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11)
1111화. 호아마병(虎牙馬兵) (11)
사아아악!
남궁승의 머리카락이 저절로 솟구쳤다.
바람 때문이 아니었다. 등 뒤에서부터 퍼져 나오는 알 수 없는 기운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다.
‘이건?!’
그 기운의 정체는 정확하게 알기 어려웠다. 그마저도 거리가 조금만 더 멀었다면 몸이 반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푸화아악!
일검에 다섯 기병의 목을 날려 버린 남궁승이 재빨리 물러나 뒤를 돌아보았다.
콰릉!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만 같았다.
네다섯 개의 섬광이 몰아치자, 그 섬광에 빨려 들어간 기마병 삼십여 기가 통째로 핏물이 되어 산화했다.
보고도 믿기 어려운 파괴적인 무공이었다. 남궁승의 눈이 부릅떠졌다.
파바바바바박!
신들렸다는 표현으로도 형용하기 어렵다.
적의 기마 못지않은 거대한 말을 탄 노장의 창술은 호쾌함과 잔혹함으로 가득했다.
쩌저저정! 퍼버벅! 퍼버버벅!
노장이 이끄는 오십의 기병 역시 대단한 실력자들이었다.
좌우로 산개하여 섬광처럼 빠른 창술을 구사하는데, 놀랍게도 그 창술이 마병들의 창술과 몹시 흡사했다.
‘같은 무공?!’
아니다.
상단전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는 와중이라도 알 수 있었다. 적들의 창술과 같은 뿌리를 둔 무공이며 투로나 형식이 거의 비슷했지만, 조금만 깊게 들여다보면 추구하는 바가 완전히 달랐다.
그러나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 해도 외형과 발경술이 워낙 흡사해서 마치 아군끼리 싸우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남궁승의 눈에도 그리 보일 지경인데 다른 사람 눈에는 어떻겠는가.
“뭐, 뭐야?!”
“누구지? 아군인가?!”
적아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제삼 세력의 등장이었다.
쩌어엉!
“크윽!”
경악의 연속이었다.
마병들을 상대로 무쌍의 저력을 보여 주던 노장은, 어느새 앞을 가로막게 된 섬서 무림 병력까지도 공격했다.
다행히 죽이자고 휘두른 창술은 아니었다. 귀찮다는 듯 횡으로 휘두른 창대에 수십 명의 무림인이 걸려서 우수수 쓰러졌다.
터어엉!
노장이 탄 기마가 허공을 날았다.
단숨에 무림맹 병력을 뛰어넘은 노장이 또 한 번 흑색의 장창을 휘둘렀다.
파바바바바박!
만발한 꽃들이 일제히 폭발하는 것만 같았다.
수십, 아니 수백 개의 창날이 팔방으로 격노했다. 그야말로 엄청난 범위를 아우르는 창술이었다. 그 무지막지한 창술에 우군을 뚫은 기마병들의 태반이 튕겨 나가거나 목숨을 잃었다.
노장이 외쳤다.
“좌우로 산개해 죽여라!”
두두두두!
휘하에 있는 오십 기마가 좌우로 찢어지며 마병들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기가 막히는 기마술이었다. 마병의 기마술도 천하일절이라 불릴 만했지만, 제삼 세력의 기마술은 그것과 또 달랐다.
파괴력은 덜하지만, 훨씬 더 유연하고 섬세한 기마술이었다. 인마일체의 무공, 기가 막힌 움직임으로 생로(生路)를 선점해 적에게 창격을 먹이는 오십 기마의 무공은 마치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것만 같았다.
히히히힝!!
수많은 적을 해치우고, 수많은 병력을 앞지르며 전장 한복판에 도달했다.
노장과 남궁승의 눈이 부딪쳤다.
남궁승이 물었다.
“귀하는?”
“소현립.”
순간 남궁승의 얼굴에 놀라움이 일었다.
“창왕 소현립!!”
깜짝 놀랐지만, 동시에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마술까지 입신의 경지에 든 것은 몰랐지만, 노장이 구사한 창술은 창왕이 아니면 보여 줄 수 없는 신묘함으로 가득했다.
“그러는 그대는 누구지? 검제인가?”
“그렇소.”
소현립이 인상을 찡그렸다. 뭔가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당신들을 도우러 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할 터이니, 알아서 싸우도록 해!”
콰릉!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극속의 창격을 발한다.
남궁승의 눈이 번쩍였다.
‘이것은?!’
적장, 소현종이 펼친 해무용섬이란 창술이었다.
소현립이 버럭 소리쳤다.
