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93)
괴식식당-93화(93/613)
093화. 취했어요 (3)
술이라는 녀석이 참 그렇다.
마실 때야 참 좋은데 그렇게 진탕 마시고 나면 다음 날 머리가 아프다.
도수가 강할수록, 그리고 술을 많이 마실수록 두통은 강해진다.
숙취를 느낄 때면 사람은 생각한다.
아, 너무 마셨구나.
앞으로는 안 마셔야지.
하지만 부질없는 일이다.
숙취가 있어서 잠깐 반성하는 것일 뿐, 어차피 사람은 또 마시게 되어 있다.
“아야야…….”
승우는 인상을 쓰며 눈을 떴다.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이 아프다.
그렇게 두통을 이기고 주변을 돌아봤다.
“……?”
머리 위에는 아침 햇살이 반짝.
뜨끈하게 달궈진 바닥은 온돌이 아니라 어째 밥집의 지붕이다.
“난 왜 여기서 자고 있다냐…….”
그는 어제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승우는 허허 하고 웃었다.
“이게 세간에서 말하는 필름이 끊어졌다는 건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기억에 공백이 생기다니.
그것은 승우에게 약간의 두려움을 불러왔다.
하지만 그는 금방 다시 웃었다.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자신은 자신.
스스로가 돌아봐서 떳떳하지 않은 일을 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필름이 끊어진다고 해서 두려워할 일은 아니다.
“역시 6성 음료라 이건가…….”
신명을 세 개나 가진 신이 술을 마시다가 인사불성이 되다니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마 넥타르의 대가겠지.
복용자의 생명력을 극도로 향상시키는 대신 신조차도 피할 수 없는 숙취와 취기를 부여한다.
효과와 대가를 비교하자면 납득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내가 마셔도 이 정도라면 어지간한 녀석은 즉사하거나 정신이 망가졌겠군.”
과연 신의 음료다운 파괴력이었다.
“흐음…….”
승우는 띵한 머리와 텅 빈 배.
그리고 타는 듯한 갈증을 느꼈다.
그게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인간적인 통증과 반응이라.
“사치스럽군.”
그는 잠깐 동안 이 기분을 즐기기로 했다.
* * *
승우가 기분 좋게 아침 햇살을 느끼며 지붕에서 일광욕을 즐길 때.
나비는 좌절 중이었다.
“위기다냐…….”
전날 승우와 민이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요리를 해주겠다고 난장판을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그냥 밖에서 배식만 했다면 이리 어지러워질 일은 없었을 텐데.
승우는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무료로 식사도 해주고, 아이들에게는 간식과 선물을, 어른들에게는 술안주와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을 위한 조촐한 음식 선물까지 챙겨줬다.
그러니까 평소보다 거의 100배 이상의 요리를 했다는 소리.
한가하게 오는 손님만 조금씩 받고, 헌터들에게만 요리를 해주던 승우였다.
그런데 진짜로 작정하고 요리를 한지라 주방은 이미 전쟁터였다.
그릇이라는 그릇은 다 꺼내져 있고, 그게 다 설거지도 안 된 상태.
승우를 보조하던 민은 체력 고갈로 집에도 가지 못하고 2층 방에서 졸도했었다.
“우냐아아.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냥이 따로 있지냐!”
꼬리 끝을 바르르 떠는 나비도 민과 마찬가지였다.
나비도 눈 뜬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냐아…….”
나비는 넥타르의 호수를 조사한다고 잠수하다가 넥타르 물을 조금 마셨다.
아니, 사실은 꽤 마셨다.
“어쨌든 시간이 촉박하구냐.”
영업 개시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모든 걸 다 정상화시키고 영업이 가능하게 만들기에는 빠듯한 시간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애들 밥도 먹어야 한다냐.”
성장기인 아이들이 밥을 못 먹는 건 너무나 끔찍한 일이다.
나비는 오랜만에 아일루로스로서 위기에 봉착했다.
“냐하하하.”
난관에 봉착하면 좌절하는 고양이와 기뻐하는 고양이가 있다.
나비는 후자였다.
“불타오른다냐아아-!”
나비는 싸울 각오를 다졌다.
싸움에 앞서서 무장의 점검은 필수다.
자랑하는 가슴털과 배털이 더러워지는 걸 막기 위해서 앞치마를!
귀에 먼지가 들어가는 것과 땀이 흐르는 걸 방지하기 위해 두건을 썼다.
왼손에는 물 양동이를, 오른손에는 걸레를!
꼬리에는 미니 청소기를 들었다.
오직 아일루로스만이 가능한, 꼬리를 사용한 청소 완전 무장!
“우냐아! 간다냐!”
