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chrome Sovereign RAW novel - Chapter (1128)
1128화. 삼마대혈전(三魔大血戰) (3)
“쿨럭!”
밭은기침을 내뱉는 찰극평의 입가에 점점이 핏물이 묻어 나왔다.
하지만 이대로 멈춰서 쉴 수는 없었다.
파바박!
연가 최고의 보법인 천라신보(天羅神步)가 아수라의 발밑을 보조한다.
순식간에 찰극평의 앞까지 도달한 연위가 제국검을 휘둘렀다.
파바바바박!
염제순화공의 힘을 가득 담은 두 손을 휘둘렀지만, 찰극평의 팔뚝과 손등엔 무수히 많은 검상이 새겨졌다.
그야말로 기가 막힐 일이었다. 염제순화공은 신화교 순화공 계열의 정점에 있는 무공으로, 교주지학(敎主之學)을 제한다면 단연코 최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화기를 담아내는 것부터 시작해 육신을 강철 이상의 강도로 만드는 것까지, 가히 만능 중의 만능인 무공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베인다. 육신의 강도 이전에, 절대 뚫지 못할 거라 자신했던 염제기(炎帝氣)를 살기에 미친 검은 너무나도 손쉽게 베어 오고 있었다.
‘엄청난 예기!’
서둘러 물러난 찰극평이 염제수의 염마제도(炎魔制道)를 펼쳤다.
끓어오르는 화기가 허공에 붉은 그림을 그리며 땅을 뒤집어 놓았다. 일순간 찰극평 주변이 온통 화기로 가득 찼다.
오직 열양공을 익힌 자만이 이 영역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그것도 천화의 경지를 넘어선 자가 아니면, 누구라도 한 줌 재가 될 것이다.
찰극평은 그리 믿었고, 그 믿음은 순식간에 배신감으로 뒤바뀌게 되었다.
만일 그가 차후에 염마제도의 초식을 무공 서적에 적고자 한다면 한 가지 예외 사항을 기재해야 할 것이다.
‘괴력난신(怪力亂神)이라면 이 영역에 들어올 수 있다.’라고.
그리고 괴력난신 그 자체가 된 연위는 미친 칼질로 불꽃을 베어 내며 찰극평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파악! 부아아악!
내리치는 검격이 사납다 못해 사악하기까지 했다.
휘두르는 투로는 단순한데, 그 일격에 상대의 호흡과 맥을 끊고 나아가 영혼까지 자르려 한다.
단순한 검격이 아니었다. 연위의 검격에는 무극에 이른 내공과 깨달음뿐 아니라,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물질도 베어 낼 수 있을 만큼 지독한 살기가 가득했다.
화아아아악!
무공보다도 살기가 더 경악스러웠다.
미친 듯이 물러나며 태세를 정비하려던 찰극평은 문득 자신의 이동 속도가 미세하게 느려졌음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은 의아함으로 변했고, 의아함을 느끼자마자 이유를 깨달았다.
‘살기!’
찰극평의 눈이 요동을 쳤다.
또다시 다가오는 팔비(八臂)의 아수라가 있었다. 특유의 청정하고 고풍스럽던 푸른 기운은 어디로 갔는지, 검붉은 기운을 팔방으로 뿌려 대며 전진한다.
팔을 휘두르는 동작은 느린데도 잔상을 남겼다. 고개를 돌리는 동작 역시 그리 빠른 게 아닌데도 몇 개의 얼굴을 그리다가 사라진다.
팔비가 십육비(十六臂)가 되고, 삼면(三面)이 육면(六面)이 된다.
그 어디에도 사각은 없었다. 제석천(帝釋天)과 함께 불교 신화(神話)의 한 장을 장식한 아수라의 모습은 진정한 팔부(八部)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외치는 듯 장엄하고도 공포스러웠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마공이!’
찰극평이 이를 악물며 쌍장을 휘둘렀다.
콰아앙!
또 한 번 화룡포가 쏘아졌다. 한 방이 아닌 두 방이었다.
넘쳐나는 공력, 빈틈없는 기세였다. 그 어떤 무공으로도 두 줄기 불기둥을 갈라 낼 수 없을 듯했다.
‘살(殺).’
죽인다.
그 하나의 단순하고도 직접적인 의지가 연위의 거대한 상단전에 녹아들고, 벼락처럼 제국검으로 내려와 궁극의 힘을 선사했다.
연위가 무자비한 횡격을 발했다.
번쩍! 콰르릉!
두 개의 불기둥은 네 개가 되어 연위를 스쳐 지나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도대체……!”
콰앙!
찰극평의 주먹이 연위의 가슴을 강타했다.
연위는 피를 뿜으면서도 찰극평의 손목을 쥐곤, 그대로 잡아당겨 휘둘렀다.
그 거대한 몸이 아무 저항도 없이 허공을 돌다가 땅에 처박혔다.
쾅!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굉음과 달리 찰극평은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았다.
진짜 충격은 손목에 있었다. 연위의 악력이 점점 더 강해져서, 어느새 찰극평의 손이 검붉게 변해 있었다.
