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086)
1086화. 격전의 서막 (6)
“무상 어른”
남궁승이 눈을 떴다.
“섬서에 진입했습니다. 이대로 종남으로 길을 잡겠습니다.”
“소맹주에게는 전했는가.”
“그렇습니다.”
“알겠네.”
화룡단주가 물러나며 다시 병력을 이끌었다.
섬서로 진군하는 무림맹의 병력은 이천에 이르렀다. 황궁으로 향하는 병력은 삼천, 총 오천의 병력이 투입된 것이다.
일천이나 모자랐지만, 섬서로 향하는 무림맹 병력은 누구 하나 불만을 품지 않았다.
황궁은 제국의 중심이었다. 당연히 조금이라도 더 많은 병력을 파견해야 했다.
나아가 이쪽 이천에는 불세출의 고수인 검제 남궁승이 함께하고 있었다.
무림맹의 차기 맹주인 모용우에 검제까지 합세했으니 자연 사기가 오를 수밖에 없다. 황궁에도 고수진은 많으니 굳이 그쪽에 최고수를 보낼 필요가 없기도 했다.
긴장은 했지만 기분 좋은 긴장이다. 그들의 진군이 빠르고 힘 있는 이유였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선두에서 말을 몰던 모용우가 어느새 후미인 남궁승에게로 다가왔다.
“무상 어른.”
“무슨 일인가, 소맹주?”
“화산과 종남의 병력이 북상하여 소화산 아래에 진을 치고 있다는 정보를 받았습니다. 종남이 아니라 소화산까지 가야 할 듯합니다.”
남궁승이 미소를 지었다.
“나야 쓸 만한 검 한 자루에 불과할 뿐, 이 병력을 이끄는 것은 소맹주일세. 내게 일일이 말해 주지 않아도 괜찮네.”
모용우가 미소를 지었다.
“무상 어른의 전력은 우리 군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시시각각 알고 계셔야 할 듯하여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허허, 그런가?”
한낱 전력 취급을 당했다고도 볼 수 있으나, 남궁승은 모용우의 그런 면이 좋았다.
자신이야 무공만 쓸 만할 뿐, 한물간 퇴물에 불과하다. 차세대 무림은 젊은이들의 것, 자신이 나서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젊은이들이 자신 앞에서 과하게 고개를 숙이는 게 못마땅했는데, 모용우는 그러지 않았다.
소맹주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잘 알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용우는 예의가 발랐지만, 필요 이상으로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좋구나. 맹주가 사람을 잘 보았어.’
말을 몰아 자리로 돌아가는 모용우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보던 남궁승의 얼굴이 차츰 흐려졌다.
‘우리 애들도 저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움은 아쉬움으로 남겨 둬야 한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 후회해 봤자 아무 의미도 없다.
하지만 그는 도무지 그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일평생 검에 미쳐 핏줄들 관리에 소홀했던 그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아들과 손주들을 대했다.
하지만 아들은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렸고, 손주들 역시 제 아비의 전철을 밟고 있었다.
그 지경까지 갔으면 단호하게 나갔어야 했다. 하지만 남궁승은 가문의 위계를 흔들 수가 없었다.
결국 아들은 죽었고, 둘째 손주 역시 광기에 젖어 지독한 악업을 쌓았다.
그나마 장손이 정신을 차려 다행이지만, 남궁승은 장손이 그저 운이 좋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둘째와 태어난 시기가 다르지 않았다면, 장손 역시 그 전철을 똑같이 밟았을 수도 있다.
‘무림맹의 처사가 참으로 감사하도다.’
남궁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남궁현이 벌인 짓은 그야말로 용서받기 힘든 대죄였다.
중원 최고의 검가라도 봉문을 해야 마땅하다. 아니, 전시인 만큼 남궁세가 자체가 풍비박산 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공공대사와 제갈문호, 그리고 여러 봉공은 남궁현 개인의 죄로 끝내려 했지만, 성난 민심은 그것을 용인하지 않았다.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남궁세가를 향한 강한 조치가 필요했다. 결국 이번 전쟁이 끝난 후, 남궁세가는 오십 년간 봉문을 할 것을 약속했다.
오십 년 봉문. 즉, 장손인 남궁표가 팔순이 훌쩍 지나고서야 남궁세가는 무림 일에 끼어들 수 있다.
다만, 이번 전쟁에서 남궁 측 무사들이 뛰어난 공을 세우면 참작하여 봉문의 시기를 앞당길 수 있도록 하였다.
