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83)
괴식식당-83화(83/613)
083화. 대미궁 (1)
말(言).
중국 오대십국시대의 정치가 풍도는 이렇게 말했었다.
입은 재앙을 여는 문이고 혀는 자신을 베는 칼이니.
입을 닫고 혀를 깊숙하게 간직한다면 어디서나 거뜬히 몸을 편히 하리라.
짧게 줄이자면 말을 아껴라.
침묵은 금,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특히나 계급화된 ISAC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ISAC는 세계 헌터 협회라는 별칭답게 세계적인 규모로 활약하는데, 주기적으로, 정확하게 말해서 한 달에 한 번 지역별로 총연합회의라는 것을 한다.
아시아는 아시아 지부끼리, 유럽은 유럽 지부끼리 말이다.
이런 날에는 여러 가지 말이 오고 갈 수밖에 없다.
“차고은 씨, 발언하세요.”
“전략 고문 차고은입니다.”
ISAC와 대명의 관계는 상당히 끈끈하다.
상당한 금액의 기부금과 대명의 회장이 총장의 안사람이라는 위치상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로 인해 대명 그룹의 사람이 ISAC에서 직책을 갖는 경우가 꽤 있다.
차고은도 그런 경우에 해당했는데 그녀의 직책은 전략 고문, 그러니까 남들이 듣기 ‘싫은 말’을 하는 직책이었다.
아시아 총지부회의 날.
차고은이 넌지시 말했다.
“A섹터 소속의 헌터 성장 속도가 기대치보다는 낮은 거 같네요. 좀 더 분발했으면 합니다.”
지적할 만한 일이었다.
세상에 단 한 곳.
헌터들을 폭발적으로 성장시켜 주는 용사의 밥집이 있는 A섹터다.
그런데 헌터들의 레벨과 스테이터스, 스킬 성장 폭이 지난달에 비해서 그다지 높아지지가 않았다.
이유를 꼽자면 우선, 지금 하고 있는 괴식 챌린지의 성공자가 너무 적다.
남자한테 그렇게 좋다고 소문이 나 지원자가 몰렸다만, 반대급부로 여성 지원자는 낮아졌다.
베네치아에서 온 퍼스트 오더.
미스터 좀비, 아왈트가 포기하고 돌아갈 정도였으니 이번 챌린지는 정말이지 참고 먹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리고 다음의 이유가 정말로 큰 문제였다.
바로 승우의 부재가 너무 잦았다는 것이다.
가게를 안 여는데 어떻게 먹으라고?
여차하면 가게의 문을 닫아버리고 취미 생활에 몰두해 버리니 괴식 챌린지를 할 기회가 꽤나 줄어들었다.
아이러니하게 이것은 대명의 책임도 있었다.
회장의 딸인 주은하의 교육과 육성 때문이라도 승우는 조금 더 여유를 갖고 가게를 운영하는 중이었다.
어쨌든 이 두 가지 상황이 맞물려서 성장 그래프가 그다지 발전하지 않았다.
“가타부타 말할 거 없이. 이유 불문하고 성장이 낮아졌다는 건 사실입니다.”
그래, 사실이지.
하지만 이 지적은 한 남자를 자극했다.
홍콩 지부의 지부장이자, 지역구를 아시아로 한정했을 때 가장 발언력이 높은 자.
창 리엔홍을 말이다.
“하. 하하하.”
일단 그녀는 고문이더라도 외부인이다.
ISAC에 적을 둔 사람은 아니다.
밖에서 온 사람은 무조건 외부인이지 않은가?
그런 외부인에게 내부의 일을 지적당하는 것은 ‘꽤나’ 짜증나는 일이다.
따라서 창 리엔홍은 A섹터의 지부장인 이정훈에게 이리 말했다.
“소문의 ‘용사의 밥집’도 별거 아니었나 보오? 그게 아니라면 한국 헌터들의 군기가 빠진 거지.”
오, 그렇지.
여기 놈들 군기야 항상 빠져 있지.
이정훈은 그렇게 인정은 하되, 납득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자식이 지금 날 갈군 건가?’
그도 그럴 것이 창 리엔홍은 군인 출신도 아니고, 삼합회 출신의 범죄자를 경영 능력과 실적만 보고 등용한 자다.
구차하게 돌려 말할 것 없이 이정훈은 그를 상당히 싫어한다.
아무리 세상이 위험하고 급하다고 해도 범죄자까지 등용해야 하는 현실이 싫고, 심지어 저 망할 창 리엔홍이 엄청나게 유능해서 잘 나가는 것도 싫었다.
경영 능력과 헌터를 쥐어 잡는 능력으로 보자면 전 세계에서도 세 손가락.
다소 많은 50대의 나이와 출신의 문제가 아니었다면 더 출세를 해도 할 사람이다.
‘그놈의 기공술인지 뭔지. 겉모습만 보면 나보다 어려 보이네. 젠장.’
