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65)
괴식식당-65화(65/613)
065화. 부모의 마음 (2)
백소향은 재벌 3세다.
1세대 창업주.
그러니까 그녀의 할아버지 김해찬 회장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소를 판 돈으로 대명 그룹을 일궈냈다.
그 어느 재벌 1세대가 그러하듯.
그녀의 할아버지도 자신의 가난했던 과거를 현재의 부유함으로 덮으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그가 특히나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먹을 것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음식들.
비싼 음식과 유명한 셰프가 만들어내는 화려한 것들.
그렇게 그녀의 할아버지는 전 세계의 산해진미를 탐하는 미식가가 되었다.
김해찬의 자식들도 그런 아버지를 닮아 미식가였으며, 백소향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없이 자랐기에 더욱 열을 올린 재벌 1세.
그런 1세를 보고 자라 음식의 가치를 일찍 깨달은 2세.
그런 산해진미가 당연한 3세.
백소향은 재벌 3세로 태어나 미식가로서 자랐다.
정확하게 말해서 그녀는 이미 세상의 맛이란 맛은 성인이 되기 전에 거의 대부분 맛을 본 상태였으며 그 어떤 음식도 그녀에게 큰 감흥을 줄 수는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승우의 요리는 충격이었다.
“이게 요리……?”
요리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의문마저 들었다.
그녀가 아는 요리라는 건 일종의 예술이었다.
셰프가 요리를 통해 살면서 느낀 감성을 녹이고.
최고의 재료를 선호하는 조리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독특한 개성으로 승화한다.
무엇을 위해서?
요리라는 예술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즉, 요리는 셰프라는 예술가의 작품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적어도 백소향이 먹어온 미슐랭의 인증을 받은 스타 셰프들은 그랬다.
하지만 승우의 요리는 어떠한가!
“굉장히… 어그레시브하군요.”
“그렇습니까? 처음 듣는 평가로군요.”
공격적이다.
뭔 놈의 요리가 이리도 지독하게 공격적이란 말인가.
대중의 평가와 먹는 사람들의 평가 따윈 알 바가 아니라고 외치고 있다.
아무리 대단한 셰프라고 할지라도 요리는 누군가 먹어줬을 때 요리로서 성립한다.
그런데 이 요리는 ‘못 먹으면 빠져’라고 강하게 자기를 주장하고 있었다.
“주장이 강해도 너무 강해……!”
피처럼 붉고 마그마처럼 뜨거운 국물을 보라.
자비 없이 뜨겁고 한계가 없는 것처럼 맵다.
먹지 않아도 눈으로 알 수 있었다.
눈알을 파고드는 매운 연기, 이것은 캡사이신의 포효인가?!
보글보글하며 거품이 올라오고 터질 때마다 눈이 따갑다.
백소향은 자신의 이능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이 요리를 먹고 난 이후의 자신을 어렵지 않게 그려낼 수 있었다.
“이런 걸 먹었다가는…….”
언젠가 보았던 매운 떡볶이나 라면을 먹은 예능인처럼 될 것이다.
마치 극락조처럼 비명을 지르며 소란을 떨고, 괴로워하고.
급기야는 화장실로 뛰어가 고통과 설움 속에서 캡사이신 덩어리를 배출할 터.
‘그, 그건 안 돼!’
절대로 그런 몰골이 되고 싶지가 않다!
미식가로 자신을 키워준 할아버지를 위해서라도!
결코,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
백소향은 크고 깊게 심호흡을 했다.
상황을 정리하자.
‘우선 이걸 먹는 건 힘들어 보여. 응, 먹고 싶지도 않아.’
대명 그룹에는 할아버지 김해찬으로부터 전해지는 위기 극복 매뉴얼이 있다.
그 첫 번째.
피할 수 없는 위기라면 우선 상대와 교섭을 해봐라.
“먹고 싶지 않아요. 돈으로 안 될까요?”
“돈이라…….”
돈, 돈이다!
돈으로 대부분의 일은 해결 가능하다.
해결이 불가능했다면 금액이 부족하지 않았는가 다시 생각해 보자.
하지만 그녀의 믿음에도 불구하고 승우는 고개를 저으며 히죽 웃었다.
“그건 재미도 없고 반전도 없어서 좀 그러네요. 거절하겠습니다.”
“재미? 반전??”
“뭐든지 돈으로 해결이 된다면 재미가 없잖습니까.”
돈을 거절하다니!
가끔 이런 놈이 있지.
그럼 두 번째.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라.
“그럼 흑기사 돼요?”
“안됩니다.”
“아, 진짜…….”
“대타를 허용해 주면 다른 사람도 대타를 쓸 거 아닙니까. 그래서야 재미도 감동도 없죠.”
백소향은 단호하게 말을 끊는 승우의 눈에서 타협점 따위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단호박 같은 놈.’
