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03)
1103화. 호아마병(虎牙馬兵) (3)
피이이잉!
하늘을 찢는 날카로운 소리.
효시(嚆矢)였다. 그 소리와 함께 수십 개의 화살이 남궁승을 향해 날아왔다.
난전 중에 쏟아지는 화살이라도 남궁승의 능력을 생각하면 크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는 누가 뭐라 해도 중원제일검이었다. 검의 제왕 소리는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남궁승은 그 화살 세례를 도통 무시할 수가 없었다.
파바바바박!
온몸에 둘러쳐진 무형의 방벽에 막힌 화살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당연한 결과였다. 무극의 고수는 무의식적으로 보이지 않는 진기의 방패를 뿜어낸다. 하물며 그것이 검제의 방패라면, 이 정도 공격으로는 피해를 입는 게 더 힘들다.
문제는, 남궁승이 무시할 수 없는 강자와 싸우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쩌어어엉!
우악스러운 창격을 받아 낸 남궁승의 몸이 덜컥 뒤로 밀려 나갔다.
“이놈들!”
우우우웅!
무명의 철검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검광이 다섯 줄기로 흩어지며 사방으로 번졌다.
남궁세가의 절기, 창궁무애검(蒼穹無涯劍)의 오룡비관(五龍飛貫)이었다.
퍼버버벅!
살벌한 파육음과 함께 열다섯 기의 기마가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검기 하나당 기마 셋을 해치웠다. 기마병만 죽인 게 아니라 단단한 외피를 지닌 말까지 동강 내 버린 것이다.
쩌어어어엉!
내리치는 장창을 피할 수 없어 철검을 돌려세워 막았다.
남궁승의 두 발이 땅을 파고들었다.
‘무식한 힘이로다.’
찰나지간 연호정과의 승부가 떠올랐다.
연호정의 무공은 남궁승에게도 다시 없을 놀라움이었다. 특히나 팔십 근이 넘는 중병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압박하는 그 특유의 완력은, 바다처럼 깊은 내공을 지닌 남궁승으로서도 정면으로 받아 내기 힘든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눈앞의 이 기병대장이 내리치는 창격은 확실히 부족하다. 당시의 연호정보다 힘과 속도는 물론 섬세한 기교도 한 수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힘들다.
히히힝!
울부짖는 말이 자세를 낮췄다.
창을 수거한 기병대장이 곧바로 남궁승의 가슴을 향해 일창을 질렀다.
번쩍!
벼락처럼 빠른 일격이었다. 한 줄기 섬전이 날아와 꽂히는 것 같았다.
천풍보(天風步)로 물러나며 철검을 세워 튕겨 냈지만, 막은 검에서 올라온 충격이 팔꿈치까지 전해졌다.
‘이런 무공이 있다니!’
재빨리 천풍검(天風劍)의 사나운 검격으로 말의 머리를 내리쳤지만, 어느새 기병대장은 만도(彎刀)를 뽑아 천풍검격을 튕겨 냈다.
피이잉!
그때를 놓치지 않고 화살이 날아왔다. 힘으로 밀어붙이려던 남궁승은 어쩔 수 없이 물러나 화살을 쳐 내야 했다.
‘인마일체(人馬一體)의 무공이로다.’
때에 따라 말이 자세를 낮추거나 앞발을 들기도 하고, 그 굵고 기다란 목을 돌려 주인의 공방을 더 쉽게 유도한다.
그야말로 신(神)에 이른 기마술이라 아니 말할 수가 없다. 이건 단순히 주인과의 교감, 무수한 경험 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영물인가.’
영물보다는 마물(魔物)이라 해야 할 것이다. 시뻘건 두 눈과 안 그래도 큰 다른 기마보다도 더 큰 몸체는 커다란 바위도 발길질 한 방에 부숴 버릴 것 같았다.
영물이든 마물이든, 중요한 건 저 기마의 존재가 남궁승에게 크나큰 놀라움이라는 것이다.
남궁승이 호안(虎眼)을 빛냈다.
기병대장 역시 부리부리한 호안을 지녔다. 그러나 태양처럼 강렬한 남궁승의 눈과 달리, 그의 두 눈은 끝없는 무저갱을 담고 있었다.
번쩍! 번쩍!
일곱 자를 훌쩍 넘어 거의 여덟 자에 가까운 장창이 세 줄기 벼락을 뿜어냈다.
연호정의 도끼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지만, 저 또한 중병이다. 그런데도 나뭇가지를 휘두르는 것처럼 빨랐다.
남궁승의 철검이 유연하게 휘어졌다.
치리리링!
