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66)
괴식식당-66화(66/613)
066화. DIY (1)
승우가 쇼핑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다음 날.
태지가 고개를 숙이며 내민 것은 블랙 카드였다.
대명 언리미티드 블랙 카드.
한도 제한 없음.
대명 그룹의 모든 설비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며, VVVIP의 혜택을 제공하는 카드로 전 세계에 10장도 발급되지 않은 것이다.
태지가 카드의 기능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굉장한 카드인 건 알겠는데, 설마 이걸 가구 사는 데 쓰라고 준 건 아니겠지?”
“물론 아닙니다. 가구는 그냥 대명 백화점 가서 다 가져가시라고 했습니다.”
“허…….”
“그 카드는 그저 성의의 표시라고 하십니다.”
“무거워.”
1g도 안 되는 카드가 무겁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승우에게 보내는 기대가 무겁고, 은하에게 보내는 사랑도 무겁다.
과연 회장의 금지옥엽이다.
‘엄청 사랑받나 보군.’
승우는 입맛을 다시며 카드를 얌전히 폰 케이스에 넣었다.
“원래 이런 건 안 받는 주의지만,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 받아는 둘게.”
“감사합니다. 거절했다가는 더 걱정하셨을 겁니다.”
“그래. 그래도 이런 걸 주니 기분은 괜찮네. 왕들은 뭣도 안 주던데…….”
국왕의 명령으로 왕자의 검술을 교육했던 적이 있다.
그것도 무급으로-!
창고에 쌓인 재물이 어마어마하게 많을 텐데 말이야.
당연히 용사이니 사명감에 불타서 무급으로 해주지 않겠냐고?
다시 생각해 보아도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다.
승우가 살짝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고맙다고 전해줘.”
“예, 그럼 백화점으로 모실까요?”
승우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옷은 갈아입어야지. 늘어진 셔츠와 삼선 슬리퍼로 갈 곳은 아니잖아.”
“VVVIP존으로 갈 것이니 드레스 코드는 상관없습니다만?”
“나는 상관있어! 추레한 모습으로 가서 주목받는 취미는 없다고.”
“아아, 힘숨찐 놀이 말이군요.”
“힘숨찐?”
“일부러 추레하게 입고 가서 갑질하는 겁니다. 아는 사람 중에 그거에 환장한 사람도 있는 걸 보면 재미는 있나 봐요.”
“나는 재미없어! 안 그래도 팔자에도 없던 VVVIP 취급이라고 해서 낯 뜨거운 판에…….”
백화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인사를 받고, 일일이 물건의 설명을 듣는다.
직각으로 차례대로 허리를 굽혀서 인사를 하겠지.
백화점 직원에게 VVVIP 대우받을 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얼굴이 뜨거워지는 승우였다.
태지가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세계 최강의 귀환자님이 묘한 구석에서 섬세하시네.”
“아, 남이사!”
* * *
은하가 신이 나서 방방 뛰었다.
살고 있는 사람에게 실례가 돼서 말을 못 했을 뿐.
은하는 계속 그 집이 너무 살풍경하다고 생각했다.
기능미라고 해야 할까, 미니멀리즘이라고 해야 할까.
용사의 밥집은 필요한 것만 딱 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쓸쓸하게도 말이다.
오늘은 그런 집에 가득 가구를 채우는 날이다.
그래서 더더욱 신이 났다.
“방을 제가 직접 꾸며보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에요.”
“그러냥? 의외구냐.”
“그래서 어제 그림을 그려뒀어요!”
은하가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을 펼쳤다.
아기자기하고 전반적으로 분홍빛인 여자아이의 방이다.
귀엽고 포근한 그림이다.
나비는 그르릉 하고 낮게 울면서 콧수염을 움찔거렸다.
“귀여운 방이구냐!”
“그렇죠!”
그런데 있어야 할 게 없었다.
나비가 냥? 하고 고개를 까닥였다.
“침대가 없다냥?”
“침대요? 나이오비는 침대가 좋아요? 고양이 침대라면 여기 있는데요!”
“우냥? 이거 냐의 방이냐?”
“네!”
은하가 눈을 빛내면서 말했다.
나비는 살짝 눈을 피했다.
‘귀여운 방이지만 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냐. 냐는 전사다냐.’
전사에게 핑크는 어울리지 않는다.
아니, 이건 편견일까?
의외로 어울릴까?
나비는 조금 생각하다가 물었다.
“은하냐의 방은 안 꾸미냥?”
“저요? 제 방은 그냥 책상이랑 침대만 있으면 돼요.”
“우냥?! 그러면 안 된다냐!”
“하지만 필요 없는걸요.”
“냐아…….”
삭막한 가게를 안타까워하는 분위기를 풍겼지만, 은하도 사실은 꽤나 실용주의였다.
은하의 부모는 꽤나 특이한 사람이었다.
효율, 실용을 제1가치로 생각하는 아버지.