요약하자면 싫어하는 놈이 유능하기까지 해서 더 싫고, 그런 싫은 놈이 자신을 지적해서 싫은 상황이다.
‘열받네?’
따라서 이정훈은 회의가 끝나고 자신의 바로 아래 계급을 가진 퍼스트 오더들을 호출했다.
랭크 10위는 현재 병상 중.
소집된 것은 윤은형과 백강혁이었고, 그들은 바로 이정훈의 질타를 받게 됐다.
“뻔질나게 밥집에 들어가서 놀지만 말고! 좀 더 적극적으로 챌린지를 하란 말이야! 발전이 없잖아!”
그야 출입은 많이 하는데 그다지 발전이 없는 이유가 있었다.
황지현의 말에 따르면 백강혁은 맛있는 음식만 골라먹고 챌린지를 기피하는 상황이라 보고됐다.
‘싸장님 밥이 얼마나 맛있는데 굳이 괴식을 먹을 이유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승우가 작정하고 만드는 고급 요리는 돈 주고도 못 구할 정도로 맛있다.
퍼스트 오더로서 오만 미식을 해온 강혁도 인정하는 맛집 오브 더 맛집.
맛있는 게 지천인데 굳이 괴식을 먹을 이유가 있을까?
그리고 윤은형은.
‘언제는 공부하라고 난리더니만…….’
잘난 척한 거치고 중간고사를 그만 망쳐 버렸다.
검기를 배우는 목표가 날아가서, 그리고 쪽팔려서라도 학업에 집중 중이었다.
벌써부터 기말고사 준비를 하는 건 좀 오버스러운 일이긴 했지만 학생이 공부를 하겠다는데 뭐 문제가 있을까?
이정훈은 입을 한일자로 다물고 눈총을 쐈다.
공부하면서 밥 먹으라 이거다.
그렇게 지부장의 내리 갈굼은 뼈아팠고, 짜증을 불러왔다.
둘 다 자기 팀으로 들어가서 할 말은 이것뿐이었다.
“지부장님이 우리 팀이 엉망이라신다!”
그런 소리를 들은 황지현은 민 오키프에게.
“오더가 저희 팀이 아주 못 써먹겠다고 하네요.”
라고 말했고 발끈한 민 오키프는 팀원들에게 이리 말했다.
“오늘부터 삼시세끼 모두 다 괴식 챌린지다!”
정말이지.
말의 힘이란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 * *
“끄아아아!”
“으아아악!”
“하필 매운 거라니! 난 매운 음식이 질색이라고!”
“못 먹겠다!”
거참, 난리다.
밥집은 점심시간부터 게이트 주둔군의 헌터들로 복작였는데 하나같이 괴식 챌린지에 도전한 사람들이다.
요즘은 어째 뜸하더라니, 오늘따라 유난이다.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탕을 먹는 모습이 웃기기도 하다만 오늘은 날이 꽤 덥다.
왜 굳이 이런 더운 날에 단체로 탕을 못 먹어서 안달인 것일까?
한국인의 전통적인 방식인 이열치열이라도 하는 건가?
“아이코, 하우! 매워라. 그게 아니라, 사장님, 권고가. 있었습니다.”
두툼한 앞발로 재주도 좋게 스푼을 움직이며 백곰 수인인 페로가 말했다.
“권고요?”
“ISAC에 적을 둔 헌터는 의무적으로 챌린지를 수행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지침이 떨어져서요.”
그렇구나, 하고 무미건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승우는 술 빙수를 한 입 입에 물었다.
짜르르 하고 시원한 맛과 알싸한 술의 맛이란!
‘아, 요즘 애들이랑 노는 데 맛 들려서 헌터들 관리를 별로 안 했지. 그래서 ISAC 상부들이 애가 탔나 보구만?’
일과 취미의 균형을 잡는 일은 역시 어렵다.
따지고 보면 밥집 경영도 취미의 영역이었지만, 그것은 뭐랄까- 괴식의 신으로서의 일도 겸하고 있어서 그렇다.
아무 생각 없이 낚시하고 영화 보고 야구 보러 다니는 것과는 궤가 달랐다.
승우는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헌터들도 조금 신경 써야겠어. 세상의 평화를 지켜주는 이들인데 나라도 알아줘야지.’
그럼 어떻게 할까?
스푼을 물고 승우가 생각을 정리했다.
‘음, 슬슬 이 메뉴는 내리는 게 낫겠다.’
지금까지 괴식 챌린지라는 이름으로 요리를 내걸 때는 흥미 본위로 그냥 내건 것이 아니다.
필요해서 선정했다.
첫 번째 음식인 콱은 ‘독 내성’ 스킬 때문에 만들었다.
이 스킬은 앞으로 균열이 심화됨에 따라서 반드시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음식인 명계의 지옥불탕은 스트레스 해소, 노폐물 배출, 건강 개선의 이유로 만들었다.
한번 몸을 깔끔하게 해둘 필요가 있어서다.
