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04)
1104화. 호아마병(虎牙馬兵) (4)
“이, 이런!”
용선진인은 비탈길을 내려오는 기마 부대를 보며 당황했다.
물론 적의 기마 부대는 비탈길을 내려와야만 했다. 하지만 무림맹 병력이 저리 속수무책으로 당할 줄은 몰랐다.
모용우가 직접 끌고 온 삼단과 사대는 숱한 실전을 겪으며 성장한 부대였다. 아닌 말로 저 이천 병력이라면 화산과 일전을 벌이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전력이라 할 수 있다.
한데 싸움다운 싸움도 해보지 못하고 물러나고 있었다.
“장문인!”
삐이이익!
장로들 역시 당황하여 용선진인을 부르는 순간, 저 멀리서 모용우의 신호가 날아왔다.
용선진인이 외쳤다.
“전군 진군! 저 무도한 놈들에게 섬서 무림의 힘을 보여 주도록 하자!”
“우와아아!!”
천만다행히도 우군 이천 병력의 사기는 죽지 않았다. 개중에는 무림맹 병력의 다급한 후퇴를 조롱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뭐가 되었건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싸울 의지가 넘친다는 것이었다.
파바바박!
우군 이천 병력이 달려 나갔다.
서로 간의 충분한 거리를 두고 달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속도를 냈다. 흥분했다고 하여 선두를 제치고 달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군기가 잘 잡혔음을 알 수 있었다.
‘저쪽도!’
함성을 지르며 달려 나가는, 천하의 고수라도 기감이 흔들릴 상황에서도 용선진인은 종남이 이끄는 좌군 역시 움직였음을 알 수 있었다.
용선진인의 얼굴에 전의가 솟구쳤다.
무림맹 병력이 물러나는 것을 보며 크게 걱정했지만, 정파 무림 연합이라 하여 연맹의 전력만으로 섬서를 지킬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섬서의 위기는 섬서가 해결해야 한다. 설령 무림맹 병력이 오지 않았더라도 그들은 물러서지 않았을 것이다.
‘반드시 이긴다!’
사형인 용화진인의 불명예스러운 죽음으로 새로이 장문인직에 오른 용선진인은, 비록 정치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도 받았지만 화산의 장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무력과 정신을 지닌 자였다.
그렇게 용선진인이 이끄는 우군 이천 병력이 물러나는 무림맹 병력과의 거리를 삼백 장 가까이 좁혔을 때.
번쩍!
널따란 개활지에서 열진으로 물러난 무림맹 병력이 돌연 몸을 돌렸다.
이어 각 단주와 대주들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합진 공격! 좌우로 몰아붙여라!”
쿠르르릉!
제멋대로 찢어져 도주하는 것처럼 보였던 무림맹 병력이 순식간에 합쳐지며 좌우로 나뉘었다.
그 빠른 전열 정비는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용선진인은 무림맹 병력의 움직임에 감탄했다.
‘저렇게나 신속하다니! 정말 대단하구나!’
무인이 아닌 군의 통솔자로서 용선진인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시에 긴장했다.
다시 봐도 무림맹 병력의 움직임과 기세는 실로 대단했다. 그 병력을 삽시간에 몰아붙인 적의 능력은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할 것이다.
용선진인이 함성을 질렀다.
파바바바박!
그의 뒤를 따르던 화산의 매화검수들이 폭발적인 신법으로 달려 나갔다.
수십 명의 매화검수가 화산의 상징, 팔매화검진(八梅花劍陣)을 펼쳤다. 적을 압박하면서도 철저하게 방어하는 초일류의 검진이었다.
두두두두두! 스르륵.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는 기마 부대.
놀랍게도, 무림맹 병력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화산의 검진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자신들의 진을 잘게 쪼갰다.
엄청난 실전으로 다져진 전투 능력이었다. 용선진인은 무림맹 병력의 유연한 진세를 보며 다시 한번 승리를 다짐했다.
그렇게 은호마병의 첨병과 무림맹 병력이 부딪쳤다.
콰콰콰쾅! 퍼펑!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수십 명의 무사들이 하늘을 날았다.
피가 폭죽처럼 터진다. 부서진 육체와 병기 조각들이 밤하늘을 수놓은 별처럼 허공을 치장했다.
그중 대다수가 무림맹의 병사들이었다. 숭고한 희생이었다고 말하기에는 지나치게 끔찍하게, 그리고 지나치게 많은 수가 죽어 나갔다.
