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13)
1113화. 불의 마왕(魔王) (2)
반나절 후.
“아버지.”
“왔느냐.”
연위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북부 산맥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호정은 연위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연위의 얼굴은 마치 어느 장인이 조각한 조각품을 보는 듯했다.
미동도 없는 눈, 그리고 호흡. 바람에 휘날리는 수염과 머리카락만 아니라면 마귀의 침입을 막는 신장상(神將像)이라 해도 믿을 것이다.
“뭔가 이상한 점은 없습니까?”
“그래, 아직까지는.”
“무림맹 병력은 당장이라도 전투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연위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안다. 등 뒤에서부터 느껴지는 고요한 군기가 참으로 믿음직스럽구나.”
파견된 이천 병력은 중원 전역의 문파에서 차출된 이들이었다.
바로 이런 부분에서 모용우의 대처가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목이 높아. 선택도 좋고.’
섬서로 향한 무림맹 병력은 전부 맹 소속의 전투 부대들이었다.
반대로 황궁으로 온 병력은 각 문파에서 차출된 무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두 집단 사이의 전투력만 보면 섬서로 간 이천 병력이 다소 우위에 있을 것이다. 게다가 실전 경험도 풍부하니, 기병과 싸우는 데에 있어서도 능수능란할 것이다.
그렇다고 황궁으로 보낸 이천 병력은 죄다 물거품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들 중에 대문파 소속 무사는 많지 않지만, 대다수가 문파의 명예를 휘날리기 위해 자원입대를 한 이들이었다.
그러던 중 전쟁 발발의 위기가 있다는 소식이 들렸고, 이후 하나가 되기 위해 숱한 훈련과 몇 번의 실전을 거쳤다. 한창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부대란 말이다.
문제는 그들의 출신이었다.
만약 이들이 섬서로 향했다면, 기마전 경험이 풍부한 삼단사대만큼 잘 대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하나가 된 병력 중에는 섬서 출신도 있기 때문에 괜한 사감으로 지나치게 흥분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황궁으로 왔고, 황궁은 황제가 거하는 곳이었다.
심지어 중원 최강이라는 성천도 많다. 즉, 신분이 높은 사람도 많고 최강의 칭호에 가까운 자들 역시 많아 평소보다 훨씬 더 군기가 잘 잡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군기 못지않게 불타오르는 사기는 덤이다.
중원 무림을 위한 사명감. 거기에 무림 최고수들이 장수로 있는 곳.
잘만 다룬다면 평소보다 훨씬 더 좋은 전투력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전장을 어디로 특정하느냐인데.’
연호정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어두워지진 않았지만, 곧 밤이 찾아올 것이다.
“아버지.”
“그래.”
“반 시진 후,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면 별동대를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내내 산맥에 시선을 고정했던 연위가 드디어 연호정을 바라보았다.
반대로 연호정은 하늘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도사가 천문을 읽는 것처럼 보였다.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함이냐?”
“그렇습니다. 현재 황궁에서 보낸 첩보대 중 팔 할 이상이 돌아왔습니다. 황궁과의 거리가 가까운 만큼 최소 인원만 남기고 돌아오는 것이 옳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다. 말하자면 이미 산맥 주변에는 우리의 첩보 부대가 존재한다는 건데 굳이 별동대를 운용할 필요가 있겠느냐?”
“별동대 겸 특수 부대로 강자만을 골라서 보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너는 황궁을 대표하는 대군사(大軍師)다. 네가 그러라고 한다면야 당연히 그 명령을 따라야겠지.”
연호정은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임시직이긴 하지만 아버지에게 명령을 따른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다만 이 부족한 애비에게 이유는 알려 주지 않겠느냐?”
“설마하니 이번 전쟁을 담당할 장수에게 이유도 알려 주지 않고 명령만 내리겠습니까.”
하늘에서 시선을 내린 연호정의 눈이 산맥을 향했다.
“저는 저놈들이 백 리 밖이 아니라 삼십 리 안쪽까지 들어온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순순한 인정이었다. 연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적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하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놈들이 바보가 아니라는 것.”
“정확하십니다.”
연호정이 미소를 지었다. 혈육이 아닌 한 명의 무림인으로서, 아버지는 진정 대화할 맛이 나는 상대였다.
“심지어 이건 전쟁입니다. 과정은 아무 의미가 없지요. 이기는 것만이 진리입니다.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이기기 위해 양측 모두 최선을 다할 테니, 지금과 같은 경우 적이 멍청하다기보다는 저러한 행동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처음으로 돌아가 볼까요?”
연호정이 허공에 작은 원 두 개를 그렸다.
“여기 위쪽의 원이 산맥 너머의 기습 부대이고, 오른쪽의 원이 기존에 요녕으로 보냈던 오천 병력입니다.”
“그래.”
“북부 기습 부대는 제 예상대로 존재했습니다. 놈들의 생각은 분명합니다. 황궁에 모인 병력이 동쪽의 오천 병력을 상대하러 가면 그 틈을 타 황궁을 기습한다. 놈들의 첫 작전은 그랬을 겁니다.”
연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건…….”
“예. 저는 ‘첫’ 작전이라고 했습니다. 적어도 그런 식으로 전술 입안이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르지요. 당시 제가 본 오천 병력은 상당한 이들이었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넘어온다면, 빠르면 닷새에서 늦어도 여드레 안에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
요녕의 땅이 얼마나 험하고 넓은지를 생각하면 여드레도 엄청난 속도였다.
하지만 그들은 무림인이었다. 보급도 일반 보병보다 확연히 적게 필요하며, 특히나 신법의 속도가 군마에 비견될 만하다.