퍽! 퍽!
서둘러 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연위가 쓰러진 찰극평의 얼굴을 노리며 무자비하게 검을 쑤셔 넣었기 때문이다.
일격만 제대로 들어가도 즉사할 검격이었다. 엄청난 반사 신경으로 피해 내고 있지만, 제국검이 땅을 찌를 때마다 대지로 스며든 살기가 찰극평의 정신을 어지러이 헤집었다.
기어이 찰극평의 입에서 비명 같은 기합이 울려 퍼졌다.
“으아아압!”
번쩍!
순식간에 터져 나오는 강렬한 화기에 연위가 손을 놓고 물러났다.
화르르르르륵!
찰극평의 몸 주변으로 수십 개의 불꽃이 회전했다.
마치 인화(燐火)를 다루는 것 같았다. 귀화(鬼火)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주먹만 한 붉고 푸른 불꽃이 찰극평을 호위하듯 서서히 회전했다.
“도대체 네놈의 정체가 무엇이냐!”
연위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꾸할 시간이 없었다.
아수라팔검(阿修羅八劍)을 펼치기 위해 검극사기의 내공 운용을 반대로 하고 있었다. 그 무엇보다도 정대한 검극사기의 역전 운용은 곧 마기(魔氣)를 생성하는 방법과 비슷했다.
그 역회전의 기운이 살기와 맞물려 마기로 변하는 순간, 연위는 진짜 마인이 되어 천하를 피로 물들일 것이다.
‘아직은 괜찮다.’
번쩍! 퍼퍼퍼퍼펑!
엄청난 쾌검이 찰극평의 주위를 도는 불꽃의 반을 베어 폭발시켰다.
탐욕스러운 짐승처럼 쳐들어간 연위가 아수라팔검의 참천도귀(斬天掏鬼)의 초식을 펼쳤다.
번쩍!
한 줄기 벼락이 내리꽂히는 듯하다.
그 내리꽂히는 벼락을 향해 휘두르는 검이었다. 참천, 제석천을 베어 귀신을 끄집어낸다는 무시무시한 이름처럼 연위의 제국검은 막강한 살기를 품고 사선으로 움직였다.
찰극평의 염제수가 불의 파랑을 일으켰다.
내리친 연위의 검은 만근의 힘을 담고 있었고, 그것을 막기 위해 염제수를 펼친 찰극평의 공력 역시 못지않은 힘을 발산했다.
콰르르릉!
야만스러운 검격과 사납기 그지없는 열양공이 부딪치며 엄청난 충격파를 만들었다.
두 사람이 서 있는 반경 십여 장의 땅이 움푹 내려앉았다.
땅이 울부짖고 바람이 미쳐 날뛰었다. 근심 어린 눈으로 대지를 내려다보던 구름은 깜짝 놀라 흩어졌다.
주르륵.
찰극평의 입가에 실 같은 핏물이 흘러내렸다.
내상이었다.
접근을 불허하는 절대의 무공을 지닌 그가, 한낱 마귀로 화한 판관검의 무공에 상처를 입었다. 화정은 순식간에 그의 내상을 치료했지만, 그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은 연위는 또 한 번 아수라팔검으로 그를 공격했다.
찰극평이 야수와 같은 기합을 지르며 주먹을 휘둘렀고, 연위가 귀신의 울음소리보다도 더 끔찍한 검음(劍音)을 일으키며 마주 싸웠다.
퍽! 퍼버버벅! 서걱!
찰극평의 권장이 연위의 몸통을 가격하고, 연위의 검과 길쭉해진 손톱이 찰극평의 몸에 무자비한 자상을 남겼다.
퍼퍼퍼펑! 퍼어엉!
넘쳐나는 공력끼리 부딪치며 천지가 신음했다.
연위도 연위였지만, 찰극평 역시 더는 물러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코앞에서 터지는 살기가 너무 지독해서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었지만, 그에게는 화정이 있었다.
화정. 신화교 무공의 근간이자 궁극의 회복을 가능케 하는 비술.
목이 날아가지만 않으면, 내장이 다 토막 나지만 않으면 어떤 부위든 재생시킬 수 있다. 떨어지는 체력은 어쩔 수 없으나 불구가 되는 것은 막을 수 있다.
그 하나의 사실이 새삼스레 찰극평에게 깨달음을 안겨 주었다.
‘살기만 참으면 된다. 살기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화왕 중에서도 상단전 연마를 가장 열심히 한 자신조차 미쳐 버릴 것 같은 살기라니?!
펑! 퍼버벅! 서걱! 촤아아악!
방어를 도외시하고 공격하는 순간, 찰극평의 몸 전체에 엄청난 피 보라가 일었다.
기다렸다는 듯 사혈과 급소, 관절의 이음새를 베고 지나가는 연위의 검법은 도무지 인간이 만든 무공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잔혹했다.
찰극평은 끔찍한 고통과 눈이 멀 것 같은 살기를 참아 가며 연위의 몸통을 공격했다.
