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J Adapted to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22
222화
성진은 눈을 감았다.
눈을 뜨고 있으면 아쉬워할 것 같아서.
계속된 전투로 빛을 잃었던 회색빛 도시.
스으윽.
건물들이 하나둘 사라져 갔다.
건물이 사라지니 탁 트인 전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그것이 기쁘진 않았다.
이제는 사람들마저 사라지기 시작했으니까.
“끄아아악! 그만! 그만해라, 신조! 지금이라면 돌이킬 수 있다! 돌아갈 수 있어!”
로키가 발악하듯 외쳤지만, 성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덤덤하게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였다.
스으윽.
건물이, 사람이.
도시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늘이 어두워졌다.
이내, 하늘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숨을 쉬기가 어려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성진이 디뎠던 땅마저 사라져 갔다.
곧, 우주가 모습을 드러냈고 이제는 그마저 사라졌다.
소리가 사라졌다.
이제는 성진과 로키만이 남았다.
로키는 이 사태를 믿을 수 없는지 부정했다.
“이럴, 이럴 수는 없어?─?거짓말…….”
성진은 로키가 횡설수설하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얼마간의 공백.
이곳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았지만, 시간에 익숙하진 성진과 로키는 시간이 흘렀다고 착각했다.
이제 둘에게 시간이란 가치는 의미가 없는 것인데도.
체감하기로는 15년 정도 흐른 것 같았다.
어쩌면 그보다도 더 오랜 시간이 흘렀을 수도 있고.
이 모든 건 추정에 불과했다.
애초에 ‘시간이 흘렀다면’ 하고 가정한 것이었으니까.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부유하는 성진에게 로키가 말을 걸어왔다.
“이제…… 만족하나?”
“…….”
“어이, 신조. 만족하냐고.”
콰직!
성진의 몸이 한차례 부서져서 흩어졌다.
이성을 상실한 로키는 성진의 몸을 아예 부숴서 화풀이한 후, 욕설을 내뱉었다.
“네가…… 네가 전부 끝낸 거야!”
“……끝나야 했으니까.”
“입 닥쳐! 영겁의 시간 동안 널 찢어 죽여주마!”
콰직!
콰지직!
로키의 행동은 의미가 없었다.
이곳에서는 고통조차 사라졌기 때문에.
단지, 그는 분을 풀 곳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크아아아아!”
콰지직!
지지지직!
“죽어라! 죽어!”
콰아앙!
“너 때문이야! 너 때문, 너 때문에…… 위대한 내가!”
성진은 잘게 쪼개진 자신의 몸을 살펴보다가 눈을 감았다.
어차피 이곳에서의 현상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다.
모든 것이 허상이고 또한 이곳에 갇힌 사람이 그것을 알 수 없는 곳, 허무의 감옥 긴눙가가프.
종말의 수레바퀴는 이곳에서 멈춰 있다.
시간이 또 지났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선 시간이 흐르지 않았지만, 성진은 속으로 날짜를 셌다.
대충 5년 정도.
성진은 조금 늙었다.
실제로 그가 나이 든 것은 아니었다.
종말 이후의 세계에서의 육체 그대로였지만, 그가 자신이 나이 들었다고 생각하자 놀랍게도 몸이 그렇게 변했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랐다.
분명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라 신아름이 보았다면 손가락질을 하며 잡아당겼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밖으로 나간다면 수염을 길러 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밖으로 나간다면…….’
물론, 그럴 일은 없다.
자신이 이곳에서 나간다는 건 이 공간도 불안정해진다는 얘기였다.
자신의 그리움 때문에 모든 이를 고통받게 할 수는 없었다.
종말의 수레바퀴는 반드시 이곳에서 영원토록 회전을 멈춰야 했다.
쿵!
쿠우웅!
“흐흐흐…… 거의 다 팠어! 조금만! 조금만 더!”
로키는 미쳤다.
그가 신성을 사용해 이곳의 벽을 갉기 시작한 지도 오래다.
신이 두더지가 된 꼴이라니, 보기 좋지 않았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열성적으로 무언가를 했다.
성과 없는 도전이 그에게 주어진 형벌의 한 종류일지도.
성진은 졸렸다.
그래서 잠시 잠을 잤다.
-오빠.
신아름의 꿈이다.
사실, 이곳에서는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렇게 안락한 공간이 아니니까.
그렇기에 지금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것도 신아름이 아닐 것이고 꿈도 아닐 것이다.
그냥, 망상이었다.
“응.”
-우리 말이야…… 결혼할까?
신아름이 볼을 발갛게 물들이며 물었다.
성진은 미소 지었다.
“그걸 왜 네가 말해, 아름아.”
-오빠가 쭈뼛쭈뼛 말을 안 하니까 그러지! 사랑은 쟁취하는 거라고 우리 여사님께서 그랬어!
“언제부터?”
-오빠가 돈 많이 벌고 나서부터. 웃기지?
성진의 미소가 진해졌다.
“응, 웃기네.”
-그래도 결혼하자는 건 진짜야! 우리 언제 결혼해?
-글쎄…… 일단 돌아가면…….
돌아가면.
퍼뜩, 현실감이 마음의 벽을 무너트리고 해일처럼 성진을 덮쳤다.
“헉…… 허억…….”
성진은 숨이 가빠졌다.
‘지금…… 얼마나 지났지?’
얼마나 환상에 빠져 있던 것일까.
성진은 세던 날짜도, 머리카락의 길이도 모두 낯설어졌다.
시간을 잊었다는 것이다.
“헉…… 커헉…… 끄아아아아악!”
끔찍한 고통이 찾아왔다.
그는 이제야 깨달았다.
로키만 미친 것이 아니었다.
성진도 미쳐 가고 있었다.
“하…… 하하…….”
탈진한 성진이 허공에 몸을 띄웠다.
생각해 보니 미쳐도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자신이 미쳤다고 누군가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의 추태를 누군가 볼 수도 없는 공간이었다.
그러니, 오히려 미치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어째서 정신을 놓아 버릴 수 없는 것일까.
콰앙!
콰앙!
저편에서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소용없는 짓을 계속하는 로키처럼, 왜 정신을 놓을 수 없는 것일까.
‘혹시…….’
혹시 돌아갈 수 있지는 않을까.
절대로 그럴 리는 없겠지만, 돌아갈 수 있다면 미쳐서는 안 됐다.
스르륵.
성진은 또 눈을 감았다.
계속해서 성진의 몸은 야위어 갔다.