완식을 못 했더라도 이쯤 팔렸다면 헌터들의 체질 개선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차례!
‘자, 그럼 다음은 뭘 해볼까……. 음, 식재료가 별로 없는데 어쩌지?’
승우가 고심하는 동안에도 손님들은 차차 괴식 챌린지에 도전하고 실패했다.
그런데 어쨌든 간에 오늘 손님은 대부분이 헌터다.
평소에는 잘 오지 않는 사무직 출신도 있다.
많은 사람이 모이면 변수가 많아지는 법.
그러니까 재밌는 상황이 나왔다.
“다- 먹었다아아-!!”
“뭐?!”
“나도 다 먹었다! WRYYYYYY!”
“……?!”
지금까지 아무리 도전해도 실패한 현장직 헌터들을 제치고, 사무직 헌터들이 완식에 성공했다.
그것도 무려 두 명이나, 첫 시도에!
예상외의 상황에 현장직 헌터들은 망연자실했고 완식에 성공한 사무직 헌터들은 세상을 다 가진 얼굴로 포효했다.
전신에는 땀이 흥건하지만 만면에는 미소가 그득하다.
“으아아아-! 개운하다아아아!”
“다시 태어난 기분이야!”
“말도 안 돼!”
“우리가 그렇게 실패했는데?!”
승우가 성공한 사람들에게 박수를 쳤다.
“축하드립니다.”
“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다 먹은 거지?”
흥분이 가라앉고 나니 다 먹은 사람이 제일 어리둥절해했다.
먹고 보니까 솔직히 말해서 ‘별로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남들이 다 죽겠다, 이러다가 타 죽는다, 매워 죽는다고 쩔쩔맨 것치고는 그냥저냥이다.
아니, 오히려 괴식이라기보다는 맛있는 탕이었다.
먹을수록 속이 풀리고 개운해지고 뒷맛도 깔끔하며 깊은 맛이 나는 맛 좋은 탕!
이 정도라면 돈을 내고서 다시 먹고 싶은 그런 맛이다.
‘슬슬 눈치 챌 사람은 눈치 챘겠군.’
명계의 지옥불탕을 먹으려면 필요불가결한 요소가 있다.
바로 스트레스!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 있을수록 음식의 효과가 좋아지며 뜨거운 불 맛에 내성이 생긴다.
생명의 위험이 있는 현장직보다 사무직의 스트레스가 높다는 건 다소 의외였지만,
어차피 스트레스라는 건 개인 성향에 따라서 차이가 있다.
얼마 전까지 수십 번을 도전하고도 실패한 아왈트 같은 경우처럼 말이다.
그는 워낙 선천적으로 좋은 사람이고, 스트레스를 담아두지 않으며 머리숱만큼 깔끔하고 스마트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명계의 지옥불탕 완식은 버거운 일이었다.
스트레스가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 완식한 이 두 사람은…….’
건강에 이상이 생길 정도로 스트레스를 담아두는 내향적인 사람!
실제로 이들은 탈모 같은 각종 스트레스성 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이었다.
스트레스가 많으니 명계의 지옥불탕을 먹을 때는 단연코 유리하다.
“야, 너 땀 색깔이 왜 그래?”
“왜? 우왁! 이거 뭐야!”
한 사람이 휴지로 자신의 목덜미를 닦자 찐득한 검은 땀이 묻어나왔다.
혈관에 끼어 있었던 노폐물들이 배어 나온 것이다.
“노폐물?”
“내가 먹을 때는 이런 게 안 나왔는데……?”
“설마 다 먹으려면 조건이 있나?”
눈치 빠른 이들이 눈치를 채기 시작했다.
그러자 승우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자, 두 분이나 성공자가 나왔으니 이번 시즌 메뉴는 이걸로 끝!”
“엑?!”
“내일부터는 다른 메뉴를 준비할 테니까 다들 기대해 주세요!”
판단은 빨랐으며 결단은 더 빨랐다.
황급하게 시즌 메뉴를 닫는 걸 보며 몇몇 헌터들이 중얼거렸다.
“고, 공략의 실마리를 잡으면 냅다 닫는구먼.”
“이 야속한 사람…….”
* * *
테라에는 대미궁이란 곳이 있다.
균열이 열리고 연결된 게이트가 아예 테라에 융합되어 실체화되어 버린 희소한 경우로, 쉽게 말해서 던전이다.
단, 이 던전은 끝이 없다.
최고 기록은 유승우의 파티가 세운 기록인 1,229층.
대체 어디까지 이어져 있고, 어디가 끝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알 수 있는 건 역대 최대 규모의 던전이라는 것과 수용 인원이 사실상 무한이며 층마다 분위기가 바뀐다는 것 정도?
승우는 대미궁의 앞에서 몸을 풀었다.
제한 시간은 앞으로 10시간.
그러니까 다음 영업 개시 시간까지.
“최대한 많은 식재료를 모아간다.”
오랜만에 던전 솔로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