“죽여! 죽여!”
“다리를 노려라!”
“기마 다리는 단단해! 기병부터 죽여라!”
온갖 외침이 만연했다. 말발굽 소리와 각종 욕설, 기합, 병기가 부딪치는 소리 등으로 인해 전장 한복판에 있는 이들은 귀가 멍해지는 걸 느꼈다.
들리지 않는 귀를 활짝 열기 위해 더욱 목청을 높인다. 전장 한복판은 상상하기 어려운 소음으로 저승의 차사들을 이끌었다.
퍼버버벅! 푸화악!
은호마병들의 돌진력과 창술은 대단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파괴력을 보여 준다. 특히나 기마 하나하나가 마물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어서, 무식한 칼질 앞에서도 죽기는커녕 잘 베이지도 않았다.
파바바바박!
용선진인을 필두로 한 화산의 장로들이 하늘을 날며 기마병들에게 달려들었다.
번쩍! 번쩍!
최초의 전술에 있어 오판을 내렸지만, 섬서를 지키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는 누구 못지않았다.
최일선에서 매화검을 휘두르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전장에 강림한 신선들을 보는 듯했다. 화산의 자랑 암향표(暗香飄)를 구사하며 절묘하게 허공을 노니는 그들은, 화산의 온갖 검법을 펼쳐 내 기마병들을 유린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와아아아!!
우군보다 두 배의 전력을 지닌 좌군이 완만한 사선을 그리며 은호마병의 전면과 측면을 공략했다.
미친 듯이 기마병의 목과 팔을 잘라 내던 용선진인은 순간 깜짝 놀랐다.
‘사선진(斜線陣)!!’
일자로 펼쳐진 대형의 끝을 시간차를 두고 움직이며 적을 휩쓰는 진법이다. 좌군의 좌익부터 중익, 우익의 순으로 적을 감싸듯 돌진하고 있었다.
은호마병의 무시무시한 파괴력은 어떤 진형이라도 단숨에 깨부술 수 있지만, 그들의 파괴력은 기마의 특성 외에 단순함에서 오는 측면이 컸다.
즉, 은호마병이 적을 순식간에 분쇄해 버리기 위해서는 무조건 일자형 돌진을 감행해야 한다. 애초에 기마로 각종 진법을 다양하게 구사하는 것은 어지간한 훈련으로도 힘들기 때문에, 뭉친 기마들은 압도적인 중량과 속도로 적을 밀어붙이는 데에 집중했다.
한데 그런 기마 부대를 상대로 좌군은 사선진을 이용, 적을 감싸 안는 형태로 부딪쳐 내부의 혼란을 유도하는 것이다.
‘대단하구나!’
용선진인은 다급한 상황임에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말이 쉬워 사선진이지, 사선으로 움직이는 대형을 올바르게 짜기 위해서는 무수한 연습은 물론 군사적 능력이 뛰어난 이들이 필요했다.
게다가 끝에서부터 돌진하기 때문에 최초의 적과 만나는 면적이 좁다. 먼저 돌진하여 적을 맞는 병사들의 공포심은 일자 돌진보다 극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선진을 성공리에 펼쳤다는 건 좌군의 사기가 우군보다도 뛰어났다는 증거이며, 상하 관계가 철저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푸화아악! 쩌정!
기병 하나의 목을 날리는 순간 좌측에서 날아온 화살에 당할 뻔했다.
빠르게 화살을 쳐 낸 용선진인은 죽은 기병을 끌어내고 비어 버린 기마에 올라탔다.
히히히힝!
기마가 난동을 부렸다.
주인이 아닌 자를 민감하게 파악한다. 단순한 무게 차이가 아니라 기수가 뿜어내는 진기(眞氣)와 분위기로 파악하는 듯했다.
용선진인이 버럭 외쳤다.
“이놈!”
휘이익!
어떻게든 말의 고개를 꺾었지만, 기마는 결코 용선진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퍼버벅!
멀리서 날아온 화살 중 하나가 기마의 오른쪽 눈에 박혔다.
용음을 토한 기마가 앞다리를 들며 방향을 전환했다.
그 순간, 용선진인은 몰려오는 적들과 마주했다.
수많은 장창이 용선진인을 향해 겨누어졌다.
용선진인은 단숨에 안장을 박찼다.
까가가강! 퍼벅!
장창 대부분은 기마에 박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충격에 기마는 쓰러졌고, 뒤이어 몰려온 다른 기마들에 밟혀 어육이 되었다.