힘과 속도의 무공을 부드러운 검격으로 흘려 낸다.
투구 아래, 기병대장의 두 눈이 사이한 광채를 뿜었다.
어느새 만도를 도갑에 넣었는지, 장창을 양손으로 쥐었다.
쿠릉!
기마가 돌진하며 창격의 위력을 배가했다.
남궁승이 땅을 박찼다.
콰앙!
창격에 맞은 땅이 쩍쩍 갈라졌다.
어느새 하늘 위로 떠오른 남궁승이 천화검(天花劍)을 펼쳤다. 천풍, 천뢰와 함께 남궁가의 삼천심검(三天心劍)이라 불리는 그 무공은 극에 이른 환검(幻劍)으로 적의 감각을 속이는 검술이었다.
순간 기병대장의 기마가 엄청난 속도로 몸을 돌렸다.
퍼퍼펑! 쾅!
기마가 회전하며 천화검의 검격 절반을 피하고, 그 위에 올라탄 기병대장이 어지러운 난격술을 구사해 남은 환검을 쳐 냈다.
창검이 부딪치며 강렬한 충격파를 일으켰다.
놀라운 것은 그 무서운 충격파에도 기마가 다리를 꺾지 않았다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고개를 내려 다리 근육을 부풀리는데, 커다란 발굽 네 개가 땅을 파고들었는데도 멀쩡했다.
피피피핑!
아직 언덕을 넘지 않은 삼천 기병은, 끊임없이 고개를 넘어가며 남궁승에게 화살을 날렸다.
허공에서 멋들어진 몸놀림으로 화살을 피한 남궁승이 단숨에 기병 셋을 베어 넘긴 후 기병대장을 향해 돌격했다.
기병대장의 두 눈에서 이채가 번뜩였다.
우우우우웅!
검과 하나가 되어 돌진하는 남궁승의 몸 주변으로 강력한 역장이 일었다.
신검일체(身劍一體), 그리고 심검일체(心劍一體)다. 벼락과도 같은 안광은 그 무엇이라도 베어 낼 것 같았고, 팔방으로 치닫는 검기(劍氣)는 산사태도 뒤집어 버릴 것만 같았다.
기병대장이 외쳤다.
“물러나라!”
무시무시한 목소리였다.
마(魔)인지 사(邪)인지, 도무지 인간의 목소리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음성은 하나의 음공(音功)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검신일체가 되어 날아가는 남궁승조차 순간적으로 진기를 흐트러트릴 뻔했다.
고개를 넘는 기마들이 조금 더 거리를 벌렸다.
그 순간, 창궁무애검법의 칠천향검(七天饗劍)과 기병대장이 뿌린 다섯 벼락이 부딪쳤다.
콰르르릉!
천지가 진동했다.
기병대장의 기마가 처음으로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두 사람이 부딪친 일대의 땅이 푹 꺼지며 자욱한 먼지를 일으켰다.
히히힝!
기마가 거칠게 울었다.
허공 높이 날아오른 남궁승이 재차 검을 휘둘렀다. 여전한 검신일체의 깨달음으로 몰입한 그의 검격은 순식간에 창궁무애검의 창궁일섬(蒼穹一閃)과 창룡도하(蒼龍渡河), 특성이 다른 두 검초를 펼쳐 냈다.
기병대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쩌저저저저정! 콰쾅!
수십 개로 늘어난 장창이 검제의 무공을 받아 냈지만, 거세게 들어오는 압력은 기병대장의 기파를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남궁승의 눈이 번쩍였다.
‘끝이다.’
고수의 결전은 한 끗 차이로 승부가 나는 법.
주춤하며 밀려 나간 적과 달리 남궁승에게는 한 호흡의 여유가 있었다. 그 여유가 이번 승부를 결정지을 것이다.
화아아악!!
남궁승의 검 위로 시퍼런 광채가 일었다.
벼락을 동반한 푸른 바람이었다. 창궁무애검법의 마지막 초식인 일겁초무애(一劫招無涯)였다.
창궁대연신공의 진기가 파랑을 일으키며, 일검의 위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릴 때였다.
퍼퍼퍼펑!
기병대장의 몸 주변으로 푸른 연기가 터졌다.
마치 콩알만 한 화탄 여러 개가 터진 것 같았다. 그 연쇄 폭발 이후 솟구친 푸른 연기는 남궁승의 등줄기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무심(無心)!’
남궁승은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다.
쐐애애액! 콰르릉!
하늘의 재앙이라도 된 듯 내리꽂힌 검격이 고개 위에 지옥을 불러일으켰다.