그리고 가지고 싶은 것은 모두 가졌기에 오히려 무소유의 경지에 도달한 어머니다.
가지고 싶은 것이라면 다 가질 수 있는 경제적인 풍요와 능력이 있지만, 둘 다 과소비나 사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둘을 보고 자란 탓에 은하는 꽤나 소유욕이 없는 아이였다.
승우가 헛기침을 하며 나비와 은하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이렇게 하자꾸나. 너희 둘은 같은 방을 쓰는 게 좋을 거 같아. 그러니까 상의해서 같이 방을 꾸며보는 건 어떠니?”
“그게 좋겠다냐!”
“같은 방 써도 돼요? 진짜요?!”
태지도 힐끔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명안이다.
나비와 같이 잔다면 안전과 경호 면에서도 확실히 더 좋아진다.
경호원인 태지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다.
은하로서야 당연히 좋은 일이다.
외동이라서 항상 외로웠고, 어머니 아버지와는 같은 방을 써본 적이 없으니 더더욱!
“빨리 가요!”
“우냥?!”
은하가 서둘러 나비의 앞발을 잡고 달렸다.
그래봐야 어린아이가 아장아장 뛰는 속도라 빠르진 않아서 태지는 느긋하게 말할 수 있었다.
“가구 보는 건 꽤 오래 걸릴 거 같은데요. 애들 밥도 먹입니까?”
“모처럼 백화점이잖아. 먹고 싶은 거 먹게 해줘. 나랑 영식이도 알아서 해결할게.”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흩어졌다가 가게에서 모이는 걸로 해야겠군요.”
“그래.”
태지가 꾸벅 인사를 하고 둘의 뒤를 쫒았다.
그렇게 일행이 사라진 이후.
승우는 어깨 위에 올라온 영식이를 쓰다듬다가 한숨을 아주 깊게 내쉬었다.
“뒤통수가 뚫릴 지경이야. 그만 노려보고 나오지 그래.”
“뿌잉?”
어깨 위에 있던 영식이가 팔을 물음표로 만들어 보였다.
“아, 너에게 한 말이 아냐.”
승우는 목을 풀면서 뒤를 돌아봤다.
고급 백화점답게 화려하게 장식된 기둥이 보였다.
그리고 승우의 눈에는 그 뒤에서 숨어 있는 한 사람의 모습도 보였다.
긴 은색 머리를 붉은 리본으로 질끈 묶은 엘프.
지구에서 엘프는 흔히 볼 수 있는 인종이 아니다.
특히나 저렇게 원망에 가득 찬 눈으로 보는 엘프는 하나뿐이다.
“알리스터.”
“나쁜 놈…….”
“아니, 왜 또 보자마자?!”
서슬 퍼런 원망의 기운이 느껴진다!
영식이가 깜짝 놀라 양팔을 느낌표 모양으로 만들었다.
승우가 살짝 당황하며 말했다.
“우리 마지막에 잘 합의하고 헤어진 거 아니었나? 내가 비난받을 일을 했나?”
“내 아이들을 다 가져간 주제에 맨손이라니! 어깨에 슬라임 하나? 장난해?”
“아, 그런 문제인가. 그렇다고 백화점에 쇼핑 올 때까지 무장하고 있을 순 없잖아. 무기를 들고 있는 쪽이 이상한 거라고.”
“엘프보다는 귀신을 속이는 게 쉬울 거야. 내 아이들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아. 맨 마지막에 만들어준 중화식도를 제외하고는 다른 아이는 손에 잡아본 적도 없지? 그냥 그놈의 용사 인벤토리에 처박아두고 먼지만 쌓이게 하고 있지!!”
“…….”
쌍권총이라면 백강혁에게 배울 때 잠깐 든 적이 있었다.
문제는 금방 배울 게 없어져서 다시 인벤토리로 들어갔다는 거지만.
승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계속 방치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벌써 둘이나 다른 헌터에게 소개시켜 줬다고.”
“그건 알아. 아까 지나간 덩치 큰 휴먼이 벨트를 가져갔고, 샤프 슈터가 단검을 가져갔더라.”
“잘도 아는군.”
“그 둘은 다 예의가 있어서 상견례 하러 왔었어!”
“상견례라…….”
민과 태지가 그녀를 찾아간 것도 이해는 됐다.
앞으로 알리스터의 아티팩트를 사용할 사람으로서 안면을 트기 위해서다.
왜냐고?
아티팩트가 한두 푼 하는 물건도 아니니 망가지면 정비를 받아야 되지 않겠는가.
멀쩡할 때 찾아가서 안면을 트는 것과 부서진 아티팩트를 들고 가서 안면을 트는 건 천지 차이다.
특히 엘프는 부서진 아티팩트를 들고 온 사람에게 갖은 구박을 다 하기로 유명한 종족이다.