고목나무처럼 말라 물 한 방울이라도 주어진다면 스펀지처럼 불어날 것처럼 보였다.
입술은 잇몸에 달라붙었고 턱의 피부는 늘어졌으며 눈두덩이도 허물어져 눈조차 뜨기 힘겨워 보였다.
이렇게 노인이 되었다.
‘미쳐선…… 안 돼…….’
돌아가야 하니까.
미쳐서는 돌아갈 수 없으니까.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했다.
성진은 방법을 떠올렸다.
이 공간은 그가 생각하는 대로 환상을 보여 준다.
그렇다면 다시 젊어지는 것도 가능했다.
‘그래…… 다시…… 돌아가자. 천천히…….’
빠졌던 치아가 새로 돋아나기 시작했다.
늘어졌던 피부는 팽팽하게 당겨졌고 흐릿했던 동공은 점차 맑아졌다.
하얗게 센 머리가 시커먼 색으로 돌아왔다.
그는 다시 젊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는 다시 반대로 늙기 시작했다.
육체의 최전성기에서 임종 직전의 나약한 시기까지.
성진은 이것을 받아들였다.
이곳에서는 계절이 없었기에, 자신의 회복과 쇠퇴가 곧 계절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삶과 죽음을 번갈아 맞이하고 있었다.
그것이 도대체 몇 번일까.
몇 번이나 삶과 죽음의 순환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일까.
성진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을 헤아려 봐야 가슴만 아파지니까.
콰앙!
콰앙!
성진은 저 멀리 아직도 벽을 파헤치는 로키를 쳐다보았다.
그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내가 돌아간다면…… 전부 소멸시켜 주마…….”
그가 악에 받쳐 이렇게 말할 때마다 성진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가 혹시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한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는데, 그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은 정답이었다.
그는 절대 선해질 수 없었다.
선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자니까.
성진은 로키에게서 관심을 거두고 또 눈을 감았다.
이번에도 신아름을 만나기 위해.
-좋은 아침이에요! 흐레스벨그님!
떠오른 것은 신아름의 얼굴이 아니었다.
멋지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매였다.
베르드 폴니르.
신아름의 전생이었다.
성진은 몸을 뒤척였다.
순백의 날개와 거대한 부리.
신조(神鳥) 흐레스벨그.
그는 베르드 폴니르에게 말했다.
-그래, 좋은 아침이구나.
-니드호그가 또 말썽이에요!
-이런.
-그럼, 언제나처럼 폭풍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성진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
콰아아아아아아아아!
세계수가 뒤흔들릴 정도로 엄청난 폭풍이 일었다.
그가 폭풍을 멈춘 후, 베르드 폴니르가 그의 날개를 정돈해 주었다.
그 후로도 한참을 그녀와 대화했다.
신의 모습이어서 그런지, 시간에 대한 관념도 인간과는 다른 듯했다.
베르드 폴니르가 다른 세계를 오랫동안 뚫어지게 보았다.
성진은 그녀의 곁에 다가가 속삭였다.
-무엇을 보느냐?
-인간들이요. 별처럼 빛나는 인간들. 참으로 멋진 생명체에요…….
-이해할 수 없구나.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물어보고 싶구나.
베르드 폴니르는 사랑에 빠진 것처럼 얼굴을 붉히고 인간들을 가리켰다.
-아무것도 아닌데, 정말 저렇게 보잘것없는데, 어떻게 보면 이 광대한 우주에 찍힌 점 하나나 다를 바 없는 존재잖아요?
-너와 나 또한 그렇다.
-에이! 신조 님은 우주에 찍힌 점 중에서 가장 큰 점이죠! 저는 그 옆에 자리 잡은 좀 작은 점!
-……그런가?
-아무튼…… 저런 작은 점들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스스로가 대단하다고 착각하고 으스대지만, 곧 우주의 광대함을 깨닫고 좌절하죠.
-모든 필멸자들은 그런 운명을 맞이하지.
-하지만…… 하지만 저들은 달라요.
-……어째서?
베르드 폴니르가 성진을 돌아보았다.
-혼자가 아니잖아요!
-…….
-비록 점 하나지만, 자신과 같은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무려 점이 2개! 그리고 그 점들이 이어지면 선이 되고…… 또…… 선이 이어지면……
-면이 되겠지.
-네! 그렇죠! 바로 그거!
-그래서?
-그래서 생각해 보건데, 언젠가 인간들이 이 우주를 가득 메우지 않을까요?
-헛된 망상이구나.
베르드 폴니르가 조금 시무룩하게 풀이 죽어 말했다.
-정말…… 망상일까요?
-너를 꾸짖으려 한 말은 아니었다.
-헤헤…… 알아요, 신조 님은 상냥하다는 걸. 그래도…… 혹시나 미래에 종말이 사라지고 인간이 번영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건 확신할 수 없구나. 나로서는 종말의 수레바퀴는 사라지는 미래도 상상하기 어려우니까.
-한번 상상해 보세요! 인간들은 상상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고 말해요, 그 말이 신이라고 다를까요?
휘이이잉.
그때, 다른 세계에서 불어온 바람이 세계수를 시리게 했다.
성진은 한쪽 날개를 펼쳤다.
-들어오거라.
-하지만…….
-어서, 몸이 얼 것이다.
베르드 폴니르는 총총 걸어서 성진의 품으로 들어왔다.
-따뜻해요…….
-몸을 아끼도록 하여라.
-신조 님을 오래도록 보필하게요?
-너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내가 신경이 쓰이니까.
-……알겠어요. 신조 님, 저는 혹시 다음 생이 있다면 인간으로 태어날 거예요.
-……어째서?
-저도 저 별 무리 속에서 빛나고 싶어요. 생명을 태워 빛을 발하는 저들처럼. 그런 의미에서, 신조 님은 제가 인간이 된다면 어쩌실 거예요?
성진은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답했다.
-너를 지켜봐 주마.
-…….
-제대로 걷는지, 모진 풍파와 운명에 휩쓸리지는 않는지 말이다.
-신조 님…… 감동적인 말이지만 됐어요! 저는 보살핌이 필요하지 않아요! 제가 바라는 건…… 신조 님이 제 곁에 계셔 주시는 거예요.
-신인 내가 인간이 된 너의 곁에 있어서 무엇이 이로울 것이라고.
-헤헤…… 신조 님! 제가 인간이 된다는 것부터가 말도 안 되는 가정이잖아요. 그럼 신조 님이 인간이 되는 것도 가능하다고 가정해 보는 거죠. 불경했나요?
-불경하구나.
