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02)
1102화. 호아마병(虎牙馬兵) (2)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이었다.
동시에, 이런 감정을 느껴서는 안 될 상황이지만 무림맹 병력 모두가 감탄과 공포를 느꼈다.
언덕 좌우를 모두 점거한 채 달려오는 일만 기병의 모습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하나같이 어두운 갑옷을 입고 있는데, 황궁 기병대의 갑옷과는 전혀 다른 모양새지만 한눈에 봐도 튼튼하면서도 가벼워 보였다.
그들 모두가 한 손에 시커먼 장창을 들고 있었으며, 말 엉덩이 쪽에는 작은 활과 화살통, 만도(彎刀)가 매어져 있었다.
압권은 말들이었다.
‘크다!’
말의 덩치가 엄청났다.
의정군 조장급들이 타는 명마들보다도 조금 더 큰 것 같았다. 그렇게나 거대한 말들이 무려 일만 기나 되었다.
기세를 떠나, 외양만 봐도 압도될 것 같았다. 당장 모용우만 해도 순간적으로 움찔할 정도였는데 다른 병사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모용우는 그 말들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마기?!’
정찰병들의 정보는 정확했다.
사아아아악!
압도적인 군기 속에 흐르는 희미한 마기.
놀랍게도 그 마기는 말들에게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하나같이 붉은 눈을 한 말들은 기수들의 장창만큼 검은 피부를 자랑했다.
평범한 기마가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호랑이도 손쉽게 밟아 죽일 것 같은, 그야말로 마수(魔獸)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은 괴물인 것이다.
모용우가 외쳤다.
“전원 열진으로 후퇴다!”
아군 병력에게 후퇴를 종용했지만, 정작 그는 자신이 내린 명령과 다르게 움직였다.
파아아앙!
강하게 땅을 박찬 모용우의 신형은 순식간에 기마병들 앞에 도달했다.
그야말로 놀라운 속도였다. 한 줄기 번갯불이 튀어 나간 것만 같았다.
이어서 탕마검이 벼락처럼 움직였다.
쩌저저저정!
반사적으로 모용우를 향해 장창을 휘둘렀던 기마병 셋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일검에 실린 공력에 기마들조차도 고개를 휘저으며 대형에서 벗어났다.
지이잉! 지이이잉!
모용우의 두 눈에서 푸른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뇌정공(雷霆功)이 열리자 세상이 느리게 보였다. 느려진 세상 속에서 시퍼런 뇌전이 온몸의 혈관으로 치달았다.
모용우의 발이 한 번 더 땅을 박찼다.
번쩍!
허공으로 날아오른 그가 양손으로 탕마검을 쥐었다.
‘무정천뢰식(無情天雷式).’
동생이었던 자가 형에게, 형이었던 자가 동생에게.
모용 가문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로 얼룩진 뇌공(雷公)의 무공이, 마침내 섬서의 전투에서 기지개를 켰다.
‘기참뢰(氣斬雷).’
번쩍!
제멋대로 휘어지는 시퍼런 검기 여섯 줄기는 마치 하늘에서 내리친 번개처럼 보였다.
번개처럼 보이는 기가 번개를 베어 낸다. 거미줄처럼 뻗은 여섯 검기는 단숨에 기마병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퍼버버버벅!
끔찍한 파육음과 천지를 진동케 할 말 울음이 울렸다.
한 초식에 여섯 기병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이 탄 기마 역시 등뼈가 갈라지거나 피육이 베여 땅에 나뒹굴었다.
모용우의 눈이 흔들렸다.
‘이런.’
보통 말이 아닌 줄은 알았다. 알았지만, 그저 힘이 더 강하고 체력이 좋은 말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틀렸다.
‘단단하다!’
기참뢰 정도의 검기라면 기병의 몸을 베는 것은 물론 말의 몸뚱이도 절단해야 정상이었다.
한데 등뼈가 부러지거나 근육이 깊게 베인 게 전부였다. 기병의 몸을 부수듯 베고 지나갔다지만 그 위력은 크게 줄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그러고도 저게 끝이다. 여섯 기마 모두 목숨을 장담할 수 없겠지만, 아직은 살아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기참뢰를 버틸 정도면 어지간한 고수의 검에 맞아도 가죽만 베이고 말 거라는 뜻.’
모용우가 외쳤다.
“기마를 공략하지 마라! 어떻게든 기병부터 처리해야 한다!”
명령을 내리면서도 이게 정말 맞는 건가 싶었다.