첫 출진에 남궁승이 나선 이유였다. 그 자신도 바랐지만, 공공대사의 추천이 있기도 했다. 초전에 나서서 적의 기를 꺾어 놓는 중요한 임무를 달성하여 봉문 시기를 크게 앞당기라는 배려였다.
‘맹주에게 큰 빚을 졌구나.’
세상에 다시 나온 그는, 그제야 남궁세가를 향한 세간의 평이 나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제 더는 이 상태로 놔둘 수 없다. 이번 전쟁에서 살아남는다면, 장손만큼은 목숨이 다할 때까지 가르쳐 결코 선대의 길을 걷지 않도록 할 것이다.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남궁승.
그만큼은 아니지만, 소화산으로 향하는 이천 병력 하나하나는 모두가 적을 섬멸하기 위해 강한 정신으로 무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지는 그 정신력은, 어떤 병력과 싸우더라도 쉬이 깨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다시 사흘이 지났다.
섬서의 수도, 장안 인근까지 올라온 병력이 마지막 휴식을 위해 잠시 멈췄을 때였다.
“……?!”
밥을 먹다 서신을 받아 든 모용우의 눈이 흔들렸다.
함께 식사하던 남궁승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시는가, 소맹주.”
“상황이 좋지 않군요.”
“섬서 말인가?”
“아닙니다. 감숙입니다.”
남궁승의 눈이 번뜩였다.
“감숙? 어제 받은 정보에는 당가주가 부대를 이끌고 갔다 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만…… 아무래도 적의 전술에 말린 것 같습니다.”
“어떻게?”
모용우가 남궁승에게 서신을 건네며 말했다.
“오천 병력 중 삼천 병력이 서남으로 우회하여 감숙 밑까지 파고들었다 합니다.”
“……!”
“사천으로 진입하기에는 지형이 너무 좋지 않습니다. 아마 섬서로 들어올 확률이 지극히 높을 겁니다.”
“섬서에서도 싸우지 않고 남하하면?”
“그대로 호북입니다. 만약 섬서를 가로질러 동부로 진입하면 곧장 하남 무림맹 앞까지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큰일이다.
감숙의 전투력은 결코 약하지 않다. 문파 수는 적을지언정 지역의 기질 자체가 강성하고, 저 흑도 무림처럼 약한 자들은 철저하게 도태되는 곳이 바로 감숙이었다.
그런 병력을 뚫고 들어오다니? 하물며 무극에 이른 당관까지 있었는데?
“당가 병력에 관한 정보는 없는가?”
“아직 도달하지 않았습니다만, 당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당가가 당했다면 그에 관한 연락이 먼저 왔을 겁니다.”
“소맹주 말이 맞네.”
남궁승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어찌할 것인가? 놈들이 남하한다면 섬서의 남서부를 막아야 하네. 호북과 하남, 둘 중 하나라도 뚫린다면 대참사가 일어날 것이야.”
적병의 전력을 떠나, 그곳에는 무수히 많은 민간인이 있다.
게다가 놈들의 진군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아무리 무림인의 보급이 일반 군인의 보급보다 적다지만, 이건 너무 빠른 속도가 아닌가.
모용우의 눈이 깊어졌다.
“잠시 생각을 해 봐야겠습니다.”
“소맹주도 알겠지만, 전쟁은 시간 싸움일세. 빠른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용우는 커다란 지도를 꺼내 들었다. 무림맹에서 해마다 새로 만드는 중원 전도였다.
그는 감숙과 섬서, 그리고 요녕성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오천과 일만, 그리고 오천.’
총 이만에 달하는 병력.
삼교 하나하나의 전력이 중원과 맞상대가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다면 삼교 하나의 전투 병력을 최소 십만 이상으로 봐야 한다.
넉넉잡아 도합 사십만 정도라고 봤을 때, 이만의 병력은 별것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예전부터 이상했다. 요녕으로 들어온 신화교의 병력이 합의하지 않고 움직인 거라면, 다른 이교의 병력 파견은 뛰어난 군략가의 존재를 의미할 뿐, 그 이상의 다른 의미는 없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다.
하지만 신화교는 뭘 믿고 그렇게 움직였을까? 다른 이교의 반응을 믿고 오천 병력이나 투입했다는 건, 그만큼 이교의 힘을 신뢰한다는 뜻이었다.
