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arre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94)
괴식식당-94화(94/613)
094화. 술이 깬 다음 날
호수물이 반짝인다.
빛을 받아서 반짝이냐고?
아니다.
그냥 지가 스스로 황금빛을 내며 반짝이는 거다.
“이게 왜 이렇게 됐는지 도통 모르겠네…….”
승우는 호숫가에 앉아서 허허 웃으며 경치를 구경했다.
그러고 있으니 벌떡- 하고 네다섯 마리의 물고기가 튀어 올랐다.
틸라피아라는 물고기다.
어디에서도 잘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의 물고기!
호수를 만들면서 업자가 넣어줬는데 한국에서는 역돔, 가짜 돔 따위로 불리는 민물고기다.
본고장에서는 기생충도 많아서 회로는 적합하지 않지만 제대로 양식한다면 안전하며 깔끔한 맛을 가지고 있다.
승우가 기도 안 찬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자기가 뭐 날치라도 되는 줄 아나 보지.”
틸라피아가 점프를 해?
얼씨구?
붕어도 날았다.
잠시 후에는 온갖 물고기가 뛰어놀기 시작했다.
“하하하. 엉망이군.”
여러 어종들이 즐겁게 뛰어노는 걸 보니 기분이 심란해진 승우였다.
심란한 마음에 다시금 호수를 확인해 봤다.
틀림없다.
“신적인 효과는 없지만 이건 넥타르가 맞네.”
구태여 효과를 나열하라면 피부가 좋아진다, 건강해진다 정도.
나비가 확인해 본 대로 나쁜 효과는 거의 없었다.
이 넥타르 호수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도 요리해서 확인을 끝냈다.
온갖 산해진미를 다 맛본 대명의 회장과 ISAC 총장이 깜짝 놀랄 정도로 맛있었다.
본래 틸라피아가 가지고 있던 품질보다 월등히 좋아진 것이다.
쫄깃하며 탄력이 넘치는 식감과 혀뿌리까지 파고드는 그 고소한 맛이란, 승우가 먹어본 회 중에서도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이 넥타르 호수는 물고기를 맛있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단, 장점만 있는 것 같지만 나쁜 효과도 있었다.
“조금만 마셨는데도 살짝 취기가 오르는걸.”
이 넥타르 호수 물은 세 개의 신명을 가진 승우도, 레벨 99의 아일루로스인 나비도, 틸라피아도 붕어도 공평하게 취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독은 아니니까 독 내성 스킬이 발동을 안 하나 본데…….”
그렇다고 해도 승우의 상태이상 방어 스킬을 뚫을 정도라니.
가공할 만한 능력이다.
어렴풋한 기억으론 다 마신 넥타르를 호리병째 호수에 던졌던 것 같다.
그런데 어째서 호수가 이렇게 됐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던지는 과정에서 승우가 뭔가를 했거나, 물 자체가 특이했거나, 지형이나 이 게르니아라는 환경 자체에 뭔가 비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 하나 뚜렷하게 답이라고 할 건 없었다.
결국, 승우는 그냥 눈앞에 결과물이 있으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걸 선택했다.
“그나저나…….”
마시면 누구라도 공평하게 취하는 술이라니.
좋아할 사람이 셋이나 떠올랐다.
신명을 얻은 후부터 죽어도 못 취한다고 짜증을 내던 엘프와 오크.
그리고 은근슬쩍 주당인 한 신관.
“나중에 선물로 보내주도록 하고. 우선은 애들은 못 마시게 해야겠다.”
애들이 마셔서 취하면 큰일이지.
승우도 당분간은 금주다.
그러니까 맘 편하게 마실 수 있는 건.
“너희들은 좋겠구나.”
넥타르 호수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들뿐이리라.
얼큰하게 취한 붕어가 원을 그리며 튀어 올랐다.
돌고래 수족관이 부럽지 않은 쇼가 시작됐다.
눈요기로는 나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예쁜 광경이다.
“흐음… 좋군.”
그렇게 쇼를 구경하는 승우의 눈이 온화해졌다.
누군가의 기도를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 진짜 이 자식이…….”
* * *
“바라옵건대 위대하신 검과 승리, 괴식의 신이시여. 민 오키프가 퍼스트 오더 자격 심사에 떨어지기를, 그게 아니라면 쪽팔리게 100위와 싸워서 대박 깨지기를.”
“…….”
“설사 통과했다 하더라도 제 랭크 위로는 죽어도 못 가기를 기도드립니다.”
기도를 끝낸 강혁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허리를 굽혀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고 곧 이어서 또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기도 9세트 끝. 10세트 들어가야지. 바라옵건대 위대하신…….”
“아오, 이 화상이 진짜!”
민은 강혁의 목을 하르페로 따버릴까 하고 생각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상냥하게 하이 킥을 후려갈겼다.
“악!”
“적당히 해라, 미친 자식아! 전화도 안 받고 벨이 울려도 못 듣고, 뒤에서 걸어와도 눈치를 못 채냐!”
“아뿔싸!? 기도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발각되어 버렸다!”
“아뿔싸는 얼어 죽을…….”
