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094)
1094화. 폭우 아래 잔화(殘火) (3)
짧은 순간, 극패의 눈이 모자선에게로 향했다.
하늘이 내린 것 같은 미모였다. 저 먼 섬나라부터 서역 어딜 가도 찬사가 쏟아져 나올 것 같은 엄청난 미모였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얼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할 감정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그녀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 주는 것은 오직 하나.
차갑게 일렁이는 눈동자에 올라온 실핏줄이었다.
‘빙공!’
극패가 자신의 멱살을 쥔 모자선의 손목을 쳐 내려 했다.
캉!
놀랍게도, 그의 굴강한 팔로도 모자선의 손목을 쳐 내지 못했다.
잡힌 멱살부터 목 근처가 모조리 얼어붙은 것 같다. 단순히 빙공이라서가 아니라 내공의 깊이 자체가 엄청났다. 손끝으로 흘려보낸 기운이 금제순화공의 내력을 밀어 내고 의복과 피부 일부를 경화시켜 버린 것이다.
극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년!”
그가 모자선의 얼굴 양옆으로 손바닥을 휘둘렀다. 힘으로 얼굴을 짓뭉갤 의도였다.
파악!
순간 모자선의 손이 극패에게서 떨어지더니, 그녀의 몸이 한 바퀴 빙글 돌았다.
쾅!
부딪친 손바닥에서 강한 충격파가 일었다.
그 충격파에서도 모자선은 자유로웠다. 그녀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한기는 열기 가득한 충격파도 완벽하게 무시했다.
회전한 모자선의 발이 극패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콰앙!
무식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화끈한 일격이었다. 어찌나 강한 일격이었는지 허공을 나는 극패의 몸이 화살처럼 날아갔다.
파파팡!
모자선의 신법도 대단했다.
허공에서 진기를 터트려 빠르게 극패를 향해 날아간다. 극에 이른 허공답보였다.
어느새 두 사람은 신화교 적화령 부대와 한참이나 멀어졌다. 그 정도로 모자선의 공격은 과격했다.
극패는 무리하게 허공답보를 쓰지 않았다. 끝까지 허공에 몸을 맡겨 각법의 충격을 해소한 후, 대지에 두 발을 디뎠다.
쿠우웅!
두 발이 땅에 닿자마자 일대에 지진이라도 난 것 같은 충격이 일었다.
허공에서 날아오던 모자선의 눈이 번뜩였다.
극패의 두 발을 중심으로 반경 오 장 너비의 땅에 실금이 갔다. 그리고 그 실금 사이로 시뻘건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술수였지만, 저 기공(氣功)이 얼마나 매서운 무공인지는 알 것 같았다. 거리가 한참 떨어졌는데도 피부가 화끈거렸다.
극패가 포효했다.
“넌 누구냐!”
질문과 함께 갈라진 땅속에서 화염 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보기만 해도 기가 질리는 극한의 기공술이었다. 갈라진 땅의 지기(地氣)를 충돌시켜 열기를 뽑아내, 화정의 힘으로 화진(火陣)을 펼쳐 구사하는 술법에 가까운 무공이었다.
대화궁구룡진(大火躬九龍陣).
천화의 경지에 진입해야 쓸 수 있는 신화교의 대표 절학이자, 그중에서도 압도적인 내공을 지닌 자들이 아니면 구현하기가 쉽지 않다는 최고급 무공이었다.
뿜어져 나온 아홉 줄기의 화염이 모자선에게로 쏘아졌다. 그 화염 줄기 하나하나가 입을 쩍 벌린 용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의외로군.’
일격에 재가 될 것 같은 위험 속에서도, 모자선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마치 짝을 이룬 것 같군.’
빙궁에도 저와 유사한,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하나의 무공에서 갈라져 나온 게 아닌지 의심할 만한 무공이 있었다.
길게 뻗은 모자선의 섬섬옥수에 새하얀 진기가 모였다. 그 진기는 순식간에 거대한 칼날을 형성했다.
수도(手刀)로 펼치는 도법, 빙파참경(氷波斬勁)이었다.
우궁주인 모웅백이 강량을 상대로 구사했던 무공이지만, 그때 그가 펼쳤던 것과는 아예 수준부터가 달랐다.
모자선의 몸이 회전했다.
퍼퍼퍼퍼퍼펑!
아홉 마리 화룡의 머리가 모조리 폭발하며 스러졌다.
극패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모자선의 우수도에 뻗어 있는 백색의 칼날은 그 크기가 사람 몸뚱이보다도 컸다. 마치 거인이 쥐고 휘두를 것 같은 크기였다.