-용서해 주시겠어요?
-당연한 것을.
베르드 폴니르가 성진에게 머리를 비볐다.
그녀의 애정 표현이었다.
성진은 가녀린 그녀에게 느껴지는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무심코 내뱉었다.
-베르드 폴니르여, 너를 아낀다.
-……저도요, 신조님. 저 창백한 폭풍 베르드 폴니르 또한 우주의 절대 선인 흐레스벨그님을…….
콰아앙!
그때, 로키가 만들어 낸 소음 때문에 성진은 조금 일찍 회상을 마쳤다.
“으…… 흑…… 으으…….”
돌아가고 싶다.
“크흑…… 흑…….”
그녀의 곁으로.
“으아아아아아!”
쾅!
콰아앙!
가상의 벽을 두드리는 것은 이제 로키만이 아니었다.
성진도 벽을 두드렸다.
“왜…… 왜…….”
그녀의 곁에 설 수 없을까.
가혹한 운명에 몸서리쳤다.
그런데 성진의 미간이 잠시 찌푸려졌다.
이질적인 소음이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쩌어엉.
뭔가가 깨지는 소리.
아니.
찌지지직.
뭔가가 찢어지는 소리 같기도 했다.
찌찌직!
로키가 광소했다.
“드디어! ……드디어!”
***
죽음은 인간에게 있어 필멸의 형벌이자 소멸의 축복이었다.
고통스럽고 영원하진 않지만, 반드시 끝은 있었다.
“끄아아아아!”
이민상과 무명인의 영혼은 대립했다.
무명인은 가장 위대한 인간의 영혼이었다.
반면 이민상의 영혼은 무명인의 영혼과 비교했을 때 살아온 세월이 비할 바 없이 초라했다.
그러니 무명인이 이민상을 제압할 것이다.
분명히 그래야 마땅한데, 어째서.
어째서 무명인의 영혼이 밀려나는 것일까.
“너, 너는…… 누구…….”
이민상의 입에서 비틀린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것도 잠시, 머리를 부여잡았던 이민상은 심호흡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입에서 뇌기 섞인 한숨이 흘러나왔다.
“후우…….”
젊은 육체.
그리고 막대한 정신과 힘.
그는 신이었다.
파지직.
파지지직!
몸 안에 용솟음치는 힘을 느낀 그는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콰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
최후의 프로토콜이 작동하고 있었다.
신이 된 그는 이 상황이 대체 어떤 상황인지, 무엇이 일어나려 하는지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곧바로 알아챘다.
“가야 해.”
가야 한다, 저곳으로.
‘가면 안 돼!’
그의 내면에서 무명인이 반대했다.
무명인은 지금 저 빛기둥을 보고 오딘의 계획이 무엇인지 알아챘기 때문에 이토록 길길이 날뛰는 것이었다.
‘오딘이 나 뿐만 아니라 너 또한 속인 거야!’
이민상은 무명인에게 비웃음을 흘렸다.
“난 속지 않았어.”
‘……뭐?’
“알고 있었어. 결국, 이렇게 될 거라고.”
‘그럴…… 수가…….’
콰아아아아아아아!
성진이 로키를 빨아들인 후,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프로토콜이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 찰나의 시간이 남았을 뿐이었다.
이민상이 달리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파직.
파지직!
곧, 그가 뛰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신이라 할지라도 그가 접근하는 것을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
그가 성진이 사라지는 곳으로 뛰어 들어간 것을 그 누구도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붙잡은 작은 생물도.
‘이 미친 자식!’
후우웅.
이곳은 긴눙가가프.
무명인은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았다.
허무의 감옥이자, 신이라고 해도 빠져나올 수 없는 곳.
‘네가 지금 무슨 짓을 벌였는지 알기나 해!’
무명인은 이민상에게 더 추궁하지 못했다.
그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서 그가 이미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발을 들였다는 것 또한 깨달았다.
‘……맙소사. 대체 뭐 때문에…….’
새하얀 공간.
이민상은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틀렸어! 찾을 수 없다! 긴눙가가프는 시간이 없어! 찰나의 차이더라도 안에서는 수백, 수천 년이 흘렀을 것이다! 그는 이미 미쳐 버리고 먼지로 변했을 거야!’
“아니.”
‘내 말을 들어!’
“네 말은 듣지 않아.”
이민상은 확신에 찬 듯이 말했다.
“형은 살아 있어. 포기하지도 않았을 거고.”
이민상이 새하얀 공간에서 무언가를 계속 찾아 헤맸다.
이민상이라는 인간에게 할 말이 없어진 무명인은 그를 대신해서 날짜를 세었다.
‘1년쯤 지났다. 이제…….’
“여기다! 찾았어!”
‘맙소사…….’
이민상이 찾던 것은 긴눙가가프의 틈이었다.
완전무결한 감옥에 있어도 안 되고 있을 리가 없는 틈.
이민상은 그것을 찾아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이민상이 긴눙가가프에 틈이 있다는 걸 알아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모든 것에는 반드시 틈이 존재한다.
당시, 성진이 검은 공간에서 니드호그에게 들었던 말이었다.
성진은 지금도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니드호그의 이 말만큼은, 성진에게 전하려 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이것이 네 결론에 도움이 되길 바라마.
성진이 검은 공간에서 사라졌을 때, 니드호그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노인이었던 이민상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방금 그 말…… 무슨 뜻입니까?
-세상의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 신조의 계획이 성공한다면, 그는 대가를 치를 것이다.
-대가라니? 죽기라도 한다는 겁니까?
검은 새끼용이 고개를 저었다.
-죽는 것이라면 다행이겠지, 그는 허무의 감옥에 스스로를 가둘 것이다.
-허무의 감옥? 그곳에…… 형이 왜…….
-너희와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겠지. 종말의 수레바퀴를 안고 그곳으로 향할 것이다.
니드호그는 이민상에게 지금 어떤 상황인지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막, 막을 방법은…….
-없다.
이민상은 힘을 끌어 올렸다.
비록 영혼만이 니드호그에게 이끌려온 것이었지만 그의 힘은 건재했다.
파지직.
파지지직!
-날 놀릴 생각이라면…….
-하나, 그를 구할 방법은 있다.
-……저, 정말? 형을 구할 방법이 있습니까?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압니까?
-허무의 감옥을 이용하는 방법을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나였으니까.
니드호그는 담담히 말했다.
-하나, 그곳은 너무도 위험한 곳이며 신이라 할지라도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는 곳이다.
