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064)
1064화. 마지막 일인 (6)
등줄기를 훑는 고통.
‘얼마 만인가.’
우측 옆구리 살이 한 움큼 떨어져 나갔다.
그야말로 간발의 차였다. 시야가 어지러운 와중에 기감만으로 살기를 읽어 몸을 틀었다.
신창기(神槍氣)를 운용, 단번에 상처를 조여 출혈을 막았지만 고통만큼은 상당했다. 옆구리 쪽 혈도의 상흔을 입으니 몸이 절로 오그라질 것 같았다.
“퉤!”
후속타는 없었다. 소현립 역시 창대를 휘둘러 막원의 얼굴을 가격했기 때문이다.
소현립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무슨 무공이냐?”
파아악!
말없이 달려드는 막원.
거리가 가까운데도 혼신의 힘을 다해 달린다. 벼락과도 같이 접근한 막원의 주먹과 발이 소현립의 전신을 위협했다.
파파파파!
무지막지한 파공성이었다.
막원의 권각술도 대단했지만, 그 짧은 거리에서 단 일격도 허용하지 않는 소현립의 회피술 또한 찬사를 받아 마땅했다. 심지어 옆구리에 큰 상처를 입었는데도 움직임에 아무 제약이 없었다.
급박하면서도 기묘한 공방이었다.
대개 무극수들이 목숨 걸고 싸우게 되면 더 강한 초식, 더 강한 발경으로 충격파를 일으켜 서로에게 내외상을 주는 형식으로 진행되기 마련이었다.
말하자면 기공(氣功) 싸움이 주가 된다. 그 경지에 오른 이들 모두가 인간의 탈을 벗어 던지고 기(氣)의 수급이 지극히 자유롭기 때문에, 자연스레 기공의 깨달음으로 승부를 판가름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싸움은 달랐다.
자유자재로 기를 운용하면서도 마치 외가무공을 극단적으로 단련한 무사들처럼 실초와 허초를 남발하며 싸우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야말로 무(武)의 이상향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탈을 벗어 던졌다고는 하나 분명 인간의 몸을 지녔기 때문에, 제아무리 높은 경지를 이루었다 해도 ‘동작’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성천에서도 하위급의 무공을 지닌 두 사람이지만, 두 사람의 싸움 자체는 무의 본연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신(神)의 경지를 넘보는 초월자들이 아닌 순수한 인간으로서의 싸움.
막원의 이해할 수 없는 백타술과 병기술 앞에 연신 뒤로 물러나던 소현립도 마침내 반격에 나섰다.
훅!
무공 구현 방식을 이해할 수는 없어도 수십 번의 권각을 보며 대응 능력을 키웠다.
섬전장보로 막원의 후측방으로 이동한 소현립이 하단을 노리는 각법을 펼쳤다.
퍼엉!
강철처럼 단단한 막원의 허벅지에 소현립의 각법이 적중하자 폭음이 터졌다.
막원처럼 기묘하고 궤도를 읽기 힘든 백타술이 아닌 정통적인 각법이었다. 무종문에 쌓인 수많은 권각술을 섭렵한 것은 막원만이 아니었다. 소현립의 각법은 필요한 순간, 가장 위력적인 일격으로 상대를 공략하는 숙련도를 보여 주었다.
막원의 몸이 휘청거리고, 반탄력에 소현립 역시 주춤했다.
번쩍!
몸도 돌리지 않은 채 팔과 옆구리 사이로 백뢰창을 찔러 소현립의 목을 정확하게 노리는 막원.
티이잉!
흑요창의 창대로 백뢰창을 튕겨 낸 소현립이 한 걸음 물러나며 진각을 터트렸다.
콰앙!
폭발적인 진각과 함께 뿜어진 흑요의 섬광이 단숨에 막원의 가슴으로 쏘아졌다.
근접 거리에서 터진 용광섬이었다. 기존의 대응 방식으로는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일격이었다.
쩌어어어어엉!
그런데도 막았다.
백뢰창의 창대로 흑요창의 자격을 튕겨 낸 막원의 반사 신경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소현립의 눈이 번뜩였다.
이해할 수 없는 권각술에 익숙해진 자신처럼.
막원 역시 어느새 해무용섬이 눈에 익기 시작한 듯했다. 풀린 듯 날이 선 두 눈은 항상 자신을 향해 있었으며, 들리는 것은 자신의 호흡이요, 맡아지는 건 자신의 동작 속에 깃든 살기였다.
무시무시한 집중력, 이번 대결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광기 어린 열정이 엿보였다.
‘아직 일러.’
