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72)
괴식식당-72화(72/613)
072화. 행운의 고양이 수염 (2)
본래 지구를 지키던 것은 UN이었다.
하지만 UN은 지구의 수호보다 단체의 이익을 추구하던 이권 집단이었다.
수많은 희생자를 낸 후, UN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ISAC가 건립됐다.
그렇게 새로운 질서가 된 ISAC에게는 적이 많았다.
과거 UN의 중심이었던 이들이자 다시 과거의 영광을 되찾길 원하는 구세력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타국의 안전을 망쳐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극우주의자.
그저 자신의 영달만을 꾀하는 개인 쾌락주의자들은 언제나 골칫거리였으며 영문 모를 논리로 무장한 테러리스트는 존재 자체가 위험한 자들이었다.
그 외에도 일반인과 각성자는 같은 지구인으로 볼 수 없다는 차별주의자들까지 생겨났다.
이들의 행보는, 과거 흑백황인종의 인종차별 논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격렬하고 난폭한 움직임을 보였다.
일반인과 각성자의 갈등…….
사실 이 싸움은 각성자가 질려야 질 수가 없다.
어느 쪽이건 사람의 생명까지 고려해서 판단하자면, 얌전히 있던 각성자들이 어떻게 나올까?
너무나 참혹한 일이 일어날 게 분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이들을 통제하고 억제하는 ISAC 총장은 하루에도 몇 번씩 테러의 대상이 되는 형국이었다.
ISAC는 총장인 주혁진이 만들었으며, 동시에 그를 따르는 인재들과 그의 사상이나 능력에 경도된 이들이 모여든 조직이나 마찬가지다.
바꿔 말해서 총장을 죽인다면 ISAC는 와해될 가능성이 크다.
그의 리더십이나 능력을 대체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ISAC의 적대 조직으로서는 고맙게도 말이다.
그러니 그를 향한 테러는 날이 갈수록 격화되고 거세졌다.
이러하다 보니 자식이 있다는 게 알려지면 좋지 못한 꼴을 당할 것이 뻔하다.
총장은 ISAC를 만들기 전부터 그러한 상황을 예측했기에 은하는 출생부터 완벽하게 통제받았다.
지금까지 은하가 총장의 자식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
신뢰할 수 있는 총장의 지인과 서태지를 비롯한 총장의 개인 경호단.
그리고 대명 그룹의 백소향 회장 지인 두어 명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 한정된 사람에 당당하게 합류하게 된 민과 지현은 아주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저희는 이제 어떻게 될까요?”
“글쎄…….”
지현과 민은 지진이나 재난 상황도 아닌데 지부에 있는 세이프티 룸에서 대기 중이었다.
재난을 대비한 방공호이니만큼 있을 거야 다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자유가 없었다.
언제까지 여기에서 대기해야 될지 상상도 안 되는 상황!
지현이 중얼거렸다.
“듣자 하니까, 총장은 사이버 다인의 괴상한 발명품을 쓴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기억을 잃는 빨간약이라든가…….”
“그건 거의 도시 괴담 수준이군.”
“민 씨는 쿨하네요.”
“그야 냉정하게 생각하면 이건 상을 받으면 받았지, 벌을 받을 일은 아니잖아?”
무단 소환으로 인한 처벌을 내리려면, 글쎄…….
고양이 수염을 제공한 나비에게 해야 하나?
그도 아니면 그의 주인인 유승우?
소환한 주은하?
어느 쪽도 처벌받을 리가 없으며 처벌할 수도 없다.
“그 사람들이 처벌 안 받으니까 우리가 덤탱이를 쓸 수도……!”
“총장이 그렇게 비효율적인 사람으로 보여?”
“아, 그건 그러네요.”
그런 점에서 총장은 확실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능률과 효율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철저하니까!
과연 처벌은 없었다.
대기하던 둘에게는 각기 다른 번호가 하나 주어졌다.
총장에게 언제라도 연락할 수 있는 직통 번호였다.
그것이 의미하는 걸 깨닫고, 지현과 민은 말없이 몸가짐을 단정히 했다.
아무래도 출세 코스를 제대로 밟은 모양이다.
* * *
“아버지를 만나서 좋았니?”
“예! 너무 좋았어요!”
은하가 까르르 웃었다.
승우는 그런 은하를 무릎 위에 올리고 머리에 손을 올렸다.
‘마력이 눈에 띄게 안정됐어.’
백 가지의 약보다도 부모의 사랑이라는 건가?
제럴드 랜프로의 비법 후추도 꽤나 효과가 좋았지만, 아버지와의 10분 대화가 더 좋은 효과로 작용했다.
육체적인 면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 말이다.
‘마력은 정신의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
오락가락하던 이능력도 점차 안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승우가 옆에 있고 때때로 마력 등에 반응해 주기 때문에 큰일이 없는 것이지…….
