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27)
1127화. 삼마대혈전(三魔大血戰) (2)
쿠르르릉.
혼신의 힘을 다한 용아포 일격은 기울어지는 전세를 단숨에 뒤바꾸는 힘을 지녔다.
철전에 담아 내친 일격에 전진하는 백화령의 선두가 초토화되었다. 강렬한 열양공으로 그 힘을 버틴 이도 있었지만, 직격을 당한 이 중엔 멀쩡히 서 있는 자가 없었다.
그 초월적인 무공에 일순간 싸움이 멈췄을 정도였다.
묵비가 빠르게 철전을 손에 걸었다.
“맹곽!”
그 일갈에 정신을 차린 맹곽이 외쳤다.
“전진하라! 감싸면서 밀어 내!”
좌우 포수진 병력이 청홍의 교도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수적으로 우위에 있다 해도, 상대가 선공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하면 당분간은 밀려나야만 했다. 압도적인 무공 격차가 있지 않고서는 집단의 힘을 무시할 수가 없다.
적의 공격을 받아 내며 물러나던 병력이, 이제는 적을 밀어 내기 시작한다.
여전히 전력 차는 심했지만 한순간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 잠깐의 분위기 변화는, 순간적으로 전력을 두 배 가까이 끌어올리는 기적을 발휘했다.
당연히 그런 기적은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잠깐’이나마 적을 당황하게 한다는 것이고, 그 잠깐 새에 수백 명이 죽을 수 있는 상황을 무(無)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묵비에게는 그것만이 중요했다.
그리고 그 잠깐의 기적을 좀 더 길게 이어 갈 수 있도록, 그녀는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낼 생각이었다.
파바박!
밀어붙이는 무림맹 병력과 함께 전진하며 또 한 번 시위를 당기는 묵비.
퍼버버버벅!
초고속 연사의 위력은 여전했다.
그녀의 철전은 철저하게 조장급 이상의 고수들만 노렸다. 위기의 순간 묵비의 기감은 더할 나위 없이 예민해졌고, 그 예민한 기감은 적 하나하나의 무공 수위를 벼락처럼 빠른 속도로 읽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갈던 곤향이 버럭 외쳤다.
“거리를 벌려라! 강력한 궁수가 있다! 기공술로 밀어붙여라!”
백화령 전체가 뒤로 물러나며 교차하듯 서서 쌍장을 내밀었다.
정작 그 명령을 내린 곤향은 어처구니가 없는 것을 느꼈다.
‘이게 말이 되는가?!’
상대가 천화경에 달한 고수라면 이해할 수 있다.
한데 아무리 봐도 천화경에 달한 고수는 아니다. 진짜 천화경이었다면 첫 화살 일격에 머리통이 날아갔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 명의 고수 때문에 백화령 전체가 전진을 멈춘 것이다.
물론 좌우 청화령과 홍화령의 일각진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것도 없는 평야라면 진즉 진형을 벌려 에워싸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고작 궁수 하나 때문에 돌진을 멈췄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기가 막히다 못해 눈앞이 노래질 만한 순간이었다.
화아아악!
백화령들의 쌍장에 모인 금빛 진기는 점차 하나가 되어 거대한 열기를 발산했다.
묵비의 이마에 식은땀이 어렸다.
순간적으로 뿜어져 나온 열기에 온몸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고통보다 그녀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내공이었다.
‘빌어먹을.’
단전이 찢어질 것 같았다.
요녕의 전투가 끝나자마자 황궁까지 날아왔다. 그 후 두 시진도 채 안 되는 운기만 하고 곧장 전투에 뛰어들었다.
축기가 다 끝나지도 않았고, 체력 역시 멀쩡하지 않았다. 조금 전,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한 용아포를 날린 것 역시 극한의 정신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집중하자. 집중해야 해.’
궁사에게 집중력은 기본이었다.
‘저 기공이 들이닥치면 여럿이 피를 볼 거다. 좌우 아군의 피해까지 염두에 두고 내치는 기공술이야. 나 한 사람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어.’
답은 나왔다.
‘오기 전에 박살 낸다.’
훅!
홍천기가 또 한 번 파랑을 일으키며 그녀의 양손에 모여들었다.
