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07)
1107화. 호아마병(虎牙馬兵) (7)
소현종의 마안(魔眼)이 사이한 광채를 발했다.
‘막혔나.’
놀라웠다.
은호마병의 돌파력은 사음교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 게다가 그 숫자만 일만이었다. 전면전으로 죽은 기마병이 많았지만, 아직 충분한 여력이 남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도 점차 막힌다. 이전과 같은 속도로 적을 헤집으며 돌파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기가 높군.’
소현종의 눈에는 보였다. 적의 좌우군에서 뿜어져 나오는 막강한 군기가.
그것은 흡사 산불과 같았다. 분명 처음에는 느낄 수 없었던 강렬한 사기는 은호마병의 사기(死氣)에 맞설 수 있을 만큼 단단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우리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마병들에 섞여 질주하던 소현종이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서 중원의 검제가 달려오고 있었다. 은호마병의 후미를 깨부수며 돌진하는데, 그 속도가 실로 대단했다.
‘역시 막을 수밖에 없겠지.’
성마지경에 오른 고수들은 하나같이 상단전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상단전은 인간의 몸으로 신의 권능을 훔쳐 쓸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인간 같지 않은 무력을 뽐내기 위해선,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힘을 빌려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상단전을 일시적으로 봉해 버린다는 건, 성마에 이른 힘을 제대로 구현할 수 없음을 뜻한다.
안타깝게도 검제에게는 그것이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 막강한 경파로 인해 마환분의 대부분이 타 버렸기 때문이다.
‘가려진 감각으로는 나를 찾을 수 없을 테니, 결국 놈이 할 수 있는 거라곤 후미를 박살 내는 것뿐이다.’
실제로 남궁승은 그러고 있었다.
말도 타지 않은 맨몸으로 검 한 자루만 든 채 후미의 기마병들을 무차별로 돌파하는 검제의 무공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기마 사이로 숨어 달리던 소현종이 장창을 등에 걸고는 옆 기마병의 활과 화살을 가져왔다.
피이이잉!
낮게 쏘아진 화살이 어느 순간 서서히 상승하더니 남궁승의 미간을 향해 날아갔다.
남궁승의 눈이 번쩍였다.
“갈(喝)!”
쩌어엉!
번개처럼 휘둘러진 일검에 화살이 튕겨 나갔다.
‘대단하군.’
소현종은 남궁승의 예민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얽히고설킨 곳에서, 상단전 이상을 겪고도 은밀하게 날아오는 화살을 쳐 냈다.
기감은 죽었지만 오감은 여전히 날카로운 것 같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이 쏜 화살을 튕겨 낼 정도라면, 어중간한 기습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소현종은 부하의 기마 위에 올라 전장을 둘러보았다.
‘우측 사선진이라? 머리를 썼군.’
파도처럼 밀려오는 적의 좌군에 의해 대형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대형이 흐트러지면 마병 특유의 돌진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은호마병은 각개 전투에도 능했지만, 이 전장에서 난전을 벌이며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소현종은 중군(中軍)에서 자신 대신 전군을 통솔하고 있는 마병장(魔兵將)에게 전음을 보냈다.
[좌측 화산파 놈들에게로 대각 돌격을 명해라. 그곳에 허점이 있다.]마병장, 갈요(鞨嶢)가 곧바로 외쳤다.
“일군부터 삼군은 일각진(一角陣)으로 좌측 대각을 공략하라.”
담담하게 느껴질 정도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의 마음(魔音)은 전군으로 퍼져 나갔다.
콰콰쾅! 퍼버벅!
갑작스러운 대형 변화에 기마병 이십여 기가 쓰러졌다.
하지만 이제까지와 같이, 마병 중 누구도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심지어 쓰러진 기마병들조차도 담담하게 죽음을 맞았다.
모용우의 눈이 번쩍였다.
‘이놈들!’
횡렬 일자진으로 파도처럼 쓸고 오던 놈들이 순식간에 송곳처럼 날카로운 진형으로 바꾸었다.
진형을 변화시키는 그 속도와 단호함은 가히 공포스럽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였다.
“우군을 뚫을 작정이다! 놈들의 중군을 갈라라!”
종남의 수뇌부들도 적의 의도를 눈치챘다.
“중군을 와해시켜라! 놈들의 발을 이곳에 묶어 둬야만 한다!”
퍼버버버버벅!
외측에서 쏘아 낸 화살이 종남이 이끄는 좌군 무림인들 삼백여 명을 휩쓸었다.
