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035)
1035화. 계승하다 (2)
“콜록콜록!”
밭은기침을 내뱉는 노인의 얼굴은 무척이나 수척해 보였다.
형보다 먼저 가문으로 귀환한 당윤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일었다.
“아버지.”
“윤이냐.”
“그렇습니다.”
“허허, 빛이 너무 밝아 눈을 감고 있었다. 늙으니 태양 빛도 이리 부담스럽구나. 늙는다는 것은 참으로 곤란한 일이야.”
노인, 당형은 눈을 감은 채 평상에 앉아 있었다.
당윤은 그간 뵙지 못한 사이, 아버지의 몸이 이리 말랐다는 것에 놀라고 당황했다. 당관과 함께 무림맹으로 갔다가 그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았고, 이후 사천에서 하남까지 이어지는 정보망을 관리하다가 가문에 이르렀다.
이유는 단순했다. 당형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소식은 무림맹에 있는 형에게도 전해졌을 것이다. 달리 일이 없다면 서둘러 오고 있을 것이다.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말이 이래서 나오는 것이다. 한창때인 젊은이들이 멋지게 나아가고 있었거늘, 내 몸뚱이 때문에 할 일도 못 하고 여기까지 왔구나.”
당관이야 말할 것도 없고 당윤 역시 청년이라 불리기에는 지나치게 나이를 먹었다.
그래도 아버지 된 입장에선 언제나 어리고 젊은 나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아버지.”
“그래도 이번에는 괜찮다. 미안하지만, 이왕지사 네가 왔으니 준비해 두었던 것을 줘야겠다.”
“예?”
당형이 거처 쪽으로 손을 뻗었다.
내공이 공명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보따리에 싸인 무언가가 창을 통해 날아왔다.
병들고 쇄약해진 몸이지만, 왕성한 내공은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몸이 약해지면서 기공의 예민함은 더 올라간 듯했다.
당윤으로서는 경이를 느낄 수밖에 없는 한 수.
“받거라.”
당형의 허공섭물로 날아온 보따리가 당윤의 두 손에 잡혔다.
“이것은……?”
“너를 위해 이것저것 몇 자 적었느니라. 일단 틀만 만들어 놓았다만, 너의 재능이라면 충분히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만 완성하면 너 역시 형처럼 금세 날아오를 수 있을 게다.”
“……!”
“본디 고민이 많았다. 본가의 가주위는 피비린내 그득한 역사로 점철되어 있어. 마치 저 황제의 용상처럼 말이다. 정상을 차지한 권력자는 싸움에서 진 형제자매들을 살려 두기가 쉽지 않지.”
“형님은…….”
“그래, 네 형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 만에 하나 형제간에 우애가 무너지면 어쩌나 했지만, 관이는 더 이상 망령들의 세상에 살지 않는다. 아니, 정작 그 세계에서 살던 사람은 이 애비였다.”
“…….”
“막히고 모르겠을 때면 네 형에게 조언을 구하거라. 듣기로 네 형이 무한의 경지를 열었다고 한다. 그와 같은 깨달음이라면 너의 곤란함을 능히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그나저나.”
당형이 클클클 웃음을 터트렸다.
“참으로 대단한 녀석이로고. 그리 몸부림치더니 수년은 더 걸릴 것 같던 그 경지로 단숨에 비상하였구나. 놀라운 일이로다.”
몸은 말랐고 눈도 감겼으며 안색도 창백하다.
기공술의 예민함은 예전보다 더 대단해졌지만, 그렇다고 기질이 선명하진 않았다.
하지만 당형은 진심으로 기쁜 듯했다. 그 풍성한 감정이 묻어 나오는 웃음엔 자식을 향한 대견함과 같은 경지를 공유하는 무인으로서의 반가움이 가득했다.
“너도 네 형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네 형은 사천 제일의 권력을 쥐고 있음에도 동료들과 함께 전선으로 나가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며 성장했다.”
“저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애비 된 입장에서 자식에게 싸움과 죽음의 세상으로 나아가라고 말하긴 어렵다. 그러나 무인 대 무인으로서 그와 같은 조언을 해 주지 않을 수 없는바. 무사란 아수라장에서 진정한 무혼(武魂)을 일깨우는 법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여기 앉아 보거라.”
