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06)
1106화. 호아마병(虎牙馬兵) (6)
“안 돼!”
후미를 뚫은 기병을 향해 섬서 무림인 다섯이 달려들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돌진이었다. 세 명은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 기병의 머리와 몸통, 그리고 기마의 목을 움켜쥐었다.
퍼벅! 퍽!
기병이 만도를 뽑아 기마의 목에 매달린 무림인의 목덜미를 베었다. 자신보다 기마를 더 위하는 것 같았다.
“으아아!”
푹!
기병의 머리를 움켜쥐었던 젊은 무림인이 손가락으로 기병의 눈알을 찔렀다.
눈을 터트린 손가락이 안쪽까지 쑥 들어갔다. 기병은 괴성을 지르며 창과 도를 마구 휘둘렀다.
퍼버벅!
미친 듯이 날뛰는 기마의 말발굽에, 돌진을 막으려 다가온 무림인 둘의 머리가 뭉개졌다.
우두둑!
기병이 휘두르는 창도에, 기마에 올라탄 무림인 둘이 죽고 눈을 찌른 한 명만이 남았다.
쾅!
내공을 실어 발경을 터트리니, 기병의 머리 한 부분이 쑥 꺼졌다. 안쪽으로 침투한 경력이 뇌와 우측 두개골을 박살 낸 것이다.
“이놈!”
목숨을 잃은 기병의 손에서 창과 도가 떨어졌다.
하지만 꼿꼿한 허리는 그대로였다. 젊은 무림인은 기어이 뒤에 타서 기마의 고삐를 쥔 기병의 팔뚝을 잡아끌었다.
히히힝!
거친 울음을 토한 기마가 방향을 북쪽으로 바꾸었다.
만약 죽은 기병이 떨어졌다면, 기마는 절대 방향을 바꾸지 않았을 것이다. 생기(生氣)가 툭툭 끊어지며 사라지고 있었지만, 이 난리 통에 기마가 그것까지 느낄 수는 없었다.
“가자!”
두두두!
아군들이 뭉친 곳을 피해 기마를 질주시킨 젊은 무림인은 순간 눈을 빛냈다.
저 멀리 무자비하게 돌진하는 적들이 보였다. 인간 같지 않은 놈들이라도 흥분은 하는지, 기괴한 소리를 질러 대며 아군을 베거나 찌르고 있었다.
무림인은 힘차게 말의 엉덩이를 때렸다.
깜짝 놀란 기마가 자세를 낮추며 최고속으로 돌진했다.
순식간에 적병 사이로 기마를 돌진시킨 무림인은 힘차게 날아올랐다.
두두두두!
공성추처럼 돌진하는 기마.
그제야 죽은 아군이 돌진하는 것을 본 기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기마를 틀었지만, 이미 늦었다.
콰앙!
주인의 명령이라면 목숨조차 돌보지 않는 기마의 돌진은 비탈길을 구르는 바위와 같았다.
그 묵직한 중량으로 측방에서 돌진하니, 은호마병 두 기가 쓰러지고 함께 달려오던 다른 기병 대열도 줄줄이 무너졌다.
남쪽으로 돌진하던 기병들은 사태를 깨닫고 신들린 기마술을 선보이며 휩쓸리는 것을 면했지만, 그 덕분에 좌측 대열 일부가 완전히 마비되었다.
“우와아아!”
“죽여라! 죽여!”
“지금이다!”
쓰러진 기병의 숫자는 거의 이십에 달했다. 광기에 눈이 먼 무림인들은 목숨도 돌보지 않고 달려들어 쓰러진 기병들을 공격했다.
적의 총병력을 생각하면 약간의 대열만 흐트러트리고 이십 기병을 죽인 것은 별것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한 번의 변화는 섬서 무림인들의 살기에 불을 붙였고, 죽어 가던 사기가 무섭게 되살아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전쟁은 언제나 영웅을 탄생시키는 법. 젊은 무림인은 자신이 만들어 낸 성과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것이 그의 생사를 갈랐다.
퍼억!
멀리서 날아온 화살 한 대가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젊은 무사의 생을 앗아 갔다.
커다란 씨앗을 뿌리고 산화해 버린 청년의 삶. 그러나 그 청년의 희생을 통해 끓어오른 사기는 혼이 빠진 채 적을 상대하던 무림인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잡아! 기병들을 끌어내려!”
“혼란을 유도해라!”
“죽어도 막아야 해!”
방진으로 적을 밀쳐 내던 무림인 중 선두에 선 이들이 힘차게 날아올라 기병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들 중 대다수가 기병의 창과 화살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목숨을 건 그들 덕분에, 뒤이어 뛰어오른 무림인들은 하나같이 기병들의 몸통을 끌어안거나 목을 조르며 기마 위에 앉을 수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천하의 은호마병이라도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치 개미 떼가 달려들어 몸에 붙는 듯한 느낌이었다. 문제는 이놈들이 개미가 아니라 육중한 사람이란 것이었다.
