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84)
괴식식당-84화(84/613)
084화. 대미궁 (2)
테라 대륙의 최강국은 단연코 로프트기우스다.
대륙의 8분의 1을 차지하는 땅의 크기.
국왕 아론 6세의 선정.
착실하면서도 흔들림 없는 국정 운영.
든든한 후계자.
강력한 군사력과 그를 뒷받침하는 실속 외교까지!
로프트기우스가 최강국인 이유는 더 있었다.
우선 가이아교의 성소인 빛의 신전이 로프트기우스에 있다.
그리고 그곳을 총괄하는 신관장이 전설의 4 용사 중 하나, 레나토다.
레나토!
인간의 몸으로 신의 반열에 올랐으나…….
가이아의 신자로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의 권능과 업을 억누른 위대한 성인의 모습이란-!
“다음 보고.”
“예, 신관장님.”
중간관리직과 그다지 다를 바 없었다.
위에서는 신이 신탁이라는 이름으로 명령을 내리고, 옆에서는 국왕이나 왕족들이 왕명이라는 이름으로 좋게, 좋게 해달라고 청탁을 넣는다.
밑에서는 별거 아닌 문제에도 신을 찾는 신민들이 탄원을 올리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아래서 치이고 위에서 치이는 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 한 번도 이 일이 고되거나 때려 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신이 다른 신의 신관장을 맡아 하고 있는 셈.
불만을 가질 만한 상황이었지만 태어날 때부터 가이아교의 모태 신자였던 레나토에게 신관장의 노고는 당연한 일이었다!
“다음 보고는 신흥 세력에 대한 보고입니다.”
성기사의 말에 레나토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신흥 세력이요? 마왕의 잔당인가요?”
“아닙니다. 정확히는 모험가들 사이에 유행하는 사교적 모임입니다.”
“잠깐만요. 사교적인 모임이 저에게까지 보고될 일인가요……?”
“신관장님. 놀라지 말고 들어주십시오. 이들은 반(反) 정식(正食)주의자들입니다.”
“그런!?”
레나토가 크게 격동했다.
요즘 세상에 반 정식주의자들이라니!
성기사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렇습니다. 테라의 식문화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식문화가 우월하다는 사상을 내세운 테러리스트들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어, 어찌 그런…….”
“그들은 자신들을 신토불이단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신토불이…….”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데?
“무릇 모든 생명체는 자신이 태어난 곳의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논리로, 어떻게 해서든 맛있는 걸 먹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담긴 말입니다. 그들은 그 말 그대로 자신의 세계에 있던 음식들을 무자비하게 퍼뜨리고 있습니다.”
“퍼뜨린다고 해도 한계는 있지 않습니까. 이곳의 작물과 그들 세계의 작물도 다르고, 대부분의 요리 도구는 구할 수도 없을 텐데요?”
성기사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의 행동은 그런 것에 굴하지 않습니다. 가령 이런 겁니다. 감자라고 있지 않습니까?”
“지구에서 건너온 구황작물 말이군요. 아주 위험한 녀석이죠.”
감자는 문제가 많은 작물이었다.
기본적으로 맛있고, 조리하면 더더욱 맛있어진다.
그러면서 아무런 효과가 없다!
성기사가 착잡하게 말했다.
“놈들은 감자를 재배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씨앗을 가진 자가 건너온 겁니까!”
맛있고 배부르기만 한 작물!
따라서 테라에서 감자의 재배는 불법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레나토가 심각하게 말했다.
“농업의 기술을 가진 사람과 이세계의 요리사가 있나 보군요. 그것도 아주 강단 있고, 신념이 있는 자가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자를 비롯한 불법 식재료가 이세계 출신의 용사들과 모험가를 중심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게 귀족에게도 확산되는 조짐이 있습니다. 엘튼 자작가의 자제분들이 모임에 참가하고 있더군요.”
“귀족들까지… 대책 마련이 시급하군요.”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맛없는 음식을 먹는다.
그것으로 자신의 몸을 단련한다.
단련한 몸으로 국가와, 신에게 봉사한다.
이게 바로 테라의 사람이 가진 기본적인 생각이다.
“뭐… 이해를 못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저희 대륙의 음식이 맛없는 건 사실이고요.”
“시, 신관장님. 위험한 발언이십니다.”
“저도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우리의 음식으로 괴로워하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융통성을 발휘하고 있었고요, 제 친구들이 먹는 것도 전혀 말리지 않았지요. 아니, 그가 고향을 생각하며 괴로워할 때는 이세계의 재료를 구해 온 적도 있습니다.”
“신관장님!”
“숨길 게 있나요? 친구 따라서 저도 자주 먹었습니다!”
