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088)
1088화. 먹고 먹히다 (2)
“이런 시발!”
거칠게 욕설을 뱉은 야백도가 마귀들을 독촉했다.
“뒤로 빠져! 빠지라고!”
언덕을 올라가다가 맞닥뜨린 엄청난 암기 세례에, 선두에 선 수백 마리의 마귀들이 몰살을 당했다.
폭우침(暴雨針)이었다. 당가 비전 중 하나로, 이화포(梨花砲)와 함께 운용되면 희대의 고수라도 방어와 회피가 불가능하다는 대량 살상 병기였다.
그 병기가 무려 백 발이나 터졌다. 쏘아진 철구는 사방으로 부서져 적들을 휩쓸었으며, 심지어 그 철구에는 또 다른 당가 비전인 오사독(五死毒)이 발라져 있었다.
스치기만 해도 목숨이 날아간다. 돌덩이처럼 단단한 마귀들의 피부도 폭우침을 피할 수 없었다.
당황한 마귀들이 야백도의 명에 따라 다시 뒤로 빠지려 할 때였다.
콰콰콰쾅!!
폭우침에 이어 이화포가 터졌다.
뒤로 빠지는 건 악수 중의 악수였다. 마귀 무리의 선두, 야백도와 가까이 있던 마귀들이 이화포의 얇은 암기들에 온몸이 뚫려 버둥거렸다.
순식간에 진형이 와해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마귀들을 방패 삼아 살아남은 야백도가 악을 질렀다.
“좌측으로 이동해라! 저 개자식들과는 싸우지 마!”
애초에 적의 정찰병을 끌어들여 죽이고, 은밀히 이동하여 감숙의 허리를 끊어 버리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분노에 눈이 뒤집혔지만, 이렇게 된 이상 빠른 기동으로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는 지마후와 함께 측방과 후미에서 적을 공격하는 것이 나았다.
좌충우돌, 난리가 난 마귀들이 겨우 진형을 유지하며 좌측으로 빠졌다. 단숨에 칠채산을 넘어가 청해로 우회, 난주 위쪽으로 이동하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당관은 그것을 두고 보지 않았다.
“놈들의 측방을 쓸어라!”
녹풍대 무사들이 언덕길을 따라 야백도의 부대를 앞질렀다.
앞지른 후, 곧장 산길을 타고 내려와 측방을 향해 독과 암기를 퍼부었다.
“크아아아악!”
“크르르!”
야백도의 명령에 어떻게든 달리고 있지만, 죽어 나가는 마귀의 수가 늘수록 짐승의 살기가 짙어졌다.
야백도가 악을 썼다.
“달려! 달려, 이 머저리 새끼들아! 놈들을 상대하지 마!”
기가 막힌 명령이었다.
아군의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이곳을 빠져나가겠다는 의미였다.
기실 이런 상황에선 오히려 후미로 쭉 빠져나가는 게 이득일 것이다. 그러나 야백도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지마후와의 연계 전술만을 생각, 마귀들을 철저히 그쪽으로 이동시키고 있었다.
차라리 맞서 싸울 생각으로 전면전을 펼쳤다면 희생은 커도 적의 전력을 깎아 먹을 수 있었을 터.
야백도의 판단은 당가 부대에게 있어 가히 최고라 할 만했다.
펑! 퍼퍼펑!
측방에서 녹풍이 따라붙으며 몰아친다면, 후방에서는 당관 홀로 공격을 감행했다.
그의 무력이라면 누구보다 빨리 선두로 치고 나가 길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앞을 막으면 어떻게든 병력이 새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이들 모두를 잡기 위해 녹풍도 흩어져야만 했다.
말하자면 지금 당가는 마귀 부대를 몰이사냥 중인 것이다. 죽어 나간 마귀가 많아도 아직 칠백이 넘는 전력이 남았는데, 고작 부대 하나와 당관만으로 적들을 몰아치며 죽이는 광경은 신기하기까지 했다.
파아악! 파아아악!
엄청난 내공을 소모했지만, 그래도 당관이다.
그의 손에서 떠난 각종 비수와 암기들은 후미의 마귀들을 갈아 버리기 시작했다. 마귀를 죽인 암기들은 또다시 회전하며 당관에게 돌아왔고, 당관은 그 암기들을 다시 날려 적들을 공격했다.
칠백이나마 남았던 마귀들이 사암의 산 하나를 넘어가자 오백으로 줄었고, 산과 산 사이의 길을 통해 언덕 하나를 또 넘어가자 사백으로 줄었다.
이 기가 막힌 상황에서, 비로소 야백도도 깨달았다. 더 이상의 진군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천의 병력이 순식간에 사백으로 줄었다.