순우의 눈이 부릅떠졌다.
‘저놈들이!’
우군으로 돌격하기 위해 진형을 바꾼 것도 대단하지만, 그 순간 돌격진을 쫓아가던 외측의 기마병들은 기다렸다는 듯 좌군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세밀한 명령 따위는 필요가 없는 듯했다.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단순히 강하고 말고로 논할 것이 아니었다. 출중한 무공, 마물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기마, 가볍고 단단한 갑옷에 압도적인 전투 경험이 함께한다.
‘이런 괴물 같은 부대가 있었다니.’
사선진으로 대형을 짓눌러 가며 피해를 주었지만, 그마저도 이제는 한계였다.
퍼버벅! 푸화악!
중군 대형을 찢어 냈던 좌군 무사들이 하나둘 죽어 가고 있었다.
물론 적의 기마병들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와중에도 기어이 대형을 트는 데에 도움을 주고 있다. 기마에서 떨어진 기병은 반드시 좌군의 무림인들 두셋은 저승길 동행으로 삼았다.
‘안 된다! 절대 막아야 한다! 이놈들이 전부 우군을 뚫어 버리면 섬서는……!’
그때였다.
쩌어어엉!
순우가 이를 악물며 뒤로 물러났다.
그를 밀쳐 낸 자는 장대한 체구의 기병이었다. 일반 기병과는 투구부터 달랐다.
이군의 대장인 묘사하였다.
“이놈!”
“종남인가.”
그 한마디가 전부였다. 외측 기병들을 이끌며 화살을 날리고 온 묘사하는 단숨에 순우를 향해 기마를 몰았다.
쩌저저정!
창검이 연달아 부딪치며 화려한 울음을 토해 냈다.
묘사하의 눈이 깊어졌다.
‘강하다!’
기마의 무게를 그대로 실은 돌진으로 쳐 냈는데도 다섯 걸음을 물러난 걸로 끝이다.
정작 적을 공격한 묘사하는 손목이 삐걱거리는 것을 느꼈다. 적의 검에서 느껴지는 반탄력이 대단했던 것이다.
‘수장인가?!’
순우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어디 한번 받아 보거라!”
번쩍!
휘황찬란하게 뿜어져 나온 검기가 벼락이 되어 묘사하를 공격했다.
쩌어어엉!
무지막지한 공격력이었다. 그 일검에 묘사하가 탄 기마가 좌측으로 마구 밀려 나갔다.
‘이건?’
묘사하는 내심 경악했다.
‘종남의 무공이 이렇게나 강했던가.’
순우의 공격이 연달아 이어졌다.
번쩍! 번쩍!
파랗다 못해 어둡기까지 한 검기가 채찍처럼 휘어지며 좌우의 기병들을 베고 지나온다.
종남의 절기, 유운검(流雲劍)과 낙뢰구검(落雷九劍)이 한 호흡에 펼쳐졌다.
묘사하는 저 가느다란 검 한 자루에서 뿜어져 나온 공력이, 마치 거대한 언월도를 연상케 한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재미있군.’
피피피핑!
뒤에서 따라오던 기병들이 순우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순우는 거침없이 움직였다.
쩌저저저정!
태을무형검(太乙無形劍)의 신들린 검초가 그 많은 화살을 모조리 쳐 냈다. 마치 머리 옆에도 눈이 달린 것 같았다.
푸화아악! 퍼억!
종남 전쟁 때 부재했던 스스로에게 깊은 자책을 느꼈던 순우.
이번만큼은 당해 주지 않겠다는 듯, 이번만큼은 내 손으로 쓸어 버리겠다는 듯 맹렬하게 폭발하는 그의 기세는 가히 광기에 가까웠다.
콰콰쾅! 퍼어엉!
누구보다 더 앞으로 나서서 기병들을 뚫어 내는 순우의 무공은 그야말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묘사하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대단한 용력이다.”
“닥치거라!”
쩌저저정! 퍼어억!
묘사하의 허벅지에 깊은 검상이 새겨지고, 순우의 좌측 어깨에 화살 하나가 박혔다.
묘사하 역시 일가를 이룬 고수였지만, 순우에 비하면 약간의 모자람이 있었다. 그런 그를 도와 순우를 공격하는 기병들 덕에 아직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집단의 힘이었다.
