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078)
1078화. 미끼 (3)
후우우웅.
가부좌를 틀고 운공하던 당관의 몸에 은은한 적색 광채가 일기 시작했다.
무려 사흘 동안의 운공조식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당관은 생각했다.
‘그래, 이것이었구나.’
연위에게도, 연호정에게도, 나아가 막원에게도 들었다.
무극에 이른 자들은 하나같이 제정신을 유지하기가 힘들다고.
사람의 정신이라면 곧 상단전을 뜻하지만, 그것은 꼭 상단전만 두고 하는 말은 아니었다.
상단전과 중단전, 하단전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어느 한 곳이 파탄 나면 나머지 단전에도 크나큰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신기하게도 연위와 연호정에게서는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를, 당관은 지금 깨달았다.
‘싸가지는 특수한 무공을 익혔다. 시작부터 신체 전반을 활성화하여 극단적으로 강력하게 만드는 신공을 연마했어. 중단전, 오장육부가 압도적으로 탄탄하니 자연스레 상하의 단전들도 철벽의 강도를 자랑하게 되는 것이다.’
연위는?
‘연가주는 무극에 오르기 전에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했다. 자식들을 올바르게 키웠다는 안도감에, 검사로서의 자신을 잃었어. 그것은 극단적인 심마(心魔)라 해도 과언이 아닐 터, 그와 같은 심마를 이겨 내며 무극에 이르러도 변하지 않는 상단전을 손에 넣은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달랐다.
자신의 몸은 무극에 오를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신체의 단련도부터 내공까지, 준비된 것만 따지면 연씨 부자보다도 튼튼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상단전은 신체의 완성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물론 그의 상단전도 어느 고수 못지않게 잘 관리되고 있었으나, 정기신이 하나가 되었음에도 그릇만큼은 중과 하에도 이르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한 줄기 벼락같은 깨달음으로 단숨에 무극을 뚫어 버렸다.
놀랍게도 깨달음을 얻고 한순간 구결까지 만들어 낸 신공은 상단전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갑작스레 방대해진 상단전 내부엔 신기가 제대로 들어차지 않았다. 그릇과 물이 들어갈 길까지 만들어졌는데, 정작 들어찬 물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부실한 상단전은 중단전까지 충격을 주었고, 자연스레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것이다. 이것이 진짜 만류귀원신공의 참모습이다.’
무극에 오른 즉시 창안한 만류귀원신공.
하지만 아버지 당형의 조언으로 당가의 초극상법(超極常法)을 깊게 연마했다.
초극상법은 암기를 다루는 당가인들이 어린 시절부터 익히는 무공 중 하나로, 안력(眼力)과 집중력을 향상시켜 주는 기본공이었다.
당관 역시 초극상법을 통해 암기술에 입문하였다. 하지만 지금 다시 읽는 초극상법은 만류귀원신공의 부족함을 완벽하게 메워 주는 한 조각이었다.
만류귀원신공은 광활한 상단전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무공이었으되 상단신기를 양 조절 없이 가져다 쓰기도 하는, 양날의 검과 같은 무공이었다.
초극상법은 집중과 이완을 반복하는 기본공이되, 만류귀원신공의 정도(正度)를 바로잡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로써, 당관은 만류귀원신공을 완성할 수 있었다.
스르륵.
자리에서 일어난 당관은 곧장 가주실로 향했다.
시기적절한 순간이었다. 저 멀리서 익숙한 기척 하나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여기 있다.”
당관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곧 가주실을 넘어 내원 전체로 울려 퍼졌다.
움찔했던 기척이 다시 가주실로 향했다.
덜컹!
문이 열리고 당윤이 모습을 드러냈다.
“형님!”
“운공이 너무 길었구나. 그래, 무슨 일이냐?”
당윤의 얼굴이 실로 심상치가 않았다. 자연스레 당관의 얼굴도 굳어졌다.
“큰일 났습니다! 감숙 기련산 일대에서 오천 병력의 마인이 남하하고 있다 합니다!”
“마인?”