팔방으로 치닫는 바람은 수백 개의 검풍이요, 천지를 누비는 벼락은 무엇이라도 태워 없애는 양강의 검기였다.
쿠구구궁!
고개 일대가 푹 꺼져 버렸다.
반경 이십여 장을 뒤집어 놓은 일겁초무애의 초식에, 거리를 벌렸음에도 휩쓸린 기마 삼십여 기가 어육이 되어 쓰러졌다.
지이잉! 지이잉!
그야말로 믿기지 않는 위업을 달성한 검제의 철검 위로 실처럼 가느다란 푸른 전광 서너 개가 명멸을 반복하며 섬뜩한 위협을 뽐냈다.
호흡을 정리한 남궁승이 기병대장을 노려보았다.
“……대단하군.”
딸칵!
기병대장의 좌측 견갑과 비갑이 부스러져 땅에 떨어졌다.
쿠웅!
커다란 기마가 무릎을 꿇었다.
천하의 마물도 검제의 진짜 힘을 감당할 순 없었다. 기마의 두 눈과 코, 입에서 시커먼 핏물이 흘러나왔다.
그 와중에도 아직 죽지는 않았다. 기마 전신에서 어우러져 나오는 사이한 마기는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 새에 회복을 시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남궁승은 기마가 왜 죽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기병대장이 공격 대부분을 받아친 후 그 압력까지 분쇄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기마는 살았지만, 기병대장이 받은 타격은 만만치 않았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는 하얗게 변했고, 흘러나오는 기세 역시 상당히 불안정해졌다.
일검으로 판단이 났다. 설령 기마를 포기하고 받아 냈다 한들 멀쩡하진 못했을 것이다. 기병대장은 누구에게나 공포의 대상이 될 만한 무공을 쌓았지만, 남궁승보다는 분명 아래였다.
피피피피핑!
또다시 화살이 날아왔다.
이 인간 같지 않은, 초인이라는 단어로도 표현하기 힘든 무신들의 격전을 보고도 기마병들은 겁을 먹지 않은 것 같았다. 고개를 오르면서 끝까지 남궁승을 향해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기병대장을 노려보던 남궁승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검을 휘둘렀다.
우우우웅! 쩌저저저정!
검로를 따라 방향을 튼 화살들이 기병대장에게 날아갔다. 기병대장은 장창을 회전시켜 그 모든 화살을 튕겨 냈다.
스륵.
기마에서 내려온 기병대장이 말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물러나라.”
쿵!
비틀거리며 일어난 기마는 몇 차례 투레질을 하더니, 고개를 넘어간 기병들과 섞여 달렸다.
남궁승의 눈이 깊어졌다.
“무서운 마물이군.”
“대륙 놈들은 부러지기 쉬운 검을 잘 쓴다고 하더군.”
기괴한 목소리였다.
남궁승 역시 수많은 사마외도를 만나 봤지만, 목소리만으로 사람의 정신을 흐트러트리는 마두는 본 적이 없었다.
“듣기로, 그리 연약한 놈 중에서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강자가 몇 명 있다고 하였다. 그중 제일은 검제라 했던 것 같은데.”
“그렇다.”
남궁승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내가 바로 남궁의 검제다.”
타인이 붙여 준 검의 제왕이라는 칭호는 남궁승에게 있어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당당히 검제라는 칭호로 스스로를 정의했다. 중원을 노리는 외세의 약탈자들이 겁을 먹는다면 검제가 아니라 검신이라는 별호도 받아들일 용의가 있었다.
기병대장이 미소를 지었다.
청동으로 만든 인형 얼굴에 억지로 미소를 그려 넣은 것처럼 기괴했다.
“난 소현종이라 한다.”
“…….”
“사음의 사왕(邪王) 중 하나이자 역사상 최강의 기마 부대인 은호마병의 대장이 나다.”
은호마병.
남궁승이 눈살을 찌푸렸다.
“역사상 최강이라니, 참으로 오만하구나.”
“타인의 이해를 구한 적 없다.”
휘익!
장창을 세워 든 기병대장, 소현종이 마기 가득한 안광을 뿜었다.
“섬서는 괴멸될 것이다.”
“닥치거라!”
무서운 일갈과 함께 날아오른 남궁승이 또 한 번 일겁초무애를 펼쳤다.
여유 넘치는 공력, 하늘의 뜻을 품은 검제의 무공이 소현종의 몸통을 부숴 버릴 것처럼 강림했다.
소현종이 기합을 지르며 창을 휘둘렀다.
쿠구궁!
두 초인의 충돌에, 야트막한 고개의 높이가 또 한 번 낮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