물론 일류의 무공을 연마한 기병들의 힘이라면 무림인들을 떨쳐 내는 게 어렵진 않지만, 내가 살고 적을 죽이는 게 아니라 내가 죽더라도 적을 죽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달려드는 이들의 힘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은호마병 이군(二軍) 군장, 묘사하는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눈을 떴군.’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은호마병들은 승리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훈련을 받았지만, 그 말을 뒤집어 생각하면 죽음 앞에 주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훈련을 받는 것이다.
물론 어떤 전투 조직이든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훈련은 한다. 은호마병이 그들보다 대단한 것은 언제, 어떤 순간에도 서슴없이 목을 내놓을 수 있을 만큼 공포에 무디다는 점이었다.
한데 저놈들은 어떤가?
‘불과 같다.’
오랜 전투로 단련된 묘사하의 눈에는 희뿌연 연기처럼만 보이던 적들이 순식간에 산불로 변한 듯했다.
이것은 좋지 않다. 묘사하는 실력 없는 놈들의 목숨을 건 분전이, 때로는 정예 조직에게 심대한 위협을 줄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묘사하가 외쳤다.
“속도를 줄여라! 중진은 사살 대형으로!”
무시하고 밀어붙이기에는 아군의 피해가 너무 클 것 같았다. 전진을 멈추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 적의 사기를 꺾어 놓아야 했다.
그의 생각은 합리적이었다.
쩌저저저정! 푸화아악!
선두에서 돌진하던 기병들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창과 도를 무차별적으로 휘둘렀다.
놀라운 건 그들의 자세였다.
그 많은 기마가 기다렸다는 듯 주저앉는다. 그러다가 무림인들의 공격에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다.
퍼버벅! 콰앙!
전진을 멈추니 섬서 무림인들의 공세에 불이 붙었다. 그들은 자세가 낮아진 기병들을 향해 육탄 돌격을 감행했다.
퍼벅! 서걱!
기병들의 창에 맞은 무림인들의 머리통이 날아가며 허공에 핏물을 흩뿌렸다. 무림인들의 도검에 맞은 기병들의 목과 팔다리가 걸레짝처럼 찢기며 붉은빛을 더했다.
“놈들이 멈췄다! 돌격해!”
“우와아아!!”
사기가 끓어오를 대로 끓어오른 무림인들이 흥분해서 달려들었다.
용선진인의 눈이 흔들렸다.
“안 돼! 좌우로 흩어져라! 화살이 날아온다!”
정신없이 적을 죽이다가 전황을 파악한 용선진인의 명령은 다소 늦은 감이 있었다.
피피피피피피핑!!
적군 중진에서 날린 삼천 발의 화살이 우군 중진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막아!!”
퍼버버버벅! 티디딩!
“크아아악!”
끔찍한 비명과 함께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화살을 튕겨 내거나 치명적인 부위를 피해 맞은 사람이 대다수였지만, 사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또 한 번 허공을 새까맣게 지우며 날아드는 화살 비는 공포 그 자체였다.
일류의 무림인이라도 대형을 유지하며 돌격하다가 화살 비를 맞으면 피하거나 쳐 내기가 쉽지 않다. 설령 내공을 익히지 않은 군대의 화살이라도 위험할진대 내공까지 실어 쏘아 낸 전투 부대의 화살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퍼버버버버벅!
먼지구름처럼 자욱하게 일어난 피 보라는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몽환적이었다.
다행히 이번에도 피하거나 쳐 낸 사람이 많아서, 두 번째 사격으로 죽은 무림인은 종전의 삼 할밖에 되지 않았다. 앞선 사상자로 인해 공간이 늘어난 덕분이기도 했다.
문제는 적들이 사격을 언제까지 감행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활활 타오르던 섬서 무림인들의 사기가 주춤할 때였다.
콰아앙!
시끄러운 전장에, 누구라도 들을 수 있을 만큼 거센 폭음이 울려 퍼졌다.
세 마리의 기마가 통째로 날아가고 있었다. 인간 같지 않은 괴력의 무공, 한껏 힘을 모은 천효락이 쌍장을 휘둘러 적의 일격을 무너트린 것이다.
“화향!”
번쩍! 번쩍!
기마가 날아가며 시야를 가리는 순간, 귀신처럼 움직인 화향이 천효락 앞에 있는 기병들의 목을 깔끔하게 베어 냈다.
숨 막히는 전장에서 비로소 두 사람은 올바른 전술을 찾아낸 것이다. 천효락이 강력한 장법으로 적을 뒤흔들면, 기회를 틈탄 화향이 적을 베어 넘겼다.
