다.
– 음, 지부장. 각성자와 일반인의 차이를 아나?
총장이 넌지시 물었다.
상식 퀴즈인가?
“체내에 마력을 모을 수 있는 코어가 생성되느냐 안 되느냐 입니다.”
– 그렇지, 그럼 레벨 업은?
“오랜 훈련이나 많은 몬스터의 토벌을 통해서 코어가 분열하는 수로 결정됩니다.”
– 그래, 그렇지. 코어라는 건 단번에 성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원래부터 그만큼 확장될 가능성… 그러니까 재능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야. 가령 애초부터 백강혁처럼 재능만은 전 세계에서 100명 안에 들어가는 놈이라면 모를까, 범인에게는 불가능한 영역이야.”
총장은 즐겁다는 듯이 지부장이 보낸 보고서를 읽었다.
작성자는 권능하, 윤은형의 부관인 세컨드 오더다.
내용은 바로 장예은에 대한 것이었다.
– 그런데 삼류 헌터를 대번에 일류 헌터로 육성했다, 하룻밤 만에? 자네가 결재한 게 아니었다면 보고자를 당장 북극 경비대로 보내 버렸을 거야.
“윽, 북극 경비대는 좀…….”
– 내가 장예은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만큼 믿을 수 없는 데이터라는 거지.
“개인적으로 아시는 관계였습니까?”
집중해서 보고서를 보던 총장이 피식 웃었다.
– 아니, 친구나 지인인 건 아니고 내 정보원 중에 하나가 보고서를 올린 적이 있어. 아주 형편없는 소질의 삼류 헌터라고 했지. 그러니까 자네가 처음에 평가한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내용이라네.
그렇군.
고개를 끄덕이던 정훈은 새삼 총장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놀랐다.
그런 삼류 헌터에 대한 것도 전부 기억할 줄이야.
– 이능력이 재밌어서 따로 기억하고 있었을 뿐이야. 초집중이면 내 이능력의 하위 호환 중 하나거든. 저걸 갈고 닦으면 나처럼 고속 사고로 바뀔 수 있나 없나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군.
“그렇습니까.”
– 보고서에 따르면 장예은이 오우거 세 마리를 동시에 상대했다고 했지?
“예, 영상에서도 보시다시피…….”
– 음, 연비가 나빠 보이지만 나처럼 움직이긴 하더군. 재밌는 발견이야. 레드 타이거즈 길드 말인데, 앞으로는 조금 우대해 주고 일거리를 넘겨줘 보도록. 발전하는 걸 보고 싶군.
정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레드 타이거즈에게 애도의 기도를 올렸다.
‘총장의 마음에 들다니, 녀석들도 이제부터 갈려 나가겠군.’
마음에 드는 사람은 최적의 효율로 굴리고 갈아서 쓰는 사람이 바로 총장이다.
장예은은 분명 부자도 되고 강해질 수도 있겠지만 편히 살긴 글렀다.
즉, 동지가 됐다.
나중에 술이라도 한 잔 해볼까?
‘그럼 오늘 안건도 이걸로 끝인가.’
정훈은 슬며시 마무리를 준비했다.
그러자 넌지시 총장이 말했다.
– 그럼 그 안건 말고도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예, 제가 아는 거라면 뭐든지.”
– 지금까지 조사 결과와 보고에 의하면 귀환자 유승우는 믿을 만한 사람으로 보인다. 이게 그쪽에서 보내준 자료의 결론이야. 지부장도 그렇게 생각하나?
이정훈은 자세를 바로 하고 생각했다.
아마도 이게 오늘 안건의 본론일 것이다.
장예은 따위가 아니라, 이게 총장이 묻고 싶은 말일 터.
그의 답변에 따라서 많은 것이 바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정훈은 제대로 답해야 한다.
하지만 이정훈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고 조금 오래 고민을 했다.
침묵이 흐르고, 그가 말했다.
“이정훈이라는 개인으로서는 그를 믿을 만한 존재라 생각합니다. 카리스마도 대단하고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습니다. 그저 인지를 초월한 존재라는 느낌만이 듭니다. 그러니 스스로도 인지 못 하는 사이에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 개인으로서는 그러하다. 그럼 지부장으로서는?
“조직도 국가도 무시할 수 있는 초인을 무방비하게 방치하는 건 ISAC의 통제력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극단적이군.