이를 달리 말하면, 그렇게 신뢰하는 이교와 의견 교류 없이 병력을 떼어 보냈다는 것이다.
‘앞뒤가 맞질 않아.’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모용우의 눈이 번뜩였다.
‘신화교가 아무런 대책 없이 오천 병력을 출병했을 리가 없다. 만약 이교가 제대로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오천 병력만으로 중원의 북동부부터 치고 들어와야 해.’
오천.
적지 않은은 숫자지만 중원 전역을 생각하면 그리 많다고 보기도 힘든 숫자였다.
‘돌발 행동을 했다는 것은 곧, 신화교 측에서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는 뜻이다. 홀로 중원 정벌은 무리겠지만 꽤 강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이 없이는 감히 이런 식의 배짱을 부리지 못해.’
모용우의 눈이 하북의 위를 훑었다.
“……기습 부대.”
“무슨 말인가?”
남궁승의 물음에도 모용우는 답하지 않았다. 극도로 집중했기 때문이었다.
남궁승 역시 모용우의 눈을 보곤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는 걸 아는 것이다.
‘신화교는 아무도 몰래 오천이나 되는 병력을 요녕 앞까지 진군시켰다. 방심했다고는 해도 이건 정말 대단한 거야. 단순히 은밀한 게 전부가 아니라 진군 속도 자체가 엄청나게 빨랐다는 뜻이다.’
모용우의 검지가 하북 위를 가리켰다.
‘황궁에서 대군을 일으켜 오천 병력을 쓸어 버리려 하면, 분명 위쪽에서부터 치고 내려올 것이다.’
신화교는 유구하게 황궁을 건드렸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그놈들은 황궁부터 점거한 후, 본격적인 전쟁에 들어갈 생각이다.
‘그렇다면 다른 이교는?’
현재 섬서 북부에서 일만 기마병이 내려오고 있다.
감숙에서 남하하는 광혈의 병력보다 확실히 느린 속도였다. 기마 관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광혈은 감숙에서, 사음은 섬서에서, 신화는 길림에서부터…….’
순간 모용우의 눈이 빠르게 세 개의 성을 훑었다.
‘아니, 그게 아니야.’
신화교가 철저하게 황궁을 노리는 것처럼.
다른 두 교단 역시 한 지역을 노릴 가능성이 높았다.
‘중부로 치고 들어올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되면? 큰 피해를 줄 수야 있겠지만, 거기서 끝이다. 어떤 식으로든 진압당하고야 말 거야. 그게 그렇게 큰 의미가 있나?’
있다.
만약 섬서의 기마가 화산과 종남을 뚫고 내려오면 광혈의 감숙 통과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두 병력이 입을 손실을 감안해도 총 오천에서 팔천까지는 중부로 진입할 수 있을 테니까.
오직 그것만을 위한다면 가능성이 있는 얘기다.
그러나.
‘두 곳에서 동시에 치고 들어올 거란 확신을 할 수 없어. 광혈과 사음이 사전에 철저히 공모했다 한들, 천 리가 떨어진 거리에서 연락을 주고받기란 불가능하다. 특히 이토록 빨리 진격하는 중에는 더더욱.’
만약 정말 중원 중부를 노린 거라면 고작 이 정도 병력으로 상대하려 했을까?
이건 장기나 바둑이 아니다. 게다가 무림맹 역시 제국의 수도 따위가 아니었다.
그 정도 병력으로는 무림맹과 전면전을 벌일 수 없다. 즉, 중부까지 치고 들어와도 어느 정도의 피해만 입힌 후 모조리 증발할 것이다.
삼교 병력이 사십만이라고 가정할 시, ‘고작’ 이만에 불과한 병력을 파견했다지만 저 이만 병력을 그대로 산화시킬 만큼 삼교가 멍청한 놈들일까?
“안 내려갑니다.”
“뭐?”
모용우의 눈에 신광이 일었다.
“감숙의 마인들, 중부로 치고 들어가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
“이건 땅따먹기입니다. 따먹지 못하면 최대한의 피해라도 줘야 하지요. 신화가 황궁이 속한 하북, 사음이 섬서라면 광혈은 철저하게 감숙을 노릴 겁니다.”
모용우가 지도를 내리쳤다.
“우회 기동. 삼천 병력은 감숙을 빠져나오는 게 아니라, 감숙 병력의 후미부터 치고 들어가 모인 병력을 몰살시키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