단전이 아니라 온몸이 찢어질 것 같았다. 전신의 혈도 곳곳에서 지독한 고통이 올라왔다. 무리한 내공 운용 때문이었다.
묵비는 그 고통을 철저하게 무시하며, 무형탄만으로 이루어진 수백 개의 바늘 같은 화살을 일시에 날렸다.
타아아앙!
쏘는 순간 그물처럼 확 퍼지는 무형탄 세례.
그것은 공격이자 방어였고, 실체 없는 살의이자 분명한 살기를 머금은 무도(武道)였다.
구룡파천궁의 용살신망(龍殺神網)이 쏘아져 나갔다. 그 속도는 묵비가 날리는 철전 속도보다 느렸으나, 엄청난 범위를 아우르고 있었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곤향이 버럭 소리쳤다.
“쏴라!”
퍼퍼퍼퍼펑!
백화령 교도들이 쏘아 낸 열화신장이 하나로 합쳐지며 거대한 힘을 형성했다.
하지만 조금 늦었다.
열화신장이 거대하게 완성되기 직전, 용살신망의 무형탄 세례가 먼저 화기를 휩쓸었다.
번쩍! 콰아아앙!
코앞에서 터진 경력의 폭발에 백화령 교도 이백여 명이 휩쓸려 죽었다.
말 그대로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증발했다. 아군을 희생해서라도 궁수부터 잡겠다는 곤향의 판단이, 오직 아군만 희생시킨 최악의 결과를 만든 것이다.
물론 피해는 백화령만 입은 게 아니었다.
퍼억!
“크윽!”
황궁 수비대 군병들 여섯 명을 쓰러트리며 밀려 나간 묵비의 얼굴은 분을 바른 듯 하얗게 떠 있었다.
적의 호흡을 읽고 박자를 선점해 용살신망을 날렸지만, 용살신망의 기운을 조종하기 위해서는 내공이 한 가닥이라도 이어져 있어야만 했다.
당연히 폭발한 열화신장의 충격파는 그 내공의 선을 타고 고스란히 묵비에게도 전해졌다.
“커헉!”
한 움큼 쏟아 내는 핏물의 색깔이 심상치가 않았다.
홍운은 저도 모르게 물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괜찮을 리가 없다.
호수처럼 거대하고 깊은 내공으로도 이 충격파를 다 상쇄할 수가 없었다. 묵비는 순간적으로 ‘죽음’을 떠올렸다.
‘아직이다.’
이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
묵비는 자신의 몸을, 홍천기라는 내공심법을, 그리고 본래부터 잠자고 있던 거대한 내공의 힘을 믿었다.
연위와 부딪치며 얻은 깨달음을, 연호정과 나누던 무론으로 인해 발전한 육신을, 그 모든 것을 아울러 쏟아부은 노력을 믿었다.
‘앞으로 몇 발이나 쏠 수 있을까.’
비틀거리며 일어난 묵비가 적들을 노려보았다.
싸움은 또 한 번 멈추었다. 근거리에서 터진 엄청난 폭발에 청화령과 홍화령의 고수들도 상당한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황궁 수비대에게 둘러싸인 묵비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적들을 노려보았다.
기감이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무시무시한 정신력은 기어이 내공을 조종하여 감각을 극대화시켰다.
‘저기.’
까드득.
홍련궁의 시위를 당기는 것이 이렇게나 힘든 일이었나.
활을 가로로 든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뒤를 받쳐 주세요.”
질린 듯 묵비를 보던 홍운이 군병들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군병 둘이 묵비의 등에 어깨를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의 뒤로 수많은 군병이 손을 뻗어 충격파에 대비했다.
후우우우.
묵비의 입에서 흘러나온 숨이 유독 차가웠다.
주변이 소란스러웠지만, 묵비의 귀에는 자신의 숨소리 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우우웅! 우우우웅!
홍천기가 비명을 지르며 그녀의 손에 모였다.
픽! 픽!
시위를 당기는 그녀의 손가락 군데군데가 작게 찢어지며 핏물이 흘렀다.
묵비는 그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극한의 집중력으로 표적 하나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일격이야. 후회 없이 쏜다.’
묵비는 구룡파천궁(九龍破天弓)의 구결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외웠다.