민은 한숨을 쉬며 강혁의 방을 돌아봤다.
예전처럼 맥주 캔이 산처럼 쌓여 있거나, 여기저기 토사물이 있는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상적인 방 꼬라지는 절대 아니었다.
“집 안에 황금상이 있네…….”
“위대하신 검과 승리, 괴식의 신을 이미지한 신상이다. 맞추는 데 2억 5천만 원이 들어갔지.”
“…너 월급 기부당해서 거지였지 않았냐?”
“아끼던 차 한 대 팔았다. 그걸로도 부족해서 아이템까지 팔았지.”
“…….”
돈 없다고 식당 알바 하던 놈이, 차 팔아서 황금 상을 만들어?
민은 머리가 지끈 하고 아파와졌다.
“어디서 또 사이비 같은 신을……. 이름만 들어도 사짜 삘 엄청 나는구만.”
“갈(喝)! 어디서 감히 망발을!”
“후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퍼스트 오더 중 하나가 사이비 신의 광신도라니.
기자가 알면 진짜 좋아할 만한 정보다.
민은 말을 길게 해봐야 자신의 위장만 아파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진지하게 상대하는 걸 포기하고 용건만 처리하기로 했다.
“자, 서명해라.”
“으으. 싫은데…….”
민 오키프는 세컨드 오더로서 퍼스트 오더인 슈퍼스타 백강혁의 팀을 이끌던 서포터 장이였다.
그러니 그가 퍼스트 오더 심사를 받으려면 백강혁의 동의가 필요했다.
강혁이 진저리를 치자 민이 비웃었다.
“네가 반대해 주면 나야 좋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퍼스트 오더도 아닌걸.”
“제기랄! 총장님에게 러브 콜을 받다니! 부럽다!”
“부러워?”
민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그가 팔자에도 없는 퍼스트 오더 심사를 받는 건 전적으로 총장의 강요였다.
하르페를 얻자마자 그가 어깨동무를 하며 말하길.
‘코트 색깔을 바꿔볼 생각 없나?’
세컨드 오더의 갈색이 아니라 퍼스트 오더의 검정색으로 바꾸라는 의미!
싫다고 말해봐야 통할 상대가 아니었다.
총장이 하고 싶어 하는 일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건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라 아예 귀에 인이 박힐 지경이다.
그런 총장의 표적이 된 민은 전혀 기쁘지가 않았다.
신급 무기인 하르페를 가지고 있으며, 총장의 딸에 대한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사이.
그리고 귀환자 유승우와 돈독한 관계인 그가 세컨드 오더로 있는 것보다 퍼스트 오더로 있는 게 낫다는 건 이해했다.
하지만 세컨드와 퍼스트는 조금 다르다.
세컨드는 공무원에 가까운 일이고, 퍼스트는 특수직이다.
세계를 지킨다는 이름 아래 최전선에서 인류의 방패가 되는 일까지는 민도 참을 수 있다.
그러나 퍼스트 오더의 일은 거기가 끝이 아니다.
각성자와 비각성자의 골이란 것이 있다.
누군가는 손에서 불을 뿜고 전기를 내뿜는데, 비각성자는 그저 인간이다.
이 정도로 차이가 있으면 같은 인간으로는 보이지도 않는 법.
퍼스트 오더는 총장의 계획 아래, 그러한 감정의 골을 옅게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본인들이 예능인, 엔터테이먼트화 돼서 말이다.
퍼스트 오더가 되는 이상 민은 자신의 이름을 딴 영화가 나오거나, 드라마가 나오던가, 화보집이 발매되는 일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민은 그게 정말 몸서리치게 싫었다.
“너 같은 관종 놈은 그게 좋아서 퍼스트 오더를 하고 있겠지만 나는 아니거든.”
“제길! 총장의 총애를 받으면 고마운 줄이나 알아야지!”
“하여간 네가 반대해 준다면 나야 고맙다. 백강혁이 반대해서 못 하겠는데요 하고 보고하면 되겠지?”
“서명한다! 한다고!”
백강혁이 투덜거리면서 서류에 서명을 했다.
이제 민은 피할 수도 없이 퍼스트 오더 심사를 받아야 한다.
총장이 직접 밀어주는 거니 서류심사는 만장일치로 통과될 것이다.
그럼 남은 건 100위와의 한 판 승부뿐.
강혁이 입을 샐쭉 내밀며 물었다.
“시뮬레이션 테스트는 언제 하는데?”
“하르페의 성능을 전산화해서 가상데이터로 바꾸고 내 장비를 등록하려면 2일이 걸린다는군. 그게 기록이 되면… 하, 바로 하겠지.”
‘진짜 싫다’ 하고 중얼거리는 민을 보며 강혁이 입꼬리를 올렸다.
“이겨서 네 화보집이 나오면 말이야.”
“…뭐?”
“내가 1,000개 정도 사다가 A섹터 전역에 뿌린다.”
“…….”
“화보 콘셉트 정도는 조언해 줄 수 있어. 나만큼 화보집 많이 찍은 오더도 드물잖아.”
“…….”
“내가 보기에 너는 큐트보다는 섹시 콘셉트가 좋겠다. 야, 누드 가능하냐?”