아무리 저 혼자 날뛰어 봤자 전쟁은 집단과 집단의 싸움이다. 압도적인 전력 차가 있다면 모를까, 두 사람 정도의 차이라면 아군의 도움으로도 충분히 승부를 가를 수 있다.
“장문인!”
구윤의 외침에 순우의 눈이 번쩍였다.
“놈들이 우군의 중앙부를 뚫었습니다!”
깜짝 놀란 순우가 우측 후방을 바라보았다.
구윤의 말이 옳았다. 어느새 수천의 기병들이 우군의 중앙을 뚫고 들어가 후미에 접근하고 있었다.
“잘 놀았다, 종남의 강자.”
그 말 한마디를 남긴 묘사하가 기마병들과 함께 돌격진에 합류했다.
순우는 곧장 묘사하를 죽이려 했지만, 뒤따라 밀려오는 기마병들은 그것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
콰콰콰쾅! 푸화아악!
더 놀라운 것은 다섯 부대로 찢어져 적의 중앙부를 박살 내려던 좌군 부대의 상황이었다.
어느새 그들은 돌격진을 형성한 기마 부대에 휩쓸려 길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적을 와해시키려고 침투한 부대들이, 오히려 적의 일점 돌파로 인해 본진과 완전히 동떨어진 곳에 유리된 것이다.
당황한 다섯 부대는 우군으로 돌진하는 기마병들을 마구 공격했지만, 목숨에 연연하지 않는 듯 한 몸이 되어 돌진하는 그들에게 마구 죽어 나갔다.
“이럴 수가!”
구윤이 이를 갈았다.
“쫓아가야 합니다! 어떻게든!”
“좌군 우미는 우군과 합류해라! 방어를 두텁게 만들어야 한다!”
그때였다.
파바바바바박!
적장을 찾아 죽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일까?
후미를 박살 내며 돌파하던 남궁승이 어느새 기마병들의 어깨를 무차별로 밟아 부수며 우군 후미를 향해 달려 나갔다.
구윤이 저도 모르게 외쳤다.
“노선배님!”
남궁승의 입에서 무시무시한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우우우우!!
아군의 사기를 또 한 번 폭발시키는 중원제일검의 함성이었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전신 가득 하늘색 진기를 퍼트리며 질주하는 남궁승의 모습은 마치 하늘이 내린 신장(神將)과 같았다.
용선진인이 이를 악물며 외쳤다.
“검제 노선배님이다!”
“검제께서 적장을 죽이셨다!”
“우와아아아!”
전쟁에선 때론 거짓 선동도 필요한 법이다.
물론 화산의 수뇌부들은 남궁승의 귀환을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뭐가 되었든, 남궁승의 등장은 떨어졌던 섬서 무림의 사기를 다시 폭발적으로 상승시켰다.
푸화아악!
부대를 이끌고 좌우로 벼락처럼 오가며 돌격진의 속도를 늦추던 모용우는 단숨에 적의 기마를 밟고 날아올랐다.
피피피피핑!
기다렸다는 듯 날아오는 화살을 쳐 낸 모용우의 눈에, 저 멀리 후미가 보였다.
휘황찬란한 자색 검기를 피워 올리는 화산의 전대고수들.
‘검제 선배께서 정말 적장을 죽인 건가? 그렇다면 이 승부, 어떻게든 우리의 승리로…….’
그때였다.
한껏 예민해진 모용우의 기감은, 화산의 전대고수들을 향해 달려가는 한 명의 기병을 포착할 수 있었다.
투구도 없고 갑옷 여기저기가 부서져 떨어졌다. 하지만 팔 척에 이르는 장창을 들고 달리는 그의 모습은 난전 중인데도 한눈에 띌 만큼 대단했다.
‘적장?!’
다급한 순간, 모용우의 머리는 현재 이 사태를 단번에 해석했다.
그는 재빨리 남궁승을 돌아보았다.
어느새 남궁승은 돌격진 끝에 도달해 기마병들을 마구 박살 내고 있었다.
‘왜?!’
남궁승의 실력이라면 적장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모용우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남궁승에게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그리고 그의 이상을, 적장이 이용하고 있음을.
그 순간, 모용우는 판단을 내렸다.
“돌격진은 막지 못한다! 우군 후미로 빠져서 방진을 펼쳐 막아라!”
콰아앙!
모용우가 기마병 하나의 머리통을 박살 내며 날아갔다.
무언가에 홀린 듯 달려 나가는 모용우. 그가 향하는 곳에는 바로 적장 소현종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