“그렇습니다. 남하 속도가 엄청납니다! 옥문관에서부터 돈황, 주천에 이르기까지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
“심지어 그 이틀 동안 일대를 모조리 다 파괴했다고 합니다! 민간인 수천 명이 마인의 공세에 목숨을 잃었다는 보고입니다!”
당관의 눈에서 살기가 일었다.
“그 미친놈들이!”
이번 전쟁은 중원에서 먼저 시작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데 먼저 치고 내려왔단다.
“얼마 전 정보를 받았는데, 길림 쪽에서도 적의 병력으로 예상되는 고수들이 접근하고 있다 하였습니다.”
당관은 침착하게 물었다.
“황궁과 무림맹, 흑제성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지?”
“황궁의 움직임은 아직 알 수 없으나 필시 우리보다 먼저 그 사실을 알아챘을 테니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을 겁니다. 무림맹은 수천 병력을 파견했고, 흑제성에선 성주와 몇몇 초고수들이 황궁으로 향했다 합니다.”
“그렇군.”
당관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성동격서(聲東擊西)인가.”
감숙이나 청해 쪽은 중원 중부와 한참 떨어져 있기 때문에 정보원들의 활동 역시 뜸했다.
하지만 길림성만큼은 아니었다. 길림과 요녕 쪽에 분포된 무림의 정보원들은 청해나 감숙보다 적다. 게다가 감숙에는 공동파가 있는 만큼, 감숙 중부에 이르러선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시선을 빼앗은 것이다. 길림과 요녕에 눈이 많지 않음을 알고, 대대적으로 모습을 드러내 시선을 붙잡은 거야.”
“……!”
“하여 주요 고수나 정보원들이 그곳을 주시하게 만들고, 다른 방향의 병력이 이동하여 단박에 중원의 머리를 뚫어 버리겠다는 것이 삼교 놈들의 전술이었던 것이다.”
당관이 이를 갈았다.
“너무나도 단순하지만, 정말 효과적인 한 수였다.”
복잡한 전략 전술보다 단순한 것이 훨씬 효과적일 때가 있다.
지금의 상황이 그러했다.
무림의 수뇌부들은 중원이 먼저 공격에 나서야 전쟁이 시작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물론 만에 하나를 위해 대비는 했겠지만, 전쟁 준비 자체가 선공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것은 삼교 역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걸 몰랐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지금껏 움직이지 않고 있었으니까.
나아가, 그들 역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공격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지, 먼저 치고 들어올 생각은 안 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간의 움직임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이처럼 뜬금없는 순간에 공격이 들어왔다?
“어디에나 튀어나온 돌은 존재한다.”
기척도 없이 가주실로 들어선 사람은 당형이었다.
예전보다 조금, 아주 조금 더 수척해진 모습이었지만 두 눈은 더더욱 맑고 깊어 보였다.
“삼교는 하나이되 셋이라 들었다. 서로 협업 관계일 뿐, 진정 하나가 되지는 못했다고?”
“저희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황은 단순하다. 놈들 중 하나가 참지 못하고 먼저 찔러 본 것이야.”
당윤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이것 또한 우리를 속이기 위한 전술일 가능성은 없는지요?”
“가능성이라고 한다면야 아예 없을 순 없겠지.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지극히 낮을 것이다. 안 그런가, 가주?”
당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생사 비무에서 수 싸움을 하는 게 아니라 전쟁이다. 전쟁에서 초전의 중요성은 대단하다. 그걸 버리고 이중의 전술을 택한다는 건 말처럼 쉽지가 않아.”
“내 말이 그 말이다. 문파 대 문파 싸움에서도 허를 찌르기란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싸워 보면 대형 간의 변화가 신출귀몰할 수 있을지언정 적을 속여 병력을 진창에 빠트린다거나, 아군 전력을 나누어 적을 속이는 등의 전술은 쉽게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야. 하물며 대륙 전체를 놓고 싸우는 국가 수준의 전쟁에선 말할 것도 없다.”
“성동격서의 술수를 쓰고, 실제로 그 효과를 거둔 것만으로도 삼교 놈들의 저력은 대단한 것입니다.”