아니었다면 불이 화르륵 하거나, 얼음이 쩌저적, 번개가 번쩍 하는 등의 일이 있었을 것이다.
아직 여러 능력들이 몸 안에서 발현하고 사라지길 반복하는 중이라 어떤 능력으로 각성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정신계가 될 것은 확실해진 것 같다.
‘원래 이런 건 아버지나 어머니가 해야 하는 일인데…….’
능력은 유전되는 경우가 많았다.
유전, 살아온 환경, 본인이 바라는 것, 취미, 재능 등 많은 것에 영향을 받지만 가장 큰 건 역시 유전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능력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도 부모의 의무이리라.
‘하지만 둘 다 바쁜 사람들이니 어쩔 수 없지. 능력도 안 될 테고.’
승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은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은하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나비에게 달려가서 재잘재잘 오늘의 일을 이야기했다.
“냥신 녀석, 제법 좋은 일을 해줬는걸.”
듣기로는 행운의 고양이 수염으로 소원을 이루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무리한 소원은 안 들어준다는데 그 무리함의 기준을 맞추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나?
그래서 기껏 수염을 손에 넣은 용사들도 줄곧 꿀밤만 먹는다고 해서 ‘꿀밤수염’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했다.
“그나저나…….”
하늘을 보니 날씨가 심상치 않다.
갑자기 기온도 내려가고 어둑어둑하다.
급하게 쌀쌀해지는 게 눈이 올 조짐이다.
기상예보로는 눈 소식은 없었는데, 아무래도 기상 예지 능력자들이 나무에서 떨어졌나 보다.
원숭이도 떨어지는데 어쩔 수 없지.
“애들아, 눈이 올 거 같으니 마당의 물건을 정리해서 들어가자.”
“네~”
“알았다냐~”
“뿌~”
이런 날은 아무래도 따뜻한 국물 요리가 잘 팔린다.
지금 괴식 챌린지로 파는 명계의 지옥불탕은 분명 뜨거운 탕이지만 맵기도 맵고 또 지나치게 뜨겁다.
아이들이나 다른 고객도 먹을 수 있는 평범한 메뉴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좋아. 그럼 오늘은 오뎅이다.”
* * *
어묵탕, 오뎅탕이라고도 하는데, 사실 어묵과 오뎅은 다른 뜻이다.
어묵은 가마보코라고 해서 으깬 생선 살과 밀가루를 뭉쳐서 만든 것이며 오뎅은 그런 어묵을 끓여서 만든 요리 이름이다.
즉, 오뎅은 어묵탕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지.’
이런 사소한 일이나 단어의 뜻에 연연하면 꼰대가 된다고 하던가?
승우는 스스로의 꼰대력(力)을 잘 알고 있기에 자제하는 중이었다.
어쨌든 그런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승우는 어묵을 상당히 좋아한다.
낚시라면 사족을 못 쓰는 취미 생활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단 어묵은 만들기가 쉽다.
테라에서도 어묵류의 음식은 만들기 손쉬운 음식으로 분류된다.
우선, 낚싯대 하나로 물고기를 낚고 준비해 둔 밀가루로 어묵을 만들면 된다.
그리고 밀가루가 없다면 으깬 살만으로도 만들 수 있는데… 의외지만 이러한 어묵 쪽이 좀 더 고급스럽고 맛있다.
‘그야 아무래도 밀가루보다는 생선이 비싸니까 그렇지. 테라에서는 밀가루가 더 비싸다만.’
테라에서 승우가 손수 요리를 한 것 중에 가장 많은 횟수를 차지하는 것에 어묵이 빠질 수 없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승우의 어묵은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가 밑 준비를 하는 걸 보고 강혁이 감탄했다.
“우, 우와. 생선 손질부터 시작하고 있어. 오뎅탕 만든다면서요.”
“시판되는 어묵도 나쁘지 않지만 역시 나는 내가 만든 어묵이 가장 맛있더라고.”
“으아, 손 많이 가겠다.”
“그렇지. 이것만은 정말 손이 많이 간다고 할 수밖에 없네.”
손질하는 생선은 모두 30마리.
많다고도 할 수 있지만 어묵으로 만들고 보면 생각 이상으로 양이 적어진다.
지인끼리 먹는 게 아니라 손님에게도 팔아야 하니까.
그러니까 수요를 위해서라도 시판되는 어묵을 쓰는 것이 몇 배나 간단하다는 건 승우도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요리인으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워낙 손이 빠른지라, 엄청난 속도로 생선이 줄어들었다.
몇 번 칼질을 하여 생선을 손질하고, 뼈를 바르고 살만을 으깨는데 그 작업 속도가 굉장했다.
그게 마치 마법 같아서 은형과 강혁은 멍하니 승우의 손을 보고 있었다.
