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089)
1089화. 먹고 먹히다 (3)
“장로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냐?”
감숙 전역에 깔린 정보원들의 얘기를 듣고 온 정찰병들이 초검자에게 사건의 전말을 알렸다.
“뭐라?!”
초검자는 기가 막혔다.
그는 당가 측의 말을 믿었지만, 더 확실한 정보를 원했다. 해서 북부의 정보원들을 기다렸는데 후미의 사선에서부터 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쯤이면 삼선까지도 공격당했을 것입니다! 병력을 모아 감숙 남부로 향하기도 전에 치고 올라온 걸 보면, 놈들은 섬서로 빠지는 게 아니라 후방에서부터 밀고 올라올 생각이었던 게 틀림없습니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빠져나갈 거라는 생각은 했다. 변방의 광신도 놈들치고는 제법이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설마하니, 후미로 이동해 전투 준비가 안 된 사선부터 쓸고 올라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초검자가 외쳤다.
“전부 진군 준비를 하라! 적은 후미에 있다! 최대한 빨리 가서 이선과 함께 적을 분쇄토록 할 것이다!”
공동파의 검사들과 각 문파의 정예들이 서둘러 움직였다.
초검자는 선두에 서서 달렸다. 달리면서도 그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빌어먹을! 당가주의 전언을 듣자마자 움직였어야 했는데!’
바쁘게 움직였더라도 적의 기습이 빨라 사선은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돌아가는 꼴을 보니, 삼선 역시도 지키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적이 몰려오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서둘러 움직여 이선과 합류했다면 탄탄한 진형을 무기로 적을 압박할 수라도 있었을 것이다.
‘완전히 당해 버렸구나!’
적의 움직임이 의외이기도 했지만, 이건 지나치게 신중을 기한 자신의 잘못이기도 했다.
대장으로서 신중한 것은 좋았지만, 돌아가는 판세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사실상 무극수의 힘이 어느 정도로 대단한지를 몰랐고, 그 말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지도 못했다.
신중했건 과감했건, 결과가 이따위로 나왔으니 모든 잘못은 자신에게 있다.
“어서 달려라! 가서 놈들에게 감숙 무림의 힘을 보여 주도록 하자!”
다급함, 그리고 분노.
선두에서 달리며 아군을 독촉하는 초검자의 모습에선 두려움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일천 병력의 사기가 조금씩, 조금씩 올라갔다. 적의 기습에 아군이 당했다고 하지만, 일선에 모인 병력은 정예 중의 정예였다. 적과 전면전을 벌이는 게 아니라 기습당한 아군을 구하러 가는 길이었으니, 그 마음가짐도 달랐다.
그렇게 초검자가 이끄는 일천 병력이 본래 이선이 진을 치고 있던 곳에 도달했을 때였다.
화아악!
무시무시한 살기와 피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초검자가 눈을 부릅떴다.
‘이럴 수가!’
한참 떨어진 곳에서 마인들과 이선 병력이 싸우고 있다.
한데 이선 병력의 숫자가 너무 적었다. 얼핏 봐도 오백이 채 남지 않은 것 같았다.
반면 적의 규모는 적게 잡아도 이천 이상, 이천삼사백에 가까웠다. 특히나 선두에서 칼을 휘두르는 덩치 큰 여인의 무공은 구파의 장문인급이라도 쉬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무극수로구나!’
초검자가 이를 악물었다.
병력 차이도 컸지만, 무극수가 선두에서 작정하고 날뛰고 있으니 적의 사기도 엄청났다.
초검자가 외쳤다.
“적을 죽여라!”
“우와아아아!”
일선의 병력이 엄청난 기세를 일으키며 달려 나갔다.
이선의 대장이자 공동파의 장로인 숙검자가 외쳤다.
“지원군이다! 모두 힘을 내……!”
퍼억!
시뻘건 도기가 숙검자의 검과 몸을 반으로 갈라 버렸다.
무려 삼 장 거리 밖에서 휘두른 도기가 초절정고수의 몸을 양단했다. 역시나 무극수,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무공이었다.
지마후의 눈이 번뜩였다.
‘정보가 샜다고?’
그녀는 삼선의 싸움을 떠올렸다.
생각해 보니, 겉돌던 머저리들이 몇 명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서둘러 도주하려는 것 같아 제일 먼저 죽였는데, 보아하니 그놈들이 첩보병이었던 모양이다.