기마병이 위험한 이유는 말의 무게와 돌진력 때문이었다. 통상 기마병 하나가 열 명의 보병을 감당할 수 있으며, 숙련된 기마병이라면 삼십 명의 보병도 치고 빠지며 유린할 수 있다.
그 파멸적인 위력이 말의 힘에서 나오는 거라고 본다면, 말만 제거하면 기마병의 초월적인 힘도 날려 버릴 수 있는 셈이다.
모용우는 화산 수뇌부들의 자신감을 근거 없는 것이라고 치부하진 않았다. 피해를 줄이고 더 조심히, 더 완벽하게 싸우길 원했을 뿐 그들의 능력이라면 기마를 공략하는 것이 크게 어렵진 않을 거라고 보았다.
하지만 저 정도 내구력이라면.
마치 초일류 외공을 익힌 무림인처럼, 평범한 도검으로는 흠집 하나 내기 어려운 근육과 외피를 지닌 마수(魔獸)라면.
‘위험해!’
피피피핑!
허공에 뜬 모용우를 향해 수십 발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후미에서 올라오는 기병들의 공격이었다.
모용우가 떨어지는 위치, 좌우로 움직이는 각도를 전부 계산해서 시망(矢網)을 형성해 사격했다. 놀라우리만치 정교한 사격이었다. 속도와 거리를 계산하는 능력이 대단했다.
‘이놈들은……!’
치리리리링!
탕마검으로 화살들을 쳐 낸 모용우가 무정천뢰식, 월광음뢰(月光飮雷)를 펼쳤다.
번쩍!
반월을 그린 탕마검이 무려 기마 십여 마리의 다리를 잘라 냈다.
상당한 내공을 소모한 일격이었다. 그러나 모용우는 월광음뢰를 펼쳐 놓고도 물러나야 했다. 기병들이 다리 잘린 말들과 함께 날아오며 창을 질렀기 때문이었다.
쩌저저저정! 푸화악!
신들린 검결로 장창들을 쳐 내고, 건곤백팔검해의 정교한 검격으로 기병들의 목젖을 갈랐다.
쿠구구궁!
기병들이 쓰러졌다.
모용우는 섬뜩함을 느꼈다.
목이 갈라졌으니 비명을 지를 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목이 베이지 않았어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부릅뜬 눈. 투구 아래로 빛나는 살기 넘치는 눈동자들엔 죽음의 공포가 없었다.
쩌저정! 쩌저정!
장창은 계속해서 날아왔다.
놀라운 것은, 장창을 휘두르는 기마병들이 모용우를 잡기 위해서 돌진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이 언덕을 내려가며 무림맹 병력을 죽이는 것이고, 나아가 저 멀리 화산과 종남 전선을 뚫어 버리는 것이었다.
즉, 전장 한가운데에서 아군을 죽이는 고수를 보고도 모여서 처리하려 들지 않았다. 언덕을 넘어오면 넘어오는 대로, 가면서 한 번씩 찔러 본다는 느낌이었다.
그 무관심함, 그 목적의식은 광기로도 설명하기 힘든 인형들의 폭거였다.
쩌저저정! 퍼버벅! 푸화악!
수차례 장창을 튕겨 내고, 기마 이십여 기의 다리를 잘라 냈으며, 그만큼 많은 기병들의 목을 날렸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전우인데도 죽으면 죽는가 보다, 하며 앞만 보고 달린다. 모용우라는 괴수가 옆에서 검을 휘둘러도, 내 영역 안에 들어와야만 대처할 뿐이었다.
‘빌어먹을!’
퍼어어엉!
저 멀리서 화려한 폭음이 들렸다.
합리성에 의심이 들긴 하지만, 호쾌함으로는 모용우를 한참이나 앞지른다.
천효락의 거대한 망치 같은 장법은 기마의 머리를 날리고 장창병들의 몸뚱이를 짓이겼다.
심지어 쌍장을 내지르면 그 무거운 기병 하나가 말과 함께 살짝 허공에 떠서 날아가기까지 했다.
대열이 흐트러지고 날아간 기마병에 휩쓸린 기병 서넛이 땅을 굴렀지만, 그들은 곧장 자신의 말을 찾아 타고 앞으로 달렸다. 그 움직임이 실로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푸화아악!
천효락을 지키며 적을 상대하는 화향의 얼굴엔 질린 기색이 역력했다.
“공자님!”
“그래, 안다!”
아무리 대단한 내공을 지녔다 한들, 이런 놈들을 상대로 장법을 구사하다 보면 금세 내공이 동날 것이다.