해무용섬은 세 가지 초식으로 나뉘어 있으며, 지금껏 막원이 견식한 것은 한 초식에 불과했다.
쩌저저저저정!
백뢰창이 불을 뿜었다.
그러지 않으려 했지만, 정신없이 막원의 공격을 막아 내면서도 소현립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육 척이 넘는 장창에서 온갖 무공이 튀어나온다. 찌르고 휘두르는 창술부터 후려치고 밀어 내는 봉술, 쌍수도처럼 휘둘러 자연스러운 참격을 유도하는 도법에, 일반 창술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가벼운 검술의 자격까지도 보여 준다.
병기 본연의 형태를 초월한 움직임이었다. 압도적인 힘으로 짓누르려 해도, 막원의 내공력은 소현립에 비해 뒤지지 않았다.
펑! 퍼퍼퍼펑!
연달아 터지던 쇳소리가 점점 폭음으로 바뀌었다.
막원의 백뢰창에 살벌한 경력이 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위력을 더해 가는 천무(天武)의 병장기술이다. 창왕이라 불리는 소현립이라도 찰나의 방심을 허용할 수 없는 외가무공의 극치였다.
‘하지만.’
부우웅! 펑!
양손으로 쥔 흑요창을 뒤흔드니 탄력 있는 창대가 위아래로 요동치며 백뢰창의 투로를 뒤틀었다.
불타오르는 천무신병기로도 투로가 흔들리는 건 막을 수가 없다. 막원은 튕겨 나간 백뢰창을 따라 그대로 몸을 회전시키려 했다.
그때, 한 줄기 섬뜩한 살기가 그의 몸을 엄습했다.
그 살기는 순식간에 수를 불려 열 개, 스무 개의 창날로 변해 그의 몸을 난도질하려 들었다.
‘위험!’
퍼어어엉!
회전을 멈춤과 동시에 땅을 박차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본능적인 대처였다.
그리고.
허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막원의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저건?!’
소현립의 손에 감긴 흑요창이 수십 자루로 늘어나 있었다.
단순히 잔상을 만든 게 아니라 하나하나가 실체를 지닌 창이었다. 적어도 막원의 눈에는, 그의 기감에는 그렇게 느껴졌다.
소현립의 몸을 중심으로 반구형의 전방위를 노리는 수십 창날들.
“으아압!”
매서운 기합성과 함께 수십 자루의 흑창이 폭발하듯 쏘아졌다.
퍼퍼퍼퍼펑!
마치 화약을 터트려 쏘아 내는 것처럼.
하늘 위, 막원을 향해서 날아가는 수십 개의 창날은 사나운 살기와 무지막지한 속도를 자랑했다.
‘막을 수 없다.’
신체의 자유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린 전투술, 병체전도(兵體戰道)를 쓸 수가 없다. 아니, 써서는 안 된다.
우우우웅!
천무신병기를 백뢰창 하나에 다 담은 막원이 무종문의 절정무공, 용수창법(龍鬚槍法)을 펼쳤다.
콰콰콰쾅!
막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환창(幻槍)의 극에 가깝다는 용수창법을 천무신병기로 구사했다. 그런데도 흑창 하나하나를 쳐 낼 때마다 온몸의 관절이 삐걱거리고 내장이 진탕되었다.
퍼엉!
막원은 허공에서 백강비(白鋼飛)를 펼쳐 전권에서 벗어나려 하였다.
하지만 그의 판단은 실수였다.
‘……!!’
허공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충격을 분산하려 했지만, 막원의 눈에 보이는 것은 부드럽게 휘어져 움직이는 수십 자루의 흑창들이었다.
제각기 다른 위치로 쏘아지던 흑창들이 살아 있는 뱀처럼 꿈틀대며 막원을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이건!’
마치 당관이 구사하는 만천화우처럼.
병기의 숫자로는 비교조차 할 수 없지만, 창들의 자유로움은 실로 만천화우에 비할 만했다.
‘이기어창(以氣馭槍)!!’
어검의 비술이 창으로 펼쳐졌다.
문제는 창의 숫자였다. 분명 실제 흑요창이 아닐 텐데도 실제 창과 같은 모습에 파멸적인 위력까지 품었다. 세상천지에 이런 무공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소현립의 두 눈에 광기가 어렸다.
‘이걸로 끝이다.’
해무용섬의 이식(二式) 어룡섬(馭龍閃).
이기어창의 깨달음에 극단적인 내공을 퍼부어 유형의 창을 생성, 그대로 적에게 퍼붓는 광역기이자 필살기였다.