“이 쳐 죽일 놈들을 보았나! 네놈들이 감히 신성한 무종의 창을 들었단 말이냐!”
콰쾅! 콰앙!
휘두르고 또 휘두르는 흑요창.
적의 피를 머금은 흑요창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날카롭고 흉흉한 기세를 뽐냈다.
“소현종은 어디 있느냐! 당장 내 앞으로 나서라!”
쾅! 콰앙!
소현립이 움직이는 곳마다 화탄이 터지는 것만 같았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는 무림을 도우러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소현립은 무림이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사문의, 그리고 자신의 보물을 들고 나가 외적과 결탁하여 무종문의 명예에 먹칠을 한 배다른 동생을 죽이는 것이었다.
“소현종!!”
소현립이 흑요창을 던졌다.
번쩍! 콰르릉!
한 줄기 전광이 하늘 높이 솟구치다가, 이내 수십 개의 흑창으로 분화되어 폭우를 형성했다.
남궁승이 외쳤다.
“피해라!”
콰콰콰콰쾅!!
궁극의 이기어창, 어룡섬이었다.
파멸적인 위력을 자랑하는 절대의 초식이었다. 그 말도 안 되는 무공에 오십여 기의 은호마병이 쓸려 나갔다.
아무리 은호마병의 돌격진이 막강하다 한들, 코앞에서 이런 괴수가 난장을 치고 있으면 돌진 자체가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다.
‘대단한 무공!’
그럴 때가 아니지만, 남궁승은 소현립의 무공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일대일보다는 전장의 난전에 특화된 광범위한 무공이었다. 몸이 멀쩡하다면야 일대일 겨룸에서 질 것 같진 않지만, 대규모 전투에서 저보다 더 위력적인 무공을 구사하긴 힘들 것 같았다.
뭐가 어떻게 되었든 적을 파괴하는 또 다른 세력이 등장했으니, 무림 병력으로서도 힘이 날 수밖에 없었다.
“밀어붙여라!”
좌우군이 살기를 일으키며 은호마병을 공격했다.
그 틈을 탄 무림맹 병력은 또다시 산개하며 기마병들을 농락했다. 전황에 따라 알아서 진세를 바꾸는 그들의 능력은, 눈에 띄지는 않아도 찬사를 받아 마땅했다.
그때였다.
번쩍!!
하늘에서 한 줄기 번개가 내려친 것 같았다.
그 기세는 창왕 소현립에 비할 수 없으나, 뇌기가 지닌 원초적인 두려움은 모두에게로 전해졌다.
“하아아압!”
무시무시한 기합과 함께 적군 한복판으로 뛰어든 모용우가 닥치는 대로 탕마검을 휘둘렀다.
“소맹주!”
묵묵히 적을 상대했던 천효락과 화향의 얼굴이 화색이 되었다.
모용우가 외쳤다.
“적장이 죽었다! 우두머리를 잃었으니 조금만 더 버텨라!”
쩌어어어엉!
차기 무림맹주의 뇌성벽력과도 같은 목소리는 또 한 번 섬서 병력의 사기를 하늘까지 끌어올렸다.
“소맹주님이다!”
“소맹주님 옆으로 집결해라!”
산개하여 기마병들을 사냥하던 삼단사대의 무사들이 일자 돌격으로 은호마병의 대형을 뚫었다.
느닷없이 등장한 소현립과 휘하 기마가 아니었다면 그들로서도 이런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은호마병에 휩쓸려 전멸을 면치 못할 테니까.
과연 그들의 판단은 옳았다.
“호아마병(虎牙馬兵)은 들어라!”
소현립의 외침에 좌우로 나뉘어 은호마병을 밀어붙이던 오십 기의 기마병들이 안광을 빛냈다.
“혈아맹격(血牙猛擊)의 대형으로 일거에 밀어붙여라! 적장부터 찾을 필요 없다! 눈앞에 보이는 족족 다 죽여 버려라!”
“존명!”
두두두두두!
오십 기의 기마들이 신들린 듯 발을 구르며 뾰족한 삼각진 두 개를 만들었다. 가운데로 살짝 휘어진 두 개의 삼각진은 마치 안으로 굽은 송곳니와 같았다.
퍼어엉!
용광섬으로 전방의 기마병 다섯 기를 날려 버린 자세 그대로, 소현립이 외쳤다.
“출진!”
콰아앙!
엄청난 돌격력이었다.
기마의 파괴력은 은호마병보다 뒤졌지만, 그것을 진법과 기세로 극복했다. 좌우 고작 이십오 기에 불과한 전력이지만, 하나가 되어 적들을 몰아붙이는 그들의 공격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캬아앗!”