나비는 마치 세 마리로 분열한 것처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은 꼬리로 들고 있는 미니 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들인다!
그리고 재빨리 걸레로 그곳을 닦는다!
물 양동이에 걸레를 빨면서 다시 싸울 준비를 한다.
그리고 부드럽게, 아주 부드럽게 이동하며 이것을 고속으로 반복했다.
“우냐냐냐냐냐!”
그렇게 나비는 폭풍처럼 일을 처리해 갔다.
전력을 다하는 레벨 99의 아일루로스의 속도는 질풍 같았다.
설거지를 하고 바닥을 닦고, 테이블을 정돈하고 식재료를 재배치하고 마당 청소도 하고 바닥 청소, 물걸레질과 먼지 털기와 기타 등등을!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나비가 혀를 길게 내밀었다.
“헥… 헥…….”
다했다.
청소가 끝났다.
본래라면 이 정도 움직이는 걸로는 지치지도 않지만, 이번에 중점을 둔 것은 속도!
빠르게 하려고 숨을 참다 보니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청소 끝이다냐.”
그럼 이제부터는 아침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아침 식사는 평소라면 승우가 했을 일이지만, 오늘은 다를 것 같았다.
“촉이 온다냐아.”
나비의 긴 눈썹이 흔들거렸다.
그리고 좌우의 귀가 사방팔방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나비의 귀 센서에는 아직도 지붕 위에서 한가롭게 일광욕 중인 주인의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주인이 요리를 하지 않을 것이다.
가끔 있는 ‘모든 게 귀찮아’의 날이다.
이런 날은 요리가 맥빠질 정도로 간단해지는데, 전날 해온 음식으로 때우거나 아주 조금만 변형해서 먹는다.
돈가스를 파는 날에 돈가스 샌드위치를 해먹는 정도?
그런데 지금은 요리가 정말 하나도 없었다.
냉장고가 텅텅 비어 있을 정도로 말이다.
다 팔거나, 다 나눠주거나, 다 먹었다는 뜻!
이대로 주인에게 맡기면 아침부터 배달 음식이나 먹게 생겼다.
하지만 그것은 아일루로스에게는 굴욕이다.
오늘은 손님도 있다.
그것도 둘이나.
손님에게 배달 음식을 대접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냐아, 솜씨 좀 부려볼까냐.”
그런 고로 오늘의 요리사는 나비다.
* * *
식당 안은 정확하게 두 부류로 양분되었다.
민과 유승우.
그리고 주혁진과 그의 가족.
“…….”
“…….”
민과 주혁진이 애매하게 시선을 피했다.
부담스럽다.
ISAC의 총장과 직접 대면하는 건 이걸로 두 번째.
그 두 번을 모두 이 밥집에서 봤다.
첫 번째야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일이었다만 이번에는 같은 곳에서 밥을 먹다니.
‘체할 것 같다.’
총장과 같은 곳에서 식사라니, 그 어떤 ISAC의 요원도 원치 않을 거다.
군대로 치자면 세컨드 오더인 민은 소령 정도 되는 인물이고, 총장은 원수다.
이런 상황에서 즐거워하는 건 민이 아는 한 강혁 같은 관종 자식뿐이었다.
그렇게 민이 거북한 표정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혁진도 그리 썩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뻘줌하구만…….’
총장과 대원의 관계는 위에서 명령을 내리고, 아래에서 복종하는 것 정도가 딱 좋다.
개인적인 친분을 맺어봐야 서로 명령 이행 과정에서 쓸데없는 감정이 들어갈 뿐 이득이 없다.
어디까지나 ISAC의 총장은 신비스러우면서 두려운 미지의 존재 정도여야 한다.
그런데 같은 곳에서 식사를 하다니, 이거야 원 친구 같지 않은가.
‘흠, 그래도 나쁘지는 않아.’
손님을 대접하겠다고 고양이가 요리를 하다니.
요리하는 고양이는 귀엽고, 보기도 좋으며 익숙한 일이라 마치 집에 돌아온 기분이다.
총장도 본부에 있는 개인 공간에서 사무, 가사를 전담하는 인공지능 안드로이드를 키우고 있었다.
정확히는 키워짐 당하고 있다.
밥해주고 재워주고 깨워주고 방 치워주는 고양이가 있다면 그건 고양이를 키우는 게 아니다.
고양이에게 키워짐 당하는 거지.
우연하게도 녀석의 이름도 나비였다.
나이오비의 나비가 아니라 내비게이션의 나비였고, 저렇게 크지는 않지만 말이다.
“요리하는 고양이라…….”
능숙하게 식사를 만드는 고양이.
은하는 주혁진의 무릎 위에서 졸고 있었다.