-그런데 그걸 왜 나한테 얘기하는 겁니까?
-신들이 할 수 없는 일이라도…… 너라면 할 수 있으니까.
-……말하세요.
-허무의 감옥에 좌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길이란 것도 원래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지나다니며 만든 것이지.
-그래서?
-그곳에 흠을 내두었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라. 공간이 깨지기 시작하면 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틈? 당신이 흠을 만들어 두었다고?
니드호그가 허무의 감옥에 틈을 만들었다.
이민상은 그것이 이해가 가지 않아 물었다.
-어째서?
-그곳에 수레바퀴를 던져 버리는 것은 나 또한 생각했던 바다. 하나…….
-어째서 그러지 않았지?
니드호그의 눈은 조금 슬펐다.
-나는 로키와 맞설 수 없다. 또한 설령 그를 붙잡아 봉인하더라도…….
-…….
-나를 구할 존재가 없으니까. 나는 그곳에서 버려질 테니까. 나는…….
니드호그가 말했다.
-혼자니까.
-……그래서 다른 방법을 쓴 거군요. 하지만…… 내가 그 틈을 벌린다면, 수레바퀴가 다시 세상으로 나오는 것 아닙니까?
-그것은 문제 될 것이 없다.
-어째서?
-이 방법을 생각한 존재가 1명 더 있으니까.
이민상은 그 1명이 누구인지 물었으나 니드호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형에게 직접 말하지 않은 겁니까?
니드호그는 이번에 질문엔 답했다.
-그곳에서 찾아올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 무척 괴로운 일이니까, 그 사실 자체에 미쳐 버릴 것이다.
-…….
-이제, 가거라. 이 기억을 네 영혼 깊숙한 곳에 각인시켜 두도록 하마. 언젠가 되찾게 된다면 내가 했던 말들을 기억하도록 해라.
이민상은 니드호그가 언급했던 틈이 바로 여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후우웁…….”
콰릉.
콰르릉!
외날 검이 진동했다.
그리고 푸른 번개가 되어 틈을 갈랐다.
쩌정!
틈이 벌어지더니 허무의 공간이 깨졌다.
하지만, 이어서 다른 공간이 나타났다.
그 공간들은 마치 우주처럼 보였고 누구라도 이곳에서 길을 잃을 것 같았다.
‘하! 그것 봐! 어차피…….’
콰릉!
느껴졌다.
세계를 구하고 끝도 없는 허무에 몸을 던진 사람의 기운이.
파지지직!
이민상의 눈에 정광이 깃들었다.
그는 신이었고 전능했다.
푸른 뇌전이 그를 감쌌다.
우레가 된 이민상이 허무의 공간을 찢기 시작했다.
쩌정!
찌지지지직!
콰아아아아아아앙!
직선으로 꿰뚫자, 우주가 비틀리며 숨겨 둔 공간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곳도 아니었다.
계속, 계속 가야 했다.
‘……네가 먼저 미칠 거다. 신이 이런 데서 허망하게…….’
“닥쳐, 난 신이 아니다.”
‘…….’
“인간 이민상이다. 나는 이곳에 형을 버려 두고 가는 짓 따위는 배운 적 없어.”
‘……그것이 너인가. 아니, 우리인가?’
“멋대로 생각해. 선의는 반드시 보답받는다. 마땅히 그래야 해.”
무명인은 이민상을 거부했었다.
새로이 탄생한 그의 기억.
이민상의 모습 또한 그 자신이었다.
무명인은 마침내 깨달았다.
‘그랬군, 오딘. 참으로 교활하구나…….’
무명인의 영혼은 피식 웃었다.
상황이 어두운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아까보다는 나았다.
분명, 달라진 점이 있었으니까.
나와 네가 우리가 되었으니까.
‘정신을 잃더라도…… 걱정하지 마라.’
“뭐?”
‘내가 너를 지탱할 테니.’
“…….”
콰르릉!
쩌저저적!
이민상의 푸른 번개가 계속해서 세계를 찢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또 얼마만큼의 신성을 사용했는지 이제는 세는 것을 포기했다.
이민상의 눈빛이 흐릿해졌다.
신성을 한계까지 사용한 부작용이었다.
그는 지금 백치가 되어 가고 있었다.
“으으어…….”
찌지직!
‘힘을 내라, 거의 다 왔어! 신호가 오고 있다!’
콰아앙!
콰앙!
누군가 계속 벽을 두드리는 소리.
소리로 들었을 때는 이곳을 찢으면 도달할 것 같았다.
‘정신 차려라!’
그리고 마침내, 이민상의 벼락은 푸른 창이 되어 세계를 찢었다.
-무지개의 비가 내릴 것이다…… 그리고…….
운명의 샘의 예언과 마찬가지로.
-푸른 창이 세계를 찢을 것이다.
쫘아아아아아아아악!
푸른 창에 찢겨 너덜거리는 공간.
그곳에, 누군가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그리고 이민상을 확인하고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너는…… 누구지?”
이민상은 백치가 된 상태로 누군가를 찾았다.
그의 눈에 축 늘어진 성진이 보였다.
“헤헤…… 형…… 돌아가자…….”
이미 정신을 놓아 버린 이민상.
성진은 그를 보자 경기를 일으키며 천천히 다가왔다.
“민상…… 민상이니?”
“형…… 형…… 가야 하잖아. 왜 여기 있어…….”
“민상아…….”
“내가…… 내가 데리러 왔어. 함께…… 돌아가자.”
“…….”
“집에…… 가자.”
그때, 로키가 발작하듯 소리쳤다.
“어딜!”
우지지지직!
로키가 수레바퀴의 힘을 극한으로 끌어 올려 몸을 부풀렸다.
이민상의 육신 따위는 그가 한 손으로도 찢어발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백치였던 이민상의 기세가 일변했다.
탁했던 동공은 금세 맑아졌고 웅혼한 기백이 넘쳤다.
파지지직.
콰르르릉!
“흐아압!”
그가 쥐었던 검이 뇌전으로 변해 로키의 가슴으로 날아갔다.
콰지지지직!
“끄아아아아!”
파직.
파지직!
검은 로키의 가슴에 박혀 그를 봉쇄했다.
“후우…….”
이민상의 달라진 모습에 성진이 멈칫했다.
분명 이민상이었지만, 어딘가 달랐다.
이민상이 조용히 말했다.
“이제, 그만 나오시지요.”
성진이 의문을 품을 때쯤, 뒤편으로 멋쩍은 웃음이 들려왔다.
“하하하하! 이거 참, 언제부터 알아챘나?”
