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25)
1125화. 서전(緖戰), 그리고 서전(西戰) (5)
쩌어어어어엉!
맹곽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런 개새끼들!’
그의 대도(大刀)가 좌우로 거대한 바람을 일으켰다.
푸화아악!
두껍기만 한 대도 어디에 그런 날카로움이 있는지, 뿜어진 도풍(刀風)에 청화령의 교도 셋의 몸이 토막 났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뒤이어 몰아치는 적의 숫자가 지나치게 많았다.
“이 새끼들아!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설치고 다녀!!”
노호성을 지르며 칼춤을 추는 맹곽의 무공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는 과거 복건성의 작은 문파였던 일도회(一刀會) 소속이었으나, 바뀐 회주가 흑도 무뢰배처럼 지역 민간인들을 가지고 노는 것에 분노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가 쫓겨난 사내였다.
죽기 직전까지 간 그는, 산중기인의 손에 구해져 십 년 동안 무공을 배우고 재출도해 복건을 악의 구렁텅이로 만들어 버린 일도회주를 참살하고 일도회 자체를 세상에서 지워 버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무공은 포악하고 사납기 그지없었다.
이후, 멸사군이 중원의 사악한 흑도 문파들을 박살 내고 다닌다는 걸 듣고 제 발로 찾아가 입대를 표했지만, 안타깝게도 당장의 입대는 불가능했다.
천만다행으로 당시 멸사군장이었던 벽산호장은 그의 기개가 마음에 든다며 사흘 동안의 대련으로 무공의 난삽한 구석을 고쳐 주었고, 그 후 팽가주의 적자와 수련하며 도법의 경지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지금.
무림맹원이 된 지 이 년이 채 되지 않아 참월도라는 명성을 얻고 그 별호를 따서 만든 참월대(斬月隊)의 수장이 된 그는 승승장구하다가 이곳까지 왔다.
사나운 무공은 잘 다듬어져 깔끔해졌고 위력은 더더욱 올라갔다.
하지만 적을 대하는 그의 성질머리는 전혀 죽지 않았다. 오히려 복건 하나가 아닌 대륙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 놈이라는 생각이 들자, 눈앞이 아찔할 만큼 거대한 분노가 전신을 덮쳤다.
“개새끼들아!!”
서걱! 퍼어억!
오른쪽 놈은 목을 날려 버리고, 왼쪽 놈은 고간을 후려쳐 부숴 버렸다.
맹곽이 회전하며 대도를 휘둘렀다.
퍼버버벅!
확실히 그의 무공은 대단했다. 회전하며 뻗어 내는 참선도법(斬仙刀法)은 경풍 내에 걸리는 존재라면 누구라도 베어 낼 만큼 강력했다.
하지만 적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하늘을 불태울 것 같은 분노로도, 천지를 요동케 하는 용맹으로도 이 압도적인 숫자를 막아 내기가 힘들었다.
“받아 내라! 우익진 후방은 힘을 빼! 좌익진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올라와라!”
무자비하게 적을 도살하면서도 맹곽은 전투 양상을 면밀히 볼 수 있었다.
그는 단순히 무공과 불같은 의협심만으로 그 자리에 오른 게 아니었다.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 맹곽의 두뇌는 누구 못지않게 뛰어났다.
사람을 제대로 부릴 줄 아는 건 물론, 전략 전술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었다. 특히 부대 진법 운용에 있어서는 무림맹 대주 중 최상위권에 속한 사람이었다.
적과 용맹하게 싸우면서도 전국을 보며 제때 포수진을 조정하는 그의 능력은 일문의 수장 못지않게 대단했다.
파바바바박!
찰극평이라는 재앙 때문에 초토화가 되었던 황궁 수비대 후미도 어느 정도 수습이 된 모양이었다.
궁병들이 청홍의 두 부대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바로 앞에서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탓에, 그들의 사격 지점은 청화령과 홍화령의 중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맹곽이 이를 악물며 외쳤다.
“홍 장군! 쌍각은 놔두시오!”
홍운은 그 말을 단번에 알아들었다.
훅!
짧고도 화려한 싸움을 하던 무림맹 병력과 청홍의 화령들.
하지만 진짜는 중앙에 있다. 멀찍이서 달려오다가 비로소 코앞까지 접근한 백화령의 군기는, 오히려 청홍의 팔천 병력보다도 대단해 보였다.
맹곽이 외쳤다.
“물러나라!”
훅!