평상 옆자리를 가리키는 당형의 모습은 무척이나 소탈해 보였다.
생각해 보면 말하는 것도 예전과 달랐다. 당형은 오랜 세월 자식들과 연을 끊은 채 홀로 지냈다. 가문의 어른으로서 새로운 일원이 되어 살아갔지만, 아들이자 가주인 당관의 권력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무척이나 조심하면서 지내 왔다.
그러나, 사람을 만나며 달라진 시대를 실감한 당형은 어느새 고독한 절대자에서 아버지가 되었다.
옆에 앉은 아들의 손을 잡고 도란도란 얘기를 할 수 있을 만큼, 그 역시 큰 변화를 겪고 있었다.
“해서, 너는 언제 혼인할 생각이냐?”
어색하고도 즐거운 이 자리.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던 중 기습처럼 던진 당형의 한마디에 당윤의 얼굴이 굳어졌다.
당형이 웃으며 말했다.
“아직 네 마음에 그 처자가 남았느냐?”
“…….”
“그 처자와 관련된 슬픈 기억을 이겨 내라는 말은 않겠다. 그 처자를 향한 묵은 애정이 그 마음에 남아 있다면, 그 또한 버리라는 말도 감히 하지 않겠다.”
“…….”
“하나, 그렇지 않다면 좋은 여자를 만나 하루빨리 일가를 이루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당윤이 쓰게 웃었다.
“원한과 후회는 ‘그때’의 사건으로 어느 정도 풀었습니다.”
“그러하냐.”
“예. 그리고 당시에도 그녀를 향한 애정은 많이 희석된 상태였습니다. 오랜 시간 쌓인 후회가 되레 그녀를 향한 애정을 갉아먹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손을 잡을 마음은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제 마음에 여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당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여유가 있어서 사람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나를 올바르게 볼 수 있을 때, 사람이 보이는 법이다.”
“예.”
“저마다 배우고 쌓은 일리(一理)가 다르니, 애비라고 어찌 네게 강요할 수 있겠느냐. 그저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것뿐이야.”
당윤이 미소를 지었다.
사실 반란으로 가문을 손에 넣으려 했던 둘째 형과 연관된 일인 만큼 쉽게 입에 올릴 수 있는 얘기가 아니었다. 하물며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여인이 그 형과 연관된 조직에 무참히 살해되지 않았나.
그러나, 이미 지난 일이다.
오히려 이렇게 조심하지 않고, 동시에 가볍지 않게 얘기해 주는 아버지가 고마웠다. 이 대화 한 번으로 당윤은 아직 털어 내지 못한 그녀의 잔재를 또 한 번 허공에 날려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으음?”
당형이 동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다.
“오호, 이 녀석. 빨리도 오는구나.”
“예?”
“네 형 말이다. 무림맹에서 진득하니 있다가 올 것이지, 꼬랑지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아주 훨훨 날아오고 있는 듯하다.”
“형님의 기운이 느껴지십니까?”
“물론이다.”
당형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그 ‘힘’이 무한으로 들어갈 수 있는 원천이었군.”
잠시 후.
훅!
이런저런 인사들은 전부 무시하고 온 모양이었다. 아니, 무림맹에서 사천의 중심부까지 최선을 다해 달려온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관의 모습은 무척이나 수척했다. 잠도 안 자고, 밥도 안 먹고 날 듯이 달려온 게 분명했다.
당윤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형이 아닌 가주를 향한 예의였다.
당관은 손을 들어 당윤을 앉힌 채 당형을 바라보았다.
“…….”
잠시의 침묵이 어렸다.
당관이 입을 열었다.
“괜찮으십니까, 아버지?”
“대단하다.”
당형의 얼굴에 순수한 감탄이 일었다. 단순히 기도만을 느꼈을 때와 이렇게 직접 보는 것은 아무래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무한의 경지에 들어서며 새로운 무공을 창조했구나. 혹은 새로운 무공을 창조하며 그 경지에 진입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선후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겠어.”
“…….”
“그 무공의 이름이 무엇이냐?”
물끄러미 당형을 보던 당관이 담담히 말했다.