“한참 전부터입니다. 오딘.”
이민상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로 답했다.
까아아악!
그러자, 까마귀 2마리가 날아들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들 했군. 신조도, 그리고…… 자네도.”
“…….”
말을 하는 까마귀를 뒤로하고 다른 까마귀 1마리가 로키에게 부딪혔다.
“끄아아아아악!”
로키의 비명에 성진이 소리쳤다.
“무슨 짓을!”
“수레바퀴에 붙잡힌 원혼들을 해방한 걸세. 놀라지 말게.”
“오딘…….”
이제는 까마귀 1마리만이 남아 성진과 이민상을 보았다.
“다들 떠나게. 이곳에는 내가 남겠네.”
“당신이?”
“이곳을 안에서부터 봉합하지 않으면 저 미치광이가 또 뛰쳐나갈 테니까.”
“하지만…….”
“내 걱정은 하지 말게. 이제 내가 없어도 세상은 알아서 굴러갈 테니…….”
오딘의 말에 이민상이 성진의 팔을 붙잡았다.
성진을 붙잡고 뒤돌아서는 그에게 오딘이 물었다.
“그런데, 자네는 누군가?”
아주 오래전 기억.
-자네는 누군가?
무명인을 처음 만났던 오딘이 물었던 말이었다.
그때에, 무명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이름이 없었기에.
-이름은 다른 이가 자신을 정의할 때에 쓰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스스로를 정의할 때에도 쓰이지.
무명인은 평온한 감정을 느꼈다.
그는 줄곧 인간을 증오해 왔다.
보잘것없고 부족한 종족으로 태어난 자신마저도.
하지만, 결국 그것이 자신의 핑계였음을 깨달았다.
신이든 인간이든 그런 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민상이 허무의 감옥에 스스로 몸을 던져 백치가 되어서까지 신조를 구할 때, 그것을 깨닫고 말았다.
누구든 위대해질 수 있었다.
그것이 신이든 인간이든, 본인의 선택으로.
그러니 이제는 답을 내려야 했다.
어찌 보면, 무명인으로서 마지막인 대답이었다.
“나는 이민상입니다.”
후우우웅.
그 순간, 백치가 된 이민상의 영혼과 그를 지탱하던 무명인의 영혼이 하나가 되었다.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까마귀가 기쁜 듯이 웃었다.
“하하하! 제법 좋은 이름이군 그래. 그래서 신성의 씨앗이 발아했는데 아직도 같은 생각인가?”
“같은…… 생각?”
“신이 될 생각인지 물었네.”
이민상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인간으로 남을 것입니다.”
“크하하하! 어째서?”
“어차피 이곳을 빠져나가려면 신성을 대가로 치러야 하지 않습니까.”
“고작 그런 이유인가?”
“……그리고.”
이민상이 한숨 쉬었다.
“이제 세상에 신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게 자네의 결론이군.”
오딘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리자, 이민상은 할 말을 마쳤다는 듯 뒤로 돌아 공간을 벗어났다.
콰아아앙!
이민상과 성진이 빠져나간 공간.
그들이 빠져나간 통로가 스르륵 메워졌다.
그러자, 로키의 가슴에 박혀 있던 번개도 사라졌다.
“오딘! 또 만났구나!”
“로키, 네 존재는 정말 지긋지긋하구나.”
“……억겁의 세월을 함께하게 됐으니 너를 영원히 고통 속에 몸부림치게 해 주마!”
콰직.
콰지지직.
로키가 까마귀의 사방을 막았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로키는 오딘의 관심사 밖이었다.
-그건…… 아마도 저자가 이름을 가지는 그때, 내 뜻을 알게 될 걸세.
“결국엔, 이렇게 되는군.”
“오딘!”
“아, 로키. 말을 끊어서 미안하지만, 이 말은 해야겠네. 네 감옥을 안에서부터 메워야 하는 건 맞네.”
“……뭐?”
불길함을 느낀 로키는 재빨리 까마귀를 움켜쥐려 했다.
하지만, 오딘이 더 빨랐다.
푸스스.
까마귀가 흩어졌다.
오딘은 마지막 말을 남기며 사라졌다.
“하하하! 그게 자네와 함께 이곳에 갇힌다는 얘기는 아니야. 애초에 후긴과 무닌은 정신체거든! 그럼, 나도 이만 퇴장하겠네. 독방 잘 쓰게! 넓구만, 넓어! 수영도 하겠어!”
“오디이인!”
오딘과 무명인, 그리고 이민상의 선택.
종말 전쟁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이 선택은 승패와는 상관이 없었지만,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을 이루었다.
선의는 보답받는다.
언젠가는.
에필로그
“아름 씨, 나 주변에 괜찮은 사람 있는데 그 사람이 글쎄 저번에 아름 씨 보고 괜찮게 생각했나 봐. 소개 좀 해 달라는데 어떻게 할까? 거절해, 말아?”
“죄송하지만 거절해 주세요.”
“왜? 사귀는 사람도 없잖아.”
신아름이 어설프게 미소 지었다.
거절을 잘 못 하는 그녀였지만, 이런 문제는 칼 같았다.
“알았어, 어쩔 수 없지. 나중에 후회할 거야. 정말 괜찮은 사람이거든.”
“마음은 감사해요, 과장님.”
“허이구, 그럼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남편이랑 요번에 갔던 곳이 괜찮았어.”
신아름은 살면서 누군가와 만난 적이 없었다.
비교적 눈에 띄는 외모를 지녔고, 그녀를 향한 구애가 끊이질 않건만 신기하게도.
그 이유는 그녀도 잘 몰랐다.
단지, 방금 과장의 제안을 듣는 것만으로도 말할 수 없는 죄악감이 그녀를 붙들었다.
그러지 말라고.
기다리라고.
‘대체 누구를…….’
그녀는 벌써 나이가 꽤 찼다.
의젓한 사회인이 됐고, 가끔 부모님에게 용돈도 드렸다.
하지만, 별다르게 계획하는 일은 없었다.
누군가 그녀에게 꿈을 묻는다면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아니, 없어졌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녀의 꿈은 현모양처였으니까.
아이들과 남편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웃음이 가득한 삶을 사는 게 그녀의 바람이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그 꿈이 사라졌다.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갑자기 싫어졌다.
그녀가 꿈꾸던 식탁에 마주 앉아야 누군가가 사라진 것처럼.
꼭, 그런 감정이 들었다.
그러니, 마음이 허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녀는 요 며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툭.
“아름 씨?”