청화령과 홍화령의 교도들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부드럽게 공격을 받아 내던 적 부대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몸놀림으로 물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싸우는 도중 물러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실전 경험이 있는 자라면 모두가 안다.
설령 그게 가능해도 물러난다는 선택지는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공세를 이어 가는 적의 칼에 걸려 허무하게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림맹 병력은 달랐다.
적의 공격을 받아 내면서도 충격은 여럿이 힘을 보태 분산하고, 물러나라는 말에는 보는 사람이 당황할 정도로 빠르고 자연스럽게 후퇴한다.
전체적인 진형만 보면 딱히 대단한 건 아닌 듯한데, 그 진을 이루는 무사들의 움직임이 굉장히 유연했다. 마치 진법 자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청홍의 화령들이 잠깐 당황하는 사이.
쩌어어엉!
무식하기 짝이 없는 일권(一拳)에 맹곽은 이를 악물며 뒤로 밀려 나갔다.
물러난 게 아니라 밀려 나간 것이다. 적의 무공이 그를 상회한다는 뜻이었다.
“이 빌어먹을 놈 같으니라고!”
백화령주 곤향의 사나운 성격은 맹곽 못지않았다.
“뭣들 하고 있는 것이냐! 이런 맹물 같은 놈들 하나 휩쓸지 못해서 어물거리고 있어?!”
곤향의 목소리는 맹곽의 그것보다 배는 더 컸다.
그 무시무시한 위엄에 청홍의 교도들이 더욱 거센 살기를 뿜어내고, 백화령 역시 엄청난 화기를 피워 올리며 전진했다.
‘젠장할!’
어떻게든 막아 내긴 했지만, 적 부대 수장의 일권에 속이 다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정면 대결은 절대 금물이었다. 단둘이서 생사결을 벌이면 오십 합, 어쩌면 그조차 버티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다.
그때, 곤향이 맹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맹곽은 머리카락이 쭈뼛하는 것을 느꼈다. 곤향의 장심(掌心)에서 한 줄기 금빛 화기가 번뜩이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피할 수는 없군. 받아 내야 한다.’
피하면 뒤의 황궁 수비대가 저 장력을 받아 낼 것이다. 최소 둘 이상은 죽을 수 있다.
그렇게 맹곽이 각오를 다질 때.
피이이이잉!
팽팽한 시위를 놓는 소리가 모두를 소름 돋게 만들었다.
곤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쾅!
장심에서 나온 장력이 코앞에서 폭발했다.
“크아악!”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른 곤향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의 오른손 장심에는 평범한 화살 한 대가 박혀 있었다.
놀랍게도 그 화살 한 대가 곤향의 장력을 분쇄함과 동시에 손바닥까지 뚫어 버린 것이다.
‘……!!’
맹곽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평범한 화살이지만, 빛살이 되어 날아와 곤향의 장력을 분쇄한 저 위력은 분명 두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있는 궁술이었다.
‘설마!’
그래서는 안 될 순간이었지만, 맹곽은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엄청나게 먼 거리였다. 족히 삼백 장은 될 것 같았다.
삼백 장 거리에서 전투가 어떻게 벌어지는지, 맹곽의 상황이 어떤지, 적이 어떤 무공을 구사하고 있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 거리에서 화살을 날려, 단숨에 적의 장력을 분쇄할 만큼 놀라운 궁술을 지닌 초고수.
“묵 부장님?!”
“고개 돌리지 마! 앞을 봐라!”
용비순행을 펼치며 다가오면서도 땅을 박차 날아올라 홍련궁의 시위를 당긴다.
피피피핑!!
신들린 궁사였다. 순식간에 네 발의 화살이 곤향을 향해 날아갔다.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한 발로는 곤향 정도의 고수를 죽일 수가 없었다.
순차적으로 날아간 네 발의 화살은, 말 그대로 순서만 지켰을 뿐 그 속도는 질풍보다도 더 빨랐다.
“이익!”
어느새 손에 박힌 화살을 부러트려 빼낸 곤향이 좌장으로 열화신장을 펼쳤다.
화르르륵!
두 눈을 멀게 할 것 같은 금빛 화염이 솟구쳤다.
좌측에서 우측으로, 잠시나마 화염의 방벽을 만든다. 놀랍도록 뛰어난 진기 운용, 무종지벽을 돌파한 고수만이 보여 줄 수 있는 기공술이었다.
퍼퍼퍼펑!
먼 거리에서 날아온 네 발의 화살은 금빛 화염벽을 뚫다가 부서졌다.
