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049)
1049화. 폭풍전야(暴風前夜) (5)
“후우.”
가볍게 내쉬는 한숨.
공공대사의 눈이 반짝였다.
‘달라졌군.’
기도 이전에 호흡만 봐도 알겠다.
모용우의 호흡은 길고 끊김이 없었다. 그것은 마치 무당파의 호흡법과 비슷해서, 지치지 않은 체력과 면면부절(綿綿不節)하게 이어지는 내공을 선사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무당파의 호흡은 둑을 무너트리는 강물처럼 쌓이고 쌓여 강렬한 힘을 내는 데 용이하고, 팔극심법은 무한한 체력을 유지하되 필요할 때만 강한 호흡으로 강유(剛柔)의 조화를 꾀한다는 점이었다.
고로, 실제 전투에 들어가기 전의 모용우는 언제나 깊이 있는 호흡을 유지했다. 그래서 차분하고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격하군.’
호흡이 들쭉날쭉했다.
일부러 저렇게 쉬는 것이다. 언제, 어떤 순간에라도 강한 호흡을 쥐어짜 폭발적인 공력 운용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였다.
‘대단하구나. 연마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저리도 자유자재로……!’
내공심법의 호흡술은 자칫 잘못 운용하다간 내공이 역류하여 내상까지도 유발할 수 있다.
하물며 그 내공이 강성(强性)이라면, 심할 경우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해서 종사급의 안목이 아니라면 쉽사리 호흡을 바꾸지도 못하고 바꿔서도 안 된다.
모용우는 모용군에게 벽력무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게 한 달이 조금 넘었다.
그 시간 만에 뇌정공(雷霆功)의 호흡법을 자유자재로 고쳐 가며 자신에 맞게 재창조해 나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재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런 것은 누구라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니,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겠지.’
모용우의 재능이 뛰어나다는 건 누구라도 알고 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껏 쌓인 안목과 경험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깨달음이 깊기도 하고.’
하지만 결정적으로.
‘저 벽력무라는 무공이 몸에 딱 맞는 것이다.’
건곤무와 벽력무가 하나라는 얘기도 들었다. 건곤무를 제대로 수련했으니, 그 또한 벽력무를 익히는 데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공대사가 봤을 때, 벽력무는 그야말로 모용우를 위해 만들어진 무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와 잘 맞았다.
위잉.
탕마검의 검첨에서부터 시퍼런 번개 줄기 두세 개가 느릿하게 움직이며 검신 이곳저곳을 오갔다.
‘달라.’
공공대사는 모용군의 뇌검(雷劍)을 견식한 바가 있었다.
모용군의 뇌검과 모용우의 뇌검은 전혀 달랐다.
전자가 제어되지 않는 폭급한 힘을 검에 담아 내치는 용도로 활용했다면, 모용우의 뇌정기는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탕마검을 에워쌌다.
위험천만한 기운이기는 하나, 주인을 알아보는 것 같았다. 워낙 파괴적인 기운이라 검신을 손상시키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묘하게 그런 기색은 또 없었다.
‘다만 당장 실전에 써먹기는 힘들 것 같은데.’
그때였다.
번쩍!
빠르고 깊은 일 보(一步)로 전진하며 휘두르는 일검에 일순 연무장 전체가 하얗게 물들었다.
눈이 부신 일격이었다. 단 일검에 일대가 숨을 죽인다. 작렬하는 뇌검의 일섬, 공기가 차갑게 느껴졌다.
공공대사의 눈이 부릅떠졌다.
천천히 자세를 푼 모용우가 담담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거구나.”
모용우가 탕마검을 내려다보았다.
우우우웅.
검이 울음을 토해 냈다.
신검일체(身劍一體), 심검일체(心劍一體)다. 정기신이 하나가 되어 휘두르는 검, 지금껏 쌓아 올린 모든 깨달음을 쏟아부었다.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심판과도 같은 검격이었다. 뇌광으로 번뜩이는 이 일검을 막아 낼 수 있는 자, 천하에 몇이나 될 것인가.