“아, 예…… 주울게요.”
의도하지 않았는데, 볼펜을 툭 하고 떨어트렸다.
잠이 든 것도 아닌데 손에서 힘이 빠졌다.
좋지 않은 징조였다.
“하아…… 아름 씨, 오늘은 집에 가서 일찍 쉬는 게 어때?”
“그래도…… 될까요?”
“그래, 갑자기 쓰러지는 것보단 그게 낫겠어.”
“그럼…… 염치없지만…….”
“들어가, 들어가서 잘 들어갔는지 톡만 해.”
“네…… 죄송해요.”
반차를 쓰고 조퇴한 그녀는 회사에서 나와 크게 숨을 쉬었다.
“하아…… 하아…….”
그녀는 어쩐지 오늘,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단순히 기분 탓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늘은 흐렸다.
먹구름 가득한 날씨.
사람들은 저마다 펼치지 않은 우산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우산이 없었다.
‘하나 살까…….’
그응.
버스가 왔으니 생각을 미뤘다.
집 앞 정류장에서 내리면 집까지 뛰어가더라도 그렇게 젖지는 않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마침, 창가에 자리가 났다.
그녀가 좋아하는 자리였다.
그곳에 앉아 반나절 동안 묶여 있던 머리를 풀었다.
툭.
툭.
신고 있던 구두에서도 잠시 해방되었다.
“하아…….”
이제 좀 살 것 같다는 기색으로 창가에 머리를 기댔다.
뽀득.
습기 찬 유리창이 그녀의 머리를 지탱했다.
그녀는 유리창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누군가의 이름을 쓰려다 잠시 멈칫했다.
습관적으로 쓰는 이름인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버스에 타다 못해 실린 채로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끼이익.
치이이이.
그녀가 탄 버스가 정류장마다 사람들을 토해 냈다.
얼마 안 가, 그녀도 곧 정류장에 내렸다.
“비는…… 안 내리네.”
날씨만 흐릴 뿐, 비는 쏟아지지 않았다.
지금 그녀에겐 이런 하늘마저 답답했다.
쏟아 낼 듯 쏟아 내지 못하는 그녀의 감정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터덜터덜 걸었다.
‘……어?’
그녀의 몸이 잠시 힘을 잃고 기우뚱했다.
창백한 얼굴을 한 그녀는 근처 벤치에 앉아 숨을 골랐다.
그동안 그녀는 잠깐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제 갈 길을 가는 와중, 그녀만 멈춰 있었다.
그녀는 어쩐지 그게 슬펐다.
스윽.
그녀가 다시 일어나 걸었다.
천천히.
이번엔 쓰러지지 않게.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이 그녀를 지나쳤다.
가슴에 우산을 품고.
그때였다.
콰르릉!
하늘이 기어코 울음을 토했다.
툭.
투둑.
그녀의 뒤에서 걸어가던 커플이 손바닥을 내밀고 말했다.
“어? 비 오네?”
“그러게. 한 방울씩 떨어진다. 그럼 우산……”
콰르릉!
쏴아아아아아.
순식간에 소나기로 돌변한 빗줄기.
신아름은 우산도 없이 비를 맞게 되었다.
집이 코앞이었기에 뛰어가면 조금 덜 젖을 텐데도 그녀는 천천히 걸었다.
팡!
팡!
젖어서 들러붙은 머리칼이 소리를 줄여 주었다.
모두가 우산을 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 소리에 돌아봤을 때, 지나는 사람들의 우산이 대부분 펴져 있었다.
알록달록, 다양한 색상의 우산들.
‘우산…… 우산…….’
그녀는 마침내, 잊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를 떠올리게 되었다.
“헉…… 허억…….”
머리를 강타하듯 순식간에 쏟아진 기억에 그녀는 기절할 뻔했다.
“으…… 으으으…….”
비틀비틀.
그녀가 향한 방향은 집이 아니었다.
그녀는 거리를 헤맸다.
그 모습이 집 앞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어딨어…….”
대답은 없었다.
“어딨냐고!”
주변에서 그녀를 보고 수군거렸다.
“뭐야…… 미쳤나 봐…….”
“비는 왜 맞고…… 화장도 다 번졌네. 쯧, 이상한 여자네.”
그녀는 최성진을 잃었다.
비가 오는 날마다 비를 맞으며 우산을 나눠 주던 남자.
“어디 있냐고! 나한테 돌아온다고 했잖아!”
다다다.
그녀는 구두도 내팽개친 채 미친 여자처럼 내달렸다.
턱.
그리고 자신의 발에 걸려 넘어졌다.
철퍽.
다 찢어진 스타킹에 피가 고였다.
흙탕물을 뒤집어써도 그녀는 개의치 않고 울었다.
“온다고…… 분명…… 온다고 했잖아…….”
대답은 없었다.
“나한테…… 돌아온다고…….”
쏴아아아.
생각해 보면 늘 그랬었다.
비가 오는 날 최성진을 처음 만났고, 또 비 내리는 날마다 그와의 추억이 있었다.
그러니, 그가 지금 이 순간 기억이 난 것도 의아한 일은 아니었다.
어떻게 그를 잊고 살았던 것일까.
비에 젖은 장발.
그녀는 우산을 쓴 사람들을 보았다.
“없어……. 왜…….”
쏴아아.
툭.
툭.
갑자기 비가 그쳤다.
“어? 뭐야?”
“뭐지?”
사람들은 비가 뚝 끊어진 것처럼 그치자 의아해하며 우산을 접었다.
그런데, 우산을 접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검고 큰 우산을 들고 신아름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우산을 신아름에게 씌워 주었다.
쏴아아아아.
그러자, 거짓말처럼 하늘에서 다시 비가 거세게 쏟아졌다.
우산을 접었던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 다시 우산을 폈다.
“에이 씨!”
“왜 이렇게 오락가락해!”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두 사람은 마주했다.
“왜…… 늦었어.”
신아름에게 우산을 씌워 준 남자는 성진이었다.
그는 조금 야위었다.
“미안.”
“또…… 가?”
“…….”
“또, 어디 가냐고!”
성진이 신아름에게 답했다.
“아니, 안 가.”
“흑…….”
“아무 데도.”
신아름이 성진의 품으로 들어왔다.
날개를 들어 매를 품던 신조처럼, 성진은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럼…… 옆에 있어.”
“응.”
“계속.”
“응.”
비 오는 날, 길었던 싸움이 끝이 났다.
세계도, 둘의 이별도.