펑! 퍼퍼펑! 퍼어엉!
조금씩, 조금씩.
연위의 몸이 뒤로 밀려 나갔다.
아수라의 살기는 곧 천하제일에 가까운 상단전을 지닌 연위의 힘을 받아 천하 최강의 살의로 거듭나고 있었다. 하지만 절대적인 무공 경지의 차이를 완전히 메울 수는 없었다.
퍼어억!
연위의 얼굴을 후려친 주먹.
제대로 들어간 일격이었다. 연위의 눈에서 실핏줄이 터지고, 코와 입에서는 검붉은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찰극평의 눈이 커졌다.
‘이겼나?!’
그 순간, 돌아갔던 연위의 고개가 무섭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퍼어어억!
찰극평의 입에서 피거품이 일었다.
제국검이 좌측 폐장을 정확하게 관통했다. 연위의 마귀 같은 왼손은 찰극평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퍽! 퍼억! 퍼억!
소리 없는 비명과 함께 찰극평이 연위의 얼굴과 어깨를 후려쳤다.
연위의 얼굴이 갈수록 엉망이 되었다. 하지만 뼈가 부러지지도, 이빨이 날아가지도, 눈알이 박살 나지도 않았다.
‘왜! 왜!’
이 정도가 되니 찰극평으로서도 미쳐 버릴 노릇이었다. 강철도 일격에 쪼개 버리는 주먹을 맞고도 이렇게 멀쩡하다니, 이게 진정 사람이란 말인가?
‘사람이 아니다! 이놈은 대체 무슨 마공을 익혔기에!’
그때였다.
푹!
검을 뽑아 든 연위가 잔혹한 미소와 함께 찰극평의 몸을 미친 듯이 찔렀다.
푹! 푹! 푹! 푹! 푹!
폐장, 심장, 간장을 가리지 않고 들어오는 검격에 찰극평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화정의 엄청난 회복력은 그 모든 검격을 무(無)로 돌리고 있었지만, 끔찍한 고통과 검격이 남기고 간 살기는 그의 정신을 마구 뒤흔들었다.
‘이놈!!’
찰극평의 손이 연위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퍽!
그때였다.
훅!
살기보다도 더 지독한 기운 한 줄기가 촛불의 연기처럼 올라왔다.
연위의 왼쪽 눈이 서서히 붉게 물들었다. 동공은 물론 흰자위까지 핏빛으로 변했다.
‘……!!’
그 순간, 연위는 정신을 차렸다.
콰앙!
혼신의 힘을 다해 찰극평을 걷어찬 연위가 비틀거리다가 무릎을 꿇었다.
“헉! 헉헉!”
순식간에 호흡이 거칠어졌다.
얼굴부터 팔다리까지, 온몸에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살기로 느려지고 약해졌을지언정, 무극을 넘어선 고수의 일격을 받아 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쿨럭!”
한 움큼 토혈을 한 연위가 고개를 들었다.
피투성이가 된 찰극평 역시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아수라팔검을 놓은 연위보다는 멀쩡해 보였지만, 그 역시 정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미친 괴물 놈이……!”
찰극평의 얼굴엔 질린 기색이 역력했다.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멀쩡한 사람인 척하느냐!”
천천히 일어난 연위가 찰극평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여전히 호흡은 격했지만, 살기로 미쳐 돌아갔던 두 눈은 호수처럼 잔잔했다.
“끝을 볼까.”
문득 찰극평은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그 하나의 생각은 순식간에 크기를 불려 막을 수 없는 공포를 자아냈다.
누구보다 예의 있고 올바른 자가, 한순간 마귀가 되어 피를 탐했다.
홍소를 터트릴 것처럼 하얗게 웃던 붉은 마귀는, 일순 다시 사람으로 돌아와 무뚝뚝하게 검을 겨눈다.
이 절대 어울리지 않는 양면성이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하고 있었다. 찰극평은 사람이나 귀신을 때려잡을 자신은 있었지만, 광기에 젖은 지옥의 마귀를 이길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그래, 어떻게든 끝을 봐야지.”
찰극평의 몸에서 다시 화기가 들끓었다.
“네놈만 잡으면 나머지는 오합지졸일 테니까.”
그때였다.
연위의 귀가 움찔하더니, 이내 그가 천천히 검을 내려놓았다.
찰극평은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또 무슨 미친 짓거리를 하려고 그러느냐!”
“승부를 낼 이유가 사라졌다.”
“뭐라고?!”
연위가 작게 미소를 지었다.
“한 수 잘 배웠다. 삼도천은 다음에 가는 것으로 하라.”
“무슨 개 같은……!”
화아아아악!
찰극평은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저 멀리 동쪽에서부터 번져 나오는 거대한 기운이 있었다.
콰아앙!
그 먼 거리에서 내친 권풍(拳風) 하나에 천지가 진동했다.
하북의 동쪽 방어선을 막고 있던 팽가와 하북 무림 전력 삼천을 이끌고 온 무허대사의 권법이었다.