“이것들은 요리라고는 모르니까 도와달라는 소리도 못하겠네. 보는 건 재밌냐?”
“아, 아니, 전혀!”
“예, 꽤…….”
은형은 획 하고 고개를 돌리더니만 조금 멀리 떨어진 테이블로 이동했다.
그러면서도 기웃기웃 보는 게 여간 신기한 모양이다.
승우는 다 으깬 생선 살을 보면서 조금 고민했다.
‘흐음, 이대로 먹어도 좋지만 역시 모처럼 지구니까, 지구식에 맞게 해야겠지?’
부족한 것은 색과 다채로움이다.
그렇다면?
“새우와 오징어, 그리고 헤라기가스의 살을 넣어야겠군.”
어묵을 만들 때 생선 살과 새우, 오징어는 거의 베스트셀러, 환상의 고정 조합이다.
헤라기가스도 결국 어패류이니까 크게 다르지 않을 터!
‘야채는 조금만 넣어야지.’
승우가 입맛을 다시면서 간을 조절했다.
소금, 후추를 사용한 간 조절이야말로 맛의 핵심이다.
물론 승우는 괴식을 포함한 요리에서 간 조절에 실패한 역사가 없었다.
“밀가루는 안 넣어요?”
“밀가루는 아주 조금만 넣을 거야. 많이 넣으면 내 기준으로는 맛이 좀 별로더라고.”
“그럼 벌써 다 된 겁니까? 의외로 간단하네요.”
“여기서부터는 모양을 잡아주고 튀기거나 찌는 단계지. 방식에 따라서 맛이 바뀌니까 꽤 재밌어. 자, 나비야!”
부름을 받고 나비가 달려와 경례를 했다.
어제 본 군인 영화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맡겨 달라냐!”
“좋아. 믿음직하군, 나비 중사!”
“우냣!”
나비가 앞발과 꼬리를 이용해서 찜기와 냄비를 동시에 꺼냈다.
다중작업은 나비의 특기 중의 특기!
이렇게 어묵의 준비가 끝났다.
승우가 허리를 폈다.
그럼 이제부터는 요리의 시작이다.
“자, 그럼 일본식으로 해볼까. 한국식으로 해볼까.”
오뎅은 일본에서 시작하여 한국으로 들어온 음식이다.
그러니까 당연하게도 여러 번 현지화를 거친 음식이라, 둘은 상당히 다른 길을 걷게 됐다.
오늘도 지옥불탕에 도전하다가 혀를 덴 아왈트가, 부채질을 하면서 말했다.
“그게 뭔 차이인지?”
“음, 굳이 말하자면 국물의 차이겠지요.”
“국물?”
“한국인의 소울은 마늘과 국물에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이 두 개는 중요한 일이죠.”
한국의 오뎅은 국물을 마시는 걸 기준으로 한다.
탕이라는 이름답게 건더기를 먹고 국물을 후르륵 마시며 뜨거움을 즐기는 요리다.
“일본식은 조금 달라서 말입니다. 국물의 비중이 낮아서 거의 건더기를 적셔 먹는 수준이죠. 들어가는 것도 그래서 곤약 같은 걸 넣어서 먹고, 문어라던가…….”
그러고 보니 저 아왈트라는 사람.
새빨간 것이 잘 익은 문어 같군.
승우는 실례되는 생각을 지우려고 고개를 흔들었다.
물론 그 생각은 가게에 있던 모두가 한 생각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던 아왈트가 본질적인 질문을 했다.
“그렇군. 그럼 뭐가 더 맛있나?”
맛!
어느 게 더 맛있을까!
그 답은 승우도 몰랐다.
“그건 꽤 민감한 질문이네요. 맛은 결국 주관적인 거니까요.”
“사장 개인의 취향은?”
“뭐, 저는 한국식입니다.”
한국인이니까.
아왈트가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소울 푸드라는 거군.”
소울 푸드라.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비슷한 느낌이다.
승우는 마음을 정하고 움직였다.
고민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여기는 한국이고 승우는 한국인이며 손님도 한국인이 대부분이다.
굳이 일식으로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나비가 어묵을 튀기고 굽고 찌고 하는 동안 승우는 나머지를 준비했다.
오뎅은 결국 탕!
재료를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요리다.
육수에 파를 비롯한 색깔 야채를 넣고 각양각색의 어묵을 넣는다.
그리고 약간의 해산물을 첨가해 주면 그걸로 끝!
승우가 첫 오뎅을 완성할 때, 데앵~ 하고 시계가 울렸다.
어느덧 저녁 식사 시간이다.
문이 열리고 지현과 민이 들어왔다.
그리고 강혁이 기다렸다는 듯이 둘을 향해 휘파람을 불었다.
“커플님들 오셨다!”
“이런 미친.”
민이 오만상을 찡그리고 지현의 얼굴이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