연위와의 수련으로 만들어 낸 비장의 절기, 구룡파멸진(九龍破滅陣)은 지금 몸 상태로는 절대 쓸 수 없다. 하지만 본래 구룡파천궁상의 비기는 어떻게든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 일격에 혼을 담는다.
부르르 떨리던 그녀의 손이 서서히 멈추었다.
“…….”
알 수 없는 적막.
군병 중 누군가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 순간.
타아아아아앙!!
엄청난 반탄력에 묵비와 군병 일곱 명이 쓰러졌다.
홍련궁을 떠난 무형의 화살은 낮게 깔려 날아가다가 서서히 휘어지더니, 순식간에 백화령 부대 중앙 위로 솟구쳤다.
그리고.
묵비가 코와 입으로 피를 토하며 중얼거렸다.
“죽어.”
콰아앙!
하늘 높이 올라간 무형의 화살이 폭발하며 수십, 수백 개의 화살로 쪼개져 쏟아졌다.
진기로 이루어진 무형의 화살인데도 태양을 가리는 것만 같았다. 셀 수 없이 쏟아져 내리는 무형의 화살은 폭우처럼 백화령을 덮쳤다.
일격의 파괴력으로는 용아포만 한 것이 없지만, 대량 학살을 논한다면 역시나 이것뿐이다.
구룡파천궁 비기, 열룡산탄진(裂龍散彈陣).
보이지 않는 화살 비가 백화령을 뒤덮었다.
퍼버버버버벅! 콰쾅! 콰르르릉!
하나하나의 무형탄은 제각기 위력이 달랐다. 어느 것은 절정고수가 쏜 화살 같았고, 어느 것은 내공 없는 이가 쏜 화살 같았다.
또 어느 것은 초절정고수가 쏜 화살 같았으며, 또 어느 것은…….
작은 용아포와 같은 위력을 발했다.
그리고 막강한 화살 하나는 정확하게 곤향을 향했다.
피할 수 없음을 깨달은 곤향이 하나 남은 왼손을 휘둘렀지만, 폭발 반경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내상을 입은 그는 그 공격을 막을 수가 없었다.
퍼어엉!
곤향의 몸이 피 보라를 일으키며 사라졌다.
이로써 백화령의 수장은 죽었고, 백화령의 교도 이백여 명이 전투 불능이 되었다.
숫자는 여전히 신화군의 중군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묵비 한 명이 보여 준, 가히 비할 데 없는 충격적인 무공으로 인해 전투는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아니, 접어들려 했다.
화아아악!
서서히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다시 열탕처럼 끓어올랐다.
피 흘리는 백화령 뒤로.
오화왕 철흠기가 두 눈을 빛내며 오천 병력을 이끌고 나타났다.
묵비가 이를 악물었다.
홍운이 서둘러 말했다.
“이분을 황궁으로 모셔라! 절대, 절대 이곳에서 목숨을 잃게 해선 안 되는 분이다!”
묵비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나, 난 괜찮습니다.”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목소리는커녕 당장 시야도 흐릿했다. 지나친 내공 소모와 지독한 내상 때문에 순간적으로 눈이 멀었다 돌아오길 반복하는 것이다.
홍운은 그녀의 투지에 감탄하면서도 자신이 내린 명령에 힘을 더했다.
“어서 모시지 않고 뭣들 하는 것이냐!!”
“아, 안 돼!”
묵비가 힘없는 목소리로 악을 질렀다.
홍운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기억이 났습니다. 신궁이라는 별호로 불리는 묵비 여협이시지요?”
“……!”
“여협 덕분에 쓸데없는 희생을 막았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남은 인사는 우리가 살아 돌아가면 그때 전하겠습니다.”
묵비는 또 한 번 외쳤다. 하지만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와중에 귀도 먹먹해졌다. 시력도, 청력도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안 돼! 나는 더 버틸 수 있다! 함께 싸우게 해 줘!’
적의 또 다른 장수가 나타났다. 그가 나타난 이상 이 사람들은 다 죽을 것이다.
묵비는 그것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자신 역시 죽더라도, 아군과 함께해야만 했다. 그것이 도리였다.
‘안 돼…… 죽지 마…….’
묵비의 소리 없는 외침 너머.
절망과 슬픔의 감정은 바람을 타고 돌고 돌아 전장의 한곳에 내려앉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토해 내고 기절해 버린 묵비의 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