***
-중대한 오차 발생. 수레바퀴 구동 불가능.
“그래…… 그래……. 보고 있어.”
-오류를 바로잡길 권장합니다. 다중 우주 C-382911827BE의 즉각적인…….
“……됐어.”
-그릇된 의견으로 사료됩니다. 재고를 권합니다.
“그건 됐고, 오랜만에 나랑 대화나 할래?”
-대화에 응하겠습니다.
별들의 무리로 이루어진 뭔가가 턱을 괴더니 허공에 질문을 던졌다.
“내기는, 내가 진 게 맞겠지?”
-그렇습니다. 복수하시겠습니까?
“하하하, 나를 속 좁은 존재로 만들지 마. 이래봬도 도량이 넓기로 정평이 나 있으니까.”
-그렇습니까? 그것 또한 오류가…….
“워, 그것보다 내가 어떻게 해야 좋을까?”
-질문의 저의를 모르겠습니다. 명확하게 문장을 완성해 주셔야 합니다.
별들의 주인은 허공에서 들려온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표현했다.
“화단을 만들었어.”
-정말입니까?
“아니, 가정하는 거야. 들어 봐.”
-알겠습니다.
“화단을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한 가지 색의 꽃으로만 화단을 구성했어.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정말 예뻤지.”
별 무리가 무언가를 떠올리다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잡초들이 자라나기 시작한 거야. 화단은 내 통제를 벗어났고 다른 풀들이 자라났어. 나는 그것들을 막 뽑았지. 처음 만들었던 화단의 모습이 가장 최적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해서.”
이번에도 허공에서는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잡초는 결국 나를 넘어섰어. 나는 화단을 가꾸길 포기했지. 그래서 잊고 지냈어. 분명 엉망진창이 되어 끔찍하게 변할 거라고 예상했지.”
-…….
“어느 날, 예전에 화단이 있던 자리에 들렀을 때 내가 보게 될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대답해 봐.”
-끔찍한 지옥도?
“땡.”
-악마들의 수채화?
“땡, 창의력을 발휘해 봐.”
-당신의 속옷 속 무언가?
“죽을래?”
-정답이 뭡니까?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더 아름다워진 화단이라는 답을 원합니까?
“음…… 아니.”
-그럼…….
“정답은 나도 모른다야. 화단이 어떻게 되어 있을지 내가 어떻게 알아. 내가 화단도 아닌데.”
-말장난하는 거라면…….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정말 네가 말한 대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더 아름다워지지 말라는 법도 없잖아?”
-……뭘 기대하십니까?
“기대라…… 아니,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아. 단지…… 이제는 그냥 지켜보려는 것뿐이야.”
-그렇다면 관리자로 신을 생성할까요?
“워허, 절대 그러지 마. 이제 저들이 신에게 배울 것은 다 배웠어. 남은 건 저들의 몫이야.”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들은 어긋날 것이고 누군가에게 질서를 배워야 합니다.
별 무리는 확신에 차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내가 틀렸음을 알았다. 저들이 어긋나더라도 그것을 바로잡는 것 또한 저들일 것이며 질서를 배우는 것은 신에게서가 아니라 저들 중 한 발을 먼저 내딛는 자에게서다. 그가 곧 길잡이일 것이니.”
-……변하셨군요.
“배운 거지. 저 작은 생명체들에게.”
-이제 결정하셔야 합니다.
“그래. 다중 우주 C-382911827BE의 독립을 허락하겠다.”
-다중 우주 C-382911827BE 지배 권한을 이양하겠습니다. 대상을 지정해 주십시오.
“대상은…….”
별 무리가 말했다.
“공백. 공백으로 하지.”
-다중 우주 C-382911827BE 독립되었습니다. 그들의 앞날에 축복이 깃들기를.
“축복은 내가 내리는데 네가 염원해서 뭐 할래?”
-아.
별 무리가 다중 우주 C-382911827BE의 세계수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신조여, 네 승리다! 너희는 너희 스스로 살아갈 가치를 증명했고 또한 삶의 의지를 관철시켰다. 그러니…….”
별 무리가 아쉬운 듯 말을 끝맺었다.
“작은 새와…… 행복해라. 너의 작지만 끈질겼던 투쟁은 내가 영원히 기억하겠노라.”
***
[제목 : 님들 결혼식장에 카고 바지 입고 가면 욕먹나요?]제곧내.
-제 생각에 이참에 그대로 소멸하시는 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쭙고 싶네요.
-체인 달렸음? 체인 안 달렸으면 좀 약한데. 웃기려고 가는 거지?
-싹 다 벗고 양말만 신고 가는 게 더 점잖아 보일 것 같습니다.
[제목 : 아, 나도 저기 가고 싶다. ㅋㅋㅋ]오늘이 아마 태초 이후로 가장 큰 행사가 아닐까 싶은데.
-뷔페 없음. ㅅㄱ 우리 조부님 팔순 잔치가 규모 면에서 압살함.
-아, 솔직히 식사는 왜 안 되냐고. ㅋㅋㅋ
-세계수에서 뷔페 찾는 놈들이 있는 이곳. 맞습니다! 바로 인류의 쓰레기통 디스토피아!
-어차피 초대받지 못했으면 못 가자너. 우리는 방송으로 응원하자고. ㅋㅋ
[제목 : 잘됐다, 정말.]정말 잘됐다.
-ㅇㅇ 진짜.
-어떻게 참…… 할 말이 없네.
-다들 고생했다.
??? : 이 영상은 오늘 새로이 누군가의 운명이 될 남자의 개 지리는 매드 무비로…….
-끌어내!
-사생팬들은 세계수 근처도 못 가게 해!
-사랑했다, 시발 노마! 크흑…… 행복해야 해, 형!
***
조병창이 정장을 입고 차에서 내렸다.
연결된 문으로 통과한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삐빅.
그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무심결에 스마트 폰을 열어 본 그는 잔잔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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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 작별.
-‘이세계 스칸다’ 및 ‘종말 이후’ 서비스 종료 안내.
그동안 보내주셨던 큰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많은 일이 있었지만, 항상 유저분들과 함께했기에 행복했습니다. 유저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데자뷰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아, 참. 그리고 저희가 세상을 바꾸었다고 하시는 유저분들이 계신데, 그건 오류이니 여기서 바로잡겠습니다. 저희가 바꾼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바꾼 겁니다. 이제는 비록 우리가 게임 안에서 만날 수는 없겠지만, 여러 세계에 다리가 놓인 지금, 세상은 가상현실보다 위대한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얼른 가서 쟁취하세요! 그리고, 행복하세요!