“만류귀원신공(萬流歸元神功)입니다.”
“허허.”
당형의 얼굴에 흡족함이 어렸다.
“애비에게 만류귀종은 어설픈 무사들의 환상이요,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 호사가들의 헛소리였다. 실제로 나의 깨달음에 귀종은 없었지. 너에게도 말한 바 있을 것이다.”
“기억합니다.”
“그러나 너는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드는 깨달음을 얻었으니, 애비가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듣고, 나아간 것이다.”
“…….”
“극대화된 상단전으로 적을 상대하는 신(神)의 무공이구나.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당관의 눈이 흔들렸다.
아버지는 알고 계실 것이다. 제왕독공으로 연마된 독정의 독기가 모두 사라졌다는 걸.
원한다면 다시 독기를 불러와 적을 상대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자신의 무공은 극한의 진기 운용으로 강력한 투지와 살기, 허공섭물을 이용하는 무공으로 변화했다.
즉, 아버지가 평생의 공부를 집대성하여 만든 신공을 연마하면서 다른 길을 뚫어 버린 것이다.
그것이 서운하다면 서운할 수 있을 텐데, 전혀 그런 내색을 보이지 않고 계셨다. 오히려 자신이 가르친 무공으로 인해 다른 가능성을 보고 성장한 아들의 무도에 진심으로 감탄해 주고 계셨다.
독하고 편협한 당가 사람에게 이와 같은 모습은 무척이나 낯선 것이었다.
“다만 그 경지에 오르며 이전과 너무 달라진 상단전 때문에 중단전까지 흔들리는 상황이구나. 어련히 알아서 하겠느냐마는, 자칫 잘못하다간 너 자신을 잃을 수 있겠다.”
“아버지.”
“끊임없는 수양으로 너 자신을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너의 그 무공은 다른 무극수들이 확장한 상단전보다 훨씬 더 크고 넓은 것을 목표로 한다. 그만큼 정신이 불안정해질 때가 많을 것이다.”
“…….”
“저 무당산에, 자기 수양에 최적화된 정신 단련법이 있다고 들었다. 스스로 제어하기가 어렵다면 그곳으로 가서 깨달음을 구하거라. 이 애비의 능력으로는 이만큼 성장한 너의 무도에 어떠한 조언을 해 주기가 힘들겠다.”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당관의 얼굴에 걱정이 깃들었다.
“쓰러지셨다고 들었습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이 녀석아, 내 나이가 얼마더냐? 늙고 지친 몸뚱이,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법이다. 네가 직접 오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래선 안 되지요.”
“허허.”
당관은 당형의 몸 상태를 누구보다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당형의 몸은 점점 곯아 가고 있었다. 그 절대적인 내공과 깨달음으로 붕괴를 막고 있지만, 십 년은커녕 오 년도 채 버티기 힘들 것 같았다.
반대로 육신이 무너져 가는 상황에서도 붕괴를 막고 있는 기공법 덕분에 진기의 활발함은 예전보다 더 대단해졌다. 생명력은 줄어들었지만 단전에 실린 기운은 강력해졌으니, 사람 일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이왕지사 예까지 왔는데 오랜만에 같이 밥이나 먹자.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일단 쉬시는 게…….”
“쉰다고 나을 몸이 아니니라. 오히려 너희와 함께하는 것이 내 건강에 더 좋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이 사천 땅에도 너와 연이 깊은 아이의 명성이 들리더구나. 대단한 녀석인 줄은 알았지만, 자세히 들어 보니 실로 놀라운 위업을 쌓았어.”
당관이 투덜거리듯 말했다.
“싸가지는 없습니다.”
“그 정도로 세상을 위하는 아이라면 싸가지 좀 없어도 된다.”
당형이 고개를 들었다.
눈은 여전히 감고 있었지만, 투명한 마음으로 하늘을 보는 듯했다.
“먹구름이 끼고 있구나. 불온한 공기가 저 북쪽에서부터 밀려들고 있다. 이 공기를 느낀 이들은 저마다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을 터이니, 우리도 그에 맞춰 움직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
“자, 밥부터 먹자. 배가 든든해야 무슨 일을 해도 잘할 수 있는 법이 아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