백소향은 눈을 흘기며 자신이 아는 위기 극복 매뉴얼을 차례대로 실천했다.
그런데.
“안 됩니다.”
“안 돼요.”
“안 됩니다.”
“그게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하하하, 어렵게 생각할 거 없습니다. 드시면 되고. 안 되면 인연이 여기까지인가 보죠.”
뭐라고 말해도 씨알도 안 먹힌다!
깔끔하니 잘생긴 얼굴로 칼같이 모든 걸 끊어낸다.
“냉혈 인간…….”
“뭐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그럼 도전은 여기까지인 걸로 할까요?”
“끄응…….”
선택의 기로다.
이걸 먹고 추태를 부리느냐, 안 먹고 마느냐.
꼼수도 못 부린다.
정말로 이 두 가지 길밖에 없다.
소향이 눈을 흘기면서 명계의 지옥불탕을 봤다.
그리고 저걸 한 입 먹는 순간 옆으로 쓰러져서 흐느끼는 자기 자신의 미래를 보았다.
백소향 또한 각성자다.
싸울 필요가 없으니 헌터 자격을 따지 않은 것뿐, 헌터라고 불려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다.
요즘 같은 시대.
결국, 최종적으로 믿을 수 있는 건 자신의 힘이니까.
차곡차곡 레벨 업도 해뒀으며 전투 훈련도 받고 있다.
그녀가 각성자이며 높은 레벨의 전투 가능 능력자인 건 최고 수준의 기밀이다.
그래서 남편인 주혁진과 그의 최측근들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 그녀의 능력은 ‘단기 예지’.
1~3초 정도의 미래를 살짝 엿볼 수 있다.
예지라는 능력의 특성상 절대적이지 않으며 빗나갈 가능성이 높지만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한 미래 예지는 80% 이상의 정확도를 자랑한다.
그런 그녀의 능력으로 미래를 봤을 때.
고통에 차서 몸부림치는 모습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예정된 실패의 길이다.
실패할 걸 알면서 도전하는 바보가 또 있을까?
“와, 도저히 못 먹겠다.”
백소향이 장탄식을 내뱉었다.
스스로 판단하기에도 그렇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이 요리를 백소향이 먹는 것은 불가능하다.
알 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유승우는 괴식 챌린지에 3성 이상의 요리를 내놓지 않는다.
이유는 헌터들의 몸을 생각해서다.
유승우의 목적은 손님이 음식을 먹고 괴로워하는 것을 즐기는 거지, 자신의 음식으로 생명을 위협하거나 병이 생기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능력을 더 개발시키면 시켰지…….
그런데 4성 요리도 먹은 백강혁이 왜 이 요리는 먹지 못했을까?
어째서 장예은은 먹을 수 있었는가?
‘그 이유의 첫 번째. 절박함!’
백강혁은 이미 4성 요리를 먹은 적이 있다는 자신감에 정신적으로 한껏 느슨해진 상태였다.
반면에 장예은은 먹지 못한다면 죽는다는 환경에 있었다.
안전한 식당에서 먹는 사람들의 성공률이 떨어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테라의 요리를 먹을 때 제일 중요한 건 바로 정신력!
‘뭐, 못 먹어도 나는 은하를 돌봐줄 거지만.’
그녀가 명계의 지옥불탕을 눈앞에 두고 생각한 지 벌써 5분이 지났다.
좋은 것만 먹고 살아온 재벌 3세에게 이건 너무한 시련이었을까?
그렇다.
재벌 3세에게는 너무한 시련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아니었다.
“쓰읍, 어쩔 수 없지. 때로는 질 거라는 걸 알아도 싸워야 하는 거니까!”
백소향이 우드득 하고 머리를 꺾었다.
그러자 태지가 그녀에게 머리끈을 건넸다.
“회장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이게 괜찮아 보이면 태지 군도 아버님 따라서 안경 써야겠네요.”
“그럼 포기하시는 게…….”
“나 백소향이에요, 백소향. 저한테 지금 포기하라고 하셨어요?”
그녀의 사전은 조금 고장 나서, 포기라는 단어가 없었다.
태지는 그놈의 고장 난 사전은 슬슬 고치시지 하고 생각했다.
같이 어울린 지가 10년인데 어째 성격이 변하질 않는다.
“은하에게 최고의 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순 없지!”
백소향은 흥 하고 코웃음을 치더니만 그대로 스튜를 먹었다!
오랜 고민과 번뇌가 우습다는 듯이 와구와구 먹었다.
명계의 지옥불탕보다 더 새빨갛게 빛나는 어머니의 교육열!
그 순간 승우가 떠올린 건 ‘맹모삼천지교’라는 고사였다.
맹자의 어머니는 맹자를 위해서 세 번의 이사를 했다!
무엇을 위해?
교육을 위해!
아이가 자라나는 환경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이 아이가 어떤 아인데!’