전멸에 대한 의미는 조직마다 다르다지만, 이성과 두려움 없이 적을 공격하는 마귀라 해도 병력의 팔 할이 사라졌다면 전투 속행 불가능, 즉 전멸 상태라고 해야 했다.
지금 이 부대는 전멸되었다. 이대로 전투를 속행한다 한들 적에게 큰 피해를 주는 건 불가능했으며, 차라리 도주하여 부대를 재편성하고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나았다.
하지만 상황이 너무 나빴다.
마귀들은 지치지 않는 심장을 지녔지만, 제때 먹이를 줘야 했다. 마을 하나하나를 다 침공하여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 이유도 이놈들이 배를 채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설령 여기서 살아 나간다 한들, 굶주린 야수들의 전투력은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것이다.
최악의 경우 서로 잡아먹을 수도 있다. 어지간해선 주인의 말을 듣지만, 배고픔으로 목숨이 위험할 지경까지 가면 그조차도 잘 들어 먹지 않을 것이다.
‘어쩌지? 시발, 어쩌냐고!’
야백도가 망설이고 있을 때.
파아아악!
저 멀리, 마귀 부대가 전진하는 방향에서 녹색 장포를 걸친 무림인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당관의 눈이 번뜩였다.
“녹수!”
녹수대가 비로소 돌아온 것이다.
녹수대주가 외쳤다.
“전원 암기를 쏴라! 선두를 완전히 무너트려야 한다!”
척하면 척이다. 대원들 모두 암기를 뽑아 들며 적이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길 기다렸다.
야백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상태로 진군하면 전멸을 넘어 궤멸이 된다. 진짜로 다 죽는단 말이다.
“피해! 다시 왼쪽으로 돌아가! 모두 도주해라!”
“크아아아!”
마귀들이 날뛰며 우회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중구난방이었다. 도열을 유지한 채 돌아가려면 시간이 걸리니, 제자리에서 몸을 돌려 마구 달려 나간다.
줄은 한순간 엉망진창이 되었다. 야백도조차 당황하여 마귀 한 마리의 등에 올라타 달려 나갔다.
그 순간, 당관의 눈이 번뜩였다.
퍼퍼펑!
섬광처럼 날아간 비수 세 개가 야백도 주변, 부대 중앙의 마귀 여섯의 몸을 뚫어 버렸다.
주변이 아니라 안쪽이다. 뚫린 몸에서는 검붉은 핏물이 터져 나오고, 피 냄새를 맡은 마귀들은 이 다급한 상황에서도 입맛을 다셨다.
퍼억!
망설이는 마귀 하나의 머리통을 뭉개 버린 야백도가 버럭 외쳤다.
“달리라고 했지! 달려, 이 병신들아!”
도열하지 않고 움직이는 부대의 단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남은 마귀들이 협곡과도 같은 좁은 길로 달려 나갔다. 그 길이 가장 빠르고 체력 손실도 적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몰리는 것이다.
“녹풍녹수는 좌우로!”
협곡과도 같은 낮은 길로 마귀들이 지나갈 때, 이미 녹풍대와 녹수대는 좌우 언덕을 내달리며 마귀 부대를 에워쌌다.
파아아앙!
벼락처럼 날아간 당관은 순식간에 야백도 근처에 도달했다.
좌우에서 달려드는 마귀들을 모조리 쳐 죽인 당관, 그리고 뒤를 돌아보는 야백도.
야백도의 얼굴이 마귀들보다도 더 흉흉해졌다. 마음 같아서는 정말이지 머리통을 뽑아 버리고 싶지만, 상대와의 무공 격차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이 새끼들아! 막아!”
마귀들이 당관에게 달려들었다.
스윽!
그 순간, 이미 당관의 몸은 야백도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두 발은 그의 어깨에, 양손은 그의 정수리에 대는 당관.
야백도가 저도 모르게 외쳤다.
“멈춰, 시발놈아!”
“살려 달라고 해야지, 버르장머리 없는 놈아.”
콰득!
강하게 누른 양손에, 야백도의 머리가 어깨까지 파고들었다.
“크아아악!”
“캬아아악!”
주인이 죽자 마귀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당관은 순식간에 그들의 본능을 읽었다. 주박(呪縛)처럼 묶인 명령 체계가 끊어지자, 말 그대로 피에 굶주린 야수가 되어 버린 것이다.
퍼어억! 콰득!
놀랍게도 그들은 서로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광기의 향연이었다. 도주하는 놈들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은 옆에 있는 동료들을 죽였다. 죽은 동료의 살점을 뜯고 피를 마시는 모습은 악마도 학을 뗄 정도로 끔찍했다.
당관이 외쳤다.
“한 놈도 놓치지 말고 모조리 묻어 버려라!”
그렇게 녹풍녹수가 뿌리는 독과 암기는 마귀들을 완전히 소탕해 버렸다. 겁에 질려 도주하는 마귀들은 당관이 끝까지 쫓아가서 머리통을 날렸다.