민은 조용히 하르페를 꺼냈다.
아무래도 오늘 하르페를 개시할 날 같다.
* * *
스트레스를 받고 머리를 아파하는 것은 지부장이란 자리에 있으면 기본적인 일이다.
그러니까 스킬로 치자면 만성 패시브 스킬이다.
아주 당연한 일이라 새삼스럽지도 않다는 뜻.
그러나 이정훈은 오랜만에 액티브 스킬로 머리를 두드려 맞는 듯한 기분이 됐다.
“민이 퍼스트 오더가 되면 강혁의 팀이 완전 망한다고?”
“몇 번을 시뮬레이팅해도 마찬가집니다.”
지현이 가상전투 기록을 들고 와서는 고개를 흔들었다.
“민 오키프의 의존도가 너무 높아요. 오히려 오더가 빠지는 게 영향이 더 적었습니다.”
“강혁을 위한 서포터 팀에 강혁이 빠지는 건 되지만 민이 빠지는 건 안 되다니…….”
이 무슨 소리인지.
강혁 없는 강혁 서포터 팀이 되게 생겼다.
정훈은 관자놀이를 누르며 되물었다.
“대체할 요원이 그렇게 없나?”
“지휘 능력을 갖추고, 전투력이 있으면서 탐색계인 사람은 정말 희귀해서요.”
“이런…….”
강혁의 서포터 팀은 상당히 특수한 구조다.
강혁이 날뛰고 민이 팀원을 지휘하면서 적재적소에 사용, 압도적인 화력으로 적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고 섬멸하는 변종 팀이다.
민이 퍼스트 오더가 되면 당연하지만, 둘은 별도의 무리로 나뉘게 된다.
퍼스트 오더의 서포터 팀장이 퍼스트 오더다?
이게 말인가 방구인가, 낭비요 사치인 일이다.
그리고 민이 퍼스트 오더가 된다면 그를 위한 서포터 팀을 편성해야 한다.
그럼 예산이 추가로 빠지고, 본래 민이 이끌고 있던 서포터 팀은 제 기능을 잃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정훈이 이를 악물었다.
“이럴 거 같아서 서포터 팀에 있던 세컨드 오더 4명을 붙잡아 둬야 한다고 했잖나?!”
“본인들이 싫다는데 어쩔 수 없잖습니까.”
“예산만 더 있었어도 월급을 두 배로 올려서 붙잡아두는 건데……!”
본래는 민의 역할을 할 사람이 네 명이나 더 있었다.
그런데 강혁과 몇 번 손을 맞춰보더니, 스타일에 안 맞는다며 모두 이직해 버렸다.
“제길, 그럼 민 오키프가 100위를 이기지 못할 확률은?”
“소수점 이하입니다.”
“…소수점 이하?! 민이 그렇게 강하던가?!”
지현이 떨떠름하게 데이터를 띄웠다.
낫칼처럼 생긴 단검, 하르페의 최신 분석 데이터다.
“민 오키프의 특기는 탐색계인 본인의 장기를 살린 회피 불가능한 단검 투척입니다.”
“알고 있네. 그의 코드네임인 샤프 슈터가 그래서 생긴 거 아닌가. 그래봐야 단검이니까 다들 잘 막을 텐데.”
“이 하르페라는 단검은 막을 수 없습니다.”
“막을 수 없다고?”
“신급 무기는 통상의 무기와는 아예 다릅니다. 개념적인 무기입니다.”
“개념적인 무기?”
관리직인 이정훈은 아무래도 싸움에 관련된 정보는 지현보다 아는 게 적었다.
지현이 자세를 고쳐 잡고 말했다.
“하르페라는 무기는 적의 목을 딴다는 개념이 깃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목에다가 던지면 목이 따인다?”
“그렇습니다. 살고 싶다면 목 근처에도 안 닿게 완전하게 피해야 합니다.”
“그럼 무적이 아닌가?!”
지현이 고개를 흔들었다.
“피할 수 없는 투척을 하는 사람에게 피하지 못하면 죽는 무기가 주어진 셈이지만 무적은 아닙니다.”
“그럼?”
“하르페의 개념을 저항할 만큼 격이 높으면 됩니다.”
“격? 레벨을 말하나?”
“본인의 레벨, 이능력의 등급, 방어 스킬의 수준 등등. 따지고 들어가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만…….”
“적당히 뭉뚱그려서 격이라고 하는 거겠군.”
상황을 이해한 정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별수 없구만.”
“네. 별수 없습니다.”
이정훈은 이 초유의 상황에서 빠른 판단을 내렸다.
“민이 퍼스트 오더가 되면 지금 서포터 팀 녀석들은 민을 지원해 주는 게 낫겠지 않나?”
“모두 좋아는 할 것 같지만, 괜찮겠습니까?”
“상관없어. 해보고 싶은 팀 조합도 있으니까.”
어차피 지금의 백강혁 팀은 이정훈이 짠 팀이다.
그는 직접적인 전투 경험은 없지만, 제법 아이디어 솟는 상사였다.
“좋다, 백강혁을 방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