‘우리가 이곳으로 온다는 걸 알았다면, 누군가가 야백도의 부대와 부딪쳤다는 뜻이다. 보는 것만으로는 우리의 이동 방향을 알기 힘들어.’
지마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설마 그 망할 애송이 놈이 우리의 작전을 다 불어 버린 건가?’
미친놈이긴 하지만 독기 하나만큼은 인정해 줄 만한 놈이었다. 적이 어떻게 나왔든 이쪽 전술을 알려 줄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그냥 유추한 거라고? 그런데도 이 정도 속도라면 정말 빠르군. 무림의 저력이 상당하다더니, 과연 똑똑한 놈들이 투입되었단 말이지?’
지마후가 그 자리에 서서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피 냄새, 잡스러운 살기, 공포의 향기.
그야말로 난잡한 상황이라 일대를 떠도는 불온함을 읽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그녀라 해도 엄청난 이동 거리와 적과의 교전은 절반 이상의 내공을 소모하게 했다.
빠르게 마기를 수습한 그녀는 오감과 기감을 사방으로 퍼트렸다.
순간 그녀의 눈이 번뜩였다.
‘오고 있구나.’
막연했던 불안감, 그리고 위압감.
이 정도로 신경이 쓰이게 한다면 성마경에 달한 고수나 이쪽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무기를 지닌 부대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제는 알았다.
‘성마경.’
자신과 동등한 수준의 고수가 달려오고 있었다. 거리도 멀지 않았다. 반 각, 아니 반의반 각도 걸리지 않아 이 전장에 출몰할 것이다.
지마후가 외쳤다.
“또 다른 적이 올 것이다! 놈들을 최대한 빨리 쓸어 버려!”
“우와아아!”
함성을 지르며 돌진하는 마인들.
이천이 넘는 병력이지만, 그녀는 부하들의 상태가 결코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감숙 서북부에서 남쪽까지 쉬지도 않고 내려왔다. 그 상태에서 최소한의 휴식만을 취한 후, 곧장 사선부터 공격해 궤멸시켰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기는 불타올랐지만, 체력적인 문제가 심각했다. 이천삼백의 병력 중에 내공과 체력이 온전한 이들은 반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턴 속전속결이다.’
바로 그때, 지마후가 이끄는 지마신령(地魔神令)과 일선 부대가 부딪쳤다.
콰아앙!
호쾌하고도 무식하기 짝이 없는 충돌이었다.
한쪽은 치솟는 사기와 광기로, 한쪽은 걱정과 다급함으로 인한 살기 하나로 달려드니 충돌 지점에서 수십 명의 적군과 아군이 피를 토하며 하늘을 날았다.
치리리링! 퍼억! 퍼억!
“죽여! 죽여라!”
“중앙을 돌파해!”
“이 개새끼들아!”
“발목부터 찢어 버려!”
서로가 마구 소리를 질러 대며 도검을 휘둘렀다. 적의 가슴에 검을 박는 공동의 검사, 죽은 아군을 밟고 돌진해 검사의 배를 갈라 버리는 지마신령의 마인.
악다구니를 지르며 마인의 머리통을 부숴 버린 감숙 신사문(神沙門)의 권법가들도 있었고, 권법가들의 빗장뼈를 갈라 버리는 마인들도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마구 쳐 죽이는 진짜 전면전이었다. 무자비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들은 하늘까지 닿을 듯했다.
도검이 부딪치는 소리, 내공 경파가 폭발하는 소리, 사람의 육신이 부서져 날아가는 소리, 뼈가 으스러지고 살점이 짓이겨지는 소리 등등 헤아릴 수 없는 끔찍한 노래가 팔방에서 솟구친다.
이러한 난전에서는 위력적인 무공이나 초식 따위는 아무 쓸모가 없는 법이었다. 지극히 간결한 움직임으로 보다 빠르게, 보다 강하게 공격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이다.
특히나 이렇게 많은 병력이 얽혀서 부딪치는 싸움의 경우 이성을 잃고 병기만 마구 휘두르는 경우가 흔했다.
놀랍게도 일선의 병력은 그러지 않았다. 미친 듯이 악다구니를 지르며 공격하긴 했지만, 조별로 조장들이 있어 치고 빠지거나 방진을 두르는 것까지는 운용하고 있었다.
퍼버버버벅! 퍼어엉!