녹풍과 녹수, 그리고 당관만으로 이천의 마귀 부대가 증발해 버린 것이다.
“허억! 허억!”
“후우, 후우.”
싸움이 끝나고 승리를 거머쥔 그들의 얼굴에는 뿌듯함만이 가득했다. 지쳐서 숨도 안 돌아왔지만, 어쨌거나 큰 사상자 없이 이 많은 적을 궤멸시켰다.
“두 대주는 사상자를 검토해라!”
녹풍대주가 외쳤다.
“녹풍대 경상자 일곱, 중상자 둘에 사망자 셋입니다!”
“녹수대 사망자 하나입니다!”
몰아붙여 싸웠다 한들, 매 순간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거리 때문에 마귀들에게 휩쓸려 죽은 사람도 나왔다.
하지만 적이 받은 피해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거저 얻은 승리나 다를 바 없었다.
당관이 외쳤다.
“죽은 전우들에 대한 애도는 전투가 끝난 후에 한다! 반 각 안에 호흡을 고르고 내공을 다스려라! 감숙 남부로 이동하겠다!”
* * *
푸화악!
선두에 서서 적들을 베어 넘기는 지마후의 무공은 엄청난 것이었다.
파괴력 넘치는 무공을 쓰지도 않았고, 세상을 불태울 것 같은 살기를 드리우지도 않았다.
그래도 그녀를 막는 사람이 없었다. 성마경에 달한 그녀의 무공은 초절정고수 몇 명이 붙어도 막기 힘든 수준이었다.
베고 또 베고, 쏘고 또 쏜다.
광혈교 내, 신진(新進)의 사제장들은 하나같이 지옥 같은 전투 훈련을 받은 이들이었다.
전 세대의 사제장들이 각종 사마외공에 특화되어 있다면, 세대 교체된 사제장들은 전원 전투에 능했다. 그중 하나가 지마후로, 신진 사제장 중 가장 빨리 진급하여 삼사제장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사, 살려……!”
퍼어억!
공동파 검사 둘의 목을 날려 버린 지마후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머리깨나 썼군.”
처음 쓸어 버린 놈들이 삼선인 줄 알았다. 삼선치고 병력이 너무 적었지만, 방심하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보니, 지금 쓸어 버린 놈들이 삼선이었다. 위치가 그러했다.
“조금만 더 빨리 꺾었으면 삼선과 사선 사이로 들어올 뻔했어. 뭐, 그래도 지지는 않았겠지만.”
삼선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삼천 병력 중 삼백여 명이 죽어 나갔다.
하지만 삼선의 일천 병력을 궤멸시켰으니, 꽤 남는 장사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선, 나아가 일선까지 치고 들어가면 감숙 전투는 완전한 승리로 돌아갈 것이다.
지마후가 외쳤다.
“쉴 시간이 없다! 적의 이선 쪽에서도 이쪽의 난(亂)을 알아차렸어! 정찰병을 죽일 테니 곧장 뒤로 따라붙어라!”
“존명!”
부대의 대장인데도 서슴없이 나서서 정찰병을 죽이겠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지마후가 특별한 점이었다. 그녀는 대장이면서도 아군의 상황에 따라 잡무도 맡는 파격이 있었다.
언덕을 내달리는 지마후의 눈이 번뜩였다.
‘슬슬 올 때가 되었는데.’
사선, 그리고 삼선까지 궤멸되었다. 모은 감숙 병력의 절반 가까이가 날아간 셈이다.
별일이 없는 한 야백도가 이끄는 이천 병력이 이선 측방에서부터 몰아쳐야 했다.
‘시간을 맞추지 못했나? 어째 그 머저리들의 살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걸.’
뭐, 그래도 상관없다. 이 기세라면 이선까지도 확실하게 밟아 놓을 수 있을 테니까.
‘그건 그렇고.’
이선의 움직임이 생각보다 빨랐다. 이쪽의 난을 읽고 움직인 게 아니라, 이미 짐작하고 있다가 대응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정찰병 뒤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이선의 모습을 보니, 정찰병이 아니라 첨병인 것 같았다.
‘걸렸나? 어떻게 벌써 걸렸지?’
생각해 보니, 삼선을 부술 때도 이미 전투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사선과 부딪쳤을 때와는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그녀는 한 줄기 불안함을 느꼈다.
적의 움직임도 움직임이었지만, 저 멀리 서북쪽에서부터 피부를 저릿하게 만드는 바람 하나가 불어오고 있었다.
‘성마경의 고수인가? 모르겠군. 이왕이면 아니길 바라지만…….’
지마후가 사악하게 웃으며 칼을 휘둘렀다.
‘와도 즐겁겠지.’
서걱!
이선에서 보낸 첨병들의 목이 하늘을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