“그는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S랭크 오버의 게이트를 닫았습니다. 같은 시간을 주면 한국을 지도에서 지우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 오하이오 주를 지운 바하무트 정도는 된다?
“전 그것도 최소한도라고 생각합니다. 잘하면 아시아도…….”
일개 인간이 그런 초월적인 무위를 가진다?
지금까지 귀환자들이 보여준 무위는 어마어마했지만, 그쯤 되면 인간이 아니라 핵병기다.
별도로 관리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정훈은 유승우의 위험성이 그만큼 높다고 보았다.
개인의 성격과 성질을 떠나 ‘초월적인 힘’이 무섭다.
S랭크 오버의 게이트를 순식간에 닫을 수 있는 그 끝없는 힘이 공포를 부른다.
하지만 이게 너무 나간 생각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일.
정훈은 질타를 각오하고 눈을 감았다.
그래서 그는 총장이 미소를 짓는 걸 볼 수 없었다.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총장님……?”
– 그러니 처음에 위험도를 SSS급으로 잡았지. 내 개인 연구팀이 만든 물건 중에 스카우터라는 게 있어.
“스, 스카우터요? 옛날 만화에 나오는 그런?”
– 그래, 게임 시스템이라는 게 착용자의 코어를 스캔해서 상태창을 구현하는 거잖아? 원거리에서 남의 코어를 스캔하면 남의 상태창을 보는 것도 가능하거든.
그런 물건이 있었어?
이 사람은 대체 비밀이 몇 개나 되는 거야?!
이정훈이 경악하건 말건 총장이 계속 말했다.
– 그걸로 귀환자를 스캔해 봤는데 말이야. 터지더라고.
“터지다니요?”
– 레벨 80을 넘는 건 확실하지. 측정이 불가능한 걸 넘어서 아예 기기가 터지는 건 처음 봤어. 그런 게 A섹터에 있다고 하니 에어컨이 필요 없더군. 감기 걸릴 뻔했지 뭐야.
“세상에…….”
– 자, 그럼 선택의 기로구나.
총장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정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택이라 하심은?”
– 삼류 헌터를 일류 헌터로 하룻밤 만에 길러낸 자에게 자식을 맡기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
자식?!
‘결혼을 한 건 알고 있었지만, 총장에게 자식이 있었어?!’
정훈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이건 최고 레벨의 기밀정보다.
총장이 말을 이었다.
– 그도 아니면 모든 걸 의심하는 ISAC 총장으로서의 마음이 서로 싸우고 있지.
“…어느 쪽이 이기실 거 같습니까?”
이정훈의 말에 총장이 ‘하하하’ 하고 웃었다.
– 내가 공과 사가 철저해서인지, 그도 아니면 고아여서 그런지 몰라도. 예전부터 이 말이 진짜 이해가 안 됐어.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라는 거.
“으음…….”
– 공적인 곳에서 자식이고 나발이고 뭔 의미가 있냐! 하고 화를 냈었지. 그런데…….
총장이 느긋하게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이제 좀 이해가 되네.”
* * *
아이의 각성은 위험하다.
이능력의 잘못된 발현은 몸을 다치게 한다.
최악의 경우 생명도 위험할 수 있다.
러시아의 한 아이는 어린 나이에 빙결 능력을 각성하여 신체의 각 부분이 동상에 걸렸고, 인도의 한 아이는 경화 능력으로 신체의 일부분을 바위처럼 바꿀 수 있었는데 그것이 중요 장기를 굳히는 바람에 사망… 등, 등등, 등등등.
“…….”
승우는 자신의 앞에 있는 ‘여러 불운한 사고 모음.ZIP’을 봤다.
참 다양하게도 모여 있는 불운 모음집이었다.
이걸 왜 보여주는가?
그야 아마도 은하를 맡아줬으면 하기 때문에 설득용으로 준비한 거겠지.
그건 이해한다.
하지만 쭈뼛쭈뼛 눈치를 보는 태지와 나비에게 안겨서 잠든 은하는 둘째치고.
“당신은 누구십니까?”
생긋 웃으면서 승우를 보는 묘령의 여인이 있다.
길을 걷다가 보면 자기도 모르게 돌아볼 만큼 아름다운 여성이다.
그런데 재밌는 건 보다 보면 언젠가 봤던 느낌도 든다는 것이었다.
긴 검은 생머리와 다소 고양이 같은 느낌의 미인과 인연이 있었던 적은 없는데?
하지만 확실히 아는 얼굴이다.