치리리리리링!
거기서 끝이 아니다.
화기를 이겨 낸 한빙진기는 조각처럼 부서지며 물이 되었다가, 다시 빠르게 빙결하여 날카로운 조각을 이루었다.
모자선의 좌장(左掌)이 극패를 향했다.
피피피피핑!
수많은 얼음 조각이 극패에게로 쏟아졌다.
“이년!”
극패의 오른손 수도에도 시뻘건 불길의 칼이 생겼다.
신화교의 절정무공, 화룡마도(火龍魔刀)였다. 놀랍게도 그가 구사하는 화룡마도는 모자선의 빙파참경과 속성만 다를 뿐, 기공의 형태는 비슷해 보였다.
촤아아아악!
화룡마도가 지나간 공간 안의 얼음 조각들이 모조리 증발해 버렸다.
이후, 모자선의 우수백도(右手白刀)와 극패의 우수적도(右手赤刀)가 부딪쳤다.
콰아앙!
강렬한 충격파에 요녕의 황량한 땅이 마구 신음했다.
땅 여기저기가 부서지고 갈라졌다. 건조하던 대기에 습기가 가득 차올랐다.
극패의 눈이 흔들렸다.
무려 삼 장이나 밀려 나간 자신과 달리, 모자선은 그 자리에서 회전해 충격파를 상쇄했다. 즉,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위에서부터 내리쳤다고는 하나, 이 차이는 심했다. 내공만 보면 서로 별반 차이가 없는데도 힘의 차이가 상당했다.
‘상극?!’
파아아악!
극패를 향해 돌진하는 모자선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팔다리가 찢어져 날아가는 와중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 것 같았다.
살아 움직이는 얼음 인형을 보는 듯하다. 극패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파아아악!
돌진 후 자세를 낮춰 아래에서부터 위로 빙파참경을 휘둘렀다.
거리가 떨어졌지만, 극패는 감히 물러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이건 아예 방향을 전환해서 회피해야 했다.
촤아아아악!
신음하는 대지에 오 장 길이의 도흔(刀痕)이 생겨났다.
도흔으로 갈라진 땅이 서서히 하얗게 물들었다. 한빙진기가 침투한 것이다.
‘미친!’
다른 건 몰라도 저 도수공(刀手功)만큼은 상대가 분명하게 위였다.
회피 후 재차 모자선에게 달려든 극패가 거대한 주먹을 휘둘렀다. 이 역시 신화교의 절기, 염왕팔권(炎王八拳)이었다.
모자선의 눈이 번뜩였다.
콰쾅!
아무리 상극이라고는 하나, 극패의 무공은 하나하나가 막강한 위력을 담고 있었다. 제때 상쇄하지 못하면 제아무리 모자선이라도 심각한 피해를 당할 것이다.
물론 모자선은 방심하지 않았다.
실전을 겪은 지는 꽤 되었지만, 그녀는 셀 수 없는 피를 봐 가며 궁주위에 오른 사람이었다.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그녀의 사지 전체에 머물러 있었다.
염왕팔권을 피한 모자선의 주먹에도 청백색 살벌한 한기가 어렸다.
빙궁의 절기, 백룡십삼권(白龍十三拳)이었다.
콰쾅! 콰콰쾅!
염왕팔권으로 맞부딪쳐 가지만, 일격을 교환할 때마다 손해를 입는다.
상대의 정체는 알 수 없지만, 극패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의 내공 질이 자신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양은 자신이 더 많을 수 있지만, 한빙진기의 깊이가 금제순화공보다 한 단계 위에 있다. 고작 한 단계 차이지만, 상극이라서 그 차이는 서너 단계 이상의 결과로 나타난다.
‘빌어먹을!’
파파팡!
화룡출도(火龍出道), 염마백관(炎魔伯冠), 화화대경(火化大勁)의 삼 연속 초식으로 몰아쳤다.
일권, 일권이 묵직한 위력을 발한다. 염왕팔권은 극에 이르면 권법의 위력만으로 강철을 부수면서 녹일 수 있는 희대의 절기였다.
하지만 그 위대한 무공도 모자선의 권법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백룡십삼권의 백룡출궁(白龍出宮), 용미회광(龍尾回洸), 용호설풍(龍呼雪風)의 삼초식이 극패의 위력적인 권초를 모조리 박살 냈다.
‘……!!’
지금 이 순간만큼은 염왕팔권을 분쇄하는 모자선도, 백룡십삼권에 물러나는 극패도 똑같이 놀랐다.