인간은 강력한 발톱과 어금니, 추위를 막아 줄 털을 잃어버린 대신 엄청난 지구력을 얻은 생물이다. 속도가 비슷하다면, 먼 거리를 주파하는 능력은 군마보다도 뛰어날 수밖에 없다.
“황궁 병력이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빠져나간다 한들, 총병력을 보낼 리가 없습니다. 그건 우리도 알고 놈들도 알고 있지요. 거기서 생각이 바뀌었을 겁니다.”
“기다리는 것.”
“그렇습니다. 동쪽에 주둔한 오천 병력이 황궁의 병력을 깨부수고 접근하면, 그때 함께 치고 들어와 황궁을 점거하는 것이 놈들의 생각이었겠지요.”
“그래, 우리 모두 그렇게 알고 있다.”
“이것이 놈들의 기본적인 전술이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동쪽 병력이 몰살을 당한다면, 놈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너는 동쪽 오천 병력이 전투를 끝내고 빠르면 닷새, 늦어도 여드레 안에 하북으로 진입할 거라고 보았다.”
“그랬습니다.”
“하지만 전투라는 것은 그렇게 딱 맞아떨어지기가 쉽지 않아. 만약 우리가 치고 빠지는 전술로 적을 오랫동안 묶어 둔다면 여드레는 열흘이 될 수도, 스무날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그렇습니다. 적들도 그걸 모르지 않을 겁니다. 만에 하나 적과 조우할 경우, 적의 전술이 아무리 기기묘묘하다 해도 어떻게든 시일을 맞추기 위해 뚫고 오라는 식의 명령은 아무 의미가 없지요.”
“즉, 북부 기습 부대는 동쪽의 오천 병력이 몰살당할 것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 그렇기 때문에 북부 기습 부대의 전력은 한 번의 전투로 황궁을 점거할 수 있을 만큼의 병력이어야 옳습니다.”
연위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신화교는 광혈과 사음에 통보하지 않고 병력을 보냈다. 그래서 더더욱 기습까지 감행하려 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라지.”
“멋진 판단이십니다. 신화교는 이번 기습 공격으로 황궁을 점거하는 것에서 끝을 보려는 게 아니라, 초전으로 최소 하북, 크게 보면 산동과 산서까지 집어삼킬 각오로 병력을 보냈을 가능성이 큽니다.”
“즉, 놈들의 병력이 사음에서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섬서의 기병보다 많을 수 있다는 것이로구나.”
일만 기병보다 더 많은 병력.
단순히 숫자가 아니라 기병의 파괴력까지 염두에 둔다면, 적게는 이만에서 많으면 오만에 이르는 대병력을 파견했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오만까지 도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정도 병력이라면 사실상 동쪽의 오천 병력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적의 규모를 생각하면 이만에서 삼만 정도로 추정됩니다.”
“그거야 직접 보지 않는 이상 모르는 일이지만, 산맥 너머에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군기는 확실히 적의 수가 많다는 것을 증명한다.”
연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정도 병력이라면…….”
뭐가 되었든 황궁과 일전을 벌일 전력으로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아까 말했듯 놈들 역시 바보가 아니지요.”
연호정의 눈이 반짝였다.
“대규모 전투는 단순히 이기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이기고 난 후, 그 전투를 온전히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말에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적어도 병력이 어느 정도 남아야 황궁을 점거할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물론 그렇겠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저 산맥 바로 뒤쪽까지의 거리가 놈들이 생각하는 전선의 끝이라는 겁니다.”
“전선의 끝?”
“오십 리 거리였다면 우리도 놈들의 실체를 알기 어려웠을 겁니다. 사십 리였다면? 여전히 긴가민가하지요. 하지만 삼십 리 안쪽까지 들어왔다면, 그 압도적인 군세를 무극수가 느끼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
“놈들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이 삼십 리라는 거리는 적이 생각하는 심리적인 전선의 끝이요, 시작점입니다. 당장 돌격을 명령해도 크게 지치지 않는 선에서 최상의 공격력을 유지할 수 있는 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연위는 아들의 통찰력에 감탄했다.
하지만 감탄은 감탄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그렇다 해도 놈들이 우리에게 준비할 시간을 줬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
“그래서 별동대를 보내려는 것입니다. 저놈들이 사신(使臣)이라고 살려서 보낼 만큼 인자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연위의 얼굴이 가볍게 굳어졌다.
“즉…… 그 별동대로 먼저 적을 건드려 보겠다는 것이냐?”
단순 정찰이 아니라, 최악의 경우 전투를 치르고 돌아오게 한다는 뜻이었다.
“그렇습니다.”
“적측에도 무극수가 존재할 것이다. 이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별동대에도 무극수를 딸려 보내야 합니다.”
“내가 갈까?”
농담이 아니었다. 연위는 이번 별동대의 대장으로 자신만 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연호정이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는 아군 병력의 장군입니다. 만에 하나 별동대가 휩쓸리고 적이 공격을 명령하면, 지휘 체계가 엉망이 될 수 있습니다.”
“하면 누굴 보내겠다는 것이냐?”
연호정이 눈을 감았다.
그 역시 고민이 많았지만,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린 상황이었다.
“별동대는, 첩보는 물론 필요하다면 전투까지 치를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소규모 부대이기 때문에 전면전은 벌일 수 없으니, 만약 싸움이 벌어지면 적의 혼란을 유도할 만한 인물이어야 합니다.”
“적의 혼란을 유도하려면 역시나 무극수 정도가 되어야…….”
“무극수 중에서도 더더욱 적을 교란할 수 있는 사람을 보내야겠지요.”
“그렇다면?”
연위는 깜짝 놀랐다.
연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기천웅 교주를 보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