여성이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를 했다.
“백소향이라고 합니다. 은하의 엄마예요.”
“아, 과연…….”
승우가 넌지시 식당의 밖을 봤다.
태지보다는 조금 떨어지지만, 예전의 백강혁 정도는 되는 호위 다섯 명이 있다.
“은하의 부모가 꽤나 대단한 사람이라는 건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보다도 더 대단했네요.”
“어떻게 알았는지는 물을 필요도 없겠죠?”
“그렇지요. 퍼스트 오더 급의 각성자를 개인 호위로 쓰는 사람이 일반인일 리가 없으니까요.”
덤으로 태지는 개인용 광학 미채 망토 같은 수상한 장비까지 사용하고 있는데, 이 장비는 세컨드 오더인 민 오키프조차도 모르는 장비였다.
그는 드론이나 대형 기구를 사용한 광학 미채는 알아도 망토 사이즈로 작은 광학 미채는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그렇다는 건 세컨드 오더에게도 비밀인 ISAC의 기밀 장비거나, 혹은 위법 장비거나.
아니면 양쪽 다거나.
어쨌든 평범한 이가 구할 수 있는 장비는 아니다.
그리고 지금 그 의문이 풀렸다.
“은하가 한국 최고 그룹, 대명 회장의 딸인 줄은 몰랐네요.”
“후후후.”
“그리고 대명의 백 회장에게 딸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네요.”
“후후, 항상 신세 지고 있으니 직접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승우는 골치가 아파서 살짝 인상을 썼다.
골치가 아플 수밖에.
승우는 한국인이라, 대명 그룹의 백소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한국 최고의 기업이고 그 기업을 1세대 창업주인 김해찬의 손녀가 이었다는 거.
장남과 차남을 제치고 장녀의 딸이 기업을 이어받는 초유의 사건은 시끄러울 정도로 요란했다.
그리고 더 요란했던 건 그녀의 결혼 소식이다.
승우가 곤히 자는 은하를 보며 말했다.
“그럼 은하의 성은 ‘주’ 씨 입니까?”
“네, 맞아요.”
“세상으로부터 숨기느라 고생이 많았겠군요.”
“물론이죠, 애 아빠가 아빠다 보니까요…….”
그녀의 결혼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신문 일면을 장식했었다.
그래서 승우도 그녀의 결혼 상대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전 프로게이머이자, 결혼 당시 사이버 다인의 회장.
현재 ISAC 총장, 주혁진.
아버지가 그라면, 은하의 정체를 숨기는 것도.
태지를 전속 호위로 두는 것도 이해가 됐다.
상황을 이해한 승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의 준비를 하기가 힘들었을 텐데, 용케 무거운 발걸음을 하셨군요.”
“아이가 많은 신세를 졌으니까, 꼭 한 번 만나보고 싶기도 했고. 부탁드릴 것도 있어서요. 부탁드릴 때는 직접 얼굴을 보이는 게 예의잖아요?”
그게 인간 대 인간의 도리긴 하지.
승우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은하의 각성 때문입니까?”
“예, 사고 모음집처럼 되는 일은 피하고 싶어요.”
“저의 뭘 믿고서 이러시는 겁니까?”
“백강혁과 장예은 씨를 그럴듯하게 육성한 실력. 교사로서 활동했던 경력. 민 오키프의 지병을 치료한 신묘한 회복술. 태지가 절대로 못 이긴다고 장담한 무력. 제 아이를 맡기기에 부족함이 없지요. 거의 모든 사태에 다 대응하실 수 있다고 봐요.”
조사는 다 했단 말인가.
승우가 턱을 긁었다.
그러자 백소향이 싱긋 웃었다.
“은하가 세상에서 세 번째로 좋아하는 고양이 씨도 같이 있고, 결정적으로는…….”
“결정적으로는?”
“잘생겨서요.”
“풉…….”
“우리 은하가 저를 닮아서 얼굴을 밝혀요.”
이건 농담인지 진담인지.
어쨌든 승우는 이들이 진지하게 온 것임을 알았다.
그러니 진지하게 상대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럼 뭐, 긴말은 필요 없겠죠.”
“받아주시는 건가요?”
“조사해서 아실지도 모르겠지만…….”
승우가 슬쩍 메뉴판을 가리켰다.
“저에게 뭔가 부탁하려면 먹어야 된답니다. 준비는 되셨으려나?”
백소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