두 사람의 무공은 너무나도 달랐지만, 초식의 투로는 어느 정도 닮아 있었다. 자세히 파고들면 완전히 다른 지점을 노리고 있으나 전체적인 움직임의 틀이 비슷했다.
‘동류?!’
파아악!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모자선이었다.
백룡십삼권을 거둔 그녀가 곧장 다시 손을 뻗었다.
일순간 공기가 쪼그라들며 엄청난 한풍이 일었다. 세상이 하얗게 물드는 듯했다. 그 하얀 세상에서, 투명한 얼음 조각이 그녀의 장심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오직 빙궁주의 북해심천공(北海沈天功)만이 감당할 수 있다는 절대무공, 빙백신장(氷魄神掌)이 펼쳐진 것이다.
순간 극패는 죽음을 느꼈다.
휘몰아치는 거대한 한빙진기. 마치 달과 별도 없는 밤에 눈보라 치는 언덕 위에 떨어진 것만 같았다.
“으아아!”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도 없었다. 무모하게 권법을 부딪치다가 침투한 한기에 움직임이 느려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화기를 있는 대로 끌어올려 한기를 뽑아내면서 공방을 나누는 일뿐이었다.
극패의 쌍장이 벼락처럼 휘둘러졌다. 상대와 똑같은 무공으로 눌러 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장법이 나왔다.
회오리치는 화염의 장력. 열화신장(熱火神掌)이었다.
어두운 청백색 구체와 회전하는 적백의 구체가 충돌했다.
콰아아아앙!!
일대에 폭풍이 불어닥친 것만 같았다.
미친 듯이 쏟아지는 바람에 극패의 몸이 땅을 갈아 대며 십여 장이나 튕겨 나갔다.
땅을 구른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몸 여기저기가 파랗게 질렸는데, 빙백신장이 불러일으킨 얼음 파편에 맞아 한독(寒毒)이 올라온 것이었다.
반면 모자선은 멀쩡했다. 의복 여기저기가 상하고 머리카락도 흐트러졌지만, 극패에 비하면 양호하다 못해 쌩쌩하게 보일 정도였다.
“우웨엑!”
극패가 피를 한 움큼 토했다.
화정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금제순화공이 제대로 운용되지 않았다. 자꾸만 삐걱거리는 듯한 느낌, 외줄 위에 놓인 의자에 앉은 것 같았다.
‘저년은 뭐지? 어디서 저런 괴물이!’
순간 극패는 전장을 떠올렸다.
‘기습!’
이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그는 재빨리 자세를 고쳐 잡았다.
퍼퍼퍼펑!
고쳐 잡은 자세가 곧바로 위태로워졌다. 기회를 잡은 모자선이 번개처럼 빨리 접근해 그의 두 다리를 걷어찼기 때문이었다.
천화경에 오른 년이 이토록 무식한 싸움을 자행할 줄 몰랐다. 극패는 고통을 참으며 열화신장을 펼쳤다.
콰앙!
모자선의 눈이 번뜩였다.
자신을 향해서가 아니라 땅에다가 쳐 내 폭발시켰다. 어느새 극패의 몸이 전장으로 향했다.
‘……!!’
극패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언덕을 오르던 오천 병력 중 절반 이상이 여기저기 날아갔다. 언덕 전체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안 돼!”
훅!
허공을 밟아 극패의 정면에 내려선 모자선이 차갑게 말했다.
“안 되긴 뭐가 안 돼.”
콰드득!
왼 주먹으로 극패의 어깨를 부숴 버린 모자선의 우수도가 곧장 그의 가슴을 노렸다.
본능적으로 팔을 교차해 막으려 들던 극패는, 이번에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금제순화공에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퍼어어억!
거대한 백색의 칼날이 그의 두 팔뚝과 가슴을 통째로 뚫어 버렸다.
투둑.
떨어지는 팔. 극패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마음 같아선 발로 걷어차고 싶었지만, 순식간에 온몸을 잡아먹은 한빙진기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한빙의 백도는 생명의 원천인 화정의 일부까지 뚫어 버렸다.
모자선이 차갑게 말했다.
“화정이란 사술 때문에 회복이 빠르니 머리를 날리거나 오장육부를 녹여 버리라고 했던가.”
번쩍!
극패의 몸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런데도 피는 나지 않았다. 두 동강이 난 몸뚱이가 어느새 꽁꽁 얼어붙은 탓이었다.
모자선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아무리 상극이라지만, 그래도 상당한 내공 소모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파아아악!
그녀가 적화령의 후미를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