“가주가 실로 정확하게 보았다. 튀어나온 돌이 돌발 행동을 했다 한들, 그에 맞춰 즉각 병력을 투입했다는 건 남은 두 곳에 굉장한 전술가들이 있다는 뜻이다.”
당형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잘 훈련된 군대는 이처럼 반응이 빠르기 마련이지. 그놈들, 전쟁 준비 한번 제대로 했구나.”
당윤이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무력의 수준은 알 수 없으나, 숫자가 무려 오천입니다. 게다가 이틀 만에 그만한 거리를 초토화시키며 돌진했다는 건 적의 수준이 대단하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겠지.”
“공동파 하나에 맡겨 두기에는 지나치게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위험하다.
하지만 당관은 섣불리 도우러 가겠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형님?”
침묵하는 당관을 대신해, 당형이 말했다.
“사천은 지형적으로 외세의 침입에 강하다. 그건 무림인이라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사천 측에선 적의 속도와 병력을 예측하기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예?”
“차라리 사천 서부에서 들어왔다면 이해할 수 있다. 그 정도의 험지와 험산을 뚫고 왔다면, 적의 수준이 유례가 없다는 뜻일 테니까.”
“……?!”
“그러나 감숙을 통해서 치고 들어왔다면? 사천 동부에는 거대한 분지와 평야가 있다. 적들이 그 주변으로 뻗어 나가는 순간 민간인들의 피해를 측량키가 어렵다.”
당형이 당관을 보며, 당윤에게 말했다.
“지금 가주는 적이 감숙에서 사천으로 뚫고 들어올지, 그대로 남하할지를 몰라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당윤이 말했다.
“어느 한 곳이 뚫려도 문제입니다. 만약 마인들이 공동파의 전력을 무시하고 섬서로 치고 들어가면, 그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렇게 되면 마인 병력은 위쪽에서 추격하는 공동파와 섬서의 종남, 화산 사이에 낀 채 싸워야 한다. 만약 우리가 공동을 도우러 간다면, 놈들은 우리까지 상대해야 해. 아무리 전력이 대단해도 쉽게 선택할 만한…….”
그때였다.
또 다른 무사가 달려와 보고를 올렸다.
“급보입니다! 현재 섬서 북단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일만 기병이 남하하고 있다 합니다!”
당관이 이를 악물었다.
당형의 얼굴이 침중해졌다.
“그래, 두 곳에서 각기 보낸 병력이 합쳐진 게 아니라 아예 다른 곳을 담당했단 뜻이로군.”
숫자 때문에 착각했다.
삼교 하나하나가 중원 무림과 단판 승부를 겨룰 만한 전력이라고는 하나, 아무리 그래도 종교 단체 하나에 그만한 전력이 숨어 있다는 것은 쉬이 믿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당형 역시 그렇게 생각했고, 대다수 무림인도 그와 비슷하게 생각할 것이다.
실제 그들이 각자 얼마나 되는 군대를 보유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동북에 오천, 서북에 오천, 그리고 북부에 일만이라면 그 합이 이만이다.
이만 병력. 그것도 전원 무공을 연마한 자들일 확률이 높다.
그야말로 초전(初戰)을 박살 낼 기세로 투입했다고 볼 수 있다. 전국(全局)을 놓고 보면 지나치게 다급한 병력 운용이라 할 수 있겠으나, 막상 선봉에서 그들을 막아야 할 입장에선 속이 끓는 숫자였다.
“어떻게 할까요, 형님?”
당형 역시 당관을 바라보았다.
아들이지만 가주다. 가주의 판단에 따라 태상가주 역시 움직일 것이다.
가만히 생각에 잠겼던 당관은 문득 당형을 바라보았다.
당형이 미소를 지었다.
“아직 초입에 불과한 작자가, 몸 좀 곯았기로서니 수십 년 전부터 무극에 오른 선배를 걱정하는 게 아니다.”
당관이 당윤에게 말했다.
“녹풍대(綠風隊)와 녹수대(綠水隊)에게 명을 내려라. 나와 두 부대가 당장 감숙으로 출동할 것이다.”
“혀, 형님!”
“사천은 청성과 아미, 그리고…….”
당관의 눈이 다시 당형을 향했다.
“태상가주께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