백소향은 은하를 위해서라면 대명 그룹의 지분도 줄 수 있었다.
피 같은 지분도 줄 수 있는데 이깟 음식인들 못 먹을까!
매워도, 죽을 것같이 아파도 육체의 고통은 찰나에 불과하다.
참으려고 하면 참을 수 있다.
의지는 언제나 육체를 이기는 법!
그녀는 이를 악물고 은하를 위해서 스튜를 먹었다.
“매워어어-!!”
매워서 화나고, 짜증나서 화난다.
그래도 참고, 참고 참았다.
삼류 헌터를 일류 헌터로 둔갑시킨 육성의 달인.
귀환자 유승우 선생에게 은하를 맡길 수 있는 기회다.
지금을 놓치면 아마 다음은 없다.
모든 것은 딸을 위해서!
백소향은 이를 아드득 하고 물었다.
그런데 그렇게 20분여를 먹던 중이었다.
무엇인가, 이상하다.
‘먹다 보니까 먹을 만한데……?’
먹을수록, 땀이 흐를수록 먹을 만하다.
오히려 개운해지는 감도 있었다.
착각이지만 이 더럽게 짜고 느끼한 고기가 맛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시도 스푼을 쉬지 않고 움직이는 소향을 보며 승우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역시 부모의 마음이라는 건가, 단계를 넘어섰군.’
이 요리를 먹기 위한 두 번째 요소!
바로 스트레스!
혹시 이런 경험이 있지는 않나?
화가 나고 스트레스가 한계까지 쌓였을 때.
매운 떡볶이나 매운탕이 생각이 나고, 먹고 싶어지는 현상!
그것은 의외로 과학적인 현상이다.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 통증, 따라서 통증을 느낀 뇌는 엔도르핀을 생성한다.’
엔도르핀은 천연의 진통제라고 불리는데 몸 안에서 생성된다면 일시적으로 통증을 감소시키고 덩달아서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그러니까 스트레스가 쌓일 만큼 쌓이면 매운맛이 땡기는 것이다.
‘명계의 지옥불탕은 스트레스가 없다면 먹을 수 없어. 요리에 깃든 비법이 스트레스를 적극적으로 공격하는데, 스트레스가 없다면 단지 그저 죽을 만큼 맵기만 한 탕이지.’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다면?
그것을 모조리 불태워 버리고 땀으로 배출해 준다!
현대인에게 너무나 좋은 음식이다.
‘그러니까 요즘 한껏 해이해진 게이트 주둔군은 이걸 다 먹을 수 없지.’
듣자 하니 요즘 살판났다고 한다.
풀 메탈 히어로즈가 부담스러운 작업을 다 해치워 주고, 상부의 지원은 많이 받아서 휴가도 빵빵하고 아주 편안하다.
강혁만 하더라도 스트레스 받는 거 하나 없이 멋진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 녀석들은 이 지옥불탕을 다 못 먹어.’
이 탕의 완식을 위해서는 조금 더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있다.
승우가 평소보다 강압적으로 장예은과 백소향을 대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스트레스를 받게 하기 위해서!
그러나 백소향의 경우에는, 극한의 스트레스까지 받게 할 필요는 없었다.
관찰안으로 본 백소향의 성향 중 하나가 이미 만성 스트레스였던 것!
몸 안에 쌓인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다.
회장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육아 스트레스인지 모르지만…….
거의 병이 되기 직전의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었다.
오늘 지옥불탕을 먹지 않았으면 조만간 병원에 실려 가지 않았을까?
‘저만큼 스트레스를 쌓아둔 사람이니, 완식은 당연하겠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먹는 소향을 보고 승우는 이미 성공을 직감했다.
그는 돌아서서 조용히 화이트보드에 적힌 성공자 0명을, 1명으로 고쳐 적었다.
그러고는 조용히 펭귄 모양의 빙수 제조기를 꺼냈다.
“후식으로는 빙수를 준비했는데… 혹시 술 빙수 먹을 줄 아십니까?”
“없어서- 못 먹죠!”
그거 참 호쾌한 말이군.
승우는 웃으면서 빙수 재료를 꺼냈다.
* * *
“냐아~”
“헤헤헤.”
나비와 은하는 서로를 끌어안고 얼굴을 비볐다.
이제부터 같이 지낸다고 생각하니 너무 좋았다.
그렇게 화목한 둘을 뒤로하고 승우가 턱을 괴며 한숨을 쉬었다.
“맡는다고 데려온 건 좋지만… 역시 이건 좀 문제가 있군.”
가구가 없다.
아이를 재울 곳도 변변치 않으며 살풍경하다.
이곳에 있는 가구라고는 TV와 소파가 전부다.
“뿌잉?”
“음, 너도 그렇게 생각하냐.”
승우는 영식이를 들어 올리며 결심했다.
“가구를 사야겠어. 쇼핑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