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92)
괴식식당-92화(92/613)
092화. 취했어요 (2)
맛있는 걸 멀리하는 테라의 문화에서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술이다.
술은 맛있어도 상관없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허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술안주는 맛있어서는 안 된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
“그건 그렇습니다만.”
민은 다소곳하게 앉아서 승우의 주정을 받아줬다.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 테라에서 먹는 술안주는 쓰레기고, 나는 테라인이 아니니 지구의 술안주를 먹을 권리가 있으며 그러니까 요리를 하겠다는 말이다.
맞는 말이긴 하다마는.
“이건 좀 과하지 않을까요?”
“그래?”
민은 잠깐 사이에 무려 4번이나 감탄을 했다.
우선 승우가 양손에 칼을 들고 공중에서 식재료를 손질하는 엄청난 묘기를 보여주었으며 완성된 요리는 깜짝 놀랄 만큼 맛있었다.
그리고 그 양은 일개 대대가 먹을 정도의 양인지라 상다리가 부러지다 못해서 전부 다른 요리들로 식당 안의 테이블이 가득 찰 정도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사람.
‘엄청나게 취했어.’
어느 정도로 취했냐면 필름이 끊어진 게 분명할 정도로 취했다.
거의 인사불성 수준이다.
그렇지만 말하는 게 또렷하고 행동거지도 완벽하며 특히 칼을 쓰고 요리를 하는 모습은 정말 흠잡을 구석조차 없었다.
취해도 검을 다루는 실력과 요리 실력은 변하지 않는다는 거겠지.
하지만 하는 짓을 보라.
이게 평소의 유승우란 인간이 할 짓인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지금의 선생님은 브레이크가 없어.’
차로 말하자면 액셀만 달린 것이다.
승우는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자자, 먹어. 먹으라고. 아니, 내가 아무리 맛있는 걸 해줘도 너는 왜 그렇게 마른 거야.”
“…….”
“아이고, 뼈만 남은 팔과 다리 보소. 내가 얼마나 먹였는데 살이 왜 안 붙나!”
“선생님, 전 예전보다 엄청 쪘습니다만…….”
“부족해! 허벅다리가 두 배는 두꺼워져야지. 격이 오르기 전까지는 싸움은 체중으로 하는 거라고. 적어도 태지 정도는 돼야-!”
“그, 그… 근돼…….”
태지와 비교하자면 보통 다 멸치가 된다.
녀석은 근육으로 압축된 근육맨이니까.
“응, 그러니까 먹어.”
“예, 옙!”
민은 최선을 다해서 안주를 먹었다.
어느 것이나 다 맛있고, 흔하게 메뉴로 나오는 것들이 아니었다.
고기 튀김은 생전 처음 보는 고기였는데 어째 파인애플 소스를 써서 새콤달콤했다.
새콤달콤한 고기라고 하면 이상하게 느껴지겠지만, 맛있었다.
‘과일 탕수육?’
다른 요리도 하나같이 이상했다.
초콜릿이 올라간 피자, 마시멜로가 들어간 콘 치즈, 야채 대신 과자를 넣은 곱창.
그야말로 괴식 중의 괴식이다.
‘그런데 왜 맛있지?’
효과는 별로 없는 거 같지만 맛은 있었다.
맛있고 의외로 먹기 쉬우며…….
‘칼로리 쩔겠다.’
먹는 즉시 영양분이 과충전 되는 느낌?
술안주라기보다 초급속 칼로리 충전 요리 같았다.
먹는 대로, 살로 가는 요리!
지현이 봤다면 사신이나 악마를 보는 눈으로 봤겠지.
“으으음, 목이 말라.”
승우가 얼굴을 살짝 찌푸리더니만 인벤토리를 뒤졌다.
그러고는 민의 상반신만 한 호리병을 꺼내서는 벌컥벌컥 마셨다.
“선생님. 그건…?”
푸하아-! 하고 입에서 진짜로 불을 토한 승우가 히죽 웃었다.
“이거? 드워프들이 먹는 화주라는 건데, 조금 도수가 높은 물이야.”
“물? 술이 아니라요?”
“안 취하면 물이지. 내가 취하려고 이걸 몇 번을 마셨는데 절대로 안 취하더라고.”
지금 취하셨습니다만?
민은 목구멍까지 나온 말을 억눌렀다.
취한 사람에게 ‘너 취했어’라고 말해 봐야, 들어먹은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안 취했음을 주장하며 오만 가지 시도를 하기 마련인데, 가령 강혁에게 같은 말을 했을 때 그 녀석은 절대로 안 취했다고 주장하며 민의 머리에 올린 사과를 공중제비를 돌며 권총으로 쏴 맞추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민에게 얻어맞았지.
‘같은 일을 선생님이 한다 치면?’
어디까지 막 나갈지 두려워지는 민이었다.