훅!
금화벽이 사라지자마자 맹곽의 일도가 곤향의 쇄골을 노렸다.
맹곽의 공격은, 넘치는 살기로 인해 칼이 휘둘러지기도 전에 알 수 있었다.
곤향은 곧장 좌측으로 몸을 틀면서 전진했다. 맹곽의 공격을 피해 냄과 동시에 반격을 가할 생각인 것이다.
하지만.
피이이이잉!
재차 들리는 홍련궁의 시위 소리는 유독 크고 청아했다.
곤향이 이를 악물며 화살에 뚫린 오른손을 휘둘렀다. 주먹을 쥐고 염왕팔권을 휘두르는데, 그 기세가 열화신장보다도 더 대단했다.
펑!
곤향의 몸이 움찔했다.
동시에 묵비의 오른손이 엄청난 속도로 시위를 튕겼다.
펑! 퍼퍼펑! 퍼펑!
“크아아악!”
오른 주먹, 같은 부위에 무형탄 여섯 발이 적중했다.
중원 전역에서 오직 묵비만이 가능할 게 분명한 초고속 연사였다. 수준 차이가 상당하다 한들 상대 역시 무종을 넘은 고수인데, 고통으로 팔을 빼기도 전에 여섯 발을 적중시키는 궁술은 묵비가 아니면 누구도 구사할 수 없을 것이다.
완전히 어육이 되어 버린 오른손. 곤향은 이를 악물며 뒤로 물러났다. 저 귀신 같은 궁사에게 걸려서 죽으면 아군의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는 물러나선 안 되었다.
물론, 물러나지 않더라도 딱히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훅!
황궁군의 중앙, 수비대 앞에 앉아 시위를 당기는 묵비의 손에는 무지막지한 공력이 집중되어 있었다.
심지어 화살도 일반 화살이 아닌 철전이었다. 그 철전을 에워싼 홍천기(洪天氣)는 엄청난 밀도로 쌓여 있었으며, 덕분에 홍련궁의 시위는 연신 비명을 질러 댔다.
곤향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피해라!!”
퍼어어엉!
회전하는 철전과 함께 돌풍을 일으키는 용아포(龍牙砲)가 점점 거대한 회오리를 형성하며 백화령 첨단부를 집어삼켰다.
콰르르릉!!
* * *
‘놀랍구나!’
쩌저저저정!
한 자루 장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기는 지독하게 정직하고, 적당히 빨랐으며,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건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검이 그리는 투로는 답답하리만치 정석적이었으며, 맥을 끊고 반격을 가할 때도 격식과 법도가 있어 싸움에 능한 자라면 언제든 틈을 노리고 반격할 수 있을 듯싶었다.
처음에는 찰극평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몇 수의 교환, 몇 번의 회피 이후 그는 연위가 그려 낸 서른여섯 개의 철창 안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단 말인가?!’
검법은 여전히 정직했다.
한데 그 정직한 일검을 막기가 쉽지 않았다. 피하는 건 가능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방어 불능, 반격 불능이다. 빈틈이 분명 보이는데도, 그곳을 노리면 치명적인 살수가 튀어나올 것 같은 위기감에 섣불리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찰극평은 혀를 내둘렀다.
‘그야말로 경지에 이른 검도다. 수준이 달라. 검 한 자루로 완성할 수 있는 궁극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은 자다.’
광검(光劍)의 기공술에 감탄과 호승심, 그리고 위기감을 느껴서 다가왔다. 그 위대해 보이기까지 한 검법을 직접 겪어 보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하지만 정작 전투가 벌어지자, 상대는 철저히 검식으로만 상대했다.
처음엔 내공을 아끼려고 일부러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적장의 검법은 그 오묘함이 하늘에 닿아서, 내공 없이도 천하일절의 위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찰극평이 염왕팔권을 펼쳤다.
콰쾅!
연위가 그냥 고수가 아니라면, 찰극평도 달리 일왕이 아니었다.
검의 감옥에 갇혀 회피만 반복하던 그가 대지에 권풍을 쏘아 내 폭발시켜 거리를 벌렸다. 감옥에서 벗어난 것이다.
무뚝뚝한 찰극평의 얼굴에 한 줄기 미소가 맺혔다.
“오늘 정말 큰 선물을 받고 가겠구나.”
연위가 검을 고쳐 쥐었다.
“그 선물, 잔뜩 줄 테니 하나도 빼놓지 말고 삼도천 뱃삯으로 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