-데자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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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일국이가 봤으면…… 같이 웃었을 텐데.”
데자뷰의 말이 맞았다.
세계는 이제 다리를 통해 왕래가 가능할 정도로 교류가 이뤄지고 있었다.
조병창은 눈앞에 있는 게이트에 발을 내디뎠다.
지지직.
콰아아아아!
빛줄기가 되어 떨어진 장소는 세계수의 평평한 가지 위.
성진과 청설모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게 보였다.
“이제는 나도 사라져야겠지.”
“균형이 무너졌으니까.”
“균형은 애초부터 허울 된 망상에 불과했다. 잘된 일이야.”
스으으으윽.
청설모의 크기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사방에 아름다운 물결이 퍼졌다.
라타토스크의 신성이 세상에 흩날리고 있었다.
조병창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등불들과 국존, 그리고 조병창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이곳뿐만이 아닌 다른 세계의 사람들도 축하를 위해 와 줬다는 것이다.
정유리, 김정우, 이민상과 스칸다의 주민들.
그들은 세계수의 축복된 장소에서 하나였다.
“축하드려요!”
“경사다, 경사!”
“일단 자리에 앉자.”
식이 시작되었다.
사회는 이민상이 맡았고, 주례는 실바가 맡았다.
실바의 나이는 이제 서른이 넘었다고 들었다.
그가 제법 묵직한 어조로 주례사를 읊자 경건한 분위기에 식장이 긴장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차례가 왔다.
실바가 물었다.
“신랑 최성진 군은 어여쁜 신부 신아름 양을 아내로 맞아 영원히…….”
“저…… 잠시만요.”
“네, 말씀하세요.”
식을 잠시 멈춘 것은 신아름이었다.
“물어볼 게 있어요.”
성진을 보며 존대했기에, 성진도 존대로 대답했다.
“……네.”
“후회하지 않았나요?”
“…….”
“날 찾고…… 떠돌고 한 모든 것들을 후회되지는 않았나요?”
그녀를 찾기 위해 영원을 날아온 하얀 새.
성진은 담담히 대답했다.
“후회했습니다.”
“…….”
“그때 전하지 못했던 것을.”
성진이 그녀에게 다가섰다.
스으윽.
새하얀 깃털이 그의 몸 어디선가 날아와 흩어졌다.
아마도 최후까지 남아있던 그의 신성일 것이다.
그가 이곳까지 올 수 있도록 해 주었던 그의 날개는 이제 저 깃털이 소멸하면 함께 사라진다.
하지만, 성진은 아쉬워하지 않았다.
이제는 그녀에게 단 몇 걸음만이 남았을 뿐이니까.
단 몇 걸음은 날지 않아도 걷는 것으로 충분했으니까.
신아름의 면사포를 젖힌 성진은 그녀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면사포를 쓴 모습을 보기 위해 걸어야 하는 길이 이토록 가시밭길일 줄 그때는 미처 몰랐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흐레스벨그가 베드르 폴니르를 품었을 때 느꼈던 그 감정이 무엇인지, 이제는 알았다.
하얀 새는 그때 말했어야 하는 말을 한참을 돌아와 꺼내게 되었다.
늦었지만, 반드시 해야 했던 말.
“당신을 사랑합니다.”
“…….”
신아름은 성진의 말에 울음을 그쳤다.
그녀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선택은 반드시 결과를 낳는다.
올바른 선택을 내렸는지, 당시에는 알 수 없다.
시간이 지나, 모든 것이 명확해질 때까지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스스로 내린 선택이 옳기를 바라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수밖에.
신아름이 성진을 보며 미소 지었다.
“……멋진 폭풍이었어요.”
식이 끝나고 하객들과 사진을 찍는 자리.
“부케는 누가…….”
“던지면 아무나 받읍시다!”
“좋아!”
하나.
둘.
휙.
부케가 날아가 누군가의 손에 붙잡혔다.
정유리였다.
주인혁이 깜짝 놀라 물었다.
“야, 네가 그걸 왜 받아?”
정유리가 당황해하며 답했다.
“캐치볼 기능이 작동했습니다. 고의는 아니었습니다.”
“뭐? 그딴 기능을 왜 넣어 놨어?”
손동호와 양준호가 무미건조한 말을 내뱉었다.
“사실, 정유리에게 그런 기능은 없다.”
“주인혁은 알면서도 얼굴을 붉히며 모른척해야 했다. 심장이 터져 버릴…….”
“그딴 내레이션 깔지 마! 휴머노이드 새끼들아!”
“인종차별 발언! 주인혁, 우우우.”
“쓰레기, 우우우.”
사진 속 모두는 웃고 있었다.
작은 새를 찾기 위해 떠났던 영원의 여행은, 마침내 끝이 났다.
그리고 지금.
폭풍이 멎었다.
《BJ는 종말에 적응했다》마칩니다
작가 후기
안녕하세요. 왕모찌입니다.
밑에 3줄 요약을 남겨 둘 테니 바쁘신 분들은 그것만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끝낼 수 있을 거라 예상한 적은 단연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실험적인 글이었을 뿐더러 스스로 부족하다고도 생각했기 때문에 위태위태하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찌어찌 완결을 지었네요?
세상이 이렇습니다. 대충대충 내일은 어쩌지 하다가도 끝나고 돌아보면 아쉬움이 남는 게 사람 일이죠.
우선, 감사를 드릴 분들이 많지만, 가족, 친지 다 빼고 반드시 표현해야 하는 분들에게만 하고 싶네요.
그것은 바로 당신.
이 글을 끝까지 읽다니 어마어마한 괴짜시군요.
거두절미하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그랜절)
읽어 주시지 않았다면 혼자 슬퍼했을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에게 자잘한 감사함이 있다면 독자님들에게는 큰 감사함이 있습니다.
나머지 자잘한 감사함은 그분들에게 알아서 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눈치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이 이야기는 인간 찬가 및 선택이라는 가치에 관한 소설입니다.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가 있었으면 했습니다.
작품의 초기 구상은 이랬습니다.
라그나로크가 일어나고 사라진 흐레스벨그.
그리고 그의 미간에 사는 매, 베르드 폴니르.
‘어머머, 쟤들 좀 봐. 뭔가 수상한데?’라는 다분히 추문형 의문으로 꼬리에 꼬리를 문 상상입니다.
배경과 세세한 디테일들은 차차 정한 것이고요.
그리고 짐작하시겠지만, 최근 댓글을 읽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