문화의 차이라는 게 있다.
그리고 이세계에서 테라로 건너와서 싸워주는 이들의 고충도 잘 알고 있다.
친구인 승우만 하더라도 김치가 먹고 싶다고 사흘에 한 번씩 꿈틀거리지 않았는가?
그런 그에게는 오히려 테라의 음식보다는 다른 세계의 음식을 권하던 것이 레나토다.
그러니까 레나토는 그렇게까지 꽉 막힌 인간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세계의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귀족들이 귀족의 의무를 잊고 있다면 상황이 다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귀족이 귀족인 이유는 바로 귀족의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맛에 눈이 멀어서 스스로에 대한 단련과 신의 자비를 찬양하는 일을 게을리하다니, 그런 자를 어떻게 귀족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쉬이 넘어갈 일이 아니군요. 이 일을 가만히 주시하다가는 큰일이 나겠어요.”
사상은 불과 같아서 가만히 지켜보면 커질 뿐, 쉬이 진화되지 않는다.
대응이 늦으면 걷잡을 수 없어질 터.
상위 귀족들까지 이런 사상에 오염되면 테라는 끝장이다.
레나토는 결정을 내렸다.
“주동자를 체포해야겠어요.”
“그게 말입니다. 녀석들의 본거지가 본거지다 보니, 꽤나 힘든 일입니다.”
“응? 본거지가 있는데 못 잡고 있는 겁니까? 대체 어디길래?”
“대미궁입니다.”
“대미궁? 용사들 입김이 교단보다 더 센 곳이긴 하지만… 못 들어가는 건 아니잖아요?”
레나토 역시 승우와 함께 대미궁을 1,229층까지 올라간 전적이 있었다.
“그게… 대미궁에 노점을 차렸습니다.”
“노점?”
“놈들이 평범하게 먹을 걸로 유혹해서 말입니다. 몇몇의 기사들이 들어갔다가 유혹당한 후, 다들 들어가는 걸 꺼리다 보니…….”
“…….”
“거기에 있던 모험가나 용사들이 결사 항전을 하기도 하고…….
성기사의 보고에 레나토는 ‘아이고’라고 짧게 신음을 흘렸다.
먹을 걸로 회유된 용사들과 모험자만 해도 골치가 아픈데, 정신 무장이 덜 된 기사들이 유혹되기까지 하다니.
“곤란하게 됐군요.”
* * *
“이게 뭐야…….”
오랜만에 대미궁을 찾은 승우는 간만에 얼이 빠졌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대미궁과 너무나 분위기가 달랐기 때문이다.
애초에 대미궁뿐만 아니라 던전이라 함은 대체로 눅눅하고 음습한 분위기다.
던전의 마력은 턱 하고 숨이 막힐 정도로 괴롭다.
그런 곳에서 용사와 모험가들은 몬스터와 생명과 생존을 걸고 싸운다.
분위기가 도저히 좋을 수가 없다.
어깨라도 닿으면 서로 고성을 지르고, 신경 줄이 날카롭게 서서 누구든 극도로 예민함을 표출하기 일쑤다.
그게 정상이다.
그런데 지금은.
“버터 감자구이 팝니다아!”
“고블린소테, 고블린소테 있어요!”
“슬라임 버블티 어떠심까!”
던전의 1층부터 이상하다.
축제 날도 아닐진대 뭔 잡상인이 이렇게 많단 말인가.
그것도 전부 음식 상인이었다.
“마, 맛있네?”
재료가 테라산이니 맛도 없을 줄 알았는데 먹을 만하다.
승우는 슬라임 버블티를 홀짝이며 고개를 흔들었다.
뭔가,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
상인이 사람 좋게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죠?”
“괜찮네요. 아니, 어떻게 버블티를 만들 생각을?”
지구에서 버블티는 타피오카로 만든다.
타피오카가 뭐냐면 카사바라는 고구마처럼 생긴 덩이뿌리 식물로 만든 녹말이다.
카사바에서 녹말을 추출하는 건 꽤 힘든 일이다.
그런데 그걸 전후 과정 생략하고 슬라임으로 만들다니!
“꽤 힘들었죠. 비슷한 식재료나 몬스터 식재를 다 써봤는데요. 힘들더라고요. 비슷한 걸 찾았더니만 그건 거의 맹독이더라고요. 카사바도 원래는 독이 있지만 그것과는 쨉도 안 될 만큼 센 독이요.”
“그렇겠죠.”
“그때 우리 알베르트 셰프님이 딱! 하고 조언을 해주는 거예요. 슬라임을 쓰라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큼 요리사를 기쁘게 하는 일은 없다!