어젯밤 너무 오래 이야기한 탓에 수면 시간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맞은편에는 빠르게 이야기를 듣고 온 아내가 눈을 빛내고 있었다.
“정말 집에 온 것 같군.”
그러자 백소향이 말했다.
“가족 식사 같아서 참 좋네요. 그죠?”
“그러네요. 가족 식사는 참 오랜만이군요.”
“할아버지도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어쩔 수 없죠!”
가족 식사인가.
민은 그래서 더 불편해졌다.
아내와 딸과 남편이 모여서 식사하는데 나는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가.
멍- 하니 벌린 입에서 민의 영혼이 살짝 빠져나왔다.
혼란하고 어지럽고, 뭐가 뭔지도 모르겠다.
민은 오래된 속담인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얌전히 있었다.
주혁진도 그의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라서 모른 척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나른하게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던 승우가 물었다.
“부부인데 서로 존댓말로 이야기하네요?”
“연애할 때부터 서로 존댓말을 한지라, 습관이 돼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은하가 존댓말을 잘 배웠군요.”
“그럴 겁니다.”
주혁진이 귀엽다는 듯이 은하의 얼굴을 매만졌다.
그러자 은하는 우웅 하고 낮게 꿍얼거리면서 그에게 안겼다.
아이의 잠투정을 받아주며 혁진이 말했다.
“덕분에 이런 시간도 가져보네요.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백소향도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승우가 허허 하고 웃었다.
“술주정을 부리고 감사를 받을 줄은 몰랐네요.”
“종종 부려주시면 고맙겠군요.”
그러고 싶어도 이제는 취할 방법도 없다.
넥타르는 동이 나서 말이다.
어쨌든 이걸로 대화는 끝이었다.
가족끼리 오랜만에 식사하는 걸 방해할 이유는 없지.
승우의 시선이 민과 닿았다.
“어제 내가 꽤 심하게 부려 먹은 모양이더라.”
“뭐, 음. 아니라고 할 수는 없군요.”
헌터들의 몸은 튼튼하다.
민은 헌터 중에서도 유달리 빈약한 편이었지만 그것은 과거의 이야기.
몸을 고치고 밥집을 꾸준히 다닌 결과 헌터의 평균치 정도는 된다.
그런 민이 일하다가 지쳐서 졸도할 지경이었다.
보통 심하게 부려먹은 게 아니지.
승우는 이 착한 헌터에게 상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이라는 게 어중간한 물건을 줘서는 안 된다.
딱 사람이 받으면 기분이 좋게 해야 한다.
그럼 기분이 좋아지려면 뭘 줘야 하는가, 바로 필요한 걸 줘야 한다.
요즘 민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뭐가 필요할지는 일목요연하다.
승우는 인벤토리에서 작은 단도를 꺼냈다.
“이건 하르페라는 건데…….”
“…….”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목을 취할 때 썼던 무기야. 아마 네 전투 스타일에는 딱 맞…….”
“선생님.”
“응?”
“아직 취하신 건 아니죠?”
“아, 안 취했어!? 네 전투 스타일을 보면 이게 꼭 필요할 거 같아서 그래!”
민이 어이없어하는 것과 동시에 주혁진이 뚫어져라 무기를 봤다.
세 번째로 신급 무기를 얻는 현장을 목격한 총장의 반응은 너무나 정상적이었다.
그가 눈으로 말해왔다.
‘거절하지 말고, 받아. 받아. 받는 거다!’
이걸 받는다고 무기를 빼앗길 일은 없다.
일단 승우가 직접 준 거니까, 이걸 남에게 주라고는 총장도 말은 못 한다.
하지만 받으면 정말 개처럼 굴려질 것 같았다.
험지라는 험지는 다 가고, 필요한 일이 있으면 소집되는 식으로 말이다.
듣기로는 퍼스트 오더 1위는 그 능력 때문에 근 4년간 휴가를 1시간도 받은 적이 없다던가?
휴가를 받으려면 입원을 해야 되는 상황이 되는 건 싫다.
하지만.
‘받으라고, 받아. 빨리! 받아아!? 마음 바뀌기 전에 받아-!?’
총장이 계속해서 압박을 넣고 있었다.
민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 쓰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총장이 흐뭇하게 ‘퍼스트 오더 코트를 입을 사람이 늘었군’이라며 고개를 끄덕일 때 나비가 말했다.
“완성이다냐아! 넥타르 호수의 숙성 붕어회와 붕어 튀김, 그리고 붕어찜이다냐.”
“…넥타르 호수?”
그건 또 뭔 소리야 하고 승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래도 취한 동안 저지른 사고가 한두 개가 아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