너무나도 단순한 전술이지만, 두 사람은 초절정고수였고 서로의 무공을 잘 알고 있었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여 네다섯의 힘을 낸다. 내공 소모를 줄이면서 착실하게 적의 일각을 무너트리는, 진짜 고수들의 힘이었다.
“찢어라!”
하지만 천효락과 화향의 분전은 고수로서의 분전일 뿐, 전장의 흐름까지 바꾸진 못했다.
흐름을 바꾸는 자는 따로 있었다. 탕마신검이라 불리는 보검을 쥐고, 육십사괘(六十四卦) 중 가장 파멸적인 힘을 자랑한다는 뇌기(雷氣)를 흩뿌리는 자.
당금 무림맹의 작은 주인이며 차기 무림맹주의 위에 오를 강호의 기둥.
“사대는 좌우로 찢어져서 궁수 부대의 옆구리를 뚫어라!”
번쩍!
벼락과도 같은 움직임이었다.
신들린 듯 좌우로 물러난 사대가 일순 돌격진을 형성하더니, 엄청난 속도로 궁병 부대의 좌우로 달려들었다.
콰아앙!
삼천 기병의 대형이 무서운 속도로 어그러졌다.
옆에서 전우가 죽어도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는 자들이 은호마병이지만, 대형이 흔들리며 자세까지 뒤틀린다면 효과적인 공격을 할 수가 없었다.
피피피핑!
측방의 궁병들이 사대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티티팅!
놀랍게도 사대의 무림인들은 피에 젖은 옷에 내공을 불어 넣고 휘둘러 화살들을 쳐 냈다.
화살촉도 날카롭고 내공까지 담아서 쏴 댔으니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지만, 그래도 사망자는 별로 없었다. 가느다랗고 긴 화살의 중반부터 휩쓸어 속도와 관통력을 줄이고, 그렇게 위력이 감소한 화살을 손쉽게 부서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퍼버벅! 히히히힝!
노련한 사대의 무사들은 철저히 기마의 눈과 코를 노렸다.
몸뚱이가 바위보다 단단하다고 해도 생물인 이상 눈과 콧속의 점막까지 단단할 수는 없다.
무척이나 정교한 공격이 필요했지만, 얼굴로 공격이 들어오는 것만으로 충분한 위협이었다. 주인을 위해 목숨을 거는 기마들이라도 생물 본연의 자잘한 본능까지 다 없애진 못했다.
고개를 마구 흔드는 기마들은 통제가 되지 않았고, 그 틈을 노린 무사들이 기병을 공격했다.
조금씩, 조금씩.
압도적인 공격력을 자랑하는 적의 기병에 맞서, 무림맹 병사들과 섬서 무림인들 역시 전투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번쩍!
어지러워진 삼천 기병의 대형 속으로 파고든 모용우가 무정천뢰식을 구사했다.
파지지직!
섬뜩한 뇌기가 기병들의 창과 도로 단숨에 파고들어 기마들의 몸뚱이까지 뒤흔들었다.
굳이 위력적인 초식을 구사할 필요가 없다. 뇌정공으로 충분했다. 모용우 역시 심각한 내공 소모를 겪은 끝에 최소의 힘으로 적을 상대할 방법을 찾은 것이다.
히히히히힝!!
모용우와 한 번이라도 병기를 섞은 기병들의 기마는 거품을 물었다. 뇌기가 침투하며 각 부위의 신경을 마비시키거나 완전히 태워 버렸기 때문이다.
기병이 아닌 기마를 공격하는 것. 이곳에 모인 무림인 중 유일하게 모용우만이 가능한 전술이었다.
쩌어어어엉!
모용우의 몸이 비틀거렸다.
어느새 부대 안쪽으로 진입한 삼군(三軍)의 군장 무하숙이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기묘한 요술을 쓰는구나. 너부터 죽여야겠다.”
“불가능한 이유를 말해 주지.”
번쩍!
기습을 당해 손해를 입었지만, 벼락처럼 돌진하여 무하숙의 기마를 그대로 받아 버렸다.
콰앙!
기마의 앞발이 하늘로 솟구쳤다.
모용우의 몸이 회전했다.
서걱!
기참뢰의 무자비한 일검에 기마의 굵은 목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첫째, 날 잡기엔 네 실력이 부족하고.”
파아악!
죽은 기마를 박차고 날아오른 모용우가 상단으로 솟구치는 창을 쳐 내며 무하숙의 가슴을 밟았다.
“둘째, 우리와 우군이 죽음을 불사하고 막아 준 덕에 너희의 진형 역시 막장으로 변했다.”
푸화악!
무하숙의 목이 날아간 직후.
콰콰콰쾅!
사선진으로 조여 왔던 좌군이 다섯 줄기로 나뉘며 은호마병의 대형을 무자비하게 찢어 냈다.
선두에 선 순우가 사자후를 토했다.
“대형을 박살 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