일선이 정예인 이유 중에는 무정문(武正門)의 힘도 컸다.
그들은 여러 가지 무공을 익혔지만, 특히 북부의 기마 민족 중 일부를 받아들였기에 궁술(弓術)에 상당한 자신이 있었다.
이번 전쟁에서 무정문이 파견한 궁사들의 숫자만 이백이 넘었다. 그 이백의 궁사들이 후미에서부터 화살을 날려 대니, 순식간에 지마신령 부대의 중앙부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난전 중에는 적의 진형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알 수 없다. 선두에서 적과 싸우는 무사들은 정신없이 도검을 휘두르기만 했다.
그러나 멀리서 아군을 지휘하는 이들은 이 순간이 승부처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전원 좌우군으로!”
삐이이이이익!!
내공 섞인 휘파람 소리가 들리자, 순식간에 일선 병력이 좌우로 찢어지며 사각(四角)의 형태로 도열했다.
순식간에 중앙이 비자 거침없이 그 안으로 파고든 지마신령의 마인들은 이내 당황했다. 적이 좌우로 너무 빨리 물러났기 때문이었다.
서둘러 다시 뒤로 빠지려 했지만, 뒤에서부터 밀고 들어오는 아군 때문에 후퇴 자체가 불가능했다.
지마후가 외쳤다.
“이군 정지! 일군은 전속력으로 달려 버려!”
저 상태에서 후퇴는 불가능하다. 차라리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수하고 달려 나가 적의 후미로 돌아가는 것이 백번 나았다.
초검자가 외쳤다.
“짓눌러라!”
쩌저저저정! 푸화아악!
좌우에서 압박하는 일선 병력에 의해, 순식간에 일백의 마인들이 난자되어 이승을 떠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각의 진형은 재빨리 횡진으로 변해 더 많은 마인들을 가두어 놓았다.
일백, 그리고 또 일백.
그 잠깐 사이에 삼백의 마인들이 죽어 나갔다.
이것이 바로 대형의 힘이었다. 무공을 익힌 무림인이라도 대형으로 압박하면 지닌바 능력을 삼 할도 선보일 수 없는 것이다.
지마후의 칼이 벼락처럼 움직였다.
쩌어어어어엉!
“컥!”
초검자가 피를 토하며 오 장이나 날아갔다.
그 먼 거리에서 허공을 격해 도기를 뿜는데, 그야말로 엄청난 힘이 깃들어 있었다. 작정하고 내친 도격임이 분명했다.
거리가 조금만 짧았어도 검과 함께 상체가 날아갔으리라. 초검자 역시 전장의 과열된 분위기에 휩쓸려, 적장인 지마후의 움직임을 놓쳐 버린 것이다.
초검자의 눈에서 분노가 치솟았다.
상대가 무극수고 나발이고, 이놈들에게 막내 제자를 잃었다. 게다가 후미에서부터 기습하여 아군까지 잃었다.
감숙의 모래바람조차 녹여 버릴 만큼의 분노. 그것은 초검자만이 아니라 일선 병력, 그리고 살아남은 이선 병력 모두가 지니고 있는 감정이었다.
“좌우군은 일각원진(一角園陣)으로 적의 좌우를 뚫어라!”
지마후가 외쳤다.
“지마신령은 원형 방진을 펼쳐라! 놈들의 돌격진을 흘려 버려!”
콰아앙!
공격하는 감숙 병력, 그리고 방어하며 튕겨 내는 마인 병력.
잠깐 사이에 지마신령의 많은 마인이 당했지만, 그래도 남은 병력이 천팔백에 달했다. 특히 선두에서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는 지마후의 존재 때문에, 좌우군의 파쇄 돌격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푸화아아악!
무자비한 참마도의 도법이 일선 병력의 첨병들을 우수수 쓰러트렸다.
하늘을 가득 메우는 핏물, 그리고 비명.
피 맛을 본 지마후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리는 순간.
번쩍!
전장의 광기에 차가운 살기를 드리울 또 하나의 병력이 도착했다.
“녹풍과 녹수는 적의 후미를 물어라!”
두 부대를 이끌고 나타난 당관의 눈에 지마후가 포착되었다.
지마후가 씨익 웃었다.
“왔구나!”
당관이 으르렁거렸다.
“저 망할 년!”
파아아악!
벼락처럼 돌진한 당관의 뒤로 수백 개의 암기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