소현립은 과거 이 초식으로 화산파의 매화검진을 일격에 박살 낸 전적이 있었다. 심지어 당시에는 반도 완성되지 않았던 무공이었다.
지금의 어룡섬이라면 성천의 어떤 고수라도 저세상으로 보내 버릴 위력이 있다고 자부했다.
‘네 무공은 쓸 만했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렇게 남을 것이다.’
수십 개의 흑창이 막원에게 쏟아졌다.
콰르릉!
신창기로 유형화된 진기의 창들이 폭발하며 엄청난 압력을 자아냈다.
자신이 구사한 무공인데도 소현립은 그 압력에 내상을 입었다. 내공 소모가 극심하여 신체를 완벽하게 보호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쿨럭!”
피를 토하는 소현립의 얼굴이 창백했다.
압력 때문에 등과 어깨 피부가 쩍쩍 갈라졌다. 내공이 모자랐다면 근육부터 뼈까지 온통 으스러졌을 것이다.
쿠구구궁!
소현립을 중심으로 반경 십여 장의 땅이 들썩이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후우우우웅!
허연 눈가루가 바람을 따라 움직이며 거대한 회오리를 만들었다. 그 회오리는 서서히 잠잠해지며 팔방으로 아리따운 수기(水氣)를 퍼트렸다.
‘살점 하나 남지 않았을 것이다. 잘 가라.’
입가의 피를 닦아 내며 일어난 소현립.
흑요창을 크게 휘둘러 빠진 어깨를 끼워 맞춘 그는, 순간 알 수 없는 기운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
그곳에는 온몸에 피 칠갑을 한 막원이 있었다.
소현립의 입이 떡 벌어졌다.
“너…… 어떻게?!”
“천무신병기를 완성한 것은 수년 전이지만, 이 무공을 완벽하게 연성한 것은 불과 삼 개월 전이다.”
츠츠츠츠.
막원의 몸에서 허연 기운이 피어올랐다.
흩날리는 눈가루보다 훨씬 더 밝았음에도 보기 편안한 빛.
반면 그의 피부는 서슬 퍼런 도검처럼 은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게다가 소현립처럼 몸 곳곳의 피부가 쩍쩍 갈라져 있었다.
하지만 어룡섬에 관통당한 곳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어느 한 곳이라도 관통당했다면 그 길로 죽었을 테니까.
천무신병기, 천무강체공(天武鋼體功).
몸을 만년한철 이상의 강도로 끌어올리는, 당대 무림에서 가장 금강불괴에 가까운 비기였다.
해무용섬이 창술의 극의를 담아 극단적인 공격력을 자랑한다면, 천무신병기는 만 가지 무공을 다룰 수 있도록 창안된 만능(萬能)의 무공이었다.
그것은 곧 무종문이 지향하는 만무통달(萬武通達)의 길과 닿아 있었으며, 막원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진기로 신체의 강도를 극단적으로 끌어올리는 괴공(怪功)까지 연성했다.
막원의 모습을 보며, 마침내 소현립은 깨닫는다.
문 내 어른들이 왜 막원만을 바라보았는지, 왜 제 발로 문을 나섰음에도 녀석의 무공을 탐했는지.
어찌하여 막원을 무종문의 새로운 문주로 세우려 했는지, 한순간에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놈!!”
콰르릉!
마지막 남은 내공 한 방울까지 쥐어짠 소현립이 흉신악살 같은 기도를 뿜어냈다.
“내 기필코 너를 죽여, 나야말로 무종의 진정한 후계임을 만천하에 알리겠다!”
“그런 하찮은 명성에 목숨을 거니까 네놈이 더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다.”
“닥치거라!”
파아아악!
소현립이 질주했다.
섬전장보로 달려 나가 휘두르는 그의 창은 평생에 한 번밖에 펼쳐 보지 않았던 해무용섬의 마지막 삼식, 용비등천(龍飛登天)의 투로를 따라 움직였다.
화아아악!
해일처럼 쏟아지는 막강한 경파를 마주하며.
천무병장공(天武兵將功)의 비기를 연 막원은 어떠한 초식도 없이, 그저 하늘에 이른 힘을 믿고 달려 나갔다.
무종이 낳은 이 시대 최강자들의 마지막 격돌.
콰르르릉!
정면으로 부딪친 두 사람의 무공이 반경 이십여 장을 휘감는 역장을 만들었다.
천지가 놀라고 바람이 신음했다. 붉은 핏방울들이 화들짝 놀라 사방으로 달아났다.
흩어지는 눈가루 속에서.
하나의 그림자만이 우뚝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