갈요의 입에서 기어이 살벌한 일갈이 터졌다.
“저자는 도대체?!”
파죽지세로 밀어붙이던 은호마병의 돌격진이 그대로 멈춰 버렸다.
고작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대단한 절대고수와 그가 부리는 오십 기마병의 합공은 은호마병의 첨병을 모조리 박살 내는 것도 모자라 도리어 이쪽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기가 막힌 일이었다. 수천 기마병의 돌격을 고작 오십 기의 기마가 막았다.
그중 천외천의 고수가 끼어 있고 무림맹 병력의 사기도 올랐다지만 이게 말이 되는가?
‘피해가 막심하다. 어지간한 피해는 무시하고 들어갈 생각이었건만.’
갈요는 출진 전, 대장의 말을 떠올렸다.
‘아군 병력이 절반 이하로 줄지 않는 한, 무조건 돌격하여 섬서를 초토화시킨다.’
그 말인즉슨, 아군의 희생자가 절반에 달할 기미가 보이면 미련 없이 후퇴하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었다.
갈요는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았다.
‘육천…….’
정확한 집계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얼핏 봐도 육천이 조금 넘는 것 같았다.
다른 병력도 아니고 기마병이다. 일만 기마병 중 무려 사천에 가까운 병력을 잃었다.
아무리 섬서 초토화 작전이 중요하다지만, 이건 피해가 커도 너무 컸다. 대장의 전언 역시 ‘만에 하나’를 염두에 둔 것일 뿐, 설마하니 이 평야에서 이 정도의 피해가 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갈요는 이를 갈았다.
‘저자만 아니었다면.’
그가 보는 곳에는 한 자루 흑색 장창을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전신(戰神)이 있었다.
사방으로 뻗친 회백색 머리카락은 사자의 갈기 같았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굴강한 근육과 매서운 눈빛은 하늘이 내린 용장을 연상케 했다.
‘잡을 수 있을까.’
갈요는 잠시 갈등했다.
아무리 성마에 이른 고수라도 저 정도 힘을 무한히 발휘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것은 같은 경지의 고수를 수없이 많이 봐 왔기에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절대고수가 저자 하나뿐이 아니라는 것이다.
번쩍!
푸른 검광을 일으키는 노검사 역시 장창의 노무사만큼은 아니어도 무시무시한 전과를 쌓아 올리고 있었다.
거기에 적의 병력은 아직 삼천 정도 남았다.
절대고수 둘을 제외하더라도, 저 삼천 병력을 다 뚫어 내려면 이쪽도 일천의 손해는 날 것 같았다.
결국, 갈요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전군 북상! 중군은 궁사로 적병을 떨쳐 내라!”
피피피피피핑!
기다렸다는 듯 쏘아지는 화살이 단숨에 소현립과 호아마병, 그리고 섬서 무림 병력을 향해 날아갔다.
소현립의 눈이 불을 뿜었다.
“어딜 도망가려고, 이놈들!”
쩌저저저저정!
허공을 지우는 창술이 전면을 가득 채운 화살들을 모조리 휩쓸었다.
하지만 화살은 한 발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도열을 정비하여 후퇴하는 은호마병은, 몸을 돌린 채로도 마구 화살을 날려 댔다.
남궁승이 외쳤다.
“창왕! 더는 쫓지 마시오! 그러다가……!”
“호아마병은 추격진으로!”
말을 듣지 않는다. 애초에 무림을 도우러 온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일로 찾아온 그였다.
쿠르르르릉!
자욱한 흙먼지가 하늘을 뒤덮었다.
미친 듯이 돌격할 때는 언제고, 빠져나갈 때는 또 바람같이 움직인다.
그 빠른 후퇴에 오히려 어안이 벙벙해진 것은 무림 병력 측이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멀어지는 적병과 제삼 세력을 보며 뭐라 말하기 힘든 기분을 느꼈다.
“무상 어른!”
재빨리 달려온 모용우가 남궁승에게 다가왔다.
“소맹주! 무사한가?”
“예.”
남궁승을 안심시킨 모용우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사대는 전열 정비, 삼단은 나를 따라 적을 쫓는다!”
남궁승은 당황했다.
“추격전을 벌일 생각인가?!”
“저희에게는 그럴 힘이 없습니다. 다만, 놈들이 어디까지 후퇴하는지는 보고 와야 할 것 같습니다.”
모용우가 탕마신검을 하늘 높이 겨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