천효락의 몸에는 이미 몇 군데 창상이 나 있었다. 이런 난전은 처음이기도 했고, 아직 힘의 분배나 시야가 그 경지에 걸맞은 수준으로 향상되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파바바박!
천효락과 화향이 손을 잡은 채 기마 하나를 밟고 언덕 아래로 내달렸다.
그리고 그때, 이미 모용우는 언덕을 내려가는 기마 부대의 선두에 도달해 있었다.
눈이 돌아갈 만큼 빠른 신법이었다. 뇌정공을 익히며 얻은 극속의 경공술이었다.
푸화아악!
힘차게 휘두른 일참의 공격에 말과 기병이 통째로 절단되어 땅을 굴렀다.
히히히히힝!!
그냥 돌진하기에는 너무 우악스러운 공격이었던 모양이다. 처음으로 기마들이 투레질을 하며 좌우로 나뉘어 내달렸다.
모용우가 무림맹 병력을 바라보았다.
“크아악!”
“물러나라! 물러나!”
“합진은 평야에서 한다! 지금은 열진으로만 후퇴해!”
그래선 안 되지만, 모용우는 후퇴하는 무림맹 병력이 마치 늑대 떼에 쫓기는 양 같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기마들의 돌진은 압도적이었다.
‘처음부터 생각을 잘못했다. 언덕을 먼저 점거할 수 있을 줄 알았건만.’
평지를 달릴 때는 적당한 속도를 내다가, 언덕을 오를 때는 최고 속도로 달린 게 분명했다.
그 ‘적당한 속도’와 ‘최고 속도’의 차이가 너무 컸다. 물론 그거야 실제로 보지 못한 이상 알 수 없는 바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용우는 이 또한 자신의 실책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둬야 했어. 놈들의 능력을 몰랐다는 것은 변명이 되질 않아.’
퍼버벅! 푸화악!
필요할 때는 내공 소모가 큰 무정천뢰식으로 상대하고, 나머지는 건곤백팔검해로 기병들의 목이나 옆구리를 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의 숫자는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그의 손에 죽은 기마병들의 숫자가 거의 오십에 달하지만, 총 병력이 일만이었다. 이 정도로는 티가 나질 않았다.
결정적으로.
‘힘들다.’
내공이 벌써 절반 이상 소모되었다.
적들의 갑옷은 무척이나 단단했고, 특히 기마의 몸뚱이가 쇳덩이 같았다. 그런 기마병들을 상대하려니 평소보다 내공을 훨씬 많이 퍼붓는 공격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기가 막힌 상황이지만, 이렇게나마 적들에게 휩쓸리지 않고 오십여 기나 죽인 모용우의 실력은 진정 대단한 것이었다. 오랜 의정군 생활로 숱한 실전을 겪었기에 그럴듯한 상처 하나 입지 않은 것이다. 같은 수준이라도 경험이 없었다면 진즉에 피범벅이 되거나 죽었을지도 모른다.
파바바바박!
모용우와 천효락, 화향은 무림맹 병력 후미를 쫓으며 창질을 해 대는 기병들에게 돌진했다.
세 초절정고수의 분전에도 적의 숫자는 거의 줄지 않았다. 반면 기마병들의 창격과 말발굽에 죽은 무림맹 병력 수는 벌써 삼백이 넘었다.
후퇴하는 적을 죽이는 게 가장 쉽다고는 하지만, 삼단사대의 열진은 회피 기동에 능한 진법이었다. 후퇴를 해도 어지간해선 당하지 않는다. 그걸 알고 있기에 모용우도 이런 전술을 쓴 것이다.
하지만 뛰어난 전술도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별 의미가 없는 것.
이건 모용우의 전술 실패라기보다는 적의 힘이 지나치게 강한 것이라 봐야 했다.
모용우가 휘파람을 불었다.
삐이이이이익!!
내공 섞인 휘파람 소리는 저 멀리 화산과 종남 병력에까지 닿았다.
‘어쩔 수 없다. 적을 와해하며 전면전을 유도하려 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무림맹 병력은 물론 화산과 종남도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다. 차라리 한데 모여서 맞서 싸우는 게 낫다.
모용우의 판단은 정확했다.
“젠장!”
평소 절대 하지 않는 욕설까지 뱉어 가며 적의 기마 셋을 날려 버린 모용우가 언덕 정상을 바라보았다.
적의 압도적인 기마 공세에 후퇴를 거듭하는 이 순간.
쿠구구궁!
언덕 정상은 초고수들의 무지막지한 전투로 파괴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