“다섯 개였어.”
탕마검을 쥔 모용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본디 다섯 개의 초식을 지니고 있었구나.”
뇌정공으로 구사하는 절세의 검법, 무정천뢰식(無情天雷式)은 총 열세 개의 초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통상의 경우 열 개를 쓰고, 후반 삼 초는 비기 중의 비기라 함부로 쓸 것이 못 되었다.
모용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건곤과 벽력은 하나라…… 형님 말씀이 맞았어.”
스륵.
옷자락 흔들리는 소리에 모용우가 몸을 돌렸다.
뒷짐을 지고 선 공공대사가 보였다. 여전히 차분한 기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표정만큼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맹주님.”
모용우가 고개를 숙였다.
공공대사가 온 줄도 몰랐다. 무공에 집중하고 있었다지만, 과연 성천과의 차이는 컸다.
“멀리서 네 수련을 보았다. 괜히 방해가 될까 싶어 기척을 지웠다.”
“감사합니다.”
“뭔가 도움이라도 줄 게 있나 싶어 보고 있었는데, 도움은커녕 나까지 놀랐다.”
그야말로 대단한 칭찬이었다. 하지만 모용우의 표정은 침착했다.
스스로를 제대로 들여다볼 줄 아는 자, 천 가지 비난과 만 가지 칭찬에도 흔들리지 않는 법이었다.
공공대사는 거듭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무공도 무공이지만, 금강석처럼 단단한 저 무심함은 소림의 무승 중에서도 비견될 만한 자가 몇 없었다.
“무공 자체는 크게 성장한 게 아니지만, 무공의 변화가 네 심중에도 큰 변화를 유도한 모양이다. 중단전이 몹시 탄탄해졌어.”
모용우가 웃으며 말했다.
“형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벽력무는 몸에 많은 부담을 주는 신공이라, 그 어떤 무공보다도 하단전 관리에 힘을 써야 한다고요.”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무공을 연마하면서 깨달았습니다. 형님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공공대사의 얼굴에 의아함이 일었다.
“너의 성장세가 놀라워 작금에 이르러서는 가주와 별 차이가 없을 듯하다만, 모용가주의 깨달음은 실로 높다. 그가 틀린 이론을 접목해 익혔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만.”
“말씀을 잘못 드렸군요. 형님에게는 그것이 맞겠지만, 저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오호?”
“저는 운이 좋게도 몇 가지 기연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하단전은 광활해졌고, 상단전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한데?”
“상하의 단전이 연마되었으니 중단전 역시 그에 맞춰 성장했지요. 그러나 아무래도 두 개의 단전보다는 그 질이 좋지 못했습니다.”
공공대사는 모용우의 말을 이해했다.
모용우는 강하고 선한 사람이었다. 누구 못지않게 뛰어난 두뇌를 지녔지만, 그 어진 성품이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도록 하였다.
군자는 언제나 고요한 법. 모용우는 이 거친 무림에서도 군자 소리를 들을 법한 무사인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끌어가지는 못했다. 모든 것을 스스로 판단하긴 하였으되, 진정 자신의 길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연호정이 억지로 앉힌 자리에 순응하기 시작하며,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만의 능동적인 삶을 살아가리라 다짐했다.
번뇌란 대단한 게 아니다. 아주 약간의 혼란, 확신 없는 선택을 반복하고 있다면 그 역시 번뇌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것이다.
모용우는 얼마 전에야 비로소 자신의 길을 찾았고, 와중에 모용군에게 벽력무를 전수하였으며, 심지어 그 무공이 그 자신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그것이 모용우를 크게 변화시킨 것이다.
“지금에 이르러서야 저의 중단전은 올바르게 성장하였습니다. 제가 보는 무도(武道)는 심동검(心動劍)이니, 자연스레 하단전보다 중단전을 중심으로 상단전을 넘봐야만 제 위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모용가주는 달랐구나.”