강혁과 승우가 할 수 있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니까!
아무튼 그건 그거고, 승우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는 신명을 얻은 이후 취해본 적이 없었다.
취할 만큼 마셔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기도 했지만 신의 격을 얻은 후부터는 어지간한 술로는 기별도 오지 않았다.
드워프의 화주쯤 되어야 살짝 ‘어, 이건 좀 술 같긴 하다’ 하는 수준이라 약간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화주를 한두 잔 마시는 일은 종종 있었다.
지금처럼 병나발을 부는 일은 없었지만!
승우는 꿀꺽꿀꺽하고 그 큰 호리병에 든 화주를 다 마셔 버렸다.
용이 봤다면 기겁할 정도의 말술!
인벤토리로 빈병을 던지며 승우가 물었다.
“그나저나 요즘 헌터 일 하면서 힘든 거 있어?”
“글쎄요. 힘든 일이라…….”
게이트 자체는 출연 빈도가 많이 줄었다.
눈 고래가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는 덕이다.
그리고 임무 자체도 풀 메탈 히어로즈와 길드, 게이트 주둔군이 나눠서 처리했으니 더 줄었고, 결국 하는 일은 자기 단련이 대부분이었다.
“요즘은 일이 적은 편이라 자기 단련에 힘쓰고 있습니다.”
“오! 자기 단련! 아주 좋아!”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 대련을 하는 일이 많습니다.”
“음음.”
“저는 주로 몬스터와 싸우거나 지휘를 하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대인전이 꽤 어렵더라고요.”
“그렇지. 그 두 개는 꽤 다른 거야.”
사람과 싸우는 것, 몬스터와 싸우는 건 상당히 다르다.
몬스터는 좀 더 공격적이고 방어를 하지 않는다.
타고난 피지컬, 재생력이 뛰어나며 피부가 철보다도 단단한 경우가 대부분!
그걸 믿고 방어 기술은 단련하지 않는다.
민의 경우는 그런 단단한 녀석들의 약점을 파악하고 그곳을 노려 부족한 공격력을 보충하는 전법을 쓴다.
“인간은 방어 기술이 풍부해서 약점을 찌르는 게 쉽지 않을 거야.”
“그렇습니다. 주력으로 쓰는 게 단검 투척과 사격인데, 이 두 개 다 인간들은 막는 데 이골이 났더라고요.”
“응응, 그렇지. 그러니까 못 막게 치면 돼.”
“어떻게 말입니까?”
안주를 먹다 말고 민이 고개를 들었다.
못 막게 치는 방법?
귀환자만의 스페셜한 스킬이나 기술인가?
승우는 싱긋 웃으면서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기묘하게 생긴 단검을 꺼내들었다.
안쪽에 날이 달리고 휘어 있어서 작은 낫처럼 생겼다.
“이건 하르페라는 건데, 이걸 던지면 적이 공격을 막을 수가 없어.”
“…….”
“목에 맞으면 반드시 목을 딴다는 전설이 담긴 무기야.”
헌터에게 신학은 기본이다.
다른 차원에서 건너온 몬스터나 아이템은 어째 신화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하르페라는 무기가 어떤 무기인지는 민도 알았다.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목을 딴 무기… 아닙니까?”
“맞아, 아! 맞아, 맞아. 그런 무기였다.”
신급 무기다.
현재 세계를 다 뒤져서 ISAC가 확보한 신급 무기는 두 개.
눈앞에 하르페를 포함하면 세 개가 된다.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진 무기를.
“줄게.”
민이 받았다.
민은 잠시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있다가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모, 못 받습니다!”
“하르페로는 약한가? 알았어, 그럼…….”
승우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인벤토리를 개방했다.
그러자 온갖 신급 무기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건 용살검 그람, 이건 발뭉. 이건 뒤랑달. 검이 아니라 창이 좋다면 바이던스도 좋지. 그리고 트리뭐시기……. 이 창 이름은 매번 헷갈리네.”
“트리아이나 일겁니다. 해신 포세이돈의 창…….”
“그래그래. 하여간 아무거나 가지고 싶은 거 가져.”
신급 장비가 계속해서 나온다.
검, 창, 활, 방패, 갑옷, 투구를 비롯해서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끄덕일 신화 속의 장비들.
민은 잠시 눈을 비빈 후에, 기도를 올렸다.
강혁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온 오늘의 작은 기적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이 치솟았다.
만약 민이 아니라 강혁이 먼저 왔다면 좋다고 이 아이템들을 챙겼을 것이다.
민은 후환이 두렵고, 생각이 있는 어른이기에 감사한 마음만 받고 조용히 모든 아이템을 거절했다.
‘이런 아이템은 받아봐야…….’
좋지.
좋다.
신급 아이템인데 나쁠 리가 있나?