그러니까 미리 찾아간 것은 꽤나 현명한 일이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아, 정말이지…….”
엘프들의 무기를 다루는 용어는 도통 적응이 안 된다.
상견례라고 하지를 않나, 결혼이라고 하지 않나.
단어의 선정이 참으로 미묘하다.
승우가 엘프어를 완벽하게 배우기 전에도 알고 있었던 단어가 있는데, 바로 바람둥이다.
하도 들어서 자연스럽게 외워버렸다.
“너희들 용어는 진짜 적응이 안 돼.”
“흥, 바람둥이 주제에… 나쁜 놈! 파렴치한!”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누가 보면 사고 친 줄 알겠다.”
“사고는 쳤지. 500명이 넘는 엘프의 자식을 거느린…….”
“넌 좀 다물고 있어라. 영식아, 쟤 조용히 시켜.”
“뿌잉-!”
영식이가 뾱 하는 소리를 내며 작은 입마개를 만들었다.
그리고 탄력을 이용하여 입마개를 날려, 알리스터의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조금 늦은 탓인지 여기저기서…….
‘어머나, 세상에.’
‘500명이나~’
따위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승우는 조금 얼굴을 붉힌 채, 알리스터에게 투덜거렸다.
“엘프 무기라고 하라고! 엘프의 자식이라고 하면 의미가 달라지잖아!”
“웁웁!”
“하여간 넌 무슨 엘프 장인씩이나 돼서 이렇게 무게감이 없냐!?”
장인이라고 하면 말수 없고, 묵직하게 등으로 말하고, 실력으로 증명하는!
그런 멋있는 장인들만 보아온지라, 이런 경박한 장인은 승우로서도 처음이었다.
‘이 녀석 설마 보기보다 어린가?’
엘프는 장생종이라 다들 젊은 모습으로 오래 산다만, 그러다 보니 오히려 어린 나이인 엘프를 구별하기가 더 어려웠다.
‘그래도 세습명까지 받은 장인인데, 어리지는 않겠지.’
관찰안이 있어서 필요 이상의 정보를 알 수 있지만, 그래도 역시 나이를 판단하기에는 엘프의 외모가 미묘해서 한눈에 구별할 재주가 없다.
승우는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 불만 많은 모습에 알리스터가 다시금 항의를 시작했다.
“웁! 웁웁!”
* * *
진정이 된 알리스터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건네주며, 승우가 물었다.
“그래서 크리스털 밸리의 장인이 백화점에는 어쩐 일이야?”
“나야말로 묻고 싶은데, 밥집 사장님이 여기에 왜 있는 거지?”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다니… 쯧, 난 목재랑 도구를 사려고 왔지.”
“목재? 도구?”
“가구를 사는 거보다 만드는 게 적성에 맞기도 하고 취미기도 해서 말이지. 그러는 너는 뭐 하러 왔는데.”
알리스터는 ‘후후’ 하고 웃으며 눈웃음을 쳤다.
엘프답게 확실히 매력적인 웃음이라, 카페에 있던 뭇 남성들의 심장이 두근-! 하고 뛰었다.
하지만 승우는 그걸 보고도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웃음으로 얼버무리려고 하지 말고.”
“아, 씨…….”
“엘프 놈들은 꼭 그러더라. 말문이 막히거나 하고 싶지 않은 말은 꼭 뭔가 있어 보이는 웃음으로 때우려고 해. 그거 하루 이틀 본 거 아니니까 나한테는 안 통한다.”
“제길, 넌 인간 주제에 엘프를 너무 잘 알아……. 짜증나.”
알리스터는 의자에 양반다리를 하면서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 뭐시냐. 이 백화점 주인 할배랑 조금 아는 사이인데.”
“호오?”
“그 할배가 아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비밀의 상점 같은 게 있거든. 그런데 이번 물품 중에 신목이 들어왔다더라고.”
“신목이라. 세계수?”
“신목이 무슨 세계수만 있는 줄 알아! 이래서 아마추어들이란…….”
“아마추어라…….”
“세계수는 정말, 정말 보기 힘든 거라고! 잔가지라도 한번 보는 게 내 소원이다!”
그 보기 힘든 게 인벤토리에 조금 있긴 하다만.
승우는 커피를 홀짝이며 말을 아꼈다.
흥분을 가라앉힌 알리스터가 말을 이었다.
“어흠, 나는 그 신목을 사러 왔다. 너도 목재 사러온 모양인데 꿈 깨고 돌아가는 게 좋아.”
“왜?”
“회원제거든. 추천도 필요하고 추천을 받았다고 해도 지금 가입 신청을 넣으면 1년은 기다려야 할 거야.”
“흐응… 그렇구나.”
얼마나 회원이 되기 힘든지.
알리스터가 그 과정을 설명했다.
승우는 그 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폰 케이스를 열고 블랙 카드를 봤다.
분명히 이거 모든 서비스를 이용 가능하다고 했던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