“형님 역시 많이 변하셨지만, 그분의 무도(武道)는 예나 지금이나 올곧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형님의 무도는 가장 빠르고 강력한 공격을 이용한 절대적인 승리를 지향합니다. 자연스레 무공의 위력에 치중될 수밖에 없으나, 깨달음이 드높아 조금의 파탄도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 가주의 무공은 그러했다. 하단전을 중심으로 한다고는 하나, 정기신이 하나가 되어 신체에 별다른 무리를 주지 않았지.”
공공대사가 미소를 지었다.
“대단하다. 너의 경지와 깨달음이 나이에 비해 대단한 수준이라고는 하나, 경험에서 얻는 지혜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법. 그 모든 것을 초월하여 자신만의 해석으로 무공을 구현하고 있으니, 이는 일대 종사라 불릴 만하다.”
“과찬이십니다.”
“아직은 실전에서 써먹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전의 일검을 보니, 내 판단이 틀렸음을 알겠다.”
모용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너 정도라면 실전에서 체득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공공대사가 빙긋 웃었다.
모용우가 검을 집어넣으며 물었다.
“한데 이 시간에 어인 일로 예까지 오셨습니까? 무척 바쁘실 텐데.”
“안 그래도 슬슬 얘기를 꺼내려 했다. 일단 걷자꾸나.”
잠시 후, 연무장을 벗어난 두 사람이 맹주부를 향해 걸었다.
공공대사가 품에서 잘 접은 문서 두 장을 꺼내 모용우에게 건넸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읽어 보거라.”
모용우가 문서의 내용을 확인했다.
그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것이 사실입니까?”
“무림맹 정보부는 물론 개방에서도 확인을 거쳤다. 사실일 것이다.”
모용우의 얼굴이 굳어졌다.
“설마 선공입니까?”
“처음에는 모두가 그리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럴 확률은 낮다고 보고 있다.”
“어째서입니까?”
공공대사가 손가락으로 허공에 그림을 그렸다.
“‘그들’이 만약 삼교가 보낸 이들이었다면, 굳이 섬서로 길을 잡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차라리 황궁이 버티고 선 하북 위쪽을 찍고 직선으로 내려왔겠지.”
“물론 그게 일반적이겠습니다만.”
“섬서는 화산과 종남, 구파의 두 곳이 자리를 잡은 지역이다. 삼강(三强)이 모인 사천만큼은 아니라고 하나, 섬서 역시 적들이 섣불리 치고 들어오기에는 힘든 지역이야.”
“그렇다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북해빙궁(北海氷宮)은 예전부터 신비의 문파로 불리며 중원에 그 모습을 드러낸 적이 몇 번 없는 이들이다. 다만 삼교는 새외 북쪽에 속했으니, 빙궁이라고 건드려 보지 않았을 리는 없다는 게 우리 생각이다.”
모용우의 눈이 번뜩였다.
“동맹입니까?”
“그럴 확률이 높다고 보았다.”
“시기가 무척이나 공교롭군요.”
“공교롭다면 공교롭지. 그러나 전쟁 위험은 이전부터 있었다. 온건한 시선으로 본다면, 저들 역시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하여 직접 이곳으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모용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빙궁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지만, 삼교만큼 거대한 세력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나 역시 그리 생각한다.”
“말하자면, 삼교가 작정하고 빙궁을 깨부수려 들었다면 그들이라고 파멸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랬겠지.”
“애초에 그들이 삼교와 어떠한 접점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지금, 우리로서는 무척이나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겠군요.”
“물론이다.”
공공대사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래서 너를 찾아왔다.”
“…….”
“섬서 북부에서 내려오고 있는 그들에게는 이미 서신을 보냈다. 소화산(小華山) 밑으로 내려오면 공격으로 간주할 것이니 그 자리에서 진군을 멈추라 하였지.”
“그렇다면?”
“그래. 네가 무림맹의 차기 맹주로서 부대를 이끌고 가 그들의 속내를 파악해 보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모용우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서늘한 날씨. 이제 곧 겨울이었다.
“북해빙궁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