하지만 이 아이템을 받은 후에 간수를 할 자신도 없으며 나중에 술이 깬 승우를 볼 면목이 없어진다.
그 모든 걸 생각한 끝에 아깝지만 거절했다.
‘그나저나 선생님 술버릇이…….’
승우의 술버릇은 거칠거나 폭력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도 굉장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까 승우의 술버릇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발동이 걸렸는지 다시금 술안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려고 한다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신급 아이템을 주는 것보다는 백 배, 천 배, 만 배 나은 일이라 민은 쌍수를 들고 거들기로 작심했다.
“돕겠습니다.”
“그래그래. 나는 참 너처럼 성실한 사람이 좋더라. 신급 장비 안 필요하니?”
“으으으, 그만 유혹하세요.”
민이 장탄식을 내뱉었다.
* * *
엄밀하게 말해서 식당에서 마신 드워프의 화주는 2차였다.
1차적으로 그를 완전히 취하게 만든 것은 넥타르였다.
승우는 넥타르를 다 마시고 호리병을 호수에 띄웠다.
갑자기 다 마신 호리병이 호수 위를 둥둥 떠다니는 건 꽤나 풍류 있는 모습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래서 술은 적당히 마셔야 하는 거다.
그리고 그가 떠난 후, 호리병이 가라앉았다.
넥타르가 아주 소량으로 남아 있던 호리병은 호수의 물과 반응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호수 중심부로부터 황금빛이 은은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호수는 승우도 모르는 사이에 넥타르 호수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무래도 게르니아 행성과 호리병에 남아 있던 넥타르가 서로 반응을 한 탓이 아닐까?
넥타르 호수는 향긋한 벌꿀의 향기를 풍겼다.
그런 호숫가에서…….
“뿌…….”
영식이는 빵빵하게 부푼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바동거렸다.
너무 먹어서 말이 안 나올 정도였다.
“뿌우…….”
잘 구르는 게 기특하고 착하다는 이상한 이유로 칭찬 스위치가 켜진 승우가, 평소에는 잘 해주지도 않던 맛있기만 한 요리를 대량으로 만들어줬다.
그게 너무 맛이 있어서 먹다 보니 이렇게 돼버렸다.
데굴데굴 구를 기력도 없어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영식이가 호수가 근처에 드러누웠다.
은하는 그런 영식이에게 담요를 덮어주며 말했다.
“이게 웬일일까요?”
“별거 아니다. 속된 말로 술주정이라고 하는 거지.”
“주정이요?”
“귀환자라고 해도 사람이니까 말이다.”
은하가 반문하자, 은하의 아버지.
주혁진은 퀭한 눈으로 호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한 사람이 취해서 하는 일치고는 스케일이 크다.
격무에 지쳐서 뻗어 있었는데 갑자기 유승우가 나타나서는 ‘아버지는 딸 곁에 있어야 하는 법이지’라고 말하면서 납치했다.
아마 지금쯤 본부에서는 난리가 났겠지.
ISAC 총장이 납치된 거니까.
천하의 ISAC 총장이 납치되는 데 1초가 안 걸렸다.
그게 뭐 대단한 사상이나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이의 부탁을 술김에 들어준 거라니.
ISAC 총장 경호팀이 들으면 경기를 하겠지.
“허, 허허허. 허허허.”
하도 어이가 없으니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뭐, 됐다. 모처럼의 휴가라고 생각하지. 이리 오렴.”
“예!”
은하는 호다다닥 걸어가서 냉큼 아버지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밀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할 이야기는 많았다.
두 부녀가 화목한 대화를 하는 동안.
나비는…….
“대책도 없이 지르다니, 용사님답지 않구냐.”
넥타르 호수의 뒤처리를 하는 중이었다.
호수의 물과 넥타르의 찌꺼기가 반응하는 이상 사태가 발생했다.
원인을 파악해야 될 승우는 술에 취해서 인사불성이 된 상태.
나비는 주섬주섬 옷을 정리하고 잠수를 할 준비를 마쳤다.
“우-냥!”
나비가 퐁당 하고 넥타르 호수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일일이 물고기들을 살피며 상태를 확인했다.
어째 물고기들도 알딸딸하게 취해서는 맨손으로도 쉽게 잡혔다.
한 마리의 물고기를 잡아서 나비가 호수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우냐아. 윤기가 자르르르 흐르는구냐.”
물고기의 상태가 오히려 좋다.
넥타르의 효과로 나쁜 상태가 될까 걱정했는데 좋은 효과가 반영된 모양이다.
하지만 아주 조금의 양이 희석된지라 대단한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
약간 더 맛있어지고 잡기 쉬워진 정도랄까?
그렇다면 잔 정리와 청소만 하면 될 일이다.
“냐아… 사고치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냥이 따로 있다냐.”
나비가 한숨을 쉬고는 다시 퐁당 하고 잠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