‘참혹하구나!’
허공 높이 날아오른 용선진인은 기마 부대의 살기에 기가 질리는 걸 느꼈다.
이놈들은 아군의 죽음에 아무 감흥도 없는 것 같았다. 오로지 돌진, 또 돌진이다. 자신의 영역 내에 있는 적은 창과 만도, 화살을 써 가며 죽이려 하지만, 저 멀리는 일각이 무너져도 본체만체하며 전방을 향해 달렸다.
무조건 적의 병력을 파헤치고 빠져나가려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선 안 돼!’
이놈들에게선 한 줌의 공포도 느껴지지 않았다.
짙은 살기, 고요하게 타오르는 흥분만이 전해진다. 만약 기마 부대에 우군이 뚫리면 잘 형성된 진도 몇 토막으로 쪼개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진형 자체가 불리해진다. 만약 쪼갠 후에 좌우로 밀어붙이기 시작하면 아군의 희생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것이다.
“뚫리지 마라! 화산의 검사들 모두 팔매화검진으로 적의 공세를 받아 내라!”
이렇게 공격적으로 돌진하는 기마 부대를 상대로 방어만 하라는 것은 가혹한 명령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마주 공격하며 분쇄하다가 어느 한 부분이 뚫리게 되면, 그 뒤로는 무수히 많은 구멍이 생길 것이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은 하다. 무림맹 병력을 중심으로 섬서의 좌우군이 기마 부대의 진을 뚫어 버리면 똑같이 좌우로 밀어붙일 수 있단 말이다.
문제는 기마들이 어지간한 고수의 칼로도 쉽게 베이지 않고, 엄청난 중량감으로 잘 밀리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좌우군이 뚫리면 그 뒤로는 섬서의 성도와 각 도시가 기마 부대를 받아야 한다. 차라리 놈들이 이곳의 싸움을 정리한 후에 돌진한다면 모를까, 전장을 무시하고 도시를 향해 달리는 순간 섬서 무림은 이번 전투에서 패배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빌어먹을! 우리가 잘못 판단했구나!’
싸움이 벌어진 와중에 싸움 이외의 생각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래도 용선진인은 할 수밖에 없었다.
‘소맹주의 말이 옳았어.’
지형적 이점, 그리고 섬서 무림 자체의 힘.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적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기병의 숫자가 일만에 달한다고는 했지만, 오히려 개활지를 이용해 적의 기마를 상대하면 적이 지리멸렬할 거라고 생각했다.
틀렸다.
놈들의 기마는 내공을 익힌 고수의 칼질로도 잘 베이지 않는 강철 같은 몸을 지녔다. 단칼에 기마를 베려면 최소한 절정고수는 되어야 했다.
심지어 중량도 중원의 말보다 훨씬 무거웠고, 어떤 술수를 썼는지 공포도 느끼지 않았다. 붉은 두 눈에 마기가 잔뜩 서린 것이, 그야말로 개량된 마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게다가 저 속도는 무엇인가. 절정고수와 신법 대결을 펼쳐도 될 것 같지 않은가.
‘철저히 준비했어야 했다! 독이든 함정이든, 무슨 속임수를 써서라도 철저히 대비한 채 놈들을 맞았어야 했어!’
적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더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았어야 했다.
용선진인은 장로들을 돌아보았다.
장로들 역시 살기와 흥분으로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두 눈에는 숨길 수 없는 난처함을 품고 있었다. 그들 역시 싸움이 이런 식으로 진행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다.
콰쾅! 퍼어어엉!
폭음과 폭음, 죽음과 죽음.
용선진인의 시선이 아군의 후미를 향했다.
‘이런!’
몇몇 기마가 우군의 중단을 넘어 후방까지 달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잡힐 것이다. 하지만 적의 병력이 벌써 우군 중심을 넘었다면, 곧 우군이 뚫릴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용선진인이 버럭 소리쳤다.
“진형을 압축해라! 힘으로 받아 내라! 절대 뚫려선 안 된다!”
그런다고 과연 뚫리지 않을까? 용선진인은 자신이 없었다.
‘내 목을 내놓더라도 절대 보내지 않는다!’
그때였다.
번쩍!
저 멀리 고개 너머.
기마 부대의 후미를 깨부수는 자색의 검기가 충천했다.
용선진인의 입이 떡 벌어졌다.
“태사조님!!”
화검자를 필두로 한 전대 고수들이, 은호마병의 후측방부터 밀고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