승우가 관심을 보이니 그가 신나서 만드는 법을 설명했다.
하지만 승우는 이미 한 입 먹은 시점에서 만드는 법은 다 알 수 있었다.
신기한 건 그저 만든다는 발상 정도였을 뿐이다.
‘슬라임의 먹이를 하나로 통일시켜서 성질을 바꾸고, 졸여서 펄로 만든다. 이게 요지인데…….’
요리사의 발상은 아니다.
만약 진짜 요리사였으면 좀 더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몇 종의 테라산 식물로 펄을 만드는 게 더 나아. 그쪽이 맛도 좋고, 효과도 더 좋아.’
하지만 굳이 슬라임을 쓸 때의 장점이 있다.
많이 만들 수 있고, 방법만 알면 누구나 따라할 수 있다.
승우의 테라식 타피오카 펄 레시피를 따라할 수 있는 사람은 테라에선 열 명도 안 된다.
‘전체적으로 사업가의 방식이군. 알베르트 셰프라, 누구지?’
승우는 몇 군데의 노점을 더 돌아봤다.
고블린소테는 고블린의 허벅다리 살로 만든 소테인데, 주목할 만한 건 고기보다는 소스였다.
테라에서 기피되는 단맛을 아주 극대화시킨 달착지근한 소스를 썼다.
게다가 버터 감자는 지구에서 파는 버터 감자와 아예 다른 물건이었다.
감자를 갈아서 볶고 부친 건데, 까놓고 말해서 감자전이었다.
버터도 버터가 아니라 마가린, 그것도 우유는 한 방울도 안 들어간 몬스터 지방으로 만든 마가린이다.
거기에 사탕수수로 단맛을 더해서 매우 달달했다.
“감자도 문제가 많지만 사탕수수라니, 이거 거의 교단한테 장갑 던지는 수준인데?”
테라의 식문화를 부정하고 정면에서 들이박는 구성이다.
단맛은 그 자체로 중죄라서 테라에서는 이계의 작물, 그러니까 사탕수수를 재배하면 극형에 처한다.
이곳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음식은 초콜릿인데, 이세계 용사들이 가끔 가져오는 초콜릿에 30년 경력의 수행사제도 흔들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테라의 요리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단맛!
그 점을 파고들어서 단맛에 집중한 요리를 만들다니!
“완전 맛잘알인데?”
승우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 또한 이곳에서 40년을 보낸 용사.
여기서 살다 보면 단맛이 어찌나 땅기는지 잘 알고 있다.
오죽하면 콜라 한 병에 의뢰를 맡은 적도 있을 정도니…….
“흠, 재밌군.”
요리 실력들이 다들 빼어나다고는 죽어도 못하겠지만 그 감성이 재밌었다.
이세계 출신의 요리사가, 테라의 재료를 써서 억지로 맛있게 만들려고 노력한 요리.
요리사인 승우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 * *
알베르트가 점유하고 있는 곳은 대미궁의 1층부터 3층까지의 공간이다.
1층은 가벼운 주전부리, 2층은 제대로 된 식사. 3층은 던전에서 먹을 보존식을 팔고 있다.
1~3층에서 나오는 몬스터가 약하기 때문에 용사 개인이라도 층을 점거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무도 점거하지 못했던 건 누군가 개인이 점거하는 걸 용사들이.
또는 모험가가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알베르트가 해냈다.
“원래 입을 공략하면 다 해결되는 거야.”
“대단하십니다!”
“음, 내가 좀 대단하지. 그런데 특이사항이 뭔데 갑자기 달려와?”
“수상한 사람이 있습니다.”
수상한 사람?
알베르트가 움찔하며 눈치를 봤다.
“올 게 왔나? 교단 사람 같아?”
“아뇨, 그건 아닙니다. 1층부터 3층까지를 순회하면서 진짜 배부르게 먹던데요.”
“그럼 교단 사람은 아니겠네.”
교단 사람은 오자마자 기도하면서 난리를 부리겠지.
“근데 뭐가 수상해?!”
보고하러 온 전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졸라 잘 생겼습니다.”
“…….”
“알베르트 셰프님이 예전에 말씀했잖습니까. 잘생긴 용사면 대체로 거물이니까 조심하라고. 잘생긴 용사가 그리 먹어대는데 수상한 상황 맞지 않겠습니까?”
“아, 아아아…….”
그랬지.
그랬어.
알베르트가 한숨을 쉬며 천장을 올려다봤다.
진짜 이런 빡대가리들을 가지고 내가 잘도 일하고 있다